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87화 (787/1,214)
  • 787화. 시살(尸煞)의 기운을 제거하고 신혼을 안정시키다

    거울 요괴의 동부. 푸른 빛이 일렁이자 몇 장 크기의 소용돌이가 나타났고, 그 안에서 거울 요괴가 빠져나왔다.

    “이번 소환은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청량한 목소리와 함께 동부 안에서 누군가 투덜거렸다. 물론 눈물 요괴였다. 한데 그녀의 표정은 매우 불쾌해 보였다. 그녀의 몸에는 푸른 빛이 감돌았고 기운이 중후했다. 대승 후기에 도달해 조금씩 후기 절정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주인님이 제게 종파를 잠시 지켜달라고 했다가, 그 뒤에 어느 비경을 정탐해달라고 했는데, 적들이 너무 강해서 시간이 좀 걸렸어요.”

    “흥! 멍청하게 인간의 말을 다 믿으면 어떡해? 특히 그자도 남자니 언젠가 널 팔아버릴 수도 있어. 그러니까 조심해.”

    “주인님은 그렇지 않아요. 그저 제 능력을 잠깐 빌려 썼을 뿐, 그분은 절 계속 안전한 곳에 있게 하고 위험에 빠트리지 않았어요.”

    거울 요괴는 조용히 말했지만, 표정은 확고했다.

    “흥! 완전히 빠져버렸군.”

    눈물 요괴는 거울 요괴의 단호한 표정을 보며 혀를 찼다.

    “언니, 저도 언니와 같이 북명(北冥) 비경에 가서 수련하고 싶어요.”

    거울 요괴가 조용히 있다가 불쑥 말했다.

    “갑자기 왜? 설마…… 북명 비경에 관해서도 그자에게 말한 거야?”

    눈물 요괴는 당황하며 추궁하듯이 물었다.

    북명 비경은 그녀와 거울 요괴가 어릴 때 발견한 동해 깊은 곳의 비경으로, 오직 그녀 둘만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아뇨. 그냥…… 빨리 경지를 좀 더 높이고 싶어서요.”

    눈물 요괴는 거울 요괴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표정을 풀었지만, 이어진 말에 다시 신중해졌다.

    “경지를 높이다니? 거기서 오랫동안 수련할 생각이야? 절대 안 돼! 북명 비경은 너무 위험해! 저번에 대승 중기로 돌파할 때도 큰일 날 뻔했잖아. 그곳에 가기에는 넌 아직 일러!”

    “나도 위험하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주인님이 또 몇 가지 좋은 법보를 주셨으니 목숨을 잃는 일은 없을 거예요.”

    거울 요괴는 심협이 준 저물팔찌를 그녀에게 보여줬다.

    “무슨 법보인데 그래?”

    거울 요괴가 신식을 넣어서 손을 휘두르자 몇 가지 법보가 나타났다. 바로 원명의 노란색 단과 두 개, 후토종 뚱뚱한 남자의 노란색 방패 그리고 신귀파 종 당주의 백귀인(白龜印)이었다.

    엄청난 위력 파동을 뿜어내는 세 가지 보물에 눈물 요괴는 깜짝 놀랐다.

    “엄청난 법보들이네. 전부 다 상품급이야. 그자가 용케도 너에게 줬구나.”

    눈물 요괴는 표정이 다시 돌아왔지만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말투였다.

    “주인님께서는 벌써 진선기에 도달하셔서 이런 법보는 큰 쓸모가 없으실 거예요.”

    거울 요괴는 조금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뭐? 벌써 진선기에 도달했다고?”

    눈물 요괴의 표정이 굳어졌다. 처음 심협을 만났을 때만 해도 겨우 출규 후기였는데 겨우 백 년 만에 자신을 추월한 것 아닌가!

    “필요 없으니까 너에게 준 거구나!”

    “이 정도 법보면 북명 비경에서도 충분하겠죠?”

    거울 요괴는 굳이 따지거나 반박하지 않고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 정도면 북명 비경에서도 안전하겠구나. 알겠다. 나중에 나와 함께 가자꾸나.”

    눈물 요괴는 잠시 생각한 뒤 말했고, 거울 요괴는 얼굴이 밝아졌다.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눈물 요괴는 거울 요괴에게 세 가지 법보를 서둘러 연화하라고 말하고는 자신의 동부로 돌아갔다.

    거울 요괴는 동부 밀실에 앉아서 신식을 다시 팔찌에 넣고 저물 공간 깊은 곳에 있는 몇 가지 단약과 이원진수를 살폈다.

