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97화 (797/1,214)
  • 797화. 지연

    꽈르릉!

    삽시간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하늘 가득한 뇌전이 폭풍우처럼 양전과 화십낭을 향해 쏟아졌다.

    양전은 미간의 세로 눈에서 금빛을 발사해 반원의 광막을 만들어 스스로를 보호했지만, 화십낭에게는 그런 강력한 방어 수단이 없었다.

    하늘에 가득 찬 뇌광은 그녀가 설치한 허공의 거미줄을 타고 흘러가 거대한 번개 그물이 되었고, 공 모양의 번개는 그 위를 이리저리 굴러다니며 그녀의 몸에 끊임없이 쏟아졌다.

    한참 뒤에야 뇌전이 마침내 멈췄다.

    양전의 은색 갑옷에는 여전히 번개가 흘렀고, 화십낭의 온몸은 검게 그을려 참혹한 모습이었다.

    손오공은 여의금고봉을 어깨에 걸치고는 싸늘하게 웃으며 두 사람을 돌아보았다.

    “맛이 어때?”

    양전은 무표정했지만, 놀랍게도 화십낭이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이를 본 손오공은 눈이 가늘어졌고, 뭔가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으아악!”

    그의 뒤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손오공은 고개를 휙 돌렸는데, 그의 뒤를 따라오던 각안이 누군가에게 기습을 당해 피를 뿜으며 떨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다만 그를 공격한 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손오공은 화안금정으로 주위를 샅샅이 살펴봤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기습한 자의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각안이 자신을 돌보지도 않고 소리쳤다.

    “사제, 뒤를 조심…….”

    손오공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고 금빛과 함께 10여 장이 늘어난 여의금고봉을 부채꼴 모양을 그리며 뒤로 휘둘렀다.

    쾅!

    기습하기 위해 달려든 화십낭은 갑자기 늘어난 곤봉에 맞고 수백 장을 날아갔다.

    “윽!”

    또 한 번의 비명이 들려왔다. 각안은 온 힘을 다해 고통을 참았지만, 괴력에 맞는 순간 결국 참지 못하고 신음이 새어 나왔다.

    “숨어 있지 말고 모습을 드러내라!”

    손오공은 또 기습을 당하자 화를 내며 소리쳤으나, 허공에서는 바람 소리 외에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허공에 숨어 있던 자가 반응을 보였다.

    이미 온몸이 상처로 가득하여 피투성이인 각안은 등을 다시 공격당했고, 마치 찢어진 마대 자루처럼 다시 손오공을 향해 솟구쳤다.

    손오공은 두 눈에서 분노의 불꽃을 뿜어내며 그를 잡으려 했다.

    “사형!”

    한 손으로 각안을 부축하고 그의 상처를 살피려던 순간,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다음 순간, 광포한 힘이 앞에서 쏟아졌고, 허광이 뭉쳐지더니 설백의 거대 코끼리가 곧장 달려들어 손오공과 충돌했다.

    “뿌우우!”

    우렁찬 코끼리의 울음과 함께 코끼리의 허상은 사라졌고, 손오공도 수백여 장을 날아가고서야 간신히 몸을 가누었다.

    금색 피가 그의 늘어진 팔을 타고 흘렀다.

    뚝, 뚝…….

    피가 떨어지는 소리가 천지 사방에 울려 퍼지는 듯했다.

    “하하하!”

    억눌렀던 듯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웃음소리는 점점 커졌고, 점점 난폭해졌다.

    손오공은 천천히 고개를 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의 왼쪽 심장에는 하얀 빛이 반짝이는 도가 박혀 있었고, 거기에는 암홍색 부적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금강불괴의 몸이 평범해 보이는 칼에 가슴이 뚫렸다. 상처에는 칼자루만 드러나 있었다.

    내내 담담한 표정이었던 양전은 손오공의 가슴에 박힌 만도(彎刀)를 바라보자 마침내 표정에 변화가 일어났다.

    “귀상(貴霜)의 이빨…….”

    그는 천축국의 천년 신상(神象)의 이빨로 조각하여 만든 전설의 단도를 알아봤다. 순수함이 서리 같으며, 신상의 법력을 주입하면 어떤 신비한 힘을 발휘하는 사타령 상왕의 보물이었다.

    “각안 사형, 사문을 배신한 거요?”

    손오공은 웃음을 멈추고는 물었다.

    각안은 드러난 손오공의 새하얀 이빨을 보고는 꺼림칙한 표정이 됐지만, 이내 안정을 되찾고 이를 갈았다.

    “그렇다면 어쩔 거지?”

    “그럼 아까 그 말들은 다 나를 속이기 위한 거짓말이었나?”

    손오공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그의 말투도 바뀌어 있었다.

