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5화. 붕괴
“명을 재촉하는구나!”
소부자가 공격해오자 귀언은 버럭 외치며 인형의 성을 발동했다.
인형의 성은 금빛을 뿜어내며 허공의 절반을 뒤덮는 금색 성으로 변하더니 천기검의 검홍과 충돌했다.
콰쾅!
거대한 인형의 성 앞에서 흑백의 검홍은 젓가락보다도 하찮았고, 너무도 쉽게 폭발하며 천기검이 빛을 잃은 채 튕겨나갔다.
인형의 성은 멈추지 않고 천기성 사람들을 압박해왔다.
“조화선언으로 탈바꿈하면서 신혼 제물이 필요했는데 잘됐구나. 네놈들의 신혼으로 인형의 성의 탄생을 축하해야겠다. 크하하하!”
귀언이 미치광이처럼 웃었다.
인형의 성은 다시 몇 배로 커져서 하늘을 뒤덮고 태산처럼 압박해왔다.
마심은 인형의 성의 방대한 기운을 감지하고는 고개를 휙 돌렸는데, 뼈 지팡이에서 갑자기 혈광이 뿜어져 나왔다.
귀언도 그제야 마심의 존재를 눈치챘고, 뼈 지팡이에서 끝을 헤아릴 수 없는 마기의 파동을 감지하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저자는 누구지? 마기로 봐서는 천기성 사람이 아닌데……?”
그는 어리둥절했다.
마심은 이성을 잃었지만, 전투 본능은 남아 있었기에 인형의 성의 강력함을 감지하고는 낮게 포효했다. 뼈 지팡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3장 길이의 거대한 지팡이로 변했고, 인형의 성을 향해 일격을 가했다.
“네가 누구든 고작 그 정도 마기로 달려들다니, 네 신혼도 내놔라!”
귀언은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보고는 입에서 원기를 뿜어내 인형의 성으로 집어넣었다.
인형의 성은 금빛으로 번득이면서 순식간에 암금색의 거대한 산으로 변했고, 더욱 강력한 위세가 뿜어져 나왔다.
꽈르릉!
거대한 산과 뼈 지팡이가 충돌하자 경천동지할 굉음이 울려 퍼졌고, 반경 백 리의 땅과 하늘이 모두 강하게 흔들리면서 천지영기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위세가 대단하던 금색 산봉우리는 뼈 지팡이의 일격에 썩은 나무처럼 부서져 수많은 암금색의 파편으로 무너졌다.
산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귀언은 경악에 입이 떡 벌어졌다.
인형의 성을 일격에 무너트린 뼈 지팡이는 갑자기 커다란 혈광을 뿜어내 인형의 성 파편을 뒤덮었고, 파편 안에 담겨 있던 영력은 전부 흡수되었다.
뼈 지팡이의 핏빛 영광은 갑자기 더욱 강해졌고,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수백 장 길이의 핏빛 무지개가 지팡이에서 뿜어져 나가 귀언의 몸을 관통했다.
핏빛 무지개의 강력한 힘에 귀언의 몸은 폭발하여 혈무로 변하더니 이내 무지개로 완전히 흡수되었다.
하늘마저 위협하던 인형의 성과 태을에 근접했던 귀언은 그렇게 몇 호흡 사이에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그 무렵, 음양굴에서 빠져나와 모든 걸 지켜본 심협 또한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핏빛 뼈 지팡이의 위력을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었는데, 지금 보니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핏빛 무지개는 계속해서 음양굴 쪽으로 날아가더니 벽을 종잇장처럼 뚫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음양굴 안에서 굉음이 울려 퍼졌고, 부근의 허공이 강렬하게 떨려왔다. 몇 호흡 뒤, 평온해지기는커녕 떨림은 점점 더 강해졌다.
“이런, 위험하다!”
심협은 당황하여 얼른 뛰어올라 붉은 검광으로 변하여 전력으로 날아갔다.
“당장 여기서 벗어나라!”
소부자도 곧장 천기성 제자들에게 명했다.
하지만 그들이 멀리 날아가기도 전에 더 커다란 굉음이 뒤에서 들려왔고, 음양굴 전체가 흔들리더니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동굴 주위의 허공도 갈라진 거울처럼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깊은 곳에 10여 리 정도 되는 거대한 공간의 균열이 희미하게 보였다.
공간 균열에서는 엄청난 흡입력이 뿜어져 나와 무너진 음양굴을 순식간에 집어삼켰고, 심협 등도 빨려 들어갔다.
