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77화 (777/1,214)
  • 777화. 천마반사무(天魔盤絲舞)

    귀언은 소부자를 뒤쫓지 않고 여덟 명의 지살시왕을 향해 결인했다.

    여덟 개의 보라색 구슬이 심협보다 한발 앞서 지살시왕들의 몸에 들어갔다. 지살시왕들의 몸에는 은은한 보라색 빛이 번득이더니 시기(尸氣)가 줄어들었다.

    이들은 갑자기 긴 소매를 휘날리며 천천히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여덟 마리의 학이 춤을 추는 듯 아름답고도 매혹적이며 요염했다.

    심협은 잠시 멈춰서 시왕들을 자세히 살폈는데, 잠깐 본 것만으로도 마치 술에 취한 것처럼 어지러웠다. 동시에 몸이 저절로 움직이며 시왕들의 춤을 따라 추려 했다.

    다행히 진선기로 돌파하면서 신혼의 힘이 다시 한번 정련된 그는 곧장 부주진신법을 시전했고, 그러자 머릿속이 다시 맑아졌다.

    “이렇게 무서운 매혹의 춤이라니…… 저건 무슨 신통이지?”

    심협은 일단 뒤로 물러났다.

    매혹에 관련된 신통은 그도 많이 봐왔다. 그의 유명귀안도 미혹의 능력을 갖추지 않았는가. 허나 지살시왕들이 시전한 신통은 격이 달랐다.

    방금 머리가 어지러웠던 것은 심신이 흐트러졌을 뿐만 아니라 심마(心魔)마저 움직였다는 의미였다. 즉, 저 춤은 사람의 심마와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지살시왕들을 살펴본 심협은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주 잠깐 사이에 주위에는 깊고 어두운 보라색 안개가 나타나 자무(紫霧) 공간을 이루었고, 천기성 제자들과 막망 장로까지 모두 뒤덮여 있었다.

    여덟 명의 지살시왕은 모습이 뚜렷이 보이지 않았지만 주위의 자색 안개 사이에서 각종의 아름다운 몸짓을 하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점점 더 강해지는 매혹의 힘에 천기성 제자들은 심지를 완전히 빼앗겼고, 멍한 표정으로 지살시왕들을 따라 춤을 추었다.

    여자의 몸인 막망 장로도 예외는 아니었는지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고 호흡이 거칠어지자 서둘러 가부좌를 했다. 그나마 그녀는 진선 중기의 경지였기에 간신히 심신을 다스릴 수 있었다.

    “이건…… 진법 공간인가?”

    심협은 천기성 제자들에게서 눈을 돌려 주위의 자무 공간을 바라봤다. 그는 이내 이곳이 매혹 신통으로 만들어진 공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부주진신법을 시전하여 심신을 안정시키는 한편 그곳에서 나가려 했다. 이 공간은 너무도 기이했기에 서둘러 나가는 게 상책이었다.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기만 하면 현재 그의 실력으로 이 공간을 부수는 건 일도 아니리라.

    허나 그가 자무에 다가가자 지살시왕 한 명이 나타났다. 이전에 신장화포를 빼앗긴 그녀였다. 지금 그녀의 손에는 뇌전 대궁이 아닌 보라색 빛덩이가 들려 있었다.

    머리 위를 향해 날아오는 보라색 빛덩이에도 심협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현황일기곤을 꺼내 휘둘렀다. 곤봉은 단숨에 보라색 빛덩이를 부수고 지살시왕까지 가격했다.

    지살시왕의 몸은 두 개로 갈라졌는데, 그 순간 보라색 안개가 되어 사라졌다.

    환상임을 눈치챈 심협은 다시 밖으로 날아가려 했다. 한데 그때, 강력한 매혹의 힘이 갑자기 몸으로 밀려들어왔고, 부주진신법을 운공하고 있음에도 심신이 흔들렸다. 서둘러 부주진신법을 몇 번을 운공한 후에야 가까스로 억누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사이 눈앞에는 보라색 빛덩이가 연달아 반짝이면서 세 명의 지살시왕이 나타났고, 세 개의 자옥(紫玉) 같은 손이 그의 머리와 가슴, 배를 향해 다가왔다.

    심협은 현황일기곤을 휘두르지 않았다. 좀 전의 경험으로 미루어 법보로 부수었다가는 매혹의 힘이 법보를 타고 자신의 몸으로 들어올 터였다.

    심협은 소매를 휘둘러 푸른 빛을 발사했다. 부채꼴 형태의 차가운 빛이 지살시왕의 몸에 닿자 엄청난 한기가 폭발했고, 지살시왕들은 순식간에 얼음 조각이 되어버렸다.

