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81화 (781/1,214)
  • 781화. 마진과 돌기둥

    “흑연미굴의 음수들이 모두 몰려온 건가?”

    심협은 음수의 수를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먼저 들어온 소부자 등에게도 사방에서 음수들이 몰려들었다.

    심협이 다른 사람들의 동향을 더 살펴보기도 전에 머리 위의 구름에서 갑자기 일고여덟 마리의 음수가 그에게 돌진해왔다.

    심협은 현황일기곤을 몇 번 휘둘러서 음수들을 쳐 죽였다. 그러나 곧이어 더 많은 음수가 구름과 땅에서 튀어나왔다.

    심협은 서둘러 주위를 둘러봤지만, 언무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음수의 수가 너무 많았기에 심협은 어쩔 수 없이 땅으로 내려가야만 했다.

    땅에 착지하는 순간 음수들이 에워쌌지만, 심협도 가만있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곤봉으로 음수들을 날려 버렸고, 동시에 앞으로 돌진했다. 언무사만 구출하면 최대한 빨리 이곳에서 벗어날 생각이었다.

    음수들에게 포위된 천기성 수사들의 언갑은 몇 번의 전투를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기 시작했고, 새로운 언갑을 꺼낼 틈도 없이 몸까지 찢겨 나갔다. 혼전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법력 소모가 막심해지면서 죽어 나가는 천기성 제자의 수는 늘어만 갔다.

    심협도 힘이 닿는 대로 도왔지만, 이 처참한 판세를 바꿀 수는 없었다.

    바로 그때, 심협은 갑자기 가슴이 철렁해 음굴 깊은 곳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혈무가 길게 늘어져 있었는데, 그 사이로 핏빛 해골이 거대한 코끼리 음수의 등에 서 있었다. 등에 핏빛 뼈 날개가 활짝 펼쳐져 있는 해골은 유화(幽火)가 번쩍이는 눈으로 사방을 흘겨보았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영력 파동은 태을기에 근접했고, 무려 일고여덟 명의 진선 절정에 해당하는 거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심협의 살짝 벌어진 입에서 서늘한 입김이 흘러나왔다.

    “심 도우, 조심하세요! 저자가 바로 음굴의 모든 음수를 다스리는 혈고(血骷)선조예요!”

    심협은 이미 예상했기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히 내 음굴에 침입하다니, 네놈들은 모두 여기서 죽어 내 음령(陰靈)이 될 것이다!”

    핏빛 해골의 외침이 황종대려(黃鐘大吕)처럼 음굴 전체에 울려 퍼졌다. 이 외침에는 신혼을 공격하는 힘이 담겨 있어서 머릿속을 뒤흔들었다.

    사실 혈고선조는 지금 울화가 치미는 상태였다. 흑연미굴의 패자이자 휘하에 수많은 음수를 거느린 그는 이곳의 지리적 이점까지 더하여 태을 존재가 강림해도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었다. 그는 귀언의 <천시진경>을 손에 넣는 동시에 귀언의 손을 빌려 영굴 안의 거슬리는 자들을 제거할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많은 외부의 적을 끌어들일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고, 피해가 막심했다.

    그는 입을 쩍 벌려 혈광을 뿜어냈다. 붉은 비단 같은 혈광은 빠르게 날아가 한 천기성 제자의 몸을 휘감았다. 이 가엾은 수사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혈광에 몸이 휘감겨 살과 피가 모두 제거되고 가죽만 남아버렸다.

    혈고선조는 고개를 돌려 허공의 심협을 바라봤다.

    심협은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는 대량의 음수들 속으로 파고들어 허공에서 사라진 것처럼 기운을 완전히 감췄다.

    혈고선조는 일순 당황해 표적을 바꿔 다시 혈광을 뿜어냈다.

    이번에 불행이 덮친 것은 신귀파의 종 당주였다.

    천기성 제자의 말로를 목격한 그는 창백하게 질려 서둘러 결인했다. 그러자 몸 옆에서 두 개의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거북이 등껍질 모양의 법보 두 개가 떠올라 양옆을 감쌌다.

    날아온 혈광은 마치 방패가 없는 것처럼 순식간에 뚫고 들어갔다.

    종 당주는 크게 당황하여 쏜살같이 뒤로 물러나면서 하얀 옥부를 몸에 붙였다. 이 옥부가 몸에 들어가자 그의 기운은 순식간에 진선기를 돌파했다.

    종 당주는 동시에 손에 하얀색 도장을 뱉어냈는데, 그 끝에는 하얀 거북이 한 마리가 조각되어 있었다.

