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0화. 장수촌 재입성
“위험할 때는 떠넘기고 위험이 사라지니까 가져가겠다? 그 선불들의 행동이 정말 대단하구려.”
심협은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그리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이익으로 이루어진 관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보리선조가 거절한 데에는 분명히 자신만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무런 차별 없이 종족을 받는 것만 봐도 보리선조가 평범한 분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으니, 기회를 봐서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을 것 같소.”
그는 보리선조와 진짜로 만난 적이 없지만, 인상은 더없이 좋았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사실 보리선조가 문도들을 널리 받아들이고 종족과 출신을 가리지 않은 것에 삼계에서 여러 말이 있소. 그 동기가 악하여 삼족 세력을 키워 삼계를 독점하겠다는 야심이 있는 거라는 식이오.”
“그런 허튼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소. 보리선조께서 각 종족의 제자를 받고 정매 같은 종족을 보살피신 것은 삼계가 안정되었을 때부터가 아니라 마환의 압박 속에서도 마찬가지였소. 그 제자들이 삼계의 평화를 위해 얼마나 애썼소? 제천대성 손오공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소?”
심협이 코웃음 치고는 말했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여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에 결국은 영향을 받게 되지요.”
부동래의 말을 끝으로 두 사람은 송산현 성으로 들어섰다.
도시는 매우 번화했고, 거리에는 비록 마차나 수레는 보이지 않아도 오가는 행인이 상당히 많았다.
인간족과 마족의 조합은 확실히 눈에 띄어 성에 들어서자 많은 사람의 눈길이 쏠렸다.
그러나 대부분이 그저 슥 보기만 했을 뿐, 계속 주시하지는 않았다. 마족이 나타난 게 한두 번이 아니라서 습관이 된 듯한 반응이었다.
그때, 아직은 좀 어린 남자아이가 심협 등에게 달려와 고개를 들고 그들에게 물었다.
“혹시 방촌산에 들어가기 위해 오신 겁니까?”
심협과 부동래는 일순 당황하여 바로 답하지 못했다.
“보아하니 딱 그러네요. 이때쯤 오는 사람들은 열이면 여덟이 방촌산의 노신선님 문하에 들기 위해 오신 거죠. 그리 대단해 보이시지 않는데…… 뭔가 배우러 오신 건가요?”
어린아이는 두 사람이 딱히 대답하지 않자 혼자서 말을 이어갔다.
“우리가 그저 우연히 지나가는 길이라고 하면 믿을 테냐?”
심협이 몸을 굽히고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진짜 노신선님 문하에 들려는 게 아닌가요?”
어린아이는 고개를 젓더니 곧 다시 불확실한 듯 물었다.
“문하에 들러 왔다고 하면 뭐가 달라지느냐?”
“진짜 방촌산의 노신선님을 뵈러 온 거면 산 아래에 있는 오래된 숲이 미혼진(迷魂陣)이란 걸 알고 계시겠군요? 아무런 대비도 없이 들어갔다가는 길을 잃어서 보름 뒤에나 간신히 나오실 겁니다.”
어린아이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대단하다고?”
심협은 짐짓 놀라는 척하며 말했다.
“당연하죠. 저번에도 부잣집 공자님이 함부로 들어갔다가 안에 갇혀서 수십 년이 지나서야 나올 수 있었는데, 머리가 완전히 하얗게 새어 있었다고요!”
어린아이는 심협이 놀라는 모습에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호오, 그 얘기를 해준다는 건 설마 네가 우리와 함께 그 오래된 숲에 들어가 방촌산의 노신선님을 찾아주겠다는 거냐?”
심협이 눈을 치켜뜨며 말했다.
“저는 키도 작고 발도 느려서 모시고 가는 건 할 수 없습니다만, 대신 우리 가문에 대대로 내려오는 지도는 드릴 수 있죠. 그 지도만 있으면 신선님의 동부를 찾는 데는 문제없을 겁니다.”
그 말을 듣는 동안 심협은 갑자기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고개를 들지 않고 시선만 오른쪽으로 힐끗 돌렸다. 오른쪽 뒤에 몇 명이 모여서 이쪽을 감시하고 있었다.
이어서 다른 쪽에서 또 감시하는 눈빛이 느껴졌는데, 심지어 탐사 법력 파동이 담겨 있었다.
“살 거예요, 말 거예요? 지도가 많지 않으니 안 살 거면 다른 사람에게 팔 거예요.”
소년은 심협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다시 재촉했다.
“꼬마야, 이 지도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니 한 번 보고 나서 결정해도 되겠니?”
