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99화 (799/1,214)
  • 799화. 극악무도

    금빛에서 금색 영부(靈符)가 나타났고, 부문이 찢어지면서 강렬한 공간의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뒤이어 허공이 일그러지면서 누군가 나타나더니 쏜살같이 양전을 향해 돌진했다.

    그자는 커다란 곡선을 그리며 양전의 뒤를 향해 금색 곤봉을 휘둘렀다.

    급작스러운 상황에 양전은 방어조차 할 수 없었고, 등에 강한 충격이 전해지자 거대한 법상도 심하게 흔들리면서 바로 사라졌다.

    그는 피를 뿜으며 손오공의 머리 위를 넘어 날아갔다.

    이 순간, 그곳에 있는 모두가 어리둥절했다. 화십낭은 손오공을 도와 양전에게 중상을 입힌 것이었다.

    하지만 양전에게 중상을 입힌 자의 모습이 나타나자 모두가 더욱 놀라서 멍해졌다.

    그는 쇠사슬로 된 황금 갑옷을 입고 있었고, 머리에는 봉황 날개가 달린 자금관을 쓰고 있었다. 발밑에는 구름을 사뿐히 밝고 있었으며 금색의 곤봉을 가로로 휘두르자 금빛이 반짝였다. 누가 봐도 제천대성 손오공이었다.

    “저건……?”

    부동래는 완전히 멍해졌다.

    “대왕님…….”

    화십낭에게 묶인 두 마리의 원숭이 요괴 맹장은 서로 눈을 마주쳤는데, 두 사람의 눈에는 온통 혼란뿐이었다.

    양전은 간신히 몸을 가누고는 앞에 있는 두 명의 손오공을 바라봤지만, 이내 입가의 피를 닦고는 먼저 자신과 싸웠던 손오공에게 말했다.

    “손오공,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양전의 물음에 먼저 온 손오공은 자기와 똑같이 생긴 ‘손오공’을 보며 히죽거렸다.

    “경전을 가지러 가는 길에 분명히 죽였는데 어떻게 다시 살아난 거냐?”

    양전을 기습한 ‘손오공’은 그 말을 듣고 금색 곤봉을 거두고는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문질렀다. 그러자 두 개였던 귀가 순식간에 여섯 개로 늘어났다. 바로 육이미후였다.

    “끌끌, 더 신중하게 내 시체까지 없앴어야지.”

    육이미후는 손오공을 바라보더니 새하얀 이빨을 내보이며 웃었다.

    “이번에는 그렇게 해주마.”

    손오공은 몸을 곧게 세우고는 여의금고봉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하지만 어쩐지 육이미후의 기운이 조금 이상하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었다.

    그때였다.

    콰쾅!

    갑자기 폭발음이 들려왔다.

    허공에 있던 검들이 흩어지면서 심협도 검소 검진에서 빠져나와 하늘 높이 솟구쳤다.

    화십낭은 중후한 기운이 조금도 흩어지지 않은 심협의 옆에 붉은색 비검이 떠 있는 것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녀가 바로 손을 들자 모든 봉소 비검이 벌떼처럼 전부 그녀를 향해 몰려와 하나로 합쳐지더니 소매 속으로 들어갔다.

    심협 또한 육이미후를 보는 순간 당황했고, 바로 그와 손오공의 다른 점을 눈치챘다.

    부동래와 각안도 싸움을 멈추고 서로 거리를 벌렸다.

    “반사동은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양전이 화십낭에게 물었다.

    “이랑진군이 알고 싶다니, 기꺼이 알려드리죠. 사실 저희가 능파성과 다른 인간족 종문과 손을 잡은 건 구실에 불과했고, 방촌산을 압박하여 산하사직도를 내놓게 하는 것도 핑계였죠. 진짜 목적은…… 당연히 우리 요, 마 두 종족의 신마(神魔)의 우물을 열기 위함입니다.”

    신마의 우물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양전과 손오공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심협은 그게 뭔지 알지 못해 그저 의아할 따름이었다.

    “신마의 우물은 흑연미굴의 음양굴처럼 가장 순수한 영기와 마기를 가지고 있소. 두 종류의 힘을 결합하면 인간족, 선족 그리고 마족에게는 육체가 환골탈태하고 혈맥을 세련(洗練)하는 작용이 일어나오.”

    “신마의 우물을 위해서라고? 세 종족이 맹약을 세울 때 신마의 우물을 함께 봉인하기로 했다. 설마 맹약을 파기하려는 것이냐?”

    “그 망할 놈의 맹약……. 너희 인간족과 선족은 수련할 때 영기를 필요로 하고 마족은 마기가 필요하니 신마 우물의 존재가 너희들에게는 아무 쓸모가 없어도 우리 요족이 혈맥을 단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마의 우물이 필요하다. 그걸 봉인해버리면 우리는? 우리 요족의 미래는 생각해본 적이 있더냐?”