    이 도장은 빠르게 회전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10여 장 크기로 변하여 혈광을 막았다.

    눈부신 하얀 빛과 부문이 흐르고 놀라운 기세를 뿜어내는 도장이었다.

    “신귀파의 진파지보 백귀인(白鬼印)인가? 흥! 네가 원신부(元神符)로 경지를 강제로 끌어올려봐야 거기까지다!”

    혈고선조의 냉소와 함께 혈광에서 혈고선조의 분신 같은 핏빛 해골 허상이 나타났다. 그러더니 가뿐하게 백귀인을 뚫고 지나가 곧장 혈 당주에게로 달려들었다.

    종 당주는 놀란 기색으로 두 손을 결인하려 했지만, 다음 순간 몸이 뜨거워지더니 정혈이 타올라 끝없는 어둠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동굴 안의 모두가 이 모습을 똑똑히 지켜봤다. 온몸의 살과 피가 단숨에 말라붙더니 순식간에 한 구의 해골 같은 시체가 되었다. 좀 전의 천기성 제자와 똑같은 최후였다.

    마심과 목효는 이 광경을 보고는 안색이 변하더니 수라 꼭두각시와 주위 음수의 습격을 아랑곳하지 않고 각자 둔술을 발휘하여 핏빛 해골 허상과의 거리를 벌렸다.

    한편, 심협은 파리로 변신해 은신부와 연연나금의의 도움으로 음굴 어딘가에 숨어 있었다. 진선기로 돌파한 이후 마침내 칠십이변 신통을 완벽하게 시전하여 다른 사물로 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연연나금의는 뇌겁을 막아내면서 망가졌지만, 핵심 금제는 손상되지 않은 터라 진선기 경지로 법력을 제어하자 그 상태로도 간신히 기운을 숨길 수 있었다.

    멀리서 종 당주의 죽음을 지켜본 심협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정혈을 흡수하는 혈고선조의 신통은 생각보다 강력했다.

    그는 곧 시선을 거두고 음굴 깊은 곳으로 날아가 언무사를 찾았다.

    음굴 곳곳에서는 싸움이 절정에 달해 갔다. 난입한 수사 무리의 압력과 강력함에 많은 음수가 죽어갔지만, 음수는 그 수가 너무 많았기에 여전히 그들을 포위한 채 숨통을 조여왔다.

    심협은 고명한 은닉 신통 덕분에 발각되지 않고 음굴 깊은 곳에 도착했고, 마침내 그 한구석에서 언무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언무사는 커다란 은색 알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언문으로 가득한 언갑 위에는 수많은 상처가 가득했다. 그러나 매우 단단한 언갑인지 겉에는 상처가 가득해도 그 안은 멀쩡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언무사는 그곳에 누워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정신을 잃은 상태로, 기운도 희박하여 심협의 신혼이 강력하지 않았다면 이미 죽은 줄로 알았을 정도였다.

    몇 마리의 음수가 은색 알 근처에서 공격을 해댔지만, 알은 그저 이리저리 구르기만 할 뿐, 털끝 하나 손상되지 않았다.

    심협은 조용히 은색 알 근처로 다가가 변신을 풀었지만,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대신 소요경을 꺼내 언무사와 은색 알을 함께 소요경에 넣고 이곳을 떠나려 했다.

    한데 이 은색 알은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아무리 법력을 주입해도 소요경 안으로 넣을 수 없었다.

    심협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은색 알 위 허공에서 파동이 일어나더니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소부자였다.

    은색 알을 공격하던 몇 마리의 음수들은 소부자를 보자마자 바로 달려들었지만, 그의 손에서 하얀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자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죽었다.

    소부자는 손을 거두고 은색 알 옆으로 내려왔다.

    “성주님.”

    심협이 모습을 드러냈다.

    “심 도우 왔는가. 위험을 무릎 쓰고 천기성을 도와줘서 고맙네.”

    소부자는 심협이 갑자기 나타나자 깜짝 놀랐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닙니다. 저와 언 도우는 이곳에서 생사를 함께한 사이입니다. 친구가 위험에 처했으니 당연히 와야죠. 그나저나 현재 어떤 상태입니까? 기운이 너무 약합니다.”

    심협은 그렇게 물으며 연연나금의를 발동했다. 그러자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와 두 사람과 은색 알을 뒤덮었고, 그들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낌새를 눈치채고 달려온 음수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코를 킁킁거리더니 이내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그는 무사하네. 천기성의 언심가사(偃心假死) 신통으로 스스로를 천성은단(天星銀蛋) 안에 봉인한 것일세. 천성은단은 천기성의 특수한 언갑으로 매우 단단하고 특수한 재질로 만들어져 어떤 법력도 침투할 수 없지. 천기성 제자들은 대적할 수 없는 적을 만났을 때 이렇게 숨어 사문의 도움을 기다린다네.”

