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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94화 (794/1,214)
  • 794화. 대성의 분노

    두 사람은 금방 화과산 아래 도착해 산 통로 앞에 세워진 영채를 바라봤다.

    영채에는 갑주를 입은 원숭이 요괴들이 도나 곤봉 같은 무기를 쥐고 서 있었는데, 겉보기에는 그럴듯했다.

    두 사람이 다가오자 몸집이 제일 큰 흰털 원숭이 요괴가 도를 치켜들며 소리쳤다.

    “누구냐? 어딜 가려는 거지?”

    “방촌산에서 온 심협이라 하오. 제천대성 손오공을 만나러 왔소.”

    “방촌산? 우리 대왕님이 계셨던 방촌산 말이오?”

    흰털 원숭이 요괴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렇소.”

    “증거가 있소?”

    “편지 한 통이 있는데 반드시 그대들의 대왕께 직접 전해드려야 하오.”

    “대왕님께서는 최근 폐관수련 중이오. 증거가 없으면 대왕님이 나오신 후 다시 오시오.”

    “대왕님은 언제쯤 나올 것 같소?”

    “그건 확실하게 말할 수 없소. 보름일 수도 있고 1년 반일 수도 있고 어쩌면 10년일 수도 있소. 지금까지는 거의 그러셨소.”

    “서찰의 내용은 모르나 예상하기로는 중요한 일 같으니, 수고스럽겠지만 전례를 깨트리고 말씀을 전해주시오.”

    “폐관수련 중 증거도 없이 알렸다가는 내가 벌을 받게 되오. 그러니 도우께서는 날 곤란하게 하지 말아주시오.”

    흰털 원숭이 요괴는 포권하여 인사하고는 뒤로 돌아섰다.

    “심형, 이거…….”

    “어쩔 수 없군.”

    심협은 한숨을 쉬고는 황정경 공법을 운공했다.

    다음 순간, 몸에서 금빛이 폭증하고 거대한 법력 파동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자 근처에 있던 부동래마저 반걸음 물러나야 했다.

    원숭이 요괴들은 깜짝 놀라 일제히 무기를 들고 심협을 에워쌌다.

    심협은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발을 강하게 디디며 자세를 취하고는 화과산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투전승불! 나와서 만나주기를 청하오!”

    황정경 공법과 함께 어우러진 그의 외침은 금색 파문을 일으키며 화과산을 향해 겹겹이 밀려갔다.

    그를 에워쌌던 원숭이 요괴들은 갑작스러운 충격에 몸이 흔들려 똑바로 서 있을 수도 없었다.

    금색 음파가 영채를 지나 화과산 본산에 가까워졌을 때, 불경을 읊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곧이어 대지에서 한 겹의 금빛이 솟아올라 순식간에 금색의 거대한 종이 되어 본산 전체를 뒤덮었다.

    뎅!

    경천지동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금색의 음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누가 감히 화과산에서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

    산의 허공에 네 개의 그림자가 나타나더니 산문을 향해 날아왔다.

    심협이 고개를 들어 돌아보자 네 명의 금은 갑주를 입은 건장한 원숭이 요괴였다. 그중 두 마리는 두 팔이 두껍고 기다란 통비원후(通臂猿猴)였고, 다른 두 마리는 적구마후(赤尻馬猴)였다.

    네 마리의 원숭이 요괴의 기운은 진선 초기에 도달해 있었다.

    “원수님, 장군님. 대왕님께서 폐관수련 중이라 만날 수 없다 하니 이자가 갑자기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흰털 원숭이 요괴가 바로 보고했다.

    그중 털이 새빨갛고 눈가에 칼자국이 있는 통비원후가 입을 벌리자 금빛으로 반짝이는 혼원금추(混元金錐)가 그의 손에 나타났다.

    그가 한 걸음 내딛으며 혼원금추를 높이 들자 금추의 표면에 금빛이 흐르더니 범문 부경(符經)이 떠올랐다. 금색 경문이 반짝이는 동시에 웅웅 소리가 울리면서 강력한 힘이 쏟아져 나왔다.

    통비원후의 금추가 떨어지자 금빛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산 전체를 뒤흔들었다.

    이를 본 심협은 씩 웃더니 한 걸음을 내딛고 혼원금추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금빛이 일렁이더니 각기 세 마리의 금룡과 금상의 허상이 나타났고 모두 고개를 들어 포효하고는 통비원후를 향해 돌진했다.

    콰쾅!

    금추와 용상이 서로 충돌하자 금빛이 뿜어져 나왔고, 두 마리의 금룡이 충격에 폭발했다.