공간 균열로 빨려 들어가려는 순간, 소부자는 금갑선의를 걸쳐서 금광을 뿜어내 천기성 제자들을 뒤덮었다.
한편, 심협은 끝이 안 보이는 공간 균열을 보고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곧장 기혈번과 천두금준을 전부 꺼내 금빛과 검은 빛으로 몸을 보호했다.
이를 마치기 무섭게 그는 공간 균열로 빨려 들어갔고, 거대한 압박감이 휘몰아치면서 그의 강력한 육신으로도 버티지 못하고 눈앞이 어두워지면서 정신을 잃었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심협은 천천히 깨어났다.
그곳은 황폐하고 끝없는 사막 한가운데였다. 천두금준과 기혈번이 옆에 떨어져 있었는데, 크게 손상되어 영광이 어두웠다.
건곤대와 소요경의 영광도 희미했고, 그 안의 귀장과 거울 요괴, 자죽, 부동래 모두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사막은 온도가 매우 높았고, 익숙한 열풍이 몰아쳤다. 신식을 펼쳐 주위를 탐색해보니 건물 유적이 있었다. 이곳은 무은사해인 것 같았다.
“흑연미굴을 빠져나온 건가?”
심협은 내심 기뻐하며 앉으려 했는데, 온몸이 뼛속까지 쑤셨고, 오장육부는 불에 타는 듯했다. 중상을 입은 데다 단전의 법력도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크게 다치긴 했으나 그래도 흑연미굴에서 나왔으니 다행이군.”
그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임랑환에서 남은 치료 단약과 법력 회복용 단약을 꺼내서 먹고 연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법력이 회복되자 곧바로 대개박술을 시전하여 상처를 치료했다.
이번에는 상처가 너무 커 꼬박 반나절이 걸려서야 상처를 대부분 회복할 수 있었는데, 다행히 움직임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이곳이 흑연미굴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인지, 언제 적이 나타날지 알 수 없었기에 더는 머물지 않고 곧장 날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사막 분지 어딘가로 내려갔다.
분지에는 수많은 검은색 돌이 떨어져 있었는데, 모두 강력한 음기를 발산했다. 음양굴의 돌 외에도 언문이 새겨진 암금색 조각이 있었는데, 거기서도 영력 파동이 느껴졌다.
심협은 이 조각을 바로 알아봤다. 바로 인형의 성 조각이었다.
심지어 암금색 인형 비석의 윗부분도 있었다. 다만 영문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고, 영력 파동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핵심 금제인 인형 비석이 부서졌으니 인형의 성은 정말로 부서졌겠구나.”
심협이 비석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붉은 검기가 비석을 반으로 갈랐고, 그 안에서 납작한 노란색 구슬이 나왔다. 바로 회신주였다.
이 보물은 대량의 신혼을 저장할 수 있는 이보(異寶)였다. 소부자는 분명 이 구슬을 봤을 때 깜짝 놀랐다.
푸른 빛을 쏴서 조심히 회신주를 감싸고 아무런 위험이 없음을 확인한 후에야 심협은 손으로 가져갔다.
구슬은 조금 차가웠고, 겉에는 옅은 노란색 형광빛이 감돌았다. 그 위에는 신비로운 문로가 어렴풋이 보였는데, 모종의 현묘한 법진 같았고, 매우 아름다웠다.
심협은 잠시 생각하더니 법력을 주입했다.
회신주 주위의 노란색 형광이 갑자기 밝아졌고, 특이한 파동이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반경 수백 장까지 퍼졌다.
파동에 휩쓸리자 심협의 머릿속 신혼은 크게 흔들렸고, 몸에서 빠져나와 회신주 안으로 빨려 들어갈 듯했다.
깜짝 놀란 그는 서둘러 부주진신법을 운공하여 신혼을 안정시켰다.
땅속에 있던 도마뱀과 전갈들도 이 파동에 휩쓸려 몸이 흔들리더니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었고, 신혼의 형광이 시체에서 빠져나와 회신주로 몰려들었다.
“이 구슬에는 신혼을 모으는 능력이 있는 모양이군.”
귀언은 이 구슬을 사용하여 낭하국을 멸망시키고 사람들의 신혼을 흡수한 것이리라.
회신주를 내려다보는 그의 표정은 복잡했다.
이 구슬의 외형은 영물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사악하여 서원봉보다 약하지 않은 귀물이었다.
심협은 언술을 알지도 못하고 신혼의 힘을 흡수할 필요도 없기에 이 물건이 필요하지 않았다. 조심히 챙긴 뒤 앞에 있는 인형의 성 파편을 바라봤다.
