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96화 (796/1,214)
  • 796화. 이랑신과의 싸움

    “심형, 상황이 다급하니 두 갈래로 나누어 지원을 요청하러 갑시다.”

    부동래의 다급한 말에도 심협은 손을 내저었다.

    “아니, 그리 급하지 않소.”

    “어찌 급하지 않단 말이…… 심형, 혹시?”

    “그렇소. 우리가 화과산을 떠날 때 이미 밀서를 보냈소. 보타산과 오장관 외에도 대당 관부와 화생사에 지원을 요청했지.”

    부동래는 그 말에 기뻐하더니 또 금방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어째서 제천대성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오?”

    “부형, 각안 선배의 말이 이상하지 않았소?”

    “어디가 말이오?”

    “분명히 함께 지원 요청하러 간 제자가 많다고 했는데 전부 죽고 혼자 도망쳤다고 했소. 한데 이렇게 오랫동안 대화를 했는데 어찌 쫓아오지 않는 거요?”

    부동래는 그 말을 듣고 침묵이 흘렀고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마침 우리가 지원 요청하러 간 줄 알고 있으니 오히려 알아보기 더 편해졌소. 우선 어떻게 된 일인지 살펴봅시다.”

    심협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상의를 마친 두 사람은 바로 기운을 거두고 산길을 따라 빠르게 움직였다.

    저번에 왔을 때는 숲이 깊고 울창하여 곳곳마다 절경이었는데, 지금의 방촌산은 곳곳이 불에 탄 건물과 무너진 벽뿐이었고, 중간중간 적지 않은 시신이 쓰러져 있었다.

    그중에는 방촌산 제자 복장을 한 사내, 외문 제자와 각기 다른 복장을 한 적지 않은 침입자 들의 시체가 뒤섞여 있었다. 전투가 얼마나 격렬했는지 알 수 있었다.

    * * *

    한편, 손오공 일행이 산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허공이 갑자기 강하게 일그러졌다.

    매우 가느다란 분홍색 실이 허공에서 나타나더니 하늘을 가득 메우는 커다란 그물이 되어 손오공 등을 뒤엎었다.

    “이런, 화십낭의 천라지망이다.”

    각안이 외쳤지만 손오공은 냉소하고는 손을 내밀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눈부신 금빛으로 번득이는 손에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고, 다섯 개의 검은 균열이 허공에 나타나 분홍색 거미줄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호호호! 역시 제천대성 손오공이군요. 대단합니다.”

    허공에서 요염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키가 크고 요염한 미모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허공에 발을 딛고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자 투명한 실이 허공을 오가며 손오공이 찢어놓은 허공의 균열이 봉합됐고, 갈기갈기 찢어졌던 천라지망이 다시 원래대로 회복됐다.

    “누군가 했더니 거미 요괴군. 감히 방촌산에 쳐들어오다니,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온 게냐?”

    “저 같은 하찮은 자야 대성의 눈에 차지 않겠죠. 하지만 지금 이곳을 막아선 것은 대성께 한마디 올리기 위함입니다. 방촌산이란 늪에 들지 마십시오. 보리선조는 대외적으로 당신을 제자로 인정한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당신의 업은 이미 달성하여 투전승불이 되었는데 굳이 다시 속세에 물들 필요가 있습니까?”

    화십낭이 간드러지게 웃으며 말했다.

    “시끄럽다! 너와 말 섞을 시간도 없다! 지금이라도 얌전히 물러가라. 안 그러면 오늘 내 곤봉에 곤죽이 될 게다. 그리고…… 나중에 우리 화과산이 반사동에 쳐들어가 모조리 죽여주마.”

    손오공이 냉소하며 경고했다.

    “아이고, 투전승불께서는 살성도 크시군요. 정말 무섭습니다. 그리고 반사동 혼자서 어떻게 감히 방촌산에 쳐들어왔겠습니까? 우리가 정말 물러나면 사타령과 능파성에 제가 할 말이 없어집니다.”

    화십낭은 과장되게 난감한 척 대꾸했다.

    “흥! 사타령과 능파성으로 노손을 겁줄 생각은 접어라! 누구부터 상대해주랴? 만약 오늘 정말 스승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너희는 다 여기서 죽는다.”

    손오공은 화십낭을 노려보며 외치다가 고개를 돌렸다.

    어느 허공에서 은빛이 반짝이더니 한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자태는 범상치 않았는데, 용과 구름이 그려진 갑옷에 머리에는 백옥 용관(龍冠)을 썼고, 손에는 삼첨양인도를 들고 있었으며, 허리에는 영서망월궁(靈犀望月弓)을 찼다. 용맹해 보이는 이목구비에 미간에는 금빛의 세로무늬가 박혀 있었다.