    그것들 외에도 하얀색 옥갑이 있었는데, 바로 천기권이 들어 있는 옥갑이었다. 위에는 봉인 부적으로 단단하게 봉인되어 있었다.

    하얀색 옥갑을 바라보며 거울 요괴는 아까 심협의 밀어를 떠올렸다.

    ‘이 하얀색 옥갑을 잘 보관해줘. 절대 누가 알아서도 안 되고 열어서도 안 돼. 안 그러면 큰 화가 미칠 거야.’

    거울 요괴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갑자기 입에서 푸른 빛을 뱉어내 저물팔찌를 꿀꺽 삼켰다.

    * * *

    사막의 구덩이. 심협은 결인하여 통령수동을 없앴다.

    그는 이제 천기성으로 가서 소부자에게 옥침을 고쳐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천기권은 천기성의 근본이다. 그 옥판에는 특이한 점이 없지만 천기성의 어떤 금제에 닿으면 반응할지도 모르니 차라리 아주 멀리 보내놓는 게 안전했다. 더욱이 천기권의 내용은 이미 다른 옥간에 옮겨 적어놓은 후였다.

    심협은 가만히 있다가 다시 소요경을 꺼내 법력을 주입했다.

    소요경의 물결 부문이 빛나더니 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바로 부동래와 사우흔이었다.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두 사람은 심협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나타났는데, 부동래는 여전히 사우흔을 제압하고 있었다.

    “부형, 고생하셨소.”

    심협은 몇 개의 부적을 사우흔의 몸에 날려 그녀를 속박했다.

    “이 정도는 고생도 아니었소. 다만…… 그녀의 상태로 봐서는 다시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 같소.”

    부동래는 눈살을 찌푸리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그가 처음 사우흔을 제압하기 전, 심협이 전음으로 사우흔의 정체와 관계에 관해 설명한 바 있었다.

    “그렇다 해도 벗으로서 이렇게 두고 볼 수는 없었소. 구할 수 없다면 그녀의 신혼만이라도 자유롭게 해주고 싶소.”

    심협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게 좋겠소. 수련의 도는 하늘을 거스르는 일. 자칫 잘못하면 이런 결말에 빠지기 십상이지. 심형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도 아마 벌써 죽었을 것이오.”

    부동래가 감개무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 일은 왜 또 꺼내시오? 당분간 여기서 머물 것이니 나 때문에 못 한 정양부터 하시오.”

    “소요경 안에는 천지영기가 많아 부상은 거의 다 회복되었소. 며칠만 지나면 완전히 회복될 것이오.”

    말을 마친 부동래는 한쪽 구석으로 가서 가부좌를 틀고 조용히 정양하기 시작했다.

    심협은 그 자리에 묶여서 발버둥 치는 사우흔을 바라봤다. 곱고 아름다운 얼굴이 험상궂게 변한 것을 보자 가슴이 아팠다.

    노란색 옥판을 꺼내 두 눈을 감고 신식을 안에 넣어 다시 한번 지살시왕에 관한 정보를 살펴봤다.

    일각 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옥판에서 사우흔의 신혼을 해방시킬 방도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시왕의 핵심만 망가트리면 신혼을 해방할 수 있다. 다만 이미 흉혼(凶魂)으로 변질되어 얌전히 윤회에 들어갈 리는 없었다. 또한, 만약 도망간다면 반드시 화가 될 것이다.

    그녀가 이런 방식을 원하지는 않을 것임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상당히 까다롭군.”

    심협은 사우흔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그의 머릿속에서 영광이 반짝거리더니 이전에 봤던 천기권 중에서 응혼술 비법이 떠올랐다. 언갑을 만들 때 쉽게 통제하기 위해 언갑에 수혼(獸魂) 혹은 음혼(陰魂)을 넣고 강화해 원한과 탐욕, 분노 등 제어하기 힘든 감정을 제거하는 비술이었다.

    “이 방법이면 그녀의 신혼을 정화할 수 있을지도 몰라.”

    생각을 정리한 그가 막 시도하려는데, 자죽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심 도우, 만약 저 여인의 신혼을 떼어내려는 거라면 제가 도울 수 있어요.”

    “네게 방법이 있는 것이냐?”

    “심 도우도 알겠지만, 저 지살시왕은 그녀 자신이지 다른 이의 신혼을 몸에 넣은 게 아니에요. 그래서 신혼과 육체의 연결이 아주 깊다 보니 신혼을 다치지 않게 떼어내는 건 어려워요. 다른 건 몰라도 지금 저는 신혼의 몸이니 그런 일은 제가 훨씬 잘할 수 있을 걸요?”

