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88화 (788/1,214)
  • 788화. 소부자의 초대

    심협은 사우흔의 잔혼을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인로부(引路符)를 꺼내 허공을 향해 휘둘렀다.

    부적이 화르륵 하고 빠르게 타올라 재가 되어 바람에 휘날리면서 사우흔의 잔혼을 휘감은 뒤 황천길로 안내했다.

    종이 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 사우흔의 신혼에 갑자기 변화가 일어나더니 담담한 미소를 띠었다. 하지만 이는 너무도 순식간이라, 그녀의 신혼은 종이 재와 함께 이내 사라졌고, 시체 또한 재가 되어 천지로 흩어졌다.

    옛 벗이 이렇게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침울해진 심협에게 부동래가 다가와 어깨를 토닥였다.

    한편, 조비극은 여시의 시살의 기운을 전부 흡수했다.

    “고맙다.”

    심협은 자죽을 돌아보며 고개를 숙였다.

    자죽도 고개를 숙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협은 자죽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바로 손을 휘둘러 보라색 선죽을 꺼냈다.

    “귀언이 죽으면서 본체에 걸려 있던 뇌금 표식도 완전히 사라졌을 게다. 이제 안심하고 들어가도 돼.”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자죽은 감격한 표정으로 황급히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바로 보라색 빛으로 변하여 보라색 선죽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검은색 뇌전의 방해가 없었기에 금방 선죽 본체와 융합할 수 있었다.

    본래 어두웠던 보라색 선죽에서 은은한 보라색 빛이 번득이더니 다시 생기가 생긴 것처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보라색 빛이 점점 밝아지면서 선죽은 휙 하고 심협의 수중에서 빠져나갔고, 허공에서 눈부신 보라색 빛과 함께 늘씬한 몸매에 보라색 치마를 입은 여자가 나타났다. 단아하고 아름다운 외모는 탈속(脫俗) 적인 분위기를 풍겨 매우 신비로워 보였다.

    “심 도우의 도움에 감사드려요.”

    자죽이 천천히 땅으로 내려서며 심협을 향해 인사했다.

    “이제 흑연미굴에서 완전히 벗어났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냐?”

    “영식을 통달한 이후로 쭉 영굴에 갇혀 있는 동안 그곳에 침입한 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간혹 그들이 떨어트린 서적을 통해 바깥 세계가 어떤 곳인지 조금은 알게 됐죠. 하지만 직접 두 눈으로 세계 곳곳을 보고 싶어요.”

    자죽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지만, 설렘으로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그것도 좋지. 허나 삼계는 영굴보다 더 혼란스럽고, 오히려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부디 몸조심하거라.”

    심협은 사우흔의 최후를 생각하며 그렇게 주의를 주었다.

    “고마워요. 심 도우, 이 은혜는 반드시 갚을게요. 나중에 제 도움이 필요하면 이 잎을 통해 저에게 연락해주세요. 어디에 있든 반드시 찾아올게요.”

    자죽은 금문이 새겨진 보라색 대나무 잎 세 개를 건넸다.

    심협은 사양하지 않고 받은 뒤 삼계 지도를 자죽에게 건네주었다.

    “여기에는 각지의 볼거리 등이 적혀 있으니까 쓸 만할 게다.”

    자죽은 조심스럽게 지도를 받아 들고는 재차 감사 인사를 한 뒤 보라색 빛이 되어 먼 하늘로 사라졌다.

    그때, 조비극도 사우흔의 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를 다 흡수하고는 정신없이 건곤대로 들어가 수련했다.

    구덩이에는 이제 다시 심협과 부동래만 남았다.

    “심형도 부상이 심할 테니 이번 기회에 정양 좀 하시오.”

    “음, 그래야 할 것 같소.”

    부동래의 권유에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고, 구덩이에 몇 겹의 금제를 설치한 뒤 앉아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이틀 뒤, 천천히 눈을 뜬 심협의 두 눈에서 맑은 빛이 반짝였다.

    부상은 완전히 회복되었고 진선 경지도 마침내 안정되었다.

    그러나 심협은 바로 떠나지 않고 소요경을 꺼내 계속 연화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이 거울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 안의 금제는 완전히 연화되지 않았다.

    동시에 심협은 신식을 집어넣어 흑연미굴에서의 수확을 확인했다.

    소요경 안의 보물 대부분은 인형의 성에서 빼앗은 영초와 광석들이었다.

    이 수확을 살펴볼수록 심협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귀언이 모아두었던 것은 하나같이 진귀한 물건들로, 그가 알고 있는 영초와 광석은 그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그것들만 팔아도 선옥 30만 개는 될 터였다.

