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2화. 모함
일행은 금세 푸른 빛의 산 벽 앞에 도착했다.
각오가 초록색 영패를 꺼내 뭔가를 읊조리자 영패가 빛으로 변하여 산 벽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푸른 빛의 산 벽이 갑자기 환한 빛을 뿜어내더니 순식간에 10여 장 크기의 초록색 빛의 고리를 만들어냈다.
“자, 들어갑시다.”
각오가 술법을 멈추고는 말했고, 심협은 두말없이 연연나금의를 발동하여 모두와 함께 초록색 빛의 고리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갑자기 끝없는 어둠으로 빠져들었다. 몸은 끝없는 심연에 떨어진 것처럼 끊임없이 떨어졌다. 강력한 힘이 주위에서 새어 나와 연연나금의의 푸른 빛을 찢어냈다.
일행은 모두 경지가 낮지 않았기에 각자 술법으로 몸을 보호했다.
다행히 어둠으로 떨어지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잠시 후에는 모두의 눈앞이 밝아졌다.
그곳은 눈부신 공간이었다. 아름다운 산천과 하늘에 떠다니는 오색구름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곳은 마치 동천복지(洞天福地) 같았다.
하지만 그들이 감탄하기도 전에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수많은 검은 기운이 나타났다. 기운 안에 있던 두꺼운 검은색 사슬이 촤르륵 하면서 교차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사슬의 대진으로 변하여 모두를 그 안에 가두려 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모두의 안색이 돌변했으나, 사슬이 너무도 빨라 미처 대응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그때, 금빛이 날아오르더니 사슬 대진 끝으로 빠져나갔다.
심협은 그동안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아무도 모르게 계속 운사여전결을 수련했다. 이 공법은 천기성 입교의 근본으로, 매우 정묘했다. 그가 수련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신혼의 힘은 이미 상당히 정진하여 이전보다 더 빠르게 반응할 수 있었다.
금빛이 그의 몸에서 나오더니 푹 하는 소리와 함께 곧 완전히 합쳐질 사슬 대진 안에 꽂혔다. 그 안에 있던 것은 금색의 곤봉, 현황일기곤이었다.
“커져라!”
심협이 법결을 결인하고는 크게 외쳤다.
현황일기곤에서 영문이 금빛으로 번득이더니 곤봉은 순식간에 거대해져 억지로 사슬 대진에 돌파구를 열었다.
주위의 사슬들은 검게 번득이더니 검은색 번개로 현황일기곤을 공격했다. 사슬 대진에서 뿜어져 나온 강력한 힘이 거대한 곤봉에 떨어졌다.
끼이이!
귀청을 찢을 듯한 마찰음과 함께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현황일기곤은 구전빈철을 넣으면서 더욱 단단해졌기에 멀쩡했다. 심지어 뿜어져 나오는 금빛도 전혀 약해지지 않았다.
심협은 이 틈에 양팔에서 풍뢰영광을 반짝였고, 번개처럼 그 돌파구 사이로 빠져나오려 했다.
하지만 그때 주위의 쇠사슬에서 검은 빛이 번쩍이더니 대여섯 개의 촉수 같은 검은 기운들이 쏟아져 나와 심협을 빠르게 휘감고는 철저히 가두었다. 살기를 뿜어내는 이 검은 기운은 순수한 마기였다.
심협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풍뢰영광을 번쩍이며 마기의 촉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꽈르릉!
뇌명(雷鳴)이 울려 퍼지면서 촉수의 마기가 상당히 흩어졌지만, 심협은 여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올챙이만 한 수많은 검은색 마문이 촉수에서 솟아올라 심협의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심협은 법력의 운공이 지체되면서 양팔의 풍뢰영문도 빠르게 어두워지자 마음이 무거워졌다.
쉬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적과 금의 검광이 몸에서 빠져나와 주위의 검은 기운을 베었다.
순양검의 공격은 촉수의 움직임을 간신히 멈추게 하는 데 그쳤지만, 참마검은 달랐다. 연이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세 개의 검은 기운의 촉수가 잘려나갔다.
그러나 심협 역시 법력이 절반이나 막혀 있었기에 참마검으로도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가 이를 악물고 억지로 법력을 발동하려는 순간, 10여 개의 검은 기운이 또다시 검은 사슬에서 쏟아져 나왔다.