심협이 시선을 완전히 거두고는 웃으며 물었다.
“안 돼요. 당신 같은 사람들은 매우 신통해서 한 번 보기만 해도 지도를 모두 외울 텐데, 그러면 저는 누구에게 팔라는 거예요? 제가 그렇게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라고요.”
“그놈 참 똑똑하네. 그래, 그래서 지도는 얼마냐?”
아이가 생각하더니 말했다.
“은자 한 개요.”
“그렇게 비싸지는 않네.”
심협은 웃으며 은자 한 개를 꺼내 건넸다.
어린아이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고 서둘러 받으려 했다.
한데 심협이 펼친 손을 갑자기 말아 쥐더니 허리를 더 숙이고 조용히 물었다.
“최근에 현성 안에 들어오는 낯선 자들이 많더냐?”
“네? 아, 네. 전보다 훨씬 많아졌어요. 방촌산이 제자를 모집하는 시기가 이른 감이 있는데도 말이에요.”
아이는 웃음을 거두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웃으며 은자를 건넸다.
아이는 신이 나서 은자를 받아 챙겨 넣고는 품에서 노란색 종이를 건넨 뒤, 바로 돌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뛰어가더니 갑자기 돌아서서 외쳤다.
“아,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진 곳은 가지 마세요. 거기는 사람이 가까이 가면 위험해요!”
심협은 웃으며 어린아이가 준 종이를 펼쳤다.
한데 지도를 펼친 순간, 그와 부동래는 당황했다.
이건 지도가 아니라 어린아이가 아무렇게나 해놓은 낙서에 불과했다. 종이 위에는 현성과 방촌산의 위치가 대충 그려져 있었고, 중간에는 구불구불한 빨간 선이 어지럽게 그어져 있었다. 선 중간에는 특별하게 빨간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부분이 있었는데, 아이가 말한 위험한 곳인 것 같았다.
“하하! 심형,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법이라오.”
부동래는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심협은 한참을 자세히 바라보더니 눈을 반짝거리고는 미소를 지었다.
“갑시다, 부형.”
그리고는 곧장 현성의 다른 성문을 향해 걸어갔다.
부동래는 잠시 의아해했지만, 뒤통수를 긁적이며 바로 따라 나섰다.
걷는 도중 두 사람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뒤에서 시도 때도 없이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이 여기저기 분산된 것으로 미루어 한 패거리가 계획적으로 감시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출현이 여러 사람의 관심을 끈 듯했다.
그러나 그저 감시하기만 할 뿐, 악의적으로 지켜보는 자는 없었다.
현성에서 나가자 더는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다.
성 밖으로 8리 정도를 더 걸어가니 앞에 울창한 숲이 나왔고, 그 뒤쪽으로 땅의 기복이 심한 산지가 나왔다.
“심형, 그 성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 같소?”
“그렇게 작은 성에…….”
심협은 말을 하다 말았다.
부동래는 한참을 기다려도 심협의 말이 이어지지 않자 고개를 돌렸는데, 심협은 고개를 숙인 채 아이에게서 산 지도를 연구하고 있었다.
“설마 정말 그 지도대로 가려는 것이오?”
부동래의 물음에 심협은 고개를 들어 숲 뒤쪽을 바라봤다. 아주 먼 곳에 우뚝 솟은 산 그림자가 보였는데, 구름에 가려져서 매우 흐릿한 게 신비로워 보였다.
“지도가 엉성하긴 해도 대략적인 표시나 위치는 맞으니 믿어볼 만한 것 같소.”
“하…… 마음대로 하시오. 방금 물어본 건 어떻게 생각하시오?”
부동래는 고개를 젓고는 다시 물었다.
“부형도 알겠지만, 그렇게 작은 성에 수많은 수사가 모여 있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하오.”
“그렇소. 방금 적지 않은 자들이 우리를 몰래 감시했는데 경지가 그렇게 높지 않았소. 물론 경지가 더 높은 고수가 있는 것을 우리가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말이오.”
“나도 그리 생각하오. 다만, 그들도 은근히 서로를 견제하는 걸 봐서는 같은 무리가 아니었소. 이 점도 매우 이상하오.”
“그렇다면 그들이 우리만 노린 게 아니라는 뜻인데…… 설마 그들이 노리는 건 우리가 아니라 방촌산?”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소. 허나 걱정할 게 뭐 있겠소? 방촌산이 어떤 곳이오?”
심협은 이어서 뺨을 문지르며 말했다.
“왜 우리가 가는 곳마다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부동래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
“상관없소. 이번에는 진짜로 무슨 일이 생겨도 참견하지 말고 목적만 달성하고 떠날 테니까.”