    그들을 지나 다시 밖으로 날아가려는 순간, 얼어붙은 지살시왕들의 몸이 갑자기 폭발하면서 세 개의 자무가 되어 흩어졌다. 진창해의 한기도 자무를 얼리지는 못했다.

    매혹의 힘이 몸으로 들어오자 심협은 머리가 어지러웠고 몇 번 비틀거리고 나서야 겨우 몸을 가누었다. 그는 서둘러 부주진신법으로 심신을 안정시켰고,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회복할 수 있었다.

    “법보를 사용하지 않아도 내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모양이군.”

    그는 무거워진 마음으로 현황일기곤을 꽉 움켜쥐었다.

    자무 공간은 너무나 현묘해 파훼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더 지체할 수도 없었다.

    “전력을 다해 이 공간을 부수는 수밖에…….”

    그가 그런 생각으로 막 공격을 퍼부으려는 순간, 법진 밖에서 이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영굴 안, 소부자는 천기성 사람들과 심협이 자무 법진에 뒤덮인 것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천마반사무(天魔盤絲舞)? 이놈, 어디서 저런 마족의 신통을 배운 것이냐?”

    소부자가 귀언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귀언은 차갑게 웃기만 할 뿐, 다른 말은 없이 양손을 빠르게 결인했다. 손끝에서 보라색 빛덩이가 반짝이자 멀리 떨어져 있는 자무 법진이 그의 뜻에 따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부자는 신식으로 법진 안을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상황이 좋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에 서둘러 막으려 했다.

    쿠르릉!

    그때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고, 옆에 있던 인형의 성은 마침내 충분한 암금 영동을 흡수했는지 암금색에 은은하게 노을 빛을 뿜어냈다. 그 모습은 마치 선성(仙城) 같았다.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맹렬한 기세의 물결처럼 끊임없이 몰려왔다.

    우르릉!

    영굴은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이 강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주위의 견고하기 그지없던 벽에는 커다란 균열이 생겨나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인형의 성에서 금빛이 용솟음치자 강한 진동의 힘은 점점 강렬해졌고, 동굴 벽의 균열도 갈수록 커졌다.

    “드디어 성공한 것인가! 크하하하!”

    귀언은 광기 어린 눈빛으로 웃더니 소부자를 내버려둔 채 검은 그림자로 변하여 인형의 성을 향해 날아갔다.

    이를 본 소부자는 입에서 두 개의 정기를 뿜어내 천기검과 검은 나무새 안으로 흘려보냈다. 천기검에서는 흑백 검광이 강렬하게 번득이더니 좌우로 나뉘어 흑백의 검기 구렁이로 변했다. 이 검기의 구렁이는 입을 크게 벌리며 귀언을 쫓아갔다.

    검은 나무새도 두 날개를 펴고는 귀언을 쫓아갔다. 날개에서 검은 빛을 발하며 강하게 펄럭이자 수많은 검은 광사(光絲)가 폭우처럼 쏟아져 날아갔다. 그 공세는 지금까지보다 몇 배는 강력했다.

    소부자는 전력으로 두 법보를 발동한 뒤, 멈추지 않고 손을 품에 넣었다. 다른 법보를 꺼내려는 듯했다.

    “흥!”

    그 순간, 육비천룡이 금빛으로 번쩍이더니 지금껏 발동한 적이 없던 옥병이 갑자기 환한 빛을 발하더니 뚜껑이 열렸다.

    콰쾅!

    격렬한 소리와 함께 뚜껑에서 갑자기 하늘마저 뒤흔들 흡입력이 뿜어져 나왔고, 그 흡입력은 너무도 강력해 허공에 물결 모양의 흔적이 생길 정도였다.

    흑백의 검기 구렁이와 하늘에 가득하던 광사는 전부 이 흡입력에 휩쓸려 방향을 잃고 금색 병 안으로 들어갔다. 천기검과 검은 나무새도 빙글빙글 돌면서 금빛 병으로 끌려갔다.

    “탄천병(呑天甁)인가!”

    소부자는 깜짝 놀라 외치며 법보를 꺼낼 새도 없이 천기검과 검은 나무새를 향해 결인했다.

    귀언은 그 틈에 입을 벌렸다. 그러자 하얀 빛이 입에서 나왔고, 육비천룡이 이를 움켜쥐었다. 그것은 선녀 그림이 그려져 있는 고풍스러운 깃털 부채였다.

    귀언이 부채를 부치자 굉음과 함께 영굴 공간 전체가 흔들렸다.

    엄청난 바람 소리와 함께 하얀 광풍이 부채에서 쏟아져 나와 순식간에 소용돌이 빛기둥으로 변했고, 단숨에 소부자와 두 개의 법보를 뒤덮었다.