이번의 기운들은 이전 것들보다 더 거대했으며, 마문이 가득했다. 저 기운에 사로잡히면 법력이 완전히 봉인되고 움직임까지 완전히 멈출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다급해진 심협은 바로 마기를 발동하며 왼손을 결인했다. 그러자 오른팔이 배나 커지면서 핏줄이 솟아올랐고 팔에 검은색 마조(魔爪)의 허상이 나타나면서 발톱이 날카롭게 자라났다.
마조의 허상은 주위를 옥죄고 있는 검은 촉수를 움켜쥐었고,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견고했던 검은 기운들이 모두 잘려나갔다.
이후로도 마조의 허상은 멈추지 않고 허공에 검은 기운의 흔적을 남기며 돌진했고, 연달아 검은 기운을 베어냈다.
휙! 휙! 휙!
검은 기운은 너무도 쉽게 잘려나가며 폭발했지만, 힘을 모두 소모한 마조의 허상도 이내 사라졌다.
이 마조의 허상은 치우무결에 있던 신통, 치우지박(蚩尤之搏)이었다. 치우무결에 따르면, 극한까지 수련할 경우 하늘마저 찢을 수 있다고 했다. 심협은 너무 과장한 거라 여겼는데, 이 위력을 보아하니 정말로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붉은 빛이 날아오더니 심협의 몸을 휘감고 밖으로 끌어당겼고, 그는 그대로 빠져나왔다.
“누구냐?”
밖으로 빠져나오자 법력이 회복됐고, 심협은 재빨리 금룡의 허상을 뿜어내어 순식간에 붉은 빛을 찢고 몸을 가누었다. 거의 동시에 현황일기곤과 순양검, 참마검도 쇠사슬 안에서 빠져나와 그의 몸을 맴돌며 주위를 경계했다.
심협이 사슬 대진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은 매우 복잡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편, 사슬 마진 안의 다른 사람들도 서둘러 법보를 꺼내 일고여덟 개의 보광으로 주위의 사슬 대진을 공격하고 있었다. 다만 주위의 검은 쇠사슬은 너무나 견고하고 난공불락이라 온갖 화려한 공격과 어지러운 영광에도 멀쩡했다.
몇몇 방촌산 제자들은 을목선둔을 시전하여 빠져나가려 했지만, 주위 공간과 하나가 된 검은 마진은 공간의 힘마저 봉인했기에 어떤 둔술로도 통과할 수 없었다. 이에 방촌산 제자들의 안색은 점점 변해갔다.
이를 본 심협이 참마검으로 밖에서 사슬을 부수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주위의 허공이 연달아 반짝이더니 10여 명의 검은색 옷을 입은 수사들이 나타났다. 복장으로 미루어보아 마왕채 수사들이었다.
선두의 진선기 존재 중 하나는 요염한 몸매의 매우 아름다운 젊은 부인으로, 진선 초기였다. 다른 한 명은 해골처럼 마른 남자로, 바람이 불면 몸이 날아갈 것만 같았으나 경지는 진선 중기였다. 몸 주위에 붉은 비단 같은 법보가 있었는데, 방금 심협을 밖으로 끌어낸 붉은 빛의 정체인 듯했다.
심협이 눈살을 찌푸리고 외치려는 순간이었다.
“하하, 심 도우. 역시 저들을 데리고 왔군요. 각오는 방촌산 부당의 당주라 그가 가진 부적들은 상대하기 껄끄러웠습니다. 그래도 흑율마연대진(黑律魔鏈大陣)이면 충분히 막아낼 수 있으니 이 공은 상당합니다!”
해골 같은 남자가 친근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비경에 들어오자마자 마진에 갇혀 안 그래도 의문투성이였던 방촌산 제자들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그들이 보기에는 심협의 대응 속도는 너무도 빨랐고, 갑자기 붉은 빛이 그만을 마진 밖으로 끌어내준 데다, 적으로 보이는 남자가 저렇게 말하니 이들의 의혹은 확신으로 변해갔다.
“심협, 네놈은 역시 저놈들의 첩자였단 말이냐!”
각오가 눈을 부릅뜨며 버럭 호통을 쳤다.
연달아 배신을 당한 방촌산 제자들은 심협을 죽일 듯 노려보았다.
“아니오, 심형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오! 이는 적의 계략이니 절대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심협을 잘 아는 부동래가 황급히 변명했다.