“암금색 영동은 능소지동이라 언갑을 만드는 좋은 재료라던 소부자의 말이 사실인 것 같군. 나중에 천기성에서 한몫 잡을 수 있겠어.”
그는 소요경을 꺼내 인형의 성 파편을 전부 챙겨 넣고는 다시 주위를 살폈다.
인형의 성 파편 아래에 검은색 관이 묻혀 있었는데, 신비로운 무늬가 많이 새겨져 있는 것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왜 관이 있는 거지?”
심협은 금색의 거대한 손을 만들어 관을 열려고 했다. 하지만 관 뚜껑의 무늬가 어두운 노을 빛으로 번득이며 심협의 힘을 막아냈다.
“금제?”
그는 눈썹을 치켜 올리고는 두 개의 커다란 금빛 손을 만들어 관의 위아래를 붙잡았다. 이번에는 금색 손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와 관의 검은 노을 빛을 감싸고는 세차게 당겼다.
관의 검은 노을 빛은 평범하지 않았지만, 아무도 발동하지 않았기에 금방 금빛을 잃었고, 콰지직 하며 관 뚜껑이 열렸다.
그 안에 든 물건들을 본 심협은 표정이 밝아졌다. 10여 개의 하얀색 수정구와 노란색 시체 한 구 그리고 흑백의 옥합 두 개였다.
그는 먼저 하얀색 수정구를 바라봤다. 그가 갈망하던 고급 언정으로, 그 안의 영력은 조금도 소모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것들만 있으면 신장화포를 사용하는 데 거리낄 필요가 없을 터였다.
심협은 이어서 노란색 시체를 바라봤다. 피골이 상접한 게 이전에 봤던 몇 구의 지살시왕과 비슷했다. 다만 이 시체는 시기가 매우 희미했고, 뼈가 옅은 금빛으로 번득이는 것이 매우 기이했다.
마른 시체의 피부에는 서천호나 거력신원과 같이 수많은 언문이 빼곡했는데, 더 복잡해 보였다. 두 요수보다 더 고급 언갑 같았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귀언이 어떤 수단으로 살아 있는 사람을 언갑으로 만들려 했나보군. 이렇게 은밀하게 보관한 것을 보면 평범한 언갑과는 다를 텐데, 아직 완성되지 않은 모양이군.”
그는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심협은 마지막으로 두 개의 옥합을 집어 들었다. 먼저 검은색 옥합에는 노란색 옥판이 들어 있었는데, 수많은 작은 글씨로 가득한 게 모종의 옥간 같았다.
심협은 신식으로 살펴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노란 옥판은 바로 <천시진경>으로, 거기에는 수많은 연시 비술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지살시왕과 천살시왕의 연제법도 있었다.
그는 눈을 반짝이며 지살시왕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읽었다.
<천시진경>의 기록에 의하면 지살시왕을 만들려면 반드시 먼저 진선기 수사가 아니면 최소한 대승 절정의 수사를 구해야 했고, 상대를 죽이지 않고 제압한 뒤 일혼일백(一魂一魄)을 천천히 분리해 가사 상태에 이르게 해야 했다. 그리고 일혼일백을 분리하고 육신의 힘을 봉인해야 하는데, 체내의 나머지 이혼육백(二魂六魄)을 분리하여 서로 마주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어서 매일 독액에 담그고 열화포제(烈火炮制) 같은 수단으로 몸을 매일 같이 단련한다. 이 신체는 영지가 없어지지만, 신혼이 온전하여 고통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것들의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미움과 원한을 불러온다.
여기까지 수십 년 정도 걸리는데, 신체의 법력은 미움과 원한이 서로 융합하여 지살시왕의 시단(尸丹)이 된다. 이것이 바로 지살시왕의 첫걸음이었다.
하지만 처음 만들어진 지살시왕은 원래의 경지를 잃은 상태라 새로 배양해야 한다. 방법은 음지 같은 음기가 가득한 곳에 넣어두고 매달 음에 속한 수사 하나를 죽여 그 피를 먹이는 것이다.
이렇게 50년을 하면 원래의 실력을 회복하면서 비로소 지살시왕이 완성된다.
심협은 군자를 자처하지는 않았지만, 정파에 속했기에 지살시왕 같은 악독한 연시법을 혐오했다. 어쨌든 <천시진경>의 기록대로면 지살시왕의 혼백은 아직 몸 안에 있기에 그에게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사우흔은 지살시왕이 되었으니 다시 살아날 가능성은 없지만, 신혼의 윤회 환생을 건너면 가능할 수도 있다.
다만 이곳은 시도하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