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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80화 (780/1,214)
  • 780화. 도리를 따르다

    소요경 밖. 귀언은 천마반사무가 부서지자 화가 났지만, 곧장 심협을 공격하는 대신 입을 벌려서 납작한 모양에 가운데가 뚫린 담황색 구슬을 꺼냈다.

    “회신주(會神珠)! 역시 네가 가지고 있었나!”

    소부자가 그 구슬을 보고는 놀라 외쳤다.

    심협은 귀언의 움직임을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풍문영뢰를 발동했다.

    꽈르릉!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고, 금색 번개가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가 폭풍우처럼 귀언 주위의 검은 보호막을 공격했다.

    보호막이 강하게 흔들렸고, 번개의 공격에 안개가 증발되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희박해졌다.

    귀언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이 나산은 음양산(陰陽傘)으로, 상고 시기 귀도의 상품 법보였다. 한데 심협의 번개 공격에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귀언은 심협을 신경 쓰지 않고 회신주를 결인했다.

    회백색 빛이 구슬에서 뿜어져 나왔고, 그 구슬 안에는 투명한 소인(小人)이 있었는데, 그는 매우 고통스러운 듯 얼굴이 일그러졌다. 뿜어져 나온 회백색 빛은 빠르게 인형 비석의 검은 빛과 합쳐졌다.

    “크아악!”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인형 비석의 검은 빛이 갑자기 증폭했고, 속도 또한 열 배 이상 빨라져 몇 호흡 사이에 인형 비석 절반을 뒤덮더니 이내 소부자의 하얀 빛과 충돌했다.

    검은 빛의 맹렬한 기세에 소부자의 하얀 빛은 속수무책으로 물러났다.

    이를 본 심협은 서둘러 더욱세게 풍뢰영문을 발동했다. 그러자 더 강해진 금색 번개가 검은색 보호막을 공격했다. 보호막은 빠르게 희박해졌지만, 완전히 부수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듯했다.

    “이건 인간들의 영혼? 귀언, 이놈! 어디서 이렇게 많은 신혼을 얻은 것이냐!”

    이 광경을 본 소부자가 분노한 듯 일갈했다.

    귀언은 차갑게 웃기만 할 뿐, 대답 대신 회신주를 더욱 강력하게 발동했다. 그러자 더 많은 생혼소인(生魂小人)이 비석 안으로 쏟아졌다.

    회신주에는 무궁무진한 신혼이 담겨 있는 듯했다.

    “저 신혼들은 힘이 약한데……? 설마 일반 백성들의 신혼이란 말인가? 한 나라를 멸망시키고 수집한 것이로구나. 낭하국의 멸망이 네 소행이었어!”

    심협은 문득 천기성 제자의 수첩이 떠올랐다.

    “낭하국? 귀언, 정녕 네가 인형의 성을 진화하기 위해 한 나라의 생명을 모두 해친 것이더냐!”

    심협의 말에 소부자가 경악한 듯 외쳤다.

    “크하하! 천지가 인자하지 않으니 만물은 어차피 폐물이 되는 것이다! 우리 같은 언사들은 힘을 추구하니 대량의 신혼을 수집하는 건 당연지사! 한데 천기성은 헛된 명성 때문에 음수를 제외한 생명들을 죽이는 것을 금지하였으니, 그런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큰 업적을 이룰 수 있겠느냐?”

    귀언은 차갑게 웃으며 낭하국의 일이 자신의 소행임을 인정했다.

    “사람을 죽이고 신혼을 취하는 것은 천도를 거스르는 일이다. 천도의 순환에는 인과가 있는 법! 네놈은 하늘이 두렵지도 않더냐!”

    “천벌? 난 이미 진선의 뇌겁을 견뎌 신선의 몸이 되었다. 이제 평탄한 앞길만이 남았는데 어느 누가 내게 천벌을 내린단 말이냐! 오히려 네놈들이 내 일을 방해했으니 내가 천벌을 내려주마! 네놈들의 신혼도 뽑아서 인형의 성에 흡수시키겠다! 크하하핫!”

    귀언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정혈을 회신주 안에 주입했다. 그러자 회신주의 회백색 빛이 갑자기 몇 배나 밝아지면서 구슬 전체가 인형 비석 안으로 들어갔다.

    비석의 검은 빛이 갑자기 더 밝아지면서 상승 속도가 빨라져 소부자의 하얀 빛을 밀어냈고, 곧 완전히 사라질 듯했다.

    가슴이 철렁해진 심협은 더는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왼손으로 전력을 다해 뇌전의 힘을 발동했고, 오른손으로는 현황일기곤을 꺼내 발천난봉으로 귀언 주위의 보호막을 부수려고 했다.