그때, 해골 같은 남자가 음흉한 미소를 짓더니 검은 깃발을 꺼내서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자 비단 같은 검은 빛이 깃발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너무도 쉽게 사슬 마진 안으로 파고들어 부동래의 몸을 감싸고는 밖으로 잡아당겼다.
미처 피하지 못한 부동래는 눈앞이 빠르게 흔들리더니 마진 밖으로 끌려 나왔다.
“부 도우, 그대도 고생했소. 이제는 우리에게 맡기시오.”
해골 남자는 맑게 웃더니 부동래의 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다시 검은 깃발을 흔들었다.
마연대진에서 솟구친 검은 기운이 방촌산 제자들을 감싸자 안팎의 소리가 차단됐다.
“죽일 마족 놈들, 감히 날 모함해!”
자신마저 상대의 모함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달은 부동래는 방촌산 제자들의 눈빛에 담긴 혐오감에 부르르 떨었다.
혈광과 함께 그의 손에 벽혈간척부가 나타났다. 그는 망설임 없이 크게 휘둘러 자신을 감싼 검은 빛을 내리쳤다.
꽝!
하지만 검은 빛은 너무도 단단해 도끼 허상은 전혀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그때, 금색 검광이 번개처럼 날아와 부동래 주위의 검은 기운을 베었다.
찌익!
비단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검은 기운은 금색 검광에 잘려나갔다.
금색 검광에 끌려 나온 부동래는 심협 옆에 섰다. 검광에서는 참마검의 본 모습이 드러났다.
“고맙소, 심형.”
부동래는 안도하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너희는 마왕채 수사들이로구나. 어째서 이런 야비한 수단을 써서 우리를 모함한 것이냐?”
심협은 차분함을 되찾고는 마왕채 수사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소매 속에서 발온갑을 열었다. 온독이 흘러나와 주위로 퍼져 나갔다.
“조심해라! 저자가 발온갑을 썼다!”
요염한 젊은 부인은 갑자기 몸에서 하얀 빛을 뿜어내며 크게 외쳤다.
심협의 눈빛이 일순 흔들렸다.
‘저 여자는 발온갑의 존재를 알고 있구나. 심지어 발온갑을 감지할 수도 있는 게야!’
그가 발온갑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목효뿐이었다.
‘목효가 마왕채에 투항했나?’
그런 생각이 순간 머릿속을 스쳤지만, 이내 뒷전으로 밀려났다.
기습이 실패하자 심협은 곧장 강공에 나섰다. 참마검에서 검광이 번쩍이더니 10여 장 길이의 검광으로 변해 요염한 부인의 머리 위에 나타나 크게 베었다.
부동래는 심협과 오랫동안 자주 합을 맞춰봤기에 벽혈간척부에서 혈광을 뿜어내 백 장 길이의 혈망으로 해골 같은 남자를 공격했다.
요염한 부인은 번개 같은 속도의 참마검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녀도 평범한 여인은 아닌지라 입에서 단검 두 개를 꺼내더니 날카로운 검세를 뿜어내며 참마검의 검광을 막아냈다.
그 순간, 참마검의 검광은 갑자기 줄어들어 1장 크기로 변했다. 그러나 검망은 오히려 더 밝아져 두 개의 검은 단검을 휘감았다.
챙!
금속음과 함께 두 단검은 동강 났고, 빛도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고도 금색 검광은 멈추지 않고 오히려 거슬러 올라가 요염한 부인을 다시 한번 노렸다.
하늘을 뒤덮는 살벌한 검의가 덮쳐오자 단검이 부러진 여인은 다른 보물을 꺼낼 겨를도 없이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됐다.
“멈춰라!”
멀리서 부동래와 싸우고 있던 해골 같은 사내가 검은 깃발에서 검은 빛을 발사해 부동래를 밀어내고는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비녀 모양의 법보가 한 줄기 검은 빛을 뿜어내며 순식간에 수십 장을 지나 참마검을 공격했다.
땅!
맑은 소리와 함께 비녀에서 마치 불꽃놀이를 할 때처럼 검은 불꽃이 만발했고, 허공 전체가 흔들렸다.
참마검이 옆으로 몇 장이나 밀려난 덕에 간신히 살아난 요염한 부인은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서둘러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심협의 소매에서 검은색 고리가 날아가더니 이내 허공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