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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803화 (803/1,214)
  • 803화. 동상이몽(同床異夢)

    “구유!”

    요염한 부인은 구유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었는지 깜짝 놀라더니 유수와 같은 검은 마광을 뿜어내며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미처 멀리 가기도 전에 허리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구유가 나타났고, 빠르게 줄어들었다.

    구유는 그녀 몸 주위에 있던 유수와 같은 검은 빛에 닿았지만, 미끄러지는 것처럼 빙글빙글 돌기만 했다. 요염한 부인은 기뻐하며 몸을 비틀어 구유에서 빠져나갔다.

    심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마왕채에서는 자신이 가진 마기(魔器)에 대해 알고 대비책을 마련해둔 듯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속으로 차갑게 웃었다. 몇 가지 마기에는 금제가 이미 50도를 넘어 상품 법보급에 도달해 천두금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으니 어찌 이런 수법으로 대처할 수 있겠는가.

    심협이 양손을 빠르게 결인하자 구유에서 검은 빛이 번쩍였고, 수많은 검은 마염이 뿜어져 나와 마치 문어의 촉수처럼 그녀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요염한 부인의 마광은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고, 아무리 마기를 뿜어내도 소용이 없었다.

    심협이 다시 한번 팔을 휘두르자 순양검이 번개처럼 나타나 검망을 뿜어내어 그의 몸을 감쌌고, 이내 사라졌다.

    다음 순간, 붉은색 검의 허상이 요염한 부인의 목을 스쳐 지나갔다. 순살검결이었다.

    팍!

    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그곳에는 머리를 잃은 여인의 몸통만 남았다.

    심협이 시체 옆으로 다가와 손을 휘두르자 붉은 빛이 그녀의 시체를 감싸 거두었다.

    해골 같은 남자는 이 광경을 보고 일순 넋이 나간 듯했다.

    요염한 부인은 절대 약하지 않았다. 진선 초기의 수사였고, 마왕채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존재였다. 한데 심협의 손에 이토록 쉽게 죽은 것이다.

    요염한 부인의 몸을 감싸고 있던 구유가 다시 사라졌고, 참마검과 순양검도 검망을 번쩍이더니 해골 같은 남자가 당황한 사이 번개처럼 그를 향해 날아갔다.

    해골 같은 남자는 깜짝 놀라 서둘러 비녀 법보를 거두었고, 검은 빛이 되어 옆에 있는 마연대진 속으로 사라졌다.

    다른 마왕채 수사들도 심협의 신통에 저항해도 소용없음을 깨닫고는 서둘러 마연대진을 향해 날아갔다.

    “감히 허락도 없이 어딜 도망치려 드느냐!”

    심협은 마왕채 사람들에 대한 분노로 크게 외치며 두 자루 비검을 결인했다.

    두 자루의 비검이 떨리더니 뿜어져 나온 빛이 수천 개의 가느다란 금과 적의 검사로 변하여 마왕채 수사들을 뒤덮었다.

    검사에 휩싸인 마왕채 수사들은 몸을 지켜주던 법보의 보호까지 뚫리자 비명과 함께 수많은 영광이 사라지면서 그대로 폭발했다.

    심협이 소매를 휘두르자 붉은 정광이 그들의 시체와 저물법기를 휘감았고, 바람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이들은 모두 대승기에 도달하여 신혼이 강력했으니 낭비하기에는 아까웠다. 하지만 회신주는 천기성의 보물, 여기서 곧장 이들의 신혼을 거두다가 발각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기에 우선 시체를 모두 소요경에 넣었다. 그 안에서 신혼을 흡수할 생각이었다.

    “심형의 신통은 정말 무서울 정도요. 내가 제대로 봤다면, 아까 그 여인은 마왕채의 분홍마녀(粉紅魔女)요. 문파 사이에서도 명성이 자자하지. 한데 심형에게 반격조차 못 해보고 죽을 줄은 몰랐소.”

    부동래가 감탄하며 다가왔다.

    “과찬이오. 그저 선수가 통했을 뿐. 부형도 곧 진선기로 돌파하면 나보다 더 강해질 게요.”

    심협은 웃으며 답했다.

    하지만 지금은 한가하게 대화나 할 때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바로 마연대진으로 다가갔다.

    그는 두 개의 비검을 결인했다. 비검들은 빠르게 하늘 높이 솟구친 뒤 엄청난 소리와 함께 금과 적의 거대한 검광으로 변하여 마연대진을 강하게 공격했다.

    마연대진의 검은 기운은 쉽게 찢어졌고, 검광은 뒤이어 아래에 있던 거대한 쇠사슬을 향해 날아갔다.

