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86화 (786/1,214)

786화. 보관

심협은 얼른 천살시왕 부분을 살폈다.

천살시왕 제련과정은 대체로 지살시왕과 비슷했다. 다만 진선 후기 수사로만, 그것도 아홉 명의 진선 후기 존재를 동시에 제련해야만 하나의 천살시왕을 제련할 수 있다. 마지막 단계에서 아홉 구의 연시를 고충을 기르는 것처럼 서로 흡수하게 하여 가장 강한 하나만 선택한다. 나머지 여덟 구의 원기는 선택된 연시가 전부 흡수하면서 천살시왕이 된다.

“……응시기(凝尸氣), 전음신(轉陰神), 금해골(金骸骨), 천시성(天尸成). 방금 그 마른 시체의 해골은 옅은 금색이었지? 그렇다면…… 천살시왕인가!”

그는 화들짝 놀랐다.

심협은 다시 노란색 시체를 바라보고는 <천시진경>에 기록된 방법대로 법력을 주입하여 운공하기 시작했다.

노란색 시체는 금빛이 번쩍이며 천천히 관에서 떠올랐는데, 특히 등줄기 부분에서 대량의 금빛이 두 개의 살덩이로 모여들었다.

파직!

무언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두 개의 커다란 날개가 살덩이에서 펼쳐졌고, 찬란한 금빛은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매우 짙은 시기가 시체에서 폭발하여 반경 수십 장을 가득 채웠다. 심협 또한 그 시기의 영향으로 온몸의 피가 굳어졌다.

“천시금시(天尸金翅)! 진짜 천살시왕이었어!”

지살시왕의 강력함은 이미 잘 알고 있었는데, 천살시왕의 신통은 그보다도 대단하여 태을기 존재와 비슷하다. 소부자나 귀언 같은 진선 절정의 존재도 천살시왕 앞에서는 보잘것없는 것이다.

‘이 천살시왕을 부릴 수 있다면……?’

한데 그때, 마른 시체의 시기가 갑자기 빠르게 줄어들었고, 두 개의 금빛 날개도 움츠러들어 다시 검은 관으로 떨어졌다. 심협이 아무리 발동해도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심협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방금 발동할 때 마른 시체의 상태를 대략 파악했는데, 이것은 천살시왕으로 탈바꿈하지 못했다. 절반 정도만 진행되어 간신히 천살시왕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귀언이 이 독문수단을 이용하여 언갑으로 연화하려 했던 것도 이 시체를 편하게 조종하는 한편 언갑의 힘을 빌려 나머지 부분도 진행하기 위함이었으리라.

이 시체는 언갑화의 마지막 단계가 남아 있어 이제 반언반시(半偃半尸)의 상태였다. 그러나 그는 언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마지막 단계를 진행할 수 없었다.

“다행히 천기성과 좋은 관계를 맺어놨으니 그들에게 부탁하면 거절하지 못하겠지.”

심협은 한결 마음이 편해져 계속해서 <천시진경>을 읽었다.

<천시진경>의 마지막에는 부록처럼 비술이 담겨 있었는데, 바로 천마반사무였다. <천시진경>을 적은 글씨와 다른 것으로 보아 귀언이 추가한 것 같았다.

천마반사무는 위력이 강력한 만큼 내력이 범상치 않았는데, 기록에 의하면 과거 마조 치우가 가장 총애하는 비(妃) 천매마녀(天魅魔女)가 창안한 것이었다.

이 비술은 음속성 자질의 여자 수사만이 익힐 수 있다. 특히 아홉 명의 여자 수사가 동시에 시전해야 그 위력이 극에 달한다.

이 춤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천매마녀의 분신까지 소환할 수 있어 태을 수사는 말할 것도 없고 천존 경지의 수사도 상당한 고생을 해야 했다.

“이전에 한 명을 죽여서 다행이군. 위험할 뻔했어.”

심협은 크게 안도했다. 동시에 귀언에게 내심 감탄했다. 아홉 명의 음속성 여자를 지살시왕으로 만들고 또 아홉 명의 지살시왕으로 천마반사무까지 시전하지 않았는가.

