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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91화 (791/1,214)

791화. 선경(仙境) 방촌

심협이 방금 본 것은 꿈속에서 봤던 멸망하기 전의 장수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부동래는 그런 심협을 기이한 눈으로 힐끔거리면서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은 지도에 그려진 길을 따라 몇 시진을 걸었고, 마침내 웅장한 산봉우리 아래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은 들어가는 길이 아닌 매우 높은 푸른 산이었다.

“심형, 이 지도…… 정말 맞는 거요?”

부동래가 더는 참지 못하고 물었으나, 심협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눈앞의 너무나 익숙한 경치를 바라봤다. 기억 속의 지형적 특징을 따라 별다른 힘도 들이지 않고 산벽 앞에 불룩 튀어나온 거대한 돌을 찾아냈다.

“부형, 여기 보시오.”

심협은 지도에 그려진 검은 동그라미를 가리켰다.

부동래는 눈살을 찌푸리고 한참을 살피고는 거대한 돌과 대조했다.

“이 동그라미는 돌처럼 생기지 않았는데……?”

심협은 씩 웃고는 그를 데리고 거대한 돌 옆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가려져 있던 땅속 입구가 있었다.

“오, 이 동그라미가 입구였군!”

그들은 우선 동굴 입구로 들어갔고, 경사로를 수백 장이나 뚫고 지나갔다. 그러자 방촌산 뒤쪽 산벽의 어느 구멍을 뚫고 나왔다.

구멍에서 나오자 조약돌이 깔린 오솔길이 산속 깊은 곳까지 연결된 것이 보였다.

두 사람이 오솔길을 따라 3리 정도를 걸어가자 마침내 푸른 돌이 깔린 넓은 산길이 나왔다.

산길 시작점에는 1장 높이의 나무 패방(牌坊)이 걸려 있었고, 그 위에는 ‘방촌산’이라 적힌 현판이 걸려 있었다. 현판 아래 양쪽에는 3척 높이의 푸른색 돌이 세워져 있었다.

푸른색 돌에는 고전체로 문도우심(問道于心)이라 쓰여 있었다.

두 사람이 패방 아래 다가가기도 전에 그쪽에서 강렬한 영력 파동이 느껴지더니 매우 강력한 압박감이 패방 문이 있는 허공에서 흘러나왔다. 이 압박감에는 명확한 거절의 힘이 담겨 있었다.

심협은 앞으로 다가가 패방 문의 허공에 손을 댔다.

허공에서 갑자기 빛이 흐르더니 찬란한 오색 광채가 떠올랐다. 심협의 손은 그곳을 뚫고 들어갈 수 없었다.

이와 동시에 흐르던 빛이 패방 문밖으로 흘러나가 순식간에 하늘을 가리는 매우 거대한 광막으로 변해 방촌산 전체를 뒤덮었다.

곧이어 패방 문에서 오색 광막이 번쩍이는 동시에 그다지 강하지 않은 영력 파동이 일어나 심협을 뒤로 밀어냈다.

곧이어 차가운 목소리가 문에서 흘러나왔다.

“방촌산은 산을 봉하고 문을 닫아 손님을 받지 않으니 두 도우께서는 돌아가십시오.”

심협 등은 그 말에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후배 마족 부동래, 산에 올라 문하에 들기를 원합니다. 부디 예외를 두어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부동래가 법력을 운공하여 범의 울음처럼 큰 목소리로 외치자 산 전체가 흔들렸다.

“본문은 이미 닫았으니 백 년 동안은 어떤 제자도 받지 않소.”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여전히 아무런 감정을 품지 않은 목소리였다.

심협은 잠시 망설이다가 법력을 운공하여 크게 외쳤다.

“후배 심협, 인간족 수사가 산에 올라 조사님을 뵙기를 청하니 부디 들여보내 주십시오.”

말을 끝낸 심협은 황정경 공법을 운공하여 자신의 진선 초기의 기운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그대는 누구이기에 방촌산의 공법을 익힌 것인가!”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는데 말투에 다급함이 역력했다.

“후배가 어떻게 공법을 익혔는지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조사님을 뵙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놈! 본문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공법을 훔쳐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한 죄인지 모르는 것이냐!”

목소리가 울리는 동시에 푸른색 사람 허상이 오색 광막을 뚫고 나왔다.

그는 푸른색 도포를 입고 있었고, 광대뼈가 조금 튀어나와 엄숙해 보였으며,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선 중기의 강력한 파동이 압박해왔다.

심협은 황정경 공법을 쉬지 않고 운공하여 밀리지 않고 정면으로 대항했다.