    깡! 깡!

    두 번의 굉음과 함께 사슬에는 깊은 균열이 생겨났지만, 부서지지는 않았다.

    그때, 범음과 같은 주문 소리가 안에서 들려오더니 주위의 검은 빛이 벌떼처럼 몰려와 부서진 곳으로 들어갔고, 두 개의 깊은 균열은 빠르게 줄어들어 눈 깜짝할 사이에 원래대로 돌아갔다. 이어 찢어진 검은 기운도 빠르게 복구되었다.

    이를 본 심협은 눈살을 찌푸렸다.

    마연대진의 위력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발천난봉이면 부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설령 부순다고 해도 법력 소모가 커서 이어지는 대전에서 위험할 것이다.

    “우선 시간이 없으니 이들은 놔둡시다.”

    심협은 단호하게 말하고는 푸른 빛을 뿜어내 부동래를 휘감고 비경 안으로 날아갔다.

    “이렇게 가버리면 저들이 위험할 것이오.”

    “지금은 신마의 우물이 더 급하오. 그리고 지금 각오 등을 풀어주면 우리를 첩자라 생각하여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소.”

    그 말에 부동래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바로 둔속을 높이는 동시에 연연나금의의 은닉 신통을 발동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이내 사라졌고, 소리도 없이 비경 깊숙한 곳으로 향했다.

    보리비경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기습을 당해 주위를 둘러볼 틈이 없었던 심협은 날아가는 도중에 신식을 펼쳐 살펴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곳에는 당연히 천지영기가 짙었지만, 영굴의 그곳과 비교하면 턱없이 부족했다. 다만 이곳 안에는 다른 신비한 향기가 가득했다. 방금 연이어 체내의 마기를 사용하느라 어지러웠던 심신이 이 향기로 인해 차분해지고 평안해졌다.

    “방촌산에는 보리성수(菩提聖樹)가 있는데, 그것이 보리선조 성도(成道)의 뿌리라 들었소. 이 향기는 아마 성수에서 나온 것일 게요.”

    부동래가 냄새를 한껏 맡으며 말했다.

    “보리성수? 삼계무도회에서 봤던 비취보리열매와 비교하면 어떻소?”

    “비취보리야 평범한 선계의 영수요, 보리성수는 홍황의 영근(靈根)이니 어찌 비교가 되겠소? 보리성수의 묘용은 무궁무진한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보리 수액으로 만든 향료요. 이것은 삼계에서 가장 좋은 향으로, 심신을 안정시키고 신혼을 온양시키며 심마를 제거해주는 등의 묘용이 있소. 경지를 돌파할 때도 이것으로 향을 피우면 돌파할 확률을 3할이나 높여준다 하오.”

    심협은 그 말애 눈이 번득였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은 보리성수를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신마의 우물을 찾는 것이 먼저였다. 그러지 못하면 상상도 하기 힘든 엄청난 일이 일어날 터였다.

    그는 신식을 최대한으로 펼쳤지만, 여전히 비경의 끝을 감지할 수 없었다. 심지어 다른 요마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보리비경은 상당히 넓은 것 같으니 흩어져서 신마의 우물을 찾는 게 좋겠소.”

    부동래도 비경이 상당히 크다는 걸 감지하고는 제안했다.

    “그게 좋겠소. 그 망할 놈들의 실력이 상당하니 조심하시오.”

    “허허, 내 비록 심형만큼 강하진 않아도 숨는 건 나도 지지 않소.”

    심협은 부동래의 수라은신술이 높은 경지라 귀언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음을 떠올리고는 안도했다.

    두 사람은 각자 비경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 * *

    보리비경 깊은 곳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 그 호수는 전체가 초록색이라 마치 거대한 비취 같았다.

    호수 중심의 섬에는 비취색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마치 천지가 개벽할 때 태어난 것처럼 매우 오래됐다는 느낌이 드는 나무였다.

    고목 아래는 어째서인지 모르겠지만 움푹 들어가 수십 장 크기의 깊은 구덩이가 있었는데, 그 안은 온통 어두워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하늘의 구덩이나 지옥으로 통하는 길 같았다.

    초록색 보호막 너머의 지하 공간. 허공에 수십 명이 떠 있었다. 그중 네 명은 천장에 닿고 아래로는 지옥에 닿을 만큼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바로 태을기의 수사들이었다.

    앞서 방촌산 밖에서 손오공과 싸웠던 화십낭도 이곳에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는 마왕채의 옷을 입은 마른 노인이 있었는데, 그 용모가 특이했다. 어떤 마공을 익혔는지 피부는 뼈가 보일 듯 하얬다. 그 노인은 마왕채의 대인물 중 한 명 같았다.