이 천마반사무의 가장 큰 약점은 시전자가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었다. 그랬다가는 약점이 노출된다. 물론 지살시왕은 불사의 몸이었기에 허리가 잘리고 목이 잘려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아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그러나 귀언은 심협을 만났고, 풍뢰영문와 부주진신법, 발천난봉 같은 신통은 천마반사무와 상극이었기에 마지막에 그런 결말을 맞이하게 됐다.

심협은 모든 내용을 살핀 후 옥반을 챙겨 넣고 하얀색 옥갑을 열었다.

옥갑에도 검은색 옥반이 들어 있었는데, 수많은 작은 글씨가 적힌 것으로 봐서는 옥간인 듯했다.

한데 신식을 집어넣은 그는 표정이 급변하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어서 신식을 펼쳐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도 어두운 얼굴로 한참이나 수중의 검은색 옥반을 바라보며 몇 번을 망설이다가 다시 신식을 넣었다.

이 검은색 옥반의 내용은 바로 천기권(天機卷)이었다. 그것도 전권과 후권이 모두 있었다.

전권에 기록된 것은 천기성의 모든 신통과 비법이었다. 그중에는 그가 배우고 싶었던 천기성의 신식 단련 비법도 있었는데, 이를 운사여전결(運思如電訣)이라 했다. 이 비법을 수련하면 신식을 연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의 문을 열어주어 사람의 마음에 반응하는 능력이 번개처럼 빨라진다.

그 외에도 언무사가 시전했던 예망필로를 비롯해 여러 절묘한 신통들이 있었다.

심협은 대략 훑어본 뒤 후권을 살폈다.

후권에는 각종 언갑의 제련법이 있었는데, 그가 봤던 영해비주와 신장화포, 심지어 육비천룡 언갑의 제련법도 있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능력의 기발한 언갑이 있어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후권 마지막에는 특수한 언갑술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바로 귀언지술(鬼偃之術)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이나 요물을 언갑으로 만드는 술법으로, 과정은 매우 피비린내 나고 실패할 확률도 높아 성공 확률은 1할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일단 성공하면 이런 종류의 언갑은 위력이 특히 대단하여 생전의 실력과 각종 특수한 능력을 완벽하게 보존할 수 있어 평범한 언갑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서천호나 거력신원도 이 방식으로 만들어진 귀언이었구나.”

귀언지술은 너무도 흉악하여 천도에 어긋났고, 정도를 거슬렀기에 금지술로 분류되어 천기권 가장 마지막에 둔 듯했다.

하지만 귀언은 천성이 사악하여 그가 천기권을 얻은 뒤로 얼마나 많은 생령을 참혹하게 죽였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니 그의 비참한 최후도 결국 죗값을 받은 것이리라.

심협은 귀언지술을 읽어나갈수록 눈이 밝아졌다.

그가 잔악한 귀언지술을 악하게 사용할 리는 없겠지만, 천살시왕은 이미 죽은 자인 데다 귀언화가 되어 이제 한 걸음만 남기고 있으니 이것에 귀언지술을 사용하는 건 큰 상관이 없지 않을까 싶었다. 더욱이 귀언지술이 있으니 천기성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것 없이 직접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귀언지술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어린애 장난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지간한 언술보다 훨씬 심오하여 먼저 언술을 절정의 단계까지 익히고 신식도 혼사화(魂絲化)를 완성해야 사용이 가능했다.

다행히 이 천살시왕은 귀언화가 기본적으로 완성되어 있으니 강력한 음혼주(陰魂珠)를 찾아서 머릿속에 설치하기만 하면 완성될 터였다.

심협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본래도 방대했던 그의 신식은 뇌겁의 세례를 겪으면서 이미 반정화(半晶化)에 도달했다. 그런데 이제 운사여전결까지 얻었으니 머지않아 혼사화에 도달할 자신이 있었다.

천살시왕에 필요한 강력한 음혼주 또한 회신주가 있으니 문제없었다.

천기권에는 회신주에 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 구슬은 천기성 초대 성주가 만든 보물로, 신혼을 흡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 저장해둔 신혼은 끊임없이 강해진다.

절정급 언갑은 음혼주에 대한 요구가 매우 높아 천성적인 음혼주만이 만족시킬 수 있다. 그래서 천기성 성주는 몇 개의 회신주를 만들어 대대로 물려준 것이었다.