    바로 이랑신 양전으로, 그의 발치에는 온몸이 시커먼 커다란 개, 효천견이 있었다.

    이랑신이 등장하면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기운은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손오공, 돌아가라! 이번 일은 네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그 목소리에는 명령의 의미가 담겨 있었다.

    “양전,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명령질이나 해대는 못된 습관을 고치지 못했느냐? 내가 가장 꼴 보기 싫었던 게 바로 너의 그런 모습이다.”

    손오공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방촌산은 도를 넘은 지 오래다. 이번 환란은 피할 수 없으니 네가 나선다 한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양전은 무표정으로 대꾸했다.

    “헛소리는 그만해라. 한 놈씩 올 거냐, 아니면 한꺼번에 올 거냐?”

    손오공은 귀찮다는 듯 귀를 후비고는 말했다.

    “부처가 됐음에도 그 고집은 여전하구나.”

    양전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고는 곧바로 삼첨양인도를 손에 쥔 채 허공에 광흔을 그리며 손오공의 머리를 향해 내리쳤다.

    “진혼(鎭魂)!”

    퍼펑!

    폭음과 함께 푸른색 법력이 온몸에서 흘러나와 병기로 흘러 들어가자 순식간에 허공에 균열이 생겨났고, 몇 개의 광파(光波)가 손오공을 향해 날아갔다.

    허나 손오공은 전혀 당황하지 않고 귀를 후비던 손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러자 손에서 쏟아져 나온 금빛이 순식간에 금색 곤봉이 되어 그의 팔과 함께 머리 위쪽을 휘갈겼다.

    휭!

    질풍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천둥 같은 기세가 뿜어져 나왔고, 폭음과 함께 금고봉이 허공에서 이채(異彩)를 발하여 모든 광파를 순식간에 부쉈다.

    허공의 균열이 합쳐지기도 전에 손오공이 쏜살같이 날아올라 순식간에 양전 앞에 나타났다.

    “노손의 곤봉이나 먹어라.”

    외침과 함께 금고봉이 허공에서 보름달을 그리며 양전을 향해 날아갔다.

    양전은 손오공의 실력이 또 한 번 정진한 듯하자 내심 당황했다. 그는 바로 도를 들어 막았지만, 강력한 힘에 백여 장이나 밀려났다가 간신히 멈춰 섰다.

    한편, 효천견은 주인이 고전하자 울부짖으며 순식간에 백배나 커져 칠흑 같은 흉수로 변해 곧장 손오공에게 달려들려 했다.

    그때, 두 원숭이 요괴 맹장이 법천상지의 위능을 시전하여 거대 원숭이가 되어 효천견을 막아섰다.

    손오공과 양전은 다시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속도는 한계를 넘어서서 허공에는 잔상만 이리저리 남았고, 무기들이 끊임없이 충돌하여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때, 양전이 갑자기 소리쳤다.

    “등뇌(騰雷)!”

    동시에 몸을 돌리자 순간 온몸에서 눈부신 자색 번개가 뿜어져 나와 여덟 마리의 굵직한 자흑뇌사(紫黑雷蛇)로 변하여 손오공을 향해 돌진했다.

    “등사 따위로 날 막겠다고? 그럼 나는 반룡멸법(磐龍滅法)이다!”

    손오공이 히죽 웃자 몸에서 짙은 금빛과 함께 여덟 마리의 금룡이 뿜어져 나와 여덟 마리의 검은 뇌사와 충돌했다.

    콰콰쾅!

    뇌광 속에서 금빛으로 번쩍이는 손오공이 폭발하는 뇌광을 뚫고 나타나 순식간에 수천 개의 분신으로 변했다. 분신들은 모두 금고봉을 들고 발천난봉을 시전하여 수많은 곤봉의 허상을 만들어냈다.

    사방에서 양전을 공격하는 빼곡한 분신 중에는 허상도 있고 실체도 있었다. 교차하는 곤봉이 눈을 어지럽혔다.

    양전은 두 눈은 빠르게 움직였지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없자 한 손을 결인하여 미간을 문질렀다. 미간 가운데 세로 눈에서 갑자기 눈부신 금빛이 쏟아져 나와 주위에서 달려드는 손오공의 분신을 공격했다.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금빛에 분신들은 물거품처럼 부서져 나갔다.

    하지만 분신은 너무도 많았고, 양전이 끊임없이 공격한다고 해도 사라지는 분신보다 끊임없이 포위해오는 분신이 더 많았다.

    흩어져 있던 허공의 분신들이 다시 합쳐지자 집중되는 힘은 점점 더 강력해졌고, 양전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도 점점 좁아졌다.

    그의 미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십 줄기의 금빛도 결국은 버티지 못하고 닫혔다.

    “지금이다!”