    수많은 바람의 칼날이 은연중에 보이는 소용돌이는 영굴 안의 모래와 돌을 날려버렸고, 곳곳에서 굉음을 울리며 천지개벽의 기세를 뿜어냈다.

    바람기둥 안에 갇힌 소부자는 서둘러 빠져나가려 했지만, 연달아 두 번이나 튕겨 날아갔다. 바람기둥 아래의 땅에는 매우 견고해 보이는 하얀 광막이 나타나 둔지술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막았다.

    “하하하! 소부자, 네가 날 이용하여 인형의 성을 조화급까지 끌어올린 뒤 어부지리로 얻으려 했던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날 죽이지 않았겠지. 허나 이번에는 네가 틀렸다. 얌전히 거기서 지켜보고 있어라! 크하하하!”

    귀언은 크게 웃으며 인형의 성으로 들어가려 했다.

    한데 그때, 옆의 허공에서 파동이 일어나더니 금빛이 번개처럼 날아와 순식간에 그를 단단히 묶었다.

    “곤선승(捆仙繩)!”

    귀언은 몸을 휘감은 금색 밧줄을 보고는 깜짝 놀라 곧바로 육비천룡을 두 배로 크게 만들었다가 다시 순식간에 보통 사람 크기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를 묶고 있는 금색 밧줄에서는 만 가닥의 빛이 뿜어져 나와 커지든 작아지든 상관없이 그의 몸을 단단히 묶었고, 부서질 기미도 전혀 없었다.

    바람기둥 옆, 안에서 빠져나온 소부자가 귀언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고 옷도 찢어진 곳이 없었다.

    “바람기둥은 직녀선(織女扇)의 본명 신통이라 태을의 존재도 부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어떻게 나온 거지?”

    귀언은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소부자를 바라봤다.

    “네가 직녀선을 사용할 것을 예측하고 오장관의 진원자에게서 정풍주(定風珠)를 빌려왔다. 네 직녀선이 아무리 강해도 이 구슬 앞에서는 소용없지.”

    소부자는 노란 구슬을 꺼내 가볍게 흔들더니 눈앞에서 사라졌다.

    “정풍주! 설마 네가 그것까지 가지고 왔을 줄이야……. 이번에는 내가 당했구나. 허나 인형의 돌이 없으면 넌 인형의 성으로 들어갈 수 없다!”

    귀언은 비통한 표정으로 화를 내며 소리쳤다.

    소부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귀언에게 손을 대지도 않았다. 상대는 육비천룡 안에 있고, 이 언갑을 부수는 것은 당장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소부자는 인형의 성으로 내려가 손을 들었다.

    손에서 노란 빛이 뿜어져 나왔고, 안에 들어 있던 노란색 정석이 순식간에 성안으로 녹아 들어갔다. 그러자 인형의 성에서 갑자기 환한 노란 빛이 비쳤는데, 마치 문을 열려는 것 같았다.

    “인형의 돌! 네가 그걸 어디서……?”

    귀언이 경악해 외쳤다.

    소부자는 귀언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노란 빛으로 들어갔고, 물속에 빠진 것처럼 이내 사라졌다.

    귀언은 절망한 기색으로 뭔가를 읊조렸다. 그러자 육비천룡에서 눈부신 금빛이 반짝였고, 빠르게 요동치며 파멸의 기운을 뿜어냈다.

    하지만 그사이, 갑자기 들려온 굉음과 함께 먼 곳의 보라색 법진이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그 위로는 수많은 보라색 부문이 맴돌았다.

    꽈르릉!

    굉음과 함께 보라색 법진은 폭발했고, 실제 같은 금색 곤봉의 허상이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곤봉이 지나가는 곳마다 허공이 일그러지고 희미해져서 언제든지 무너질 것 같았다.

    휘이잉!

    하늘을 찌르는 소용돌이가 나타나 사방으로 휘몰아쳤고, 지나가는 곳마다 바닥이 깊게 파였다.

    여덟 명의 지살시왕이 폭풍에서 쏟아져 나왔는데, 전부 팔다리가 부러진 상태로 운석처럼 날아가 영굴의 바닥과 돌벽에 처박혔다.

    금빛으로 빛나는 누군가가 소용돌이에서 나타났다. 바로 심협이었다.

    그는 바깥의 상황, 특히 인형의 성에서 노란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는 안색이 급변해 금빛으로 변하여 그쪽으로 쏜살같이 날아가 노란빛 영역 안으로 들어갔다.

    “빌어먹을!”

    귀언은 다시 한번 포효했다. 그러더니 육비천룡에서 태양과 같은 금빛이 쏟아져 나왔다. 절정급의 언갑이 자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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