심협은 손을 내리고는 스스로에게 약속하듯 선언했다.
부동래는 그 말을 듣고는 그저 웃기만 했다.
“서둘러 갑시다.”
둘은 엉성한 지도를 따라 산속으로 들어갔다.
* * *
두 사람은 산속에 들어서자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럼에도 쉬지 않고 들어갔는데, 주위의 숲에는 점점 안개가 짙어져갔다.
심협은 신식을 펼쳐 살펴봤는데, 역시나 뭔가 이상했다. 안개에 담긴 매우 희미한 힘이 신식을 방해하고 점점 잘못된 길로 이끌고 있었던 것이다.
“심형, 하늘에는 안개가 없으니 날아서 갑시다.”
부동래가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날아가는 건 문제없지만 그렇게 방촌산에 접근했다가는 침입자처럼 보일 테니 호산대진의 무차별 공격을 받을지도 모르오.”
그리고는 다시 엉성한 지도를 꺼내 들어 한참을 자세히 살펴본 뒤, 심협은 고개를 들어서 주위를 둘러봤다. 멀지 않은 풀숲에 야생 개가 엎드려 있는 듯한 괴석이 보였다.
부동래도 호기심에 그곳을 바라보다가 다시 지도로 눈을 돌렸다. 지도의 한쪽에 대충 휘갈긴 그림 하나가 저 괴석과 상당히 비슷했다.
“허! 진짜 있네. 심형, 이 지도가 진짜 유용한 것이오?”
심협은 웃으며 지도 위의 낙서 표시를 가리켰다.
“엉성하긴 해도 중요한 위치는 내 기억과 일치하오. 안 그랬으면 나도 이 지도를 따라오지 않았을 것이오.”
“이전에 방촌산에 온 적이 있소?”
“뭐, 그렇다고 할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할 수도 있고…….”
심협이 웃으며 얼버무리자 부동래는 그를 곤란하게 만들기 싫어 더는 캐묻지 않았다.
둘은 숲을 가로질러 강을 건넜고, 웅장한 산봉우리를 향해 갔다.
지도의 선은 작은 호수 영역부터 호수 뒤편의 멀지 않은 곳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그곳에는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그곳에 도착하자 심협은 씩 웃고는 호숫가의 좌측 길을 따라 걸었다.
“심형, 여기는 그 아이가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한 곳인데 왜 굳이 여기로 가는 게요?”
“부형, 그 아이가 뭐라고 했는지 잊었소? 가까이 가면 위험하다고 했소. 그렇지 않소?”
심협의 물음에 부동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가까이 가지 않고 멀리서 보기만 하면 되오.”
두 사람이 절반쯤 걸어가자 호수 뒤편의 갯벌은 안개가 덮여 있지 않았고, 작지 않은 농경지가 일구어져 있었다. 밭에는 채소가 가득했고, 그 너머에는 나무와 돌로 만들어진 오래된 산채가 있었다.
산채 주위에는 흙과 돌로 쌓은 2장 높이의 방어벽이 있었고, 그 위로는 사람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였다.
심협 등이 산채 앞에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두 번의 날카로운 소리가 동시에 들려왔고, 푸른 빛이 반짝이는 두 개의 화살이 그들 발 앞에 떨어졌다.
화살에서 법력 파동이 흘러나와 금제의 푸른 빛이 되어 두 사람 주위를 봉쇄했다.
“누군데 감히 장수촌에 침입하는 것이냐?”
호통 소리가 담벼락에서 들려왔다.
부동래가 바라보자 방어벽에는 일고여덟 명의 가벼운 갑옷을 걸친 젊은 남녀가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어려 보였지만, 온몸에서는 용맹함이 흘러넘쳤고, 하나같이 손에 화살을 들고 두 사람을 조준하고 있었다.
심협은 화살대에서 반짝이는 부문을 보고는 포권했다.
“소인은 심협이라고 하오. 영락과 마 파파를 뵙고…….”
그의 큰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다.
심협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가 꿈속에서 영락과 마 파파를 만난 것은 수백 년 뒤였다. 현재 영락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마 파파는 아직 ‘파파’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냐? 만약 잘못 들어온 거면 어서 물러가라. 만약 나쁜 뜻이 있는 것이라면 네 목을 조심해야 할 게다.”
가장 앞에 서 있는 훤칠한 키의 소녀가 계속해서 말했다.
“아, 송구하오. 바로 물러가겠소.”
심협은 포권한 손을 머리 위로 들고는 바로 떠났고, 부동래도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방어벽의 사람들도 일제히 활을 내려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