    “그렇다면 부탁하마.”

    심협이 기쁜 듯 미소를 짓고는 건곤대를 열었다. 그러자 귀장 조비극도 함께 나왔다.

    “주인님, 저도 미력하지만 돕겠습니다. 저 시왕이 뿜어내는 음살의 기운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조비극은 히죽 웃으며 가슴을 두드렸다.

    “둘이 이미 말을 맞추고 나온 것이냐?”

    심협의 어이없다는 목소리에 조비극과 자죽은 그저 웃기만 했다.

    “아무튼, 부탁하마.”

    말을 마친 심협은 <천시진경>에 적힌 내용대로 지살시왕의 핵심 시단을 찾아서 순양검광으로 순식간에 부쉈다.

    시단이 부서지는 순간, 사우흔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졌고, 온몸에 빼곡한 검은 무늬가 떠오르는 동시에 시살(尸煞)의 기운이 입과 정수리 등 곳곳에서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허공을 검게 물들였다.

    먼 곳에 앉아 있던 부동래도 이 현상에 깜짝 놀라 눈을 뜨고 바라봤다.

    조비극이 어느새 사우흔 옆에 나타나 양손을 결인하자 형흉신광이 뿜어져 나와 사방으로 흩어지는 시살의 기운을 전부 빨아들였다. 이후로도 시살의 기운은 나오는 족족 그에게 흡수됐다.

    이 광경을 본 부동래는 다시 안심하고 두 눈을 감았다.

    뒤이어 자죽 신혼이 보라색 빛으로 변하여 사우흔의 미간을 파고들었다.

    사우흔의 얼굴에서 보라색 빛이 반짝였다가 바로 사라졌고, 표정에서는 고통이 한층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내 정신을 잃은 보통 사람처럼 두 눈이 공허하게 변하더니 두 팔도 얌전해져서 축 늘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간에서 보라색 빛이 반짝이더니 주먹만 한 검은 구슬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 구슬에는 검은 안개가 감돌았고 사람의 형상이 안에서 끊임없이 팔다리를 휘두르며 발악하는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심 도우, 신혼과 시신의 연결을 완전히 끊었으니 지금이에요!”

    목소리가 들려오는 동시에 자죽의 신혼도 사우흔의 미간으로 날아갔다.

    핵심 시단과 신혼이 사라진 사우흔은 완전히 빈껍데기가 되었다. 만약 조비극이 옆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살의 기운을 흡수하지 않았다면 살기가 사방으로 퍼져 나가 전부 오염시켰을 터였다.

    심협은 검은 구슬에 집중했다. 그는 천기권에 적혀 있던 응혼비술을 시전하여 사우흔의 잔혼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그 위에 붙어 있는 원한을 제거했다.

    검은 구슬 안에서는 끊임없이 비명이 들려왔고, 안에 있는 인간의 형상도 더욱 격렬하게 몸부림쳤다. 하지만 구슬을 감돌고 있던 검은 안개는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사라져갔다.

    한참이 지나자 검은 구슬 안에서 들려오던 비명은 점차 줄어들었고, 구슬도 검은색에서 조금씩 투명하게 변해갔다.

    마침내 잠시 후에는 콰직 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구슬이 완전히 부서지면서 잔혼의 허상이 피어올랐는데, 바로 심협이 알던 사우흔의 모습이었다.

    다만 현재 그녀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고, 두 눈에는 영광이 사라져 마치 종이로 만든 인형 같았다.

    영지를 완전히 잃은 모습을 본 심협은 비술을 발동하여 그녀의 신혼을 안정시키는 동시에 다시 결인했다.

    붉은 빛이 뿜어져 나가 사우흔의 복부를 관통했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보라색 법진이 나타났지만, 이내 폭발하며 사라졌고, 두 개의 하얀 빛이 빠져나와 밖으로 날아갔다. 뽑혀나갔던 일혼일백이었다.

    심협은 푸른 빛으로 조심히 두 개의 하얀 빛을 감싼 뒤 사우흔의 신혼에 대고 눌렀다.

    하얀 빛이 들어가자 사우흔의 신혼 허상이 점점 모습을 갖추었지만, 여전히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일혼일백이 분리된 지 너무 오래되어서 다시 합쳐졌어도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기란 불가능했던 것이다.

    일이 이렇게 되자 심협도 더는 방법이 없었다. 그저 계속해서 응혼비술을 운공할 뿐이었다.

    반 시진이 지나자 사우흔의 신혼은 마침내 안정되었다. 몸에서 짙은 하얀 빛을 뿜어내는 걸 봐서는 신혼이 완벽하게 안정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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