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89화 (789/1,214)

789화. 누군가의 부탁

천기성, 웅장한 대전.

모래와 먼지를 뒤집어쓴 심협과 부동래가 들어서자 천기성 사람들은 열렬히 환영했다.

성주 소부자 옆에는 막 장로와 복 장로가 서 있었다.

“언 도우는 어떻습니까?”

심협은 언무사가 보이지 않자 물었다.

“이번 여정에서 입은 부상이 회복되자마자 스스로 폐관수련에 들어갔다네. 꽤나 충격이 컸던 모양이야.”

“무사하다면 됐습니다.”

심협은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바탕의 인사가 오갔지만, 매 장로를 언급하는 사람은 없었다.

잠시 후, 막망 장로 등과 함께 부동래도 대전을 나섰고, 대전 안에는 심협과 소부자 두 사람만 남았다.

“심 도우, 고치고 싶은 법보를 꺼내 보게.”

심협은 두말없이 바로 세 조각이 난 옥침을 꺼냈다. 옥침을 발견한 동굴에서 얻은 옥판도 함께 꺼내놓았다.

한데 옥침을 본 순간, 소부자의 동공이 졸아들었다.

“성주님, 이 보물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소부자의 표정 변화를 눈치챈 심협이 물었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소부자는 그저 몸을 살짝 숙여 시선을 옥침과 나란히 한 뒤, 손으로 가볍게 그 울퉁불퉁한 무늬를 쓰다듬으며 집중해 살폈을 뿐이었다.

뒤이어 옥판도 자세히 살펴봤다.

소부자의 눈살은 찌푸려졌다가 펴지기를 반복했는데, 눈에는 설렘과 의심이 여러 번 교차했고, 머릿속으로 수천 가지 생각이 오가는 중인 듯했다.

심협은 방해하지 않고 옆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소부자는 미간을 펴고는 가볍게 탄식했다.

“하늘의 현묘한 조화를 사람의 힘으로 어찌하리.”

“설마…… 성주님께서도 고치지 못하시는 겁니까?”

심협은 가슴이 철렁했다.

“누가 못 고친다고 했나?”

소부자가 고개를 휙 돌리며 말했다.

“방금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하냐고……?”

“그랬지. 내가 하늘의 조화를 능히 빼앗아올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나?”

소부자가 자존심이 상한 듯 심협을 흘겨보며 말했다.

“네네, 맞습니다. 온 천하에서 이 보물을 고칠 수 있는 분은 오직 성주님뿐입니다.”

아첨과는 거리가 멀었던 심협도 원하는 것 앞에서는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우선 말해보게, 이 보물은 어디서 얻었나?”

소부자의 물음에 심협은 조금 머뭇거리다가 옥침을 얻게 된 경위를 간략하게 말했다.

“그렇게 평범하게 얻었다? 이 보물에서 시간이 흐른 흔적을 봤네. 이건 어떤 규칙 위에 세워진 힘의 흔적일세. 그런데 자네는 이걸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작은 산속에서 파냈단 말인가?”

그의 말뜻에서 불평과 의심이 엿보였다.

“성주님은 이 보물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계십니까?”

“물론이네.”

“정말입니까?”

“간단하지 않나? 이 보물은 선천적인 영물이지 사람의 힘으로 만든 게 아닐세. 그러니 당연히 그 신묘한 돌 원숭이처럼 하늘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네.”

심협은 의외라 여겼지만, 또 일견 맞는 말인 것도 같았다.

“보물의 재료가 매우 특별해서 고치기가 쉽지는 않을 걸세.”

“성주님, 이 옥침은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어떤 대가를 치러도 좋으니 꼭 고쳐주십시오.”

“자네의 결심을 봐서라도 나도 꼭 도와주고 싶군. 지금 생각하기에 필요한 재료 대부분은 천기성에서 찾을 수 있으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보물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네.”

“말씀만 하시면 제가 어떻게 해서든 구해오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동해 용궁에 숨겨져 있는 심혈구이주(沁血九螭珠), 두 번째는 방촌산의 산하사직도라네.”

그 말에 심협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심혈구이주가 어떤 보물인지는 모르겠지만, 산하사직도는 삼계 절정급의 선기 아니던가.

“옥침을 고치는데 산하사직도를 녹여야 한단 말입니까? 그건…….”

“뭐? 누가 녹인다고 했나? 산하사직도의 공간의 힘을 빌려 조각 난 옥침과 다른 재료를 융합하기만 하면 된다네. 기껏해야 산하사직도의 원기가 좀 손상될 뿐이지, 결코 그 보물을 망가트리지는 않아.”