    게다가 그가 모르는 것들 또한 영력이 충만한 물건이라 가치가 낮지 않아 보였고, 특히 몇몇 영재는 외형부터가 특이하고 기운도 확연히 달라 매우 희귀한 품종이 분명했다. 그 가치는 엄청나리라.

    영재들을 확인한 심협은 다시 거울 공간 안에 있는 검은색 관을 살펴봤다.

    전에는 관 안에 있는 물건만 보느라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이 관 자체도 칠흑 같은 영목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은은히 순음지기가 흘러나왔다. 이 음기는 사람을 해치지 않았다. 오히려 주위를 맴도는 심협의 신식은 편안한 느낌마저 받았다.

    “이 기운은…… 전설 속의 불사목(不死木)?”

    관을 살펴보던 심협은 눈을 홉떴다.

    불사목은 상고의 신기한 나무로, 심마를 제압하고 신혼을 보양하는데 특효가 있다. 지금은 전부 멸종되었고, 소문에 의하면 천정의 선경에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고 했다. 한 조각의 불사목으로 장식을 만들어 몸에 착용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효용을 발휘한다 알려져 있는데, 귀언은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많이 얻어서 관까지 만든 것인가!

    심협은 흥분을 가라앉히며 관을 살폈다. 관 안에서 귀언의 기운이 느껴졌는데, 평소 여기서 잠을 잤던 듯했다.

    하지만 심협은 관에서 자는 취미가 없었기에, 이 관을 부수어 불사목으로 편안한 잠자리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는 소요경 안의 물건을 모두 살펴본 뒤 신식을 거두었고 소매를 휘둘렀다.

    검은 빛과 함께 서원마봉, 구유 그리고 검은색 마갑이 나타났다.

    아직 이 세 가지 마보는 자세히 본 적이 없었다.

    서원마봉은 이미 알고 있었기에 간단하게 살펴본 뒤 구유를 들어 올렸다.

    선천연보결을 운공해 몇 도의 금제를 연화한 그는 이 보물의 능력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어서 그가 결인하자 구유에서 칠흑 같은 마광이 반짝이더니 허공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다음 순간, 먼 곳의 커다란 돌 주위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시커먼 고리가 허공에 나타났다. 이 고리는 갑자기 줄어들어 커다란 돌을 단단히 가두었다.

    거대한 고리의 겉면에서 검은색 마광이 반짝이자 칠흑 같은 마염이 솟구쳐 커다란 돌 안으로 들어갔다. 주위의 온도가 올라가면서 주위 공간은 그대로 녹아 구멍이 생길 것 같았다.

    커다란 돌은 피식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되어 녹아버렸다.

    심협은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들었다. 검은색 고리는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왔고, 타오르던 마염도 전부 사라져 그의 손으로 돌아왔다.

    구유는 크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고 재질도 매우 단단해 구전빈철과 견줄 만했다. 그리고 고리에서 뿜어내는 마염도 평범한 마화가 아닌 몇 종류의 마염을 합쳐서 만든 것이라 살을 태우고 뼈를 쉽게 녹일 수 있을 정도였다. 품질이 낮은 법보라면 닿는 것만으로도 바로 재가 될 것이다.

    심협은 구유를 챙기고는 마지막으로 검은색 마갑을 꺼내 똑같이 선천연보결로 제련하여 대부분의 금제를 연화했다.

    “발온갑(發瘟匣)이란 이름이었군.”

    그는 금제에서 이 보물의 이름을 찾아냈다.

    발온갑의 능력은 이전에 봤던 것처럼 무형, 무질(無質)의 독을 발산하는 것으로, 그 독에는 혈고선조 같은 존재도 눈치채지 못하고 당한 바 있다.

    과거 경지가 낮았을 때 종종 독을 사용했기에 이런 수단에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중요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무기가 될 수 있기에 흡족했다.

    그는 조심해서 발온갑을 챙겨 넣고 다시 세 가지 보물과 소요경을 연화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다.

    허공에 떠 있는 소요경 주위로 마지막 남은 금제 부문이 부서져 별빛처럼 떨어졌다. 거울 주위에는 바로 물안개가 자욱하여 부드러운 파동을 일으켰다.

    “됐다.”

    “연화를 완전히 끝낸 것이오?”

    완전히 회복한 부동래가 심협의 목소리를 듣고는 다가오며 물었다.

    “그렇소. 마지막 금제를 열었으니 소요경 안의 공간도 전부 열렸을 것이오.”

    “안에 있을 때는 대나무 숲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구려.”

    “그럼 들어가서 보면 되지 않겠소?”