    “확실히 그렇긴 하오. 요족 중 혈통이 특별히 강한 존재 외에는 대부분이 마족의 갈래라, 몸에 변화가 일어나고 혈통도 더는 순수하지 않지. 비록 마기와 영력을 동시에 흡수하고 수련하여 경지가 정진할 수야 있겠지만, 훗날 한계에 부딪힐 게요. 혈통의 불순함은 한계가 높아봐야 태을 경지에 그쳐, 신마의 우물에서 세례를 거치지 않으면 영원히 천존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소.”

    굳은 표정으로 이어진 부동래의 설명을 듣자 심협은 요족의 심정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됐다. 어느 종족이든 일족에서 천존의 경지에 오른 존재는 종족 자체의 존망과 관계되기 때문이다.

    “맹약을 깨트리고 신마의 우물을 다시 열면, 그 대가는 생각해보지 않았나?”

    “대가라……. 너희가 모두 여기서 죽으면 누가 알고 책임을 묻겠는가? 그저 종문 간의 원한에 의한 개인적인 싸움이고 문파들의 막대한 손실만 알려지겠지.”

    양전의 질문에 화십낭이 비웃었다.

    이에 심협이 맞받아 소리쳤다.

    “천궁과 대당 관부가 너희들의 소행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반사동과 사타령이 능파성이나 다른 이류 종문들과 힘을 합친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게냐? 만약 천궁의 묵인이 없었다면 우리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방촌산을 공격할 수 있었을까? 천궁과 대당 관부 역시 방촌산을 탐탁지 않게 볼 수밖에……. 산하사직도를 가진 것만으로도 그럴진대, 하물며 각 종족의 제자를 받아들이며 커가고 있으니 말이다. 호호호!”

    “그렇다 해도 대당 관부와 천궁은 어리석지 않다. 신마의 우물이 다시 열리면 너희 소행임을 모를 리가 없다!”

    “알게 되면 뭐 어쩌겠느냐? 너희만 여기서 죽으면 세상은 진상을 알지 못할 것이고, 자신들의 치부를 들춰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행동을 알고도 묵인했다는 걸 과연 그들이 스스로 인정할까? 호호호!”

    화십낭은 크게 웃었다.

    이제 양전도 자신이 완벽하게 이용당했음을 알게 됐다. 저들은 처음부터 자신과 방촌산을 이곳에 함께 묻어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양전아, 양전아, 그렇게 잘난 척하더니 이게 뭐냐? 미련한 놈.”

    손오공도 참지 못하고 비아냥댔다.

    “뭘 굳이 일일이 대답해주는 것이오? 서둘러 싹 다 없애버립시다!”

    각안의 두 눈이 붉게 빛나고 표정이 일그러졌다. 방촌산의 배신자가 오히려 손오공 등의 목숨을 더욱 간절히 원하는 꼴이었다.

    진상을 아는 저들만 모두 죽으면 그는 방촌산을 다시 일으키는 중흥(中興)의 주인으로 세상에 명성을 떨치게 되리라!

    그래서 각명의 죽음이 그에게는 오히려 전화위복이었다.

    “거 되게 시끄럽네!”

    육이미후가 뾰족한 귀를 움찔거리며 나직하게 투덜거렸다.

    각안은 그의 말에 화가 났지만, 그저 이를 악물고 참아내며 내색하지 않았다.

    심협은 상황을 지켜보다가 미간이 슬쩍 찌푸려졌다. 손오공과 양전의 부상이 가볍지 않아 화십낭과 육이미후를 제압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때였다.

    퍼펑!

    방촌산 정상에서 갑자기 폭발음이 들려왔고, 산 전체가 강하게 흔들렸다.

    모두가 그쪽에서 느껴지는 파동을 감지하고는 표정이 굳어졌다.

    곧이어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함께 커다란 금색 새가 하늘로 치솟더니 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됐다! 보리비경이 드디어 깨졌어!”

    화십낭이 기뻐하며 외쳤다.

    “금시대붕…… 저놈도 왔을 줄이야…….”

    손오공은 표정이 굳어졌다.

    각안은 금시대붕을 언급한 적이 없었다. 일부러 숨긴 것이었다.

    손오공의 말에 부동래의 표정도 차갑게 변했다. 금시대붕은 한때 그의 스승이었기에 부동래는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직도 갈피를 잡지 못했다.

    “육이 도우, 손오공과 양전 모두 큰 부상을 입었으니 두려울 것 없습니다. 일은 모두 그대에게 맡기죠. 저는 산 정상으로 돌아가 보리비경으로 들어가 신마의 우물을 열어야겠군요.”