    뒤이어 남은 금룡과 금상은 아무런 망설이 없이 달려들었고, 용상의 힘이 거센 강물처럼 끊이지 않고 몰아쳤다.

    처음에는 통비원후도 능히 막아낼 수 있었지만 금세 밀려 뒤로 밀려났다.

    네 명의 맹장 중 하나인 적구마후는 형세가 심상치 않자 바로 몸을 날렸다. 그는 온몸에서 하얀 빛을 뿜어내며 두 팔을 내밀어 통비원후의 등을 받치며 밀려나는 기세를 막아냈다.

    금룡, 금상은 돌진이 막히자 담고 있던 힘이 빠르게 소모되었고, 쌍방은 교착 상태가 되었다.

    나머지 두 마리의 맹장은 돕지 않고 그저 놀란 눈으로 심협을 살펴봤는데 평범한 인간이 힘으로 저 둘을 상대로 호각을 이루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듯했다.

    나중에 가세한 적구마후의 두 눈이 은빛으로 번득이자 몸에서 하얀색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는 그 상태로 기운을 뿜어내며 두 팔을 강하게 밀었다.

    체내의 강한 힘이 용솟음쳐 그의 두 팔을 통해 통비원후의 몸으로 들어갔고, 이어서 다시 통비원후의 팔을 통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두 마리의 금상 허상은 부서졌고, 남은 한 마리의 금룡과 금상이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용상의 힘이 갑자기 줄어들자 혼원금추가 다시 신위를 뿜어내며 심협을 향해 돌진했다.

    부동래가 이를 보고는 도울까 말까 머뭇거리는 사이, 심협의 일갈이 들리는 동시에 금빛과 강한 기운이 다시 뿜어져 나왔다.

    금빛이 다시 강해지면서 또다시 세 마리 금룡과 금상이 나타나더니 이번에는 하나로 뭉쳐 통비원후를 향해 돌진했다.

    부동래는 감탄하는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심형이 이전보다 더 강해진 것 같은데?’

    “크아아!”

    용과 코끼리의 포효와 함께 광폭한 용상의 힘이 마침내 모든 것을 뒤집었다.

    혼원금추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무너지면서 금추도 충격에 날아갔고, 금추를 같이 발동하고 있던 두 마리 원숭이 맹장은 크게 비틀거렸다.

    금룡과 금상은 그들의 몸과 충돌하려는 순간, 강력한 힘을 스스로 절반으로 낮췄다. 그럼에도 두 마리 원숭이 맹장은 버티지 못하고 뒤로 날아갔다.

    그때, 불경 읊는 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땅에서 금빛이 용솟음쳤고, 부처의 커다란 손이 땅에서 솟아올라 두 마리 맹장이 영채에 부딪히는 걸 막아냈다.

    나머지 두 마리의 맹장은 이를 보고는 바로 산문을 향해 절을 하며 외쳤다.

    “대왕님을 뵙습니다!”

    말이 끝남과 함께 금빛이 영채 입구에 내려왔고, 황금 갑옷에 봉황 날개가 달린 자금관(紫金冠)을 쓴 금색 털 원숭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체격은 크지 않았고, 황금 갑옷 겉에는 금테의 붉은 가사를 비스듬하게 걸치고 있었으며,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심협과 부동래를 번갈아보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규룡처럼 생긴 자등나무 지팡이를 짚고 푸른색 옷을 입은 노마후(老馬猴)가 있었다.

    심협은 회백색 털의 노마후를 보자 표정이 살짝 달라졌다.

    이 노마후는 꿈속 세계에서 손오공이 남긴 벽화로 안내해줬던 그 원숭이였다.

    지금의 그는 수백 년 뒤 늙어버린 모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지만, 두 눈동자는 꿈속 세계에서 봤을 때보다 훨씬 맑았다.

    “천정의 토벌 이후로 이게 얼마 만에 일어난 소란인가. 너희 둘은 배짱이 두둑하구나. 자, 이 노손이 한 수 가르쳐주마.”

    손오공은 노여움 없이 웃으며 말했다.

    “후배 심협이 손 선배님을 뵙습니다. 방금의 공격은 손 대성님을 서둘러 뵙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행한 일이니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심협은 황급히 포권했다.

    부동래는 마음속으로 절세의 요왕 손오공을 존경하고 있었기에 서둘러 포권하고 예를 올렸다.

    이 모습을 본 손오공은 조금 실망한 듯이 머리를 긁적였다.

    “에이, 오랜만에 몸 좀 푸나 했더니 재미없게. 너 방촌산 제자냐?”

    “방촌산의 제자는 아니지만, 보리선조님의 부탁을 받아 대성께 서찰을 전해드리러 왔습니다.”