    그때, 소부자가 혀를 내밀어 깨물더니 똑같이 정혈을 하얀 빛에 뿜어냈다. 하얀 빛 역시 갑자기 몇 배나 밝아졌고, 인형의 비석에서 간신히 버텨냈다.

    “귀언이 인형의 성 금제를 대부분 장악했으니 여기 있으면 우리도 위험하다! 어서 나가야 한다!”

    소부자는 심협의 몸을 덥석 잡았고, 다른 손으로는 차륜 결인을 하여 계속해서 하얀 빛으로 언문을 장악해갔다.

    커다란 하얀 빛줄기가 인형 비석에서 뿜어져 나와 소부자와 심협을 뒤덮었고, 두 사람 주위의 공간이 크게 일렁이면서 순식간에 전송 법진이 생겨났다.

    “흥! 도망가려고? 어림없다!”

    귀언은 흉흉한 눈빛으로 머리 위의 음양산을 빠르게 발동했다. 그러자 검은색 음뢰(陰雷)가 뿜어져 나와 소부자와 심협의 전송 법진을 공격했다.

    그 순간, 전송 법진의 하얀 빛 안에서 갑자기 은색 부적이 튀어나왔다. 곤토인뇌부가 은빛과 함께 바스러지자 거대한 은색 번개의 숲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꽈르릉!

    음양산에서 뿜어져 나온 음뢰는 은색 번개 숲과 충돌하면서 곧바로 흡수되어 완전히 사라졌고, 번개의 숲은 바로 귀언의 보호막 위로 떨어졌다.

    굉음과 함께 음양산의 보호막은 부서져 사라졌고, 수많은 은색 번개가 귀언을 덮쳤다.

    그 순간, 심협과 소부자의 전송 법진이 마침내 완성되었고, 하얀 빛과 함께 두 사람은 인형의 성에서 사라졌다.

    * * *

    눈앞이 흐려졌다가 다시 선명해진 심협은 자신과 소부자가 다시 영굴로 돌아와 있음을 알게 됐다.

    영굴 안의 천재지보를 수집하던 천기성 제자들은 소부자가 나타나자 황급히 다가왔다.

    “성주님, 인형의 성은 어떻게 됐습니까?”

    막망 장로가 서둘러 물어보자 소부자는 혀를 찼다.

    “인형의 성은 충분한 영동을 흡수해 벌써 조화급에 이르렀고, 귀언이 완전히 장악했다. 우리가 힘을 합쳐도 당해낼 수 없을 게다. 성인의 힘이 있어야만 인형의 성에 대항할 수 있지. 내 이미 만벽에게 귀원성인(歸元聖印)을 가지고 오라 했으니 지금은 영굴을 빠져나가 흑연미굴로 철수한다.”

    그 말을 듣고도 제자들은 어리둥절하여 멍하니 있다가 막망 장로가 호통을 친 후에야 급히 영굴 밖으로 날아갔다. 그러는 중에도 적잖은 이들이 아쉬움에 영굴을 돌아봤다. 저곳의 천재지보는 그들이 밖에서 수십 년을 공들여 찾아도 얻기 힘든 것들이었다.

    그러나 성주의 명은 지엄했고, 목숨이 소중했다.

    심협도 더는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부동래도 구출했고 수확도 충분하니 괜히 더 휩쓸리지 않고 함께 도망치기로 했다.

    한데 그가 떠나려는 순간, 자죽의 전음이 들려왔다.

    “소 도우, 제가 보물이 숨겨져 있는 곳을 알고 있어요.”

    “그게 어디야?”

    “영굴 동남쪽 구석이에요. 거기 검은색 바위가 있는데, 그 10여 장 아래 대나무 뿌리가 감싸고 있는 곳이 있어요. 거기 보물이 있을 거예요.”

    심협은 그녀의 말에 따라 동남쪽 구석으로 향했는데, 실제로 절벽 아래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검은색 바위가 혼연일체처럼 암벽과 달라붙어 있었다.

    검은 바위에 손을 대고 금빛을 폭발시키자 검기 같은 금빛이 빠르게 10여 장을 파고들었고, 그곳은 두꺼운 하얀색 바위로 뒤덮여 있었다.

    콰직!

    무언가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금빛이 하얀 바위까지 부수자 하얀색 대나무 뿌리가 뒤엉켜 있었고, 그 사이로 푸른 빛이 새어 나왔다. 심협이 발한 금빛이 스쳐 지나가자 하얀 대나무 뿌리가 스스로 물러나더니 커다란 푸른색 정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부령옥(附靈玉)?”