심협은 그 말에 다시 웃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큰 문제는 없겠군요.”

“두 가지 보물을 가져올 자신이 있나?”

“자신할 수야 없지만, 어떻게든 되지 않겠습니까? 성주님께서 옥침을 고쳐주시겠노라 약속해주신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휴, 산하사직도는 말할 것도 없고, 심혈구이주는 동해 용궁의 진궁(鎭宮) 보물이라 과거 손오공이 용궁에서 난리를 피울 때도 그들은 정해신진철을 내줬지 심혈구이주는 절대 내주지 않았네. 그런데 어디서 난 자신감인지 모르겠군.”

“그건…… 제가 방법을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재료는 성주님께서 값을 매겨주시면 반드시 값을 치르겠습니다.”

“됐네. 다른 재료는 천기성에서 충분히 모을 수 있으니 값은 따로 받지 않을 걸세. 다만 우리도 시간이 필요하네. 자네가 두 보물을 손에 넣는다 해도 우리가 나머지를 다 모을 수 있을 거라는 보장이 없으니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게.”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심협은 소부자를 보며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성주님, 저를 이리 후하게 대해주시는 것이 꼭 흑연미굴의 일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제 생각이 맞는지요?”

“역시 똑똑한 친구로군. 내가 자네를 이렇게 돕는 이유는 세 가지일세. 첫째로는 우리 천기성을 도와준 보답이고, 둘째는 자네는 내 도움을 받을 가치가 충분한 사람이기 때문이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실 누군가의 부탁을 받았다네.”

소부자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누군가의 부탁이라뇨? 그게 누굽니까?”

“그건 저리로 가보면 알 수 있으니 직접 가보게나.”

소부자는 대전 뒤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심협은 의심을 가득 품은 얼굴로 조심스레 대전 뒤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저 멀리 하얀 도포에 허리에는 주홍색 띠를 맨 노인이 새하얀 불진을 들고 천기도권(千機圖卷)이 걸린 벽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진원 선배님…….”

심협은 한눈에 노인을 알아봤다.

“복생무량천존(福生無量天尊). 심 도우, 오랜만이오. 경지가 또 정진했구려. 감축하오.”

진원자가 그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심협은 손바닥을 세워 공손하게 예를 올리고는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선배님께서 직접 천기성까지 오시다니, 설마 저 때문에 일부러 오신 겁니까?”

“그대가 인삼과 나무를 구해줬는데 노부가 직접 오는 게 대수겠소? 그리고 소부자와 오랫동안 보지 못해 옛이야기나 나눌까 겸사겸사 오게 되었소.”

“일전에 제가 장안 관부와 오장관에 사타령에서 겪은 일을 알렸는데 혹시 받으셨는지요? 인삼과를 해친 것은 다름 아닌 사타령이었습니다. 그들은 고의로 관부와 오장관에 갈등을 일으켜 혼란을 부추길 의도였습니다.”

“그 소식은 이미 받았소. 하여 이번에 온 것도 사타령의 상황을 자세히 듣고자 함이오.”

진원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심협은 눈살을 찌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그제야 말했다.

“사타령의 상황은 좀 복잡하니 상세하게 설명을 하겠습니다.”

심협은 하나하나 빼먹지 않고 사타령에서 겪은 일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마족이 다른 마음을 품은 것은 알고 있었소. 평화적 양보는 미봉책에 불과하지.”

“선배님, 제가 생각하기에는 현재 삼계의 상황은 더 좋지 않은 듯합니다. 이번 흑연미굴에서 마왕채의 부채주 마심을 만났는데 그자가…….”

뒤이어 심협은 다시 흑연미굴에서 만난 마심과 핏빛 뼈 지팡이에 관한 일을 털어놓았다.

“솔직히 말해 저는 삼계의 마환이 진짜 끝난 게 아니라고 봅니다.”

“그 점은 노부도 깊이 걱정하고 있소. 마족은 치우가 없음에도 오랫동안 삼계에 싸움을 걸어오고 저항해왔는데 그만두자고 해서 바로 그만둘 수 있겠소?”

“그들은 잠시 몸을 숨겨 싸움을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저들이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는지 전혀 모르니 저희에게 너무나 불리합니다.”

“확실히 그렇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삼계는 마환의 그림자에 너무 오랫동안 가려져 있었소. 이제 마겁의 억압이 사라졌다는 기쁨에 빠져 자각하려고도 하지 않지 마족의 적심을 언급하면 삼계의 화목을 파괴하려 한다고 비난받을 뿐이오. 충언을 꺼리고 귀를 막은 자들이 너무나 많소.”