    “방촌산의 제자가 아닌데 황정경 공법을 수련했다고? 게다가 이미 대성했고, 스승님의 서찰을 가지고 왔다니, 혹시…… 너도 사고뭉치더냐?”

    손오공은 순식간에 심협 앞으로 다가와 이리저리 훑어봤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당년에 방촌산에서 수련할 때 스승님이 내가 사고뭉치인 것을 보고는 하산하면 어디 가서 방촌산 제자라고 말하고 다니지 말라 하셨지. 너도 그런 것 같은데? 헤헤!”

    “그게…… 우선 선조님의 서찰부터 보시죠. 최근에 방촌산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심협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황급히 화제를 돌렸고, 청옥 반지를 꺼내서 손오공에게 건넸다.

    손오공은 반지를 받고는 법력을 조금 운공했다. 반지가 금제로 봉인되어 있자 그는 손가락으로 반지를 가리키며 독특한 법결을 읊조렸다.

    청옥 반지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부문 금제가 금빛으로 변하여 사라졌다.

    손오공은 청옥 반지를 자신의 미간에 가까이 대고는 조용히 두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는 두 눈을 번쩍 떴는데, 방금 전까지 한없이 가벼워 보이던 표정은 매우 진중했다.

    “이런 망할 것들, 그놈들이 감히!”

    손오공이 갑자기 버럭 소리치면서 막을 수 없는 강한 기세를 뿜어냈다.

    심협을 포함한 주위의 사람들은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몇 장이나 밀려났고, 경악한 표정으로 손오공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 이유를 알고 있는 건 심협 한 명뿐이었다.

    “대성, 방촌산의 상황이 좋지 않은 겁니까?”

    심협이 다가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보리선조는 방촌산의 처지가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고 했는데 손오공의 지금 반응을 보니 전혀 그러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의 물음에 손오공은 심협을 매우 이상한 눈빛으로 훑어봤다.

    “대성…….”

    심협은 그 시선에 어색해졌다.

    손오공은 금세 이상한 웃음을 띠더니 곧바로 물었다.

    “너희가 출발할 때 그 문파들이 방촌산을 공격하고 있었느냐?”

    “아닙니다. 산 아래에 많은 수사가 있긴 했지만, 방촌산은 평온했고 아무런 이상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정말 방촌산을 공격하려는 겁니까?”

    부동래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놈들 문파가 어딘지 알면 이상할 것도 없지.”

    “그들이 도대체 누굽니까?”

    “반사동, 능파성(凌波城), 사타령을 필두로 하여 약수문(弱水門), 창랑산(蒼狼山) 그리고 옥룡동(玉龍洞) 같은 작은 종문들이다. 당년 마족을 상대할 때보다 더 많이 모였어.”

    손오공의 비웃음에 심협과 부동래는 표정이 변했다.

    반사동, 능파성 그리고 사타령은 하나같이 세상에서 알아주는 일류 문파다. 혼자서는 방촌산을 상대할 수 없어도 힘을 합치면 방촌산을 능히 이길 수 있다.

    창랑산, 옥룡동 등은 작은 문파이긴 하나 실력은 춘추관보다 월등했다.

    “대왕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마족이 가장 강성하게 들끓었을 때, 몇 번 안 되는 토벌 때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많은 종파가 하나의 종문을 공격하는 상황은 없었습니다.”

    푸른 옷의 노마후가 다가와 물었다.

    “그놈들이 또 무슨 병이 도졌나 보지. 내가 가서 눈을 좀 뜨게 해주면 나아질지도 모른다.”

    “대왕님께서 직접 출정하시려는 겁니까?”

    “저희가 병사를 이끌고 가겠습니다!”

    네 마리의 맹장 원숭이 요괴들이 일제히 다가와 포권했다.

    “방촌산에 금방 화가 미칠 것이니 대군을 이끌고 가면 너무 늦는다. 마(馬) 원수, 붕(崩) 장군.”

    “네!”

    손오공의 부름에 앞서 심협에게 달려들었던 두 마리의 맹장이 바로 대답했다.

    “너희 둘은 나와 함께 방촌산으로 지원을 간다. 최근 동해 쪽이 불안정하니 류(流) 원수와 파(巴) 장군이 화과산을 지켜라.”

    “존명!”

    나머지 두 마리 맹장도 앞으로 나와서 명을 받았다.

    “대왕님,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노마후가 포권하며 말했다.

    “류 원수와 파 장군은 충동적이니 쉽게 일을 그르칠 수 있소. 화과산은 그대가 지켜줘야 내가 안심하고 갔다 올 수 있소.”

    “으음, 알겠습니다. 대왕님을 대신해 이곳을 지키며 무사 귀환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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