    일순간, 손오공의 모든 분신이 다시 합쳐졌고, 힘이 집중된 수십 개의 금색 곤봉이 서로 다른 각도에서 양전을 향해 날아왔다.

    양전은 서둘러 삼첨양인도를 들어 손오공을 막으려 했다.

    하지만 두 개의 곤봉이 교차하여 도를 막아냈고, 뿜어져 나온 겹겹의 금빛이 그를 꼼짝 못 하게 하자 파멸의 힘을 가진 곤봉들이 쏟아졌다.

    절체절명의 순간, 허공에서 갑자기 수많은 정광이 반짝였고, 빼곡한 은백색 거미줄이 갑자기 위로 솟구쳐 올라와 손오공의 분신을 감쌌다.

    한데 손오공은 이 거미줄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양전을 공격했다.

    이때, 다른 실이 위에서 내려와 양전의 몸을 감싸더니 손오공 분신의 포위 속에서 끌어냈다.

    손오공의 분신이 이를 막으려고 했지만, 사방에서 몰려오는 은백색의 거미줄에 일망타진됐다.

    거미줄 안에서 금빛과 함께 손오공의 분신들이 연달아 사라졌고. 결국은 본체가 다시 드러났다.

    갑자기 끼어든 화십낭을 노려보는 그의 눈에는 분노가 스쳐갔다. 그는 지금 스승의 안위가 신경 쓰였기에 당연히 여기서 시간을 낭비할 틈이 없었다.

    “이 망할 것! 죽고 싶은 게냐!”

    손오공이 노발대발하며 온몸에서 금빛을 뿜어내자 갑자기 용의 포효가 들려오더니 여섯 마리의 실체 같은 금빛 용이 몸에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금룡이 거미줄에 충돌하여 발톱으로 허공을 베어 쉽게 찢었던 그물을 이번에는 찢을 수가 없었다.

    “호호호, 대성님. 제 천라지망을 너무 우습게보셨군요?”

    화십낭이 입을 가리고 웃었다.

    손오공은 그제야 자신이 아까 찢었던 거미줄은 저 요녀가 일부러 자신을 속이기 위해 만들어낸 약한 거미줄이었음을 깨달았다.

    “이랑진군, 제가 괜히 참견한 건가요?”

    화십낭은 양전을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산 정상 쪽은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니 저자를 막을 방법이 필요하다.”

    양전은 대답하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진군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없더라도 만들어야죠.”

    화십낭은 눈을 흘기며 웃고는 손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자 사방에서 수많은 실이 갑자기 나타났고, 하나하나 연결되어 서로 엉키더니 손오공을 감쌌다.

    양전은 이를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 요녀가 언제 방촌산 허공에 이렇게 많은 실을 설치해놨는지 그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진군, 용서해주세요. 우리 반사동 여자들은 너무 연약하여 밖에 나가면 자연스레 많은 장치를 해놓는답니다. 그러지 않으면 연약한 몸으로 이런 험난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화십낭은 그리 말하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허공의 실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연결되고 겹겹으로 감싸자 손오공의 몸은 거미줄로 완전히 뒤덮였다. 그 안에서 여섯 마리 금룡이 발악했지만, 속수무책으로 금세 커다란 누에고치가 되어 버렸다.

    “정말로 손오공을 묶어둘 수 있는 건가?”

    “진군, 안심하세요. 이 천라지망과 반사진(盤絲陣)은 최고의 조합이라 투전승불이라 해도 빠져나오지 못…….”

    허나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방에서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고 하늘이 어두워졌다.

    “운암천혼(雲暗天昏)!”

    은색 고치에서 갑자기 커다란 외침이 울렸고, 다음 순간 누에고치에서 갑자기 강렬한 기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안이 희미하게 보였는데, 곤봉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수많은 잔상이 날아들었다.

    콰콰쾅!

    천둥소리가 고치를 뚫고 들려오더니 곧장 하늘의 구름을 지나 천지의 공명을 일으켰다.

    “오뢰(五雷)를 모아 구름을 찢으리!”

    또 한 번의 외침이 들려오자 먹구름 깊은 곳에서 천둥소리가 울리더니 보라색 뇌전이 구천 하늘을 뚫고 내려와 누에고치에 떨어졌다.

    콰쾅!

    귀청을 찢을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누에고치가 터져 나갔다.

    뒤이어 손오공이 다시 나타나더니 여의금고봉을 높이 쳐들고는 곧장 하늘 위로 솟구쳤다. 쏟아지던 구천의 보라색 번개가 곤봉 끝에 닿으며 하늘과 연결되었다.

    그의 두 눈에서 실제와 같은 불길이 솟아올랐고, 곤봉은 엄청난 기세로 춤을 추며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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