    다른 두 명은 사타령의 육아상왕과 금시대붕이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사타령, 반사동, 마왕채의 장로, 제자들이었다. 진선기는 일고여덟 명 정도에 나머지는 모두 대승기였다. 각종 영광이 뿜어져 나오는 법보가 사방에서 초록색 보호막으로 쏟아지면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초록색 보호막이 흔들리 때마다 부근의 호수에서는 하늘에 닿을 법한 거대한 파도가 솟구쳤다. 하지만 보호막에는 균열조차 생기지 않았다.

    보호막 안에는 네 사람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고, 바닥에는 주위의 보호막과 긴밀하게 연결된 팔괘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는 보리선조가 앉아 있었는데, 그의 배에는 주먹만 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주위의 피부는 검게 변해 때때로 검은 연기를 뿜어냈다. 무서운 맹독에 당한 것이 분명했다.

    상처에 떠오른 초록 빛은 검은 맹독이 전신으로 퍼지는 것을 막으려 했지만, 완전히 막지 못하여 주위의 피부가 침식되고 있었다. 독은 비록 느리지만 굳건하게 주위로 퍼져 나갔다.

    보리선조의 얼굴은 점점 검은빛을 띠었고, 호흡도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조사님?”

    방촌산 복장에 날카로운 눈썹을 가진 청년이 옆에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불렀다.

    다른 두 명 중 한 명은 고양이 얼굴의 요족이었는데, 마찬가지로 방촌산 장로 복장이었다.

    나머지 한 명은 능파성 복장으로, 몸집이 크고 두 눈썹은 금색이라 기개가 범상치 않아 보였다. 특히 미간의 별 그림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모두 걱정스런 표정으로 보리선조를 보고 있었다.

    “난 괜찮으니 자네들은 을목팔괘선진(乙木八卦仙陣)에 집중하게. 절대로 금제가 부서져 신마의 우물이 더럽혀져서는 안 되네!”

    보리선조가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 보이고는 말했다.

    그때, 광막 너머에서 마왕채의 마른 노인의 몸이 갑자기 하얀 빛을 뿜어냈다. 뒤이어 하얀색의 전음부가 나타났다.

    노인이 전음부를 쥐고 신식을 불어넣더니 하얀 눈썹을 찌푸렸다.

    “지영(池榮) 도우, 무슨 일이오?”

    육아상왕이 물었다.

    “누군가 여사(厲鯊)와 분홍의 방해를 뚫고 보리비경으로 들어왔소. 분홍이 이미 죽었다는군.”

    “분홍 도우를 죽이다니, 도대체 누구란 말이오?”

    육아상왕이 놀라서 물었다.

    “육아 도우도 잘 아는 자요. 동토 대당의 심협.”

    “또 그자인가!”

    육아상왕의 눈빛이 싸늘하게 번득였다.

    “그자가 보리비경으로 들어왔으니 제천대성도 곧 들어올지 모르겠소. 속전속결로 끝내야 하오!”

    지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는 전력을 다해 앞에 있는 흑백의 두 기검(奇劍)을 발동하자 흑백의 검기가 눈꽃처럼 날아와 초록색 보호막을 강하게 공격했다.

    그들은 비록 힘을 합쳐 방촌산을 공격하고 신마의 우물을 열려고 했지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기에 서로 경계하며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전력을 다했다가는 막상 신마의 우물이 열렸을 때 다른 자들에게 빼앗길 수도 있었다.

    허나 이제 상황이 변했다. 지난 몇 년간의 계획이 달린 일이니 지영도 더는 힘을 아낄 수 없게 된 것이다.

    “보리 도우, 어찌 그리 고집을 부리세요? 법진을 풀고 신마의 우물만 열게 해주면 내 바로 지영 도우에게 마구(魔鳩)의 독을 해독해주라고 할게요. 게다가 삼계 모든 생명의 공유물인 신마의 우물을 그렇게 오랫동안 차지했으면 이제 주인을 바꿀 때도 되지 않았나요?”

    화십낭은 지영과 육아상왕의 대화를 듣고는 깔깔대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마음을 홀리는 마력이 담겨 있어서 듣고 있자니 온몸이 녹을 것 같았다.

    이 매심(魅心) 신통은 보호막으로도 막을 수 없었기에 두 명의 방촌산 장로들과 능파성의 금색 눈빛 사내는 듣자마자 온몸이 떨리고 눈이 풀렸지만, 고수들답게 이내 다시 정신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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