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75화 (775/1,214)
  • 775화. 고경(古鏡)을 얻다

    심협은 눈을 감고 경맥 깊은 곳을 주의하며 현양화마 신통을 운공했다. 그리고 이내 표정이 돌변했다.

    경맥 깊은 곳에서 다시 마기가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전에 비하면 1할도 되지 않을 정도였지만, 여전히 남아 있었다.

    “뇌겁의 힘으로도 마기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니!”

    심협은 마음이 무거워졌고, 진선기로 들어섰다는 기쁨마저 상당부분 사라졌다.

    치우의 마기는 매우 기이하니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훗날 분명 그의 원기를 집어삼키거나 빠르게 다시 커져서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그는 이마를 짚으며 속으로 분노를 삼켰다.

    하지만 그의 무거워진 기분은 오래 가지 않았다. 어쨌든 그는 계속해서 나아가야 했다. 게다가 마기가 대부분 사라졌으니 그가 발동하지 않으면 당분간은 폭주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그사이에 방법을 다시 찾아보면 되리라.

    심협은 길게 숨을 내쉬었고, 표정도 금방 평온해졌다.

    그때, 머리 위의 상공에서 강한 압박이 갑자기 사라졌다. 이에 심협은 크게 기뻐하며 바로 다시 날아가려 할 때, 자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 도우, 잠시만요! 도우의 술법 신통은 강력하고 연연나금의도 현묘하니 이번 기회에 만장영안(萬丈靈眼)으로 가보는 게 어때요? 어쩌면 선정(仙晶)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것은 가장 순수하고 정순한 영력으로 만들어진 선정이라 엄청난 영기가 담겨 있어요. 어떻게든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여기에 선정이 있다고?”

    “제 소견으로는, 만약 만장영안에서 선정을 찾을 수 없다면 삼계 어디에서도 이런 물건을 찾지 못할 거예요.”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한번 믿어보지.”

    심협은 다소 의아해하면서도 잠시 생각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장 연못을 빠져나가는 대신 만장영안 깊은 곳으로 향했다.

    영안 내부는 천지영기가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을 정도로 짙었고, 심지어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순수해졌다.

    심협은 방금 돌파하여 진선 경지에 이른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그는 전신의 모든 모공을 활짝 열어 거침없이 주위의 모든 천지영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그때, 자죽의 목소리가 다시 머릿속에 들려왔다.

    “심 도우, 이곳의 천지영기가 순수하긴 하지만 많이 흡수하면 나중에 후환이 생길 거예요.”

    “후환이라니?”

    “밖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만장영안에서 너무 많은 천지영기를 흡수하면 공간의 균열과 어떤 현묘한 연결이 생길 수도 있어요. 힘이 묶여서 빠져나가지 못하는 정도면 다행이고, 심각하면 공간 균열에 흡수되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게 돼요.”

    심협은 그 말을 사실로 믿지는 않았으나, 눈을 감고 한동안 살펴봤다. 그러자 정말로 미세한 흔적들이 발견됐기에 곧장 모공을 닫고 천지영기 흡수를 멈췄다.

    그러고 보니 이곳의 천지영기가 이토록 순수한데 그 어떤 생물도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자죽의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알려줘서 고맙구나.”

    심협의 말에 자죽은 대답하지 않았다.

    심협은 한참을 내려갔고, 마침내 검은색 육지를 발견했다. 그곳은 수백 장의 울퉁불퉁한 땅이었다.

    그는 눈을 들어 먼 곳을 살폈다. 비교적 먼 곳에서 허공이 약간 일그러진 것이 보였다.

    “저쪽은 허공이 일그러진 곳인데 어떻게 공간의 균열이 있는 거지?”

    “저도 이렇게 깊은 곳까지 들어와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하지만 심 도우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자죽의 대답에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영안 아래의 육지를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참을 찾아도 선정은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공간 균열에 가까워질수록 선정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더 커요. 그러니 괜찮다면 그쪽을 찾아보세요. 다만 그곳은 매우 위험하니까 너무 가까이 가시면 안 돼요.”

    “그래.”

    마침 심협도 그렇게 해볼 생각이었기에 짧게 답하고는 방향을 바꿔서 일그러짐이 발생한 곳으로 조심히 다가갔다.

    10장도 채 가기 전에 심협의 발에 무언가 딱딱한 게 걸려 툭 소리가 났다.