    심협은 장난스레 웃으며 손을 휘둘렀다.

    소요경의 물결무늬가 바로 번득이더니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와 부동래를 감쌌고, 다음 순간 그는 거울 안 공간으로 들어갔다.

    부동래는 대나무 숲에 나타났다. 다만 주위를 둘러보니 사방에 가득하던 안개가 전부 사라졌고, 주위에서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이전에 대나무 숲에 모여 있던 천지영기도 전부 흩어진 상태였다.

    그는 대나무 숲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갔다. 대나무 숲 뒤에는 상당히 넓은 공터에 2층 높이의 대나무 건물이 있었다.

    건물 뒤쪽으로는 아무것도 없었고, 무형의 광벽(光壁)이 막고 있었다.

    부동래는 건물로 들어가지 않고 광벽을 따라 소요경 안을 한 바퀴 둘러봤다. 실제 크기는 예상했던 것보다 작아서 평범한 정원 크기였다.

    그때 신혼 허상이 불쑥 나타났다.

    “부형, 어떻소? 여기 괜찮은 것 같소?”

    신혼 허상은 심협의 신혼 중 일부였다.

    소요경 보물은 매우 현묘하지만, 단점이라면 이 거울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내부 공간을 유지하면서 안과 밖을 조화시켜야 하기에 본체가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확실히 좋은 보물이오.”

    부동래가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딱!

    심협의 손가락 튕기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 주위의 경치가 순식간에 대나무 건물 앞으로 바뀌었다.

    두 사람은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의 장식은 매우 단출했다. 1층은 접객 다실(茶室)이었고, 2층에는 두 개의 방이 있었는데, 창가의 대나무 탁자와 벽가의 침상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원주인은 소박한 사람이었나 보오. 소요경 말고는 남긴 게 아무것도 없소.”

    “소요경 자체가 엄청난 보물이지 않소. 별천지처럼 살아 있는 생물을 넣을 수 있는데 뭘 그렇게 까다롭게 구시오?”

    “보물은 다다익선이 아니겠소? 하하하!”

    심협은 껄껄 웃으며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텅 비어 있던 방 안에 갑자기 영기가 가득 차더니 어지럽게 쌓인 영약, 선재들이 나타났다.

    건물의 다른 방에서도 영기 파동이 일어나더니 검은색 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 관은 부동래의 주의를 끌지 못했다. 그곳 벽에 한 겹의 두꺼운 정광이 나타나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감쌌기 때문이었다.

    관은 천기권과 깊은 연관이 있기에 심협은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부동래는 가득 쌓인 천재지보를 보자 입이 떡 벌어졌다.

    “심형, 이건 다 어디서 난 것이오?”

    “귀언의 창고에서 긁어온 것이오. 아마 내가 자신의 보물을 하나도 남김없이 가져왔을 줄은 생각도 못 했을 게요.”

    “심형의 그 대단한 운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배울 수 있소?”

    부동래는 바닥에 가득 쌓인 보물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늘이 택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법! 부형은 평생 못 배울 게요! 하하하!”

    심협이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부동래는 천재지보를 하나하나 살펴봤는데, 눈은 갈수록 휘둥그레졌다.

    “천불로(天不老), 자영석(紫英石), 칠엽련(七葉蓮), 구향충(九香蟲), 용수초(龍須草)…….”

    부동래는 영초와 영재에 대한 견식이 넓어 심협이 모르는 영재도 많이 알고 있었다.

    심협은 그에게 가르침을 청했고, 10여 종류의 영재에 대해 배웠다.

    그 대가로 원하는 영재 몇 가지를 선물로 받은 부동래의 얼굴에서도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뒤이어 두 사람은 소요경 곳곳을 조사한 후에야 밖으로 나왔다.

    뒤이어 심협은 천기성의 흑옥반을 꺼냈다.

    옥반의 빛이 깜빡거리자 그는 바로 결인하여 법력을 주입했다.

    그러자 흑옥반에서 소부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심 도우, 며칠 동안 소식이 없어서 걱정했네. 괜찮은가?”

    “네, 다행히 무탈합니다. 흑연미굴에서 탈출할 때 중상을 입어 은밀한 곳에서 치료에 전념했습니다.”

    “그랬군. 상처는 어떤가?”

    “안정을 취해 괜찮아졌습니다. 이제 곧 떠날 생각입니다.”

    “마침 잘됐군. 그럼 치료를 마치는 대로 서둘러 천기성으로 와주게. 이번에 큰 도움을 받았으니 나 또한 약속을 지켜야지.”

    심협은 이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천기성에서 뵙겠습니다.”

    심협과 부동래는 바로 천기성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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