    “전부는 아니다. 보리선조는 중상을 입어 죽을 날이 머지않았다. 하지만 그를 다치게 한 것은 나와 각명이지.”

    각안은 입가에 핏자국을 닦으며 말했다. 귀신처럼 눈치 빠른 손오공을 속이기 위해 진짜로 몸에 상처를 냈던 것이었다.

    “그럼 깔끔하게 정리하려면 너 혼자만으로는 부족하겠군.”

    “꼭 그렇지는 않다. 각명은 이미 선조의 손에 죽었으니 지금 떠난다면 황천길에서 만날 수 있겠구나. 흐흐흐.”

    각안은 중상을 입은 손오공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하하! 안 본 사이에 멍청해졌나? 내 명부는 이미 지워졌다. 난 죽지 않아.”

    손오공은 갑자기 크게 웃더니 비꼬며 말했다.

    “지옥이 받아주지 않는다면 네 혼과 백을 완전히 부숴주마.”

    각안은 웃지 않고 말했다.

    손오공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각안을 바라보더니 귀상의 이빨을 뽑으며 물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스승님의 친전제자인 네가 왜 사문을 배신한 거지?”

    “왜냐고? 흥! 선조가 스승으로서 공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족과 선족은 가르치지 않고 네놈 같은 요마들을 종문에 입문시켰지.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사심을 숨기지 않고 너 같은 오만방자한 원숭이에게 진수를 전수했다는 것이다! 대체 왜? 나와 각명은 종문을 세우기 전부터 옆을 지키며 시중을 들었는데 대체 왜 네놈에게 진수를 알려주고 부처가 되고 신선이 되는 것을 도왔느냔 말이다! 너 때문에 우리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각안이 울분을 토하며 말했다.

    “왜냐고? 그럼 내가 묻지. 스승님이 너에게 진수를 알려주면 넌 천궁에 가서 소란을 피우고 당승을 보호하며 서행을 할 수 있었을 것 같은가? 네가?”

    “흥! 그런 방패막이 따위! 결국은 오지산에 오백 년을 갇혀 있었으면서 뭘 득의양양해 하는 거지?”

    “그럼 네가 지금 하는 짓은 방패막이가 아닌가?”

    “그건…….”

    각안은 그의 말에 말문이 막혀 더는 뭐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그때, 수백 개의 하얀색 실이 다시 허공에서 나타났고 새로운 천라지망이 다시 만들어져 손오공을 가두었다.

    손오공은 전혀 놀라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여 가슴의 상처를 바라봤다.

    귀상의 이빨에 찔렸던 상처는 나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여전히 금색 피가 조금씩 흘렀다.

    그는 천천히 몸의 가사를 벗었다. 등에 걸친 붉은색 두봉(망토)이 바람에 펄럭였고, 두 눈에서는 광채가 뿜어져 나와 전의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양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생각했다.

    ‘십만의 천병을 때려눕힌 제천대성이 다시 돌아왔구나.’

    손오공은 외치고는 곤봉을 휘둘러서 양전을 가리켰다.

    “이왕 전쟁을 시작했으니 노손이 끝까지 어울려주마.”

    이와 동시에 그의 모습은 반짝임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빨라!”

    화십낭은 감탄하고는 열 손가락을 말아 쥐었다.

    전방의 허공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천라지망이 그녀의 손을 따라 움직이면서 허공에 균열이 생겼지만, 손오공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한편, 각안은 알 수 없는 불길함에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뒤에서 폭풍이 몰아쳐오고 있었다.

    손오공은 순식간에 나타났다. 그의 짙은 살의가 천지를 뒤덮자 허공이 멈추고 숨이 막혀왔다. 여의금고봉은 머리 위에서 곧장 내려왔다.

    각안은 일순 얼음 굴에 빠진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고, 의식도 흐트러졌다.

    절체절명의 순간, 눈앞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양전이 그 앞에 나타나 양손으로 삼첨양인도를 잡고는 곤봉을 막았다.

    콰쾅!

    곤봉이 떨어지자 굉음이 울려 퍼졌고, 천지를 뒤흔들 정도의 위압감이 쏟아졌다. 양전에게 막힌 괴력은 사방으로 흩어져 산의 절반을 무너트렸다.

    각안은 바로 맞서지 않았음에도 여파에 충격을 받아 곧장 땅에 처박혔다.

    “그래, 요(妖)는 결국 요(妖)고 마(魔)는 결국 마(魔)다. 아무리 선술을 익히고 불법(佛法)을 깨달았다 해도 본성은 바뀌지 않지!”

    양전이 소리치며 하늘로 치솟았다.

    몸에서 빛을 뿜어내며 삼첨양인도로 허공을 베자 천 장 크기의 성난 파도가 손오공을 향해 쏟아졌다.