    고개를 숙여서 자세히 살폈지만, 울퉁불퉁한 검은색 땅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심협은 그저 땅의 튀어나온 부분을 밝은 것이라 생각하고는 신경 쓰지 않고 다시 걸음은 옮겼다. 한데 그때, 또다시 발에 무언가가 밟혔고, 가벼운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는 허리를 숙여 유심히 살피자 멀지 않은 곳에서 무언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빛이 무언가에 투과되어 굴절되고 있었던 것이다.

    심협은 눈을 치켜뜨고는 손을 휘둘러 그곳을 훑었다. 그러자 손끝에서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이윽고 손을 크게 움켜쥐자 호두알만 한 투명한 정석이 잡혔다.

    정석을 눈앞에 두고 자세히 살펴보니 그 안에는 아무런 이물질도 없이 매우 투명했다. 어찌나 투명한지 눈으로 보고도 지나칠 정도였다.

    정석을 쥐고 그 안의 천지영기를 흡수해보니 무색투명한 상태에서 미약한 푸른 빛이 번득였고, 매우 짙고 순수한 영기가 흘러나와 그대로 손바닥으로 스며들었다.

    이 영력에 이끌려 주위의 천지영기가 다시 그의 손에 모여들었다.

    심협은 매우 기뻤지만, 자죽의 경고가 생각나 곧바로 흡수를 멈췄다. 그러자 선정의 빛은 조금씩 사라져 이내 다시 투명한 상태로 돌아갔다.

    심협은 그것을 거두고는 다시 선정을 찾기 시작했다. 이제 주로 바닥을 살폈고, 미세한 차이가 느껴지는 곳을 위주로 찾은 결과, 얼마 지나지 않아 선정을 하나 더 발견했다.

    하지만 이후로는 한참을 찾아도 선정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가 포기할까 생각하던 그때, 앞쪽 바닥의 균열에서 갑자기 반짝이는 붉은 빛이 눈에 들어왔다.

    “뭔가 있다!”

    심협은 서둘러 그곳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몇 걸음 가기도 전에 누군가 잡아당긴 것처럼 오른발이 갑자기 미끄러졌고, 그대로 다리가 쫙 벌어져 일순 똑바로 설 수도 없었다.

    그가 몸을 가누고 다리를 다시 오므리려고 하는데, 오른발을 당기는 힘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조금 더 강해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오른발을 살펴도 별다른 것은 없었다.

    그제야 심협은 방금 선정을 찾는 데 너무 몰두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허공이 일그러진 구역에 들어섰음을 알게 됐다.

    심협이 살펴보니 이 구역 언저리에 한쪽 다리가 깊게 박혀 있을 뿐, 당기는 힘은 그렇게 강력한 편이 아니었다.

    그는 바로 황정경 공법을 운공해 다리를 뽑고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균열 속의 붉은 빛에는 붉은색 고경(古鏡)이 있었다.

    비록 균열 공간은 한정적이었지만, 고경의 꽃무늬가 매우 복잡하다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보통 물건이 아닌 게 분명했다.

    “심 도우, 방금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는데, 뭘 찾은 건가요?”

    자죽이 궁금한 듯 물었다.

    “붉은 고경이 있구나.”

    자죽은 생각에 잠긴 듯 한참이나 조용히 있더니 불쑥 다시 물었다.

    “혹시 물결이나 구름 같은 문로가 새겨져 있나요?”

    “그래, 새겨져 있어.”

    심협이 확인해보고는 짧게 답했다.

    “틀림없어! 그건 소요경(逍遙鏡)이 확실해요!”

    자죽은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소요경?”

    “몇 년 전에 영굴에 난입한 인간족 수사가 가지고 있던 보물이에요. 진선 후기의 경지여서 영굴의 요물들은 당해낼 수 없었죠. 그자는 후에 저 영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후로 소리도 없이 사라졌어요. 그가 여기서 수련하면서 천지영기를 너무 많이 흡수해 결국 영안에 휩쓸려 공간 균열로 빨려들어 간 거라고 생각했죠. 그때 법보도 함께 사라졌는데 설마 여기 떨어져 있을 줄은 몰랐네요.”

    “진선 후기의 수사가 그렇게 죽었다고?”

    그 말은 좀 뜻밖이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영안 깊은 곳에서 너무 많은 천지영기를 흡수하면 진선 후기가 아니라 태을 수사라도 온전히 살아남을 수 없답니다.”

    “그렇군. 허나 아쉽게도 소요경은 공간이 일그러진 곳에 있어서 꺼낼 수가 없구나.”

    “심 도우, 만약 다른 거였다면 제가 위험을 무릅쓰게 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소요경은 예사로운 물건이 아닙니다. 너무 깊게 들어가지만 않는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꺼내볼 만한 가치가 있어요.”

    자죽이 머뭇거리다가 권했다.