    심협의 눈이 번득였다.

    “역시 견문이 넓으시군요. 이 부령옥은 제가 몰래 가지고 있던 보물입니다. 제 본체를 찾아주신 대가로 드릴게요.”

    그 말에 심협은 크게 기뻐했다.

    부령옥은 대량의 법력을 저장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이 정도로 큰 부령옥이라면 법력을 잘 저장해두었다가 후에 경지를 돌파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지금은 위급한 상황이라 자세히 살펴볼 겨를이 없었기에 심협은 부령옥을 서둘러 소요경에 챙겨 넣고는 곧장 천기성 사람들의 뒤를 따라 영굴 통로로 날아갔다.

    몇 호흡 뒤, 영굴과 음굴의 갈림길이 나타났다.

    심협은 이곳에 와본 것이 처음이었는데, 오른쪽 통로에서는 영굴의 영력이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왼쪽의 통로에서는 음기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지금껏 그가 가봤던 어느 음살의 땅보다도 몇 배나 짙은 음기였다. 또한, 통로 안쪽에서 수많은 천둥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소부자는 멈춰서 음굴을 돌아봤다.

    “저기가 음굴인가?”

    심협도 눈살을 찌푸리고 중얼거렸다.

    “언무사가 음굴에 있다기에 복 장로와 매 장로를 보냈건만, 아직 빠져나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군.”

    언무사는 소부자의 예상대로 음굴 안으로 떨어졌다. 마심과 황사문 문주 등이 그와 언무사를 영굴과 음굴로 나누어 보냈는데, 음굴 안은 더 위험하고 험악하기에 심협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었다.

    “성주님, 어쩌죠? 그들을 구하러 갑니까?”

    “당연히 구해야지. 인형의 성이 진화를 마쳤지만 실제로 가동하려면 시간이 남았소. 천기성 제자들은 들어라! 나를 따라 음굴로 가서 동문을 구한다!”

    소부자는 외치며 돌진했다.

    “가자!”

    소부자의 명령에 호응하며 모두가 전의를 불태웠고, 일제히 음굴로 달려갔다.

    심협 혼자 갈림길에 서서 우왕좌왕했다. 본래 더는 끼어들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언무사가 음굴에 빠져서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자 망설여진 것이다.

    “그래, 언무사가 죽는 걸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어차피 천기성에 부탁할 것도 있고…….”

    심협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음굴 통로로 들어갔다.

    음살광풍을 마주한 그는 자신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매우 불쾌한 느낌이었다.

    잠시 날아가 허공의 장벽을 돌파하자니 눈앞에 거대한 동굴이 나타났다.

    음굴의 크기는 영굴과 비슷했지만, 내부 환경은 천양지차였다. 주위 허공에는 매우 짙은 음살의 기운이 가득했고, 천지영기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허공에는 음살의 기운이 솟아올라 생겨난 칠흑 같은 구름이 있었는데, 그곳은 더욱 어둡고 억압적이었다. 그 아래 땅에는 일정한 간격마다 귀천(鬼泉)이 있었는데, 보글보글하며 검은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심협은 어느 정도 적응한 후에야 앞쪽을 살폈다. 각양각색의 빛이 번쩍였고, 곳곳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는 조금 더 앞으로 다가가 그곳을 살폈다. 대지와 허공 심지어 머리 위의 검은 구름에서까지 각양각색의 빛이 번쩍였고, 사람들이 서로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복 장로와 매 장로, 황사문의 원명, 후토종의 임 장로 그리고 어수종의 젊은 부인은 두 명의 진선기 귀물이 지휘하는 수천 마리 음수에 포위된 상태였다.

    진선기 귀물 중 한 마리는 머리에 관을 쓰고 등에는 대나무로 만든 서책 상자를 메고 있어서 서생(書生) 같았으며, 한 손에는 촛대를, 다른 손에는 고서를 들고 있었다.

    심협은 이 귀물을 꿈속 세계에서 본 적이 있다. 바로 유명서생이었다.

    다른 진선기 귀물은 야나찰로, 심협이 이전에 봤던 야나찰과 달리 완벽한 인간의 형태를 갖추었다. 또한, 몸에는 보라색 갑옷을, 손에는 푸른 빛이 번쩍이는 장도를 든 채 음기를 뿜어냈다.

    복 장로와 원명 등은 본래 서로 목적이 달랐지만, 수많은 음수 앞에서는 연합하여 싸울 수밖에 없었다.

    다른 쪽에서는 목효와 마심, 신귀파 당주가 연합하여 수라 꼭두각시와 싸우는 중이었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음수가 협공하고 있어 마심 등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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