    한편, 화십낭이 모든 신통을 발휘하여 만든 금색의 거미줄 감옥이 하늘에서 내려와 양전의 파도와 합쳐지자 거대한 물의 감옥이 만들어졌다.

    이와 동시에 각안도 날아올라 물의 감옥 근처에서 양손으로 빠르게 결인했다. 그러자 소매에서 금색 부적이 날아갔다.

    실심부(失心符), 이혼부(離魂符), 실혼부(失魂符), 낙백부(落魄符), 정신부(定身符)…… 부적들은 연달아 날아갔다. 이는 삼성멸마의 신통보다 약하지 않았다.

    한편, 감옥 속의 손오공은 더는 견디기 힘들었다. 양전과 화십낭의 협공은 그에게 큰 부담이었는데, 이제 각안까지 가세하여 연달아 부적을 날려서 그의 신혼과 심지를 공격하고 있었다. 게다가 귀상의 이빨에 뚫린 가슴의 상처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러 조금씩 그의 힘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가 데리고 온 원숭이 요괴 맹장이 도우려 했지만, 화십낭의 손에 제압당하여 꽁꽁 묶여 버렸다.

    이제 그는 혼자였고, 지원을 기대할 수도 없었다.

    “손오공, 얌전히 여기 있어라. 위의 일이 끝나면 무사히 돌아가게 해주마.”

    양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양전, 드디어 실성한 거냐? 노손이 미치지 않고서야 스승님과 본문에 손을 댄 너희를 가만두겠느냐? 과거 홀로 천궁에 쳐들어갔었던 몸이다. 이제 화과산의 요괴들까지 있으니, 너희 능파성 하나 쓸어버리지 못할 것 같으냐?”

    손오공은 실소를 터트리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그때는 능파성이 기꺼이 받아주지.”

    손오공의 외침에 양전은 무표정으로 말했다.

    “부적 법진은 아직이오?”

    화십낭이 각안에게 물었다.

    “이제 혼원부(混元符)만 연결하면 되오. 흐흐…… 이 오만한 원숭이 놈아, 오만한 모습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각안이 땀을 흘리며 양손으로 복잡한 수결을 결인하자 허공에 사람 키의 반쯤 되는 거대한 부적이 천천히 솟아올랐다. 부문은 금빛으로 반짝이며 완전히 타들어 갔다.

    각안이 양손을 펼치자 거대한 부적이 감옥을 향해 날아갔다.

    한데 부적이 물의 감옥을 덮으려는 순간, 하늘에서 뇌광이 번쩍이며 떨어졌다.

    쿠르릉!

    천둥소리와 함께 떨어진 보라색 번개에 금색 부적은 찢어져 사라졌다.

    “누구냐!”

    각안은 혼원부가 타들어가자 분노가 극에 달해 실성한 듯 외쳤다.

    양전이 위쪽을 바라보자 감옥의 위에서 누군가 금색의 곤봉을 들고 내려오고 있었다.

    “손오공의…… 분신?”

    역광에 얼굴이 보이지 않자 화십낭이 중얼거렸다.

    양전이 손을 휘두르자 금색 물감옥에서 거대한 파도가 다시 일렁이더니, 하늘에서 내려오는 자를 향해 높이 솟구쳤다.

    하지만 하늘 높이 솟구친 거대한 파도가 그에게 닿으려는 순간, 파도에 푸른빛이 감돌더니 연꽃잎이 되어 흩어졌고, 파도 가운에 생긴 통로로 그는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다.

    “분수결(分水訣)?”

    양전이 눈살을 찌푸렸다.

    ‘수계 법술이 상당하구나. 어느 문파지?’

    생각에 잠긴 양전은 거대한 파도 위에 서 있는 심협을 바라봤다.

    그는 현황일기곤을 들고 아래쪽의 양전을 내려다봤는데, 두 눈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그대는 누군가?”

    “무명소졸에 불과하니 이랑진군은 기억할 필요도 없소. 한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소. 어째서 진군은 사악한 마도들과 결탁하여 방촌산을 해치려는 게요?”

    양전은 본래 대답할 생각이 없었지만 심협의 눈빛을 바라보더니 어째서인지 천천히 설명해줬다.

    “보리선조가 산하사직도를 내놓고 앞으로 다른 종족 제자를 받지 않는다고 약조한다면 모든 공격을 멈추고 방촌산의 다른 문제까지 해결해줄 것이오.”

    그의 말에 화십낭이 바로 불만을 터트렸다.

    “진군, 그 말은 너무 매정한 게 아닙니까? 우리 다른 문파들은 그대의 눈에 그저 도구에 불과하여 언제든 죽일 수 있다 이 말입니까?”

    “언제는 아니었나?”

    양전이 담담하게 그녀를 돌아보며 말하자 화십낭의 표정이 굳어졌다. 양전은 신선 중에서도 절대 거짓을 말하지 않는 보기 드문 존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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