    소부자는 연연나금의를 둘러보며 설명했다.

    “그렇군요.”

    소부자가 가볍게 은단 언갑을 어루만지자 별빛 같은 하얀 빛이 언갑을 휘감았다. 그러자 은단 겉면이 반짝거리더니 사라졌다. 천성은단은 천기성의 언갑인 만큼 성주인 소부자가 이를 거둘 수 있는 것도 당연했다.

    한데 심협이 막 소부자에게 어서 떠나자고 말하려는 순간, 임랑환 안의 서원봉과 다른 물건 하나가 갑자기 격렬하게 떨리며 앞쪽을 가리켰다.

    심협은 흠칫 놀라 서둘러 그쪽을 바라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숨어들어오는 동안 자기도 모르게 음굴 깊은 곳에 들어와 있었는데, 전방 수백 장 앞의 땅에 검은색 마문(魔紋)으로 가득한 거대한 마진이 있었다. 이전에 봤던 것과 매우 비슷했으나, 몇 배나 더 컸다.

    마진 중앙에는 위로 우뚝 솟은 검은색 돌기둥이 있었는데, 온통 혈홍색 마문으로 가득했고, 매우 순수한 마기가 감돌았다. 이전에 마기가 봉인된 비석과 매우 유사했다.

    서원마봉이 흔들리면서 가리킨 곳은 바로 마진과 돌기둥이었다.

    ‘여기 마진이 있을 줄이야. 게다가 이렇게 크다니, 마기라도 봉인되어 있는 것인가?’

    심협은 그렇게 생각하며 신식을 펼쳤다.

    허나 신식은 강인한 힘에 가로막혀 마진에 조금도 접근할 수 없었다.

    신식으로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앞에 있는 마진의 상태를 감지할 수는 있었다. 이곳의 마진은 완전무결한 데다 위력도 매우 강력하여 마진 안의 모든 공간을 봉인했다. 이는 인형의 성 주위의 금제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기에 보물을 취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돌기둥 안의 물건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이번 여정에서 얻은 수확은 충분했고, 이곳은 너무 위험했다. 더 지체했다가 귀언이 인형의 성을 완전히 장악하면 모두 죽을 테니 지금은 서둘러 도망치는 게 상책이었다.

    소부자도 굳은 눈빛으로 동굴 깊은 곳의 마진과 돌기둥을 살피고는 말없이 일어섰다.

    두 사람은 각자 은닉 신통을 발휘하여 밖으로 나갔다.

    ‘한데 좀 전에 마원봉 말고 또 뭔가가 마진에 반응했는데, 뭐였지?’

    심협은 좀 전의 상황이 떠올라 신식으로 임랑환을 살펴봤다. 본래 유령주 같은 마기가 반응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약수의 백곡수가 가지고 있던 검은색 구슬이었다.

    이 구슬은 현재 어두운 노을빛을 발하며 검은색 껍질이 빠르게 벗겨지면서 몇 호흡 만에 구리 고리로 변했다. 이 고리 또한 검은색이었다.

    ‘본래 구슬이 아니라 마환(魔環)이었구나!’

    심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구리 고리 위로는 검은색 불꽃이 흘렀으니, 바로 마염(魔焰)이었다. 마염은 끊임없이 임랑환 안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며 공격했다. 이는 서원봉도 마찬가지였다.

    ‘서원봉을 얻었던 비석과 저 마진이 어떤 연관이라도 있는 건가?’

    그때, 갑자기 눈앞에 거대한 존재가 떨어지면서 심협과 소부자를 태산처럼 압박해왔다. 바로 혈고선조가 타고 있던 코끼리 음수였다.

    심협과 소부자는 깜짝 놀라 서둘러 몸을 숨겼다.

    콰쾅!

    거대한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렸고, 미처 피하지 못한 음수 몇 마리는 그대로 깔려 피떡이 되어버렸다.

    거대 코끼리 음수는 기운이 약해져 있었고, 몸에는 커다란 보라색 반점들이 생겨난 것이 어떤 맹독에 걸린 것 같았다. 몇 번이고 일어나려 애썼지만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심협은 이 광경에 경악했다.

    ‘저 코끼리는 음수지체라 천성적으로 맹독에 강한 데다 몸집도 거대하고 무려 진선기의 경지다. 한데 대체 어떤 독이 있어 저런 존재를 쓰러트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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