    “가봐라. 저 둘의 머리는 내가 직접 베겠다.”

    육이미후가 자신 있는 목소리로 내뱉자마자 그의 온몸에서 암홍색 불꽃이 타올랐다. 이어서 손오공의 것과 똑같았던 금색 갑옷이 잿더미로 변했고, 그 안에서 은은한 광택이 도는 오금(烏金)의 갑옷이 드러났다.

    이 갑옷 주위에는 검은 기운이 맴돌았는데, 그 느낌이 손오공과는 확연히 달랐다.

    화십낭은 산 정상으로 향했다.

    “이 요물, 어딜 가느냐!”

    손오공이 분노해 막아서려는 순간, 검은 그림자가 순식간에 다가왔다.

    “저리 비켜라!”

    손오공은 고함과 함께 여의금고봉을 내리쳤다.

    육이미후는 칠흑의 마곤(魔棍)을 들어서 막았다.

    챙!

    금속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금고봉이 육이미후의 어깨까지 짓누르자 칠흑의 마봉이 구부려졌다.

    “하!”

    기합과 함께 육이미후의 몸에서 하늘을 찌르는 듯한 살기가 일어났고, 양팔이 떨리면서 구부러진 마곤이 바로 다시 튕겨내 손오공까지 밀어냈다.

    육이미후는 손오공을 내버려두고 몸을 돌려서 양전에게 돌진했다.

    양전은 신통을 시전하여 화십낭을 쫓고 있다가 갑자기 눈앞이 어둑해지더니 육이미후의 마곤이 나타나 그도 충격에 뒤로 날아갔다.

    “심협, 네가 산 정상으로 가서 스승님의 상황을 살펴봐라.”

    손오공의 말에 심협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고 산 정상으로 향했다.

    육이미후는 이를 보고도 못 본 체했다. 그의 눈에는 손오공과 양전만 보일 뿐, 심협과 부동래 같은 작은 배역들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한데 각안이 다급히 날아와 앞을 막아섰다.

    “이놈! 감히 내 일을 방해하려는 것이냐? 절대 못 간다!”

    그가 버럭 외치며 손을 휘두르자 금색의 작은 석탑이 날아와 허공에서 눈부신 금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삽시간에 금색 석탑에 새겨진 불가의 진언(眞言)이 일제히 튀어나와 심협 등을 에워싸고 뒤덮었다.

    진언이 뒤덮은 곳에서는 불문의 글자들이 음파처럼 퍼져 나왔다.

    음파 영역에 들어가자 심협은 갑자기 어지러워지더니 곧이어 마치 불국(佛國)에 들어온 것처럼 중들의 읊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 듣고 있자니 기분이 편안해졌다.

    반면 바로 옆에 있으면서도 부동래가 받는 느낌은 그 반대였다. 네 명의 호법 천신이 주위에 나타나더니 끊임없이 그를 향해 고함을 쳐댔다. 음파의 충격에 그는 오장육부가 뒤흔들렸고, 입에서는 피가 흘러나왔다.

    “크아아!”

    부동래의 포효와 함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자 위쪽의 석탑이 강하게 흔들렸고, 흘러나오던 범음의 음파도 흐트러졌다.

    그 순간, 혼란에 빠져 있던 심협은 퍼뜩 정신이 들어 곧바로 부주진신법을 운공했다. 그러자 머릿속에서 범음의 여파가 사라졌다.

    “간다!”

    심협의 외침과 함께 붉은 빛이 바람을 가르며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붉은 비검은 순식간에 세 개로 나누어져 석탑으로 날아갔다.

    몇 번 오가며 순양 비검에서 나누어진 검의 허상이 범음의 진언을 산산이 부숴버렸고, 이제 석탑만이 허공에 뜬 채로 빛을 깜빡이고 있었다.

    각안이 법보를 회수하기도 전에 부동래가 날아올라 산을 쪼갤 기세로 벽혈간척부를 휘둘러 석탑을 내리쳤다.

    콰쾅!

    폭음과 함께 석탑이 무너져 내렸다.

    이를 본 각안은 분노하여 다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손목에 차고 있던 검은색 팔찌가 날아올랐다.

    자세히 살펴보니 팔찌는 매우 단순해, 가느다란 실에 세 개의 검은색 돌이 달린 것이 전부였다. 겉보기에는 조금도 특별하지 않았다.

    “조심해! 저건 선조의 삼성석(三星石)이다! 저놈이 삼성멸마 신통을 시전하려는 게다!”

    손오공이 이 광경을 흘끗 보더니 깜짝 놀라서 급히 소리쳤다.

    심협은 일순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삼성석과 삼성멸마 신통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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