“이대로 가면 삼계가 위험합니다.”

“그렇다고 정신 차린 사람이 없는 건 아니오. 다만, 그들은 지금 헛된 망상에 빠져 마족의 힘이 미미한 틈을 타 마도 신통을 수련하고 마기를 익히려 하고 있소. 편법으로 실력을 끌어올려 각계와 경쟁하려는 것이오. 마도 공법이 진전 속도가 빠르고 마기의 위능이 강하다 할지라도 인간족과 선족에게는 사도(邪道)요, 잘못된 길이라 한번 잘못 발을 들이면 돌아올 수 없게 될 것을 모르고…….”

진원자는 천천히 말하면서 심협과 눈을 마주쳤다.

심협은 갑자기 몸을 움찔했고, 바로 알 수 있었다. 진원 대선은 심협이 몇 개의 마기를 가지고 있음을 눈치채고는 그를 일깨워주기 위해 이리 말한 것이다.

“선배님 말씀, 새겨듣겠습니다. 다만 지금 저의 상황이 독특합니다.”

심협이 포권하며 말했다.

“그대에게 계획이 있으리라 믿고 노부도 더는 말하지 않겠소. 마족에 대해서는 후에 오장관을 통해 전하겠소. 위급한 일이 생기면 이 옥결로 내게 연락하시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소식을 받을 수 있으니 도움이 될 게요.”

진원자는 초승달 모양의 푸른색 옥결을 심협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심협은 옥결을 품에 넣고는 포권하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진원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후 그곳을 떠났다.

며칠 후, 심협과 부동래는 소부자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는 천기성을 나섰다.

“부형, 나와 함께 천기성까지 와서 고생 많았소. 향후 계획이 어찌 되오? 대당 관부로 돌아가시오?”

심협의 물음에 부동래는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관부로 돌아가지 않을 거요. 거기 가면 매일 공문을 처리하고 서찰이나 읽으니 한가롭겠지만, 그동안의 시간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되었소. 현재 경지가 약해서 어디로 가나 심형에게 방해만 될 게요. 그래서 생각해본 결과, 나는 방촌산으로 들어갈 것이오.”

“어째서 방촌산 문하로 들어가려는 거요?”

“방촌산은 삼계에서 마족 종문을 제외하면 유일하게 나 같은 마족을 받아주는 문파 아니겠소?”

“확실히 그렇긴 하오. 보리선조의 가르침에는 종족의 구분이 없다 하셨으니, 방촌산은 제자를 받을 때에도 출신과 종족을 따지지 않소. 과거 제천대성도 그곳에서 수련했으니…….”

“심형은 이제 어디로 가시오?”

“방촌산.”

심협이 손을 휘두르며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부동래는 잠깐 멍하니 있다가 웃었다.

“심형, 굳이 함께 가주지 않아도 되오.”

“무슨 소리요? 보물을 고치려면 두 가지 중요한 재료가 필요한데, 그중 하나가 방촌산에 있을 뿐이오. 본래 동해 용궁을 먼저 갈 생각이긴 했으나, 부형이 방촌산에 갈 생각이라면 함께 가는 게 나을 것 같소.”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다만 그가 차마 입 밖으로 말하지 못한 다른 한 마디는, ‘멸망하지 않은 방촌산은 어떤 모습인지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 * *

며칠 뒤, 서우하주.

초선군(譙仙郡) 송산현(松山縣) 밖의 관도. 두 개의 둔광이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누가 봐도 멀리서 온 행색이었다.

하얀색 도포에 수려한 외모, 다른 한 명은 건장한 체구에 얼굴이 호랑이였다. 당연히 심협과 부동래였다.

“심형, 이번 여정에서 정말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 보시오?”

부동래가 조금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방촌산은 인간족 문파지만 다른 종족을 멸시하지 않으니 부형도 당연히…….”

“나는 산하사직도를 말한 것이오.”

“아, 그건 어렵지 않을까 싶소. 평범한 법보가 아니라 삼계의 안정과 관련된 중요한 보물이니 방촌산은 절대 남에게 빌려주지 않는 모양이오.”

“이전에 스승님께 들은 적이 있소. 본래 산하사직도는 치우를 제압하는 용도라 이 법보의 안전을 위해 인, 선 두 종족이 진원대선과 보리선조 중 고민하다가 보리선조가 보관하기로 결정했다 하오. 훗날 마환이 사라지자 천정의 적지 않은 선불들이 마음이 바뀌어 보리선조에게 법보를 천정과 불문이 함께 관리할 터이니 내놓으라 했으나 보리선조가 단호히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