푸른 도포의 사람은 이를 보고는 노기를 띠며 소리쳤다.

“어디서 황정경 공법을 익혔는지 실토하지 못하겠느냐?”

심협은 눈살을 찌푸렸다. 대뜸 압박해오는 기세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사께 배운 것이니 가서 조사께 죄를 물으시죠?”

심협은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그의 말은 틀린 것도 아니었다. 자신은 줄곧 스스로 수련해왔고 누구에게 배운 적이 없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보리조사에게서 배운 것이 맞았다.

“말하지 않겠다면 말하게 만드는 수밖에!”

푸른 도포의 사람은 더는 말을 섞지 않고 바로 심협의 머리를 내려치려 했다.

바짝 긴장한 심협이 막 맞서려는데, 갑자기 또 누군가가 오색 광막을 뚫고 나타났다.

“각명(覺明) 사형! 멈추십시오!”

이번에 나온 자는 똑같이 푸른색 도포를 입은 도동(道童)이었다.

그의 말에 각명은 바로 동작을 멈추고 손을 거두었다.

“춘추(春秋) 사제, 왜 그러는가?”

“선조님의 뜻입니다. 저들을 데려오라 하셨습니다.”

춘추라 불린 도동이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고는 말했다.

“스승님께서 저들을 만나겠다고 하셨다고?”

“예.”

춘추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럼 이 사형이 대신 압송해주랴?”

각명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물었다.

“스승님께서 그런 말씀은 없으셨으니 괜찮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형.”

춘추가 고개를 젓고는 정색하며 말했다.

각명은 더는 할 말이 없었다.

“그럼 부탁하네.”

그는 다시 광막으로 들어가 이내 사라졌다.

“두 분은 절 따라오시죠.”

도동은 두 사람을 향해 온화한 미소를 짓더니 부적을 꺼내 광막에 붙이고는 한 손으로 결인했다. 그러자 광막 위로 오색 빛이 흐르더니 둥그런 구멍이 나타났고, 사람 한두 명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커졌다.

도동이 먼저 들어갔고, 심협과 부동래가 그 뒤를 따랐다.

세 사람이 들어가자 문의 구멍은 사방에서 몰려온 오색 빛에 채워져 다시 합쳐졌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도동이 앞장서서 안내했고, 두 사람은 뒤를 따라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과거 심협이 왔었던 방촌산과는 확연히 달랐다. 부서진 건물도, 길가에 쌓여 있는 시체와 뼈도 없었다. 오직 나무 그늘에 가려진 붉은 담벼락과 푸른 기와만이 눈에 들어왔다.

부서지지 않은 방촌산은 인간 세계의 선경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간에는 정자와 누각이 즐비했고, 활 같은 다리가 이어져 있었으며, 그 너머에는 영록(靈鹿)이 뛰놀고 선학이 춤을 추면서 상서로운 기상을 뽐냈다.

세 사람이 벼랑을 지날 때, 기이하게 생긴 마족 수사 몇 명이 변화 법술을 겨루고 있었다.

이어서 어느 정자를 지날 때는 우연히 두 사람이 서로 부적술을 겨루는 모습이 보였다. 싸움은 매우 치열했지만, 서로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한 게 둘 다 즐기고 있는 듯했다.

“귀문은 평소에도 이렇게 수련하시오?”

부동래가 궁금한 듯 물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평소에는 장로님들이 각자 제자를 가르치고 수련을 지도해주시는데, 가끔은 선조님께서 강연을 하시고 모두가 모여 도를 논하곤 합니다. 조금 한가할 때만 동문 사형제끼리 서로 법술을 겨루지요. 시키는 대로 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수련에 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부동래는 그 말을 듣자 가슴이 저렸다. 사타령에서도 동문끼리 겨루기는 했지만, 사정을 봐주지 않고 목숨까지 뺏는 장면이 비일비재했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반면 심협이 보기에는 그저 흥미롭기만 했다.

‘이처럼 격식을 차리지 않는 종문이니 손오공 같은 제자를 가르칠 수 있었던 게로구나.’

이내 갈림길이 나타났을 때, 심협이 기억을 따라 정확한 방향을 찾아내자 안내를 맡은 도동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심협이 이전에 방촌산에 와본 게 아니냐는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그의 물음에 심협은 웃으며 부정했을 뿐,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내 세 사람은 산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식물이 드물었고, 천연으로 생겨난 넓은 지대가 펼쳐져 있었는데, 그곳에는 간소한 양식의 초가집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초가집에는 방 세 칸뿐이었고, 앞에는 울타리에 둘러싸인 작은 마당이 있었다. 중간에는 사람 크기의 나무문이 있었고, 방촌거(方寸居)라는 현판이 가로로 걸려 있었다.