천살시왕은 혼력에 관한 요구가 높지만, 인형의 성처럼 한 나라를 멸망시켜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언젠가 적들 중 강력한 수사를 죽이게 된다면 그 신혼을 회신주 안에 저장함으로서 천살시왕에 사용할 수 있을 터였다.

심협은 천기권을 모두 훑어본 뒤, 천기성의 개척성과 현묘함에 감탄했다. 이들은 방촌산이나 보타산 같은 대종파와 견줄 만했다.

하지만 심협은 이내 눈살을 찌푸렸는데, 얼굴에는 망설임이 가득했다.

소부자 등이 이번에 흑연미굴로 향한 이유는 귀언을 잡기 위함일 뿐만 아니라 이 천기권을 회수하는 것이기도 했다. 한데 이것이 그의 손에 들어온 것이다.

만약 천기권을 보기 전이었다면 바로 소부자에게 주었으면 그만일 터였다. 하지만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결국 모두 봐버렸으니 혹시라도 이 사실을 천기성이 알게 된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래, 귀언과 인형의 성은 마심의 지팡이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으니 천기권이 여기에 떨어진 것을 누가 알겠는가. 천기성을 대신해서 잠깐만 보관하고 있다가 경지가 더 오르면 그때 돌려주자.”

심협은 잠시 생각하더니 그렇게 결심했다.

그는 소요경을 발동하여 검은색 관을 챙겨 넣은 뒤, 자신의 흔적을 완전히 제거하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심협은 수천 리를 날아 망망한 모래 바다를 건너서는 어느 황량한 사막에 도착했다.

금세 밤이 되었는데, 심협의 눈에 저 아래에서 한 줄기 하얀 빛이 하늘 위로 쏘아지는 것이 보였다. 하늘을 날던 그는 얼른 신식을 펼쳐 살피고는 곧바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곳으로 향했다.

황량한 사막에는 8장 크기의 커다란 구덩이가 있었다. 타원형 구덩이 안에는 빗물이 고여서 밝은 달의 하얀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구덩이 밑바닥에 물이 고인 곳의 폭이 3척도 되지 않았다. 사방은 대부분 바위였고, 물에 닿은 곳만 부드러운 진흙이었다. 한데 그곳에는 이름 모를 새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음…….”

물가로 다가가 보니 이것은 빗물이 아니라 천지영기가 배어 있는 샘물이었다.

조심스레 한 모금 마셔보니 맑고 감미로운 느낌이 전신으로 퍼지며 연이은 전투로 인한 피곤함이 사라지는 듯했다.

심협은 다시 물가로 올라가 바위에 앉아서 휴식을 취한 뒤, 푸른 빛을 발하여 온몸을 감쌌다가 잠시 후 천천히 흩었다. 안에서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이어서 그는 법력을 건곤대에 주입한 뒤 열었다.

귀장과 거울 요괴 모두 어느새 깨어나 있었다.

푸른 빛이 반짝이더니 거울 요괴가 나와서 심협 옆에 섰다.

“주인님.”

거울 요괴의 목소리는 매우 의기소침했다. 흑연미굴에서 마주친 적들은 너무나 강력하여 그녀가 나설 여지가 전혀 없었고, 그렇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비록 이번에는 적들이 너무도 많고 음험해 네가 활약하기 적합하지 않았을 뿐, 거울 요괴 일족의 신통과 보경만으로도 네 잠재력은 충분하다.”

심협은 거울 요괴의 침울한 표정을 보고는 위로했는데, 실제로 그녀는 기분이 조금 풀렸는지 표정도 약간 밝아졌다.

“우선 너를 동해로 돌려보내 주마. 춘추관은 계속 지키지 않아도 된다. 이 안에 단약과 진수 그리고 몇 가지 법보가 있다. 그동안 수고한 보수인 셈이다. 돌아가서 계속 수련에 정진한다면 금방 대승 후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게다.”

심협은 저물팔찌를 꺼내 건네며 거울 요괴에게 전음을 보냈다.

거울 요괴는 멍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팔찌를 받았다.

심협은 통령지술로 통령수동을 만들어 거울 요괴를 동해로 돌려보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