    “저게 그리 대단한 보물인가?”

    “흔한 공간 법보가 아니에요. 물건만 넣을 수 있는 저물법기와는 달리 소요경 공간에는 살아 있는 생명도 넣을 수 있다고요.”

    “그건 작은 비경도 마찬가지 아닌가?”

    “보통 비경은 입구가 고정되어 있어서 움직이기 어렵죠. 하지만 소요경은 그것들하고는 다르게 어디로 가져가든 그곳이 입구가 돼요. 당연히 더 발견하기 어렵죠. 단지, 진짜 복지동천(福地洞天)과는 달리 그 안의 천지영기가 제한이 있어서 넣을 수 있는 생물의 수가 한정되어 있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자 심협도 마음이 흔들려 반드시 저것을 손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음, 그런데 어째서 나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돕는 거지?”

    “오해하지 마세요. 심 도우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돕는 거니까요.”

    “어디 한번 말해봐라.”

    “제가 부탁하고 싶은 건 두 가지예요. 먼저, 귀언에게서 제 본체를 빼앗아주는 거예요. 다음으로, 저를 영굴에서 데리고 나가 주세요.”

    “본체를 찾아주는 것이야 최선을 다하겠다만, 귀언은 워낙 강자라 확신을 할 수 없어.”

    “물론이에요. 그 정도만 해줘도 감사하죠.”

    “그리고 본체를 찾으면 바로 떠나도 좋아. 나도 말릴 생각은 없어.”

    “심 도우가 오해했네요. 제게 자유를 달라는 게 아니라 저를 데리고 영굴을 떠나 흑연미굴을 벗어나게 해달라는 거였어요.”

    “혼자서는 여기를 떠날 수 없는 거야?”

    “네. 저희는 영굴에서 태어나 마음껏 영굴 안의 순수한 천지영기를 누릴 수 있지만, 이곳의 영기와 영굴에 묶여 있어요. 그래서 외부의 도움 없이 혼자의 힘으로는 절대 여기를 벗어날 수 없지요. 그 수많은 세월 동안 오직 꽃 요물만이 음굴 안의 기이한 마기와 융합하여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죠.”

    자죽의 설명에 심협은 검은 옷의 사내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도 최선을 다해보마. 단, 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 운이 따라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감사합니다.”

    자죽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심협은 다시 소요경에 집중했다.

    소요경이 있는 균열과 그가 서 있는 곳은 겨우 서너 발자국 떨어져 있었지만, 만일에 대비해 심협은 황정경 공법을 운공한 후에야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을 내딛자마자 어떤 힘이 그를 끌어당겨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심협은 크게 휘청거렸으나, 한 발로 다시 몸을 가누었다.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두 번째 걸음을 옮겼다.

    잡아당기는 힘은 갑자기 두 배로 강해져 다시 그의 몸을 흔들었다.

    심협은 들어 올린 발을 허공에 멈추었다가 천천히 내려놓았다. 끌어당기는 힘은 여전히 강력했지만, 그래도 한결 나았다.

    심협은 조금 안심이 되었다.

    이런 기세면 두 걸음 안에 무사히 소요경을 가져올 자신이 있었다.

    한데 어찌 예상했겠는가. 세 번째 걸음을 내디뎠을 때, 끌어당기는 힘이 갑자기 강력해져 그의 몸은 그대로 소요경이 있는 균열을 넘어 일그러진 공간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깜짝 놀란 심협은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주먹을 내질렀다.

    용과 코끼리의 포효가 울려 퍼졌고 몇 마리의 금룡 허상이 뿜어져 나가 앞에 있는 허공에 꽂혔다.

    콰쾅!

    폭발과 함께 강력한 충격이 앞에서 휘몰아치자 심협은 그제야 멈출 수 있었다.

    금빛 비늘로 뒤덮인 두 다리에 용의 발톱 같은 양쪽 발로 땅을 뒤척이며 걷기 시작했다. 강력한 용상의 힘이 남아 있은 동안 간신히 걸음을 옮겼다.

    일그러진 공간에서 빠져나온 그는 땅에 앉아서 정양했다. 손에는 어느새 소요경이 들려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그는 바로 법력을 소요경 안에 주입해보았다. 하지만 보경은 마치 죽은 것처럼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심협은 잠깐 주저하다가 바로 선천연보결을 운공하여 소요경을 연화하기 시작했다.

    소요경이 그의 법력에 뒤덮이자 거울의 물보라와 구름무늬가 일제히 빛났고 거울 면에서는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곧이어 층층의 금제가 연달아 떠올라 마치 꽃잎처럼 고경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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