심협은 이곳에 와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다만, 그때는 초가집을 본 기억이 없었다. 아마도 그 시기에는 이미 부서져 더는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도동은 심협 등을 안으로 안내했다. 정원 왼쪽에는 작은 채소밭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돌로 만든 탁자와 의자만 놓인, 매우 간소한 풍경은 평범한 농가와 다름없었다.

“선조님께서 심 시주만 안으로 들이라 하셨으니 부 시주께서는 여기서 잠시 차나 한잔하시며 기다리시죠.”

말을 마친 도동이 소매를 휘두르자 돌 탁자에 푸른 빛이 스쳐 지나가더니 정교한 보라색 다기(茶器)가 나타났다.

찻잔에는 이미 차가 따라져 있었는데, 초록빛 물에 그윽한 향기가 마음을 안정시켰다.

“감사합니다.”

부동래는 인사한 뒤 바로 앉았다.

심협도 도동에게 인사하고는 한가운데의 초가집으로 향했다.

초가집에 가까이 이르자 도동이 검은색 문을 열어준 뒤 한쪽으로 물러섰다.

심협은 망설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발이 문턱을 넘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조여왔다. 이에 심협은 바로 물러서려 했으나, 미처 그럴 틈도 없이 문 안의 허공이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강한 흡입력이 곧장 그를 잡아당겼다. 결국 심협은 비틀거리며 곤두박질치듯 끌려 들어갔다. 이 흡입력은 어찌나 강한지 진선기 수사인 심협도 그 기세를 꺾지 못하고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이후,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금방 다시 밝아졌다.

심협이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팔을 마른 손바닥이 부축하고 있었다.

“조심하게. 내 자라해당(紫羅海棠)을 밟을 뻔했군.”

침착한 목소리가 동시에 들려왔다.

“후배 심협이 보리선조님을 뵙습니다.”

심협은 몸을 추스르고는 포권하며 예를 올렸다.

“예는 필요 없네.”

보리선조는 마른 손으로 그의 가슴 앞에 모인 두 손을 천천히 내리고는 웃으며 말했다.

심협은 두 손을 내린 뒤에야 앞에 있는 노인과 뒤로 펼쳐진 수십 장 크기의 꽃밭을 보았다.

노인의 얼굴은 수척했고, 눈매는 가늘었다. 약간 찡그린 두꺼운 눈썹, 세 가닥의 수염, 푸른색 도포에 허리춤에는 금색 요대, 이와 달리 팔꿈치까지 말아 올린 큰 소매 등을 보고 있노라니 신선 같으면서도 속세 인간 같은 분위기였다.

유일하게 다른 것은 다른 수사들처럼 일부러 드러내는 고심한 경지였다.

“이상하군. 인과선(因果線)이 왜 이렇게 혼란스러운 거지?”

노인은 흙이 묻은 두 손을 들고는 눈살을 찌푸린 채 심협을 바라보며 말했는데, 질문인지 아니면 혼잣말인지 알 수 없었다.

심협은 노인과 눈이 마주치자 마치 상대가 모든 비밀을 한눈에 꿰뚫어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두렵기까지 했다.

“긴장하지 말게. 처음 자네를 만났을 때 뭔가 기이한 인연이 느껴졌다네. 한데 그게 무엇인지 보이지 않았는데, 이렇게 초청하여 보니 실로 뭔가 운명인가 싶기도 하군.”

보리선조가 웃으며 말했다.

“산 아래에서 만난 어린아이는 역시 선조님께서 안배하신 거였군요.”

“안배는 무슨……. 노부는 그저 신혼 일부를 만들어둔 것인데 자네가 정말로 그 지도에 의지하여 방촌산에 올 줄은 몰랐다네.”

말을 마친 그는 꽃밭 옆을 지나 작은 방으로 심협을 안내했다.

심협은 가는 길에 주위의 꽃들을 봤다. 하나같이 기이하게 생겼는데, 그중 붉은색 꽃잎에 불길이 타오르고 있음에도 실제로는 전혀 타지 않고 있었다.

그 바로 옆에는 얼음으로 뒤덮인 한초(寒草)가 있었다. 두 꽃은 지척으로 가까웠지만, 서로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듯했다.

심협이 가장 의외였던 것은 한눈에 봐도 속세에서는 볼 수 없는 꽃들 사이에 몇 그루의 속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단, 월계 같은 묘목이 섞여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선영의 기운이 없어도 활짝 피어 있었다.

보리선조는 선계든 인간 세계든 마음에 드는 건 모두 가져다 놓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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