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3화. 천겁 강림
놈들은 입안에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해 언갑의 방어 따위는 무시한 채 잇달아 콰직 소리를 내며 배를 물어뜯었다. 만약 저 많은 수의 괴어가 전부 달려들어 물어뜯는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배는 완전히 갈기갈기 찢길 터였다.
그래도 부드러운 눈썹의 남자는 교어 흉수를 상대하는 동시에 약가루를 뿌려 이 괴어들을 쫓아내는 데 주력했다.
처음에는 약가루에 강렬한 반응을 일으키며 조금만 닿아도 피했던 괴어들도 차차 약성에 적응했는지 이제는 약가루가 묻어도 달려들어 물어뜯었다.
청년은 점점 버티기 벅차 보였다.
콰지직!
교어가 달려들어 크게 물어뜯자 맹호 언갑은 독액에 부식되어 끊임없이 하얀 연기를 뿜어냈고, 마침내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폭발했다.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교어는 이제 언갑 배 위의 청년을 노리고 헤엄쳐왔다.
청년이 술법으로 대응하려는 순간, 언갑 배가 크게 흔들렸다. 수천 마리의 괴어들이 일제히 배 한 쪽을 강하게 들이받은 것이었다.
배 반대편은 이미 만신창이였는데, 또 한 번의 충격에 선체가 기울어지면서 대량의 약수가 선체 안으로 들어와 배는 균형을 잃고 가라앉기 시작했다.
흉수 교어는 이미 코앞까지 다가와 한입에 그를 삼키려 했다.
“여기서 끝이구나…….”
부드러운 눈썹의 청년은 절망감에 한탄했다.
이때, 어디선가 고함이 들려왔다.
“매 장로, 몸을 숙이시오!”
부드러운 눈썹의 청년, 매 장로는 황급히 몸을 숙여 배 갑판에 달라붙었다.
그 순간, 그는 빙한(氷寒)의 기운이 등을 지나가는 게 느껴졌고 뒤이어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크아아!”
입을 벌려 매 장로를 삼키려던 순간, 세 개의 하얀색 화살이 쏜살같이 날아와 교어의 머리와 목, 가슴에 명중했다.
화살의 관통력은 상당했지만, 교어의 몸을 완전히 관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녀석은 수면을 따라 백여 장 정도 미끄러진 뒤 물속에 떨어졌다.
한데 물에 빠지면서 녀석의 몸에 꽂힌 하얀 화살이 물에 닿자 바로 교어는 얼어붙기 시작했다.
교어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대량의 초록색 피는 괴어들에게 더없이 유혹적이었는지, 방금까지 교어 흉수를 따르던 녀석들은 하나같이 그 피를 먹고자 탐욕스럽게 몰려갔다.
하지만 그것들이 근처에 다가간 순간, 교어를 둘러싸고 있던 얼음이 그대로 폭발했다.
다시 자유를 얻은 교어는 자신의 피를 탐하는 괴어들을 보자마자 망설임 없이 커다란 꼬리를 휘둘러 물속으로 들어가더니 곧장 하류로 도망쳤다.
매 장로는 구사일생의 기쁨에 곧 가라앉을 배 위에서 소부자 등을 향해 팔을 크게 흔들었다. 그의 허리도 함께 요염하게 흔들렸는데, 보선에서 이를 본 사람들이 헛구역질을 해댔다. 막망 장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만 흔들어!”
그렇게 핀잔을 주면서도 그녀는 밧줄을 던져 매 장로를 보선으로 잡아당겼다.
“성주님, 여기서 죽어 다시는 못 뵙는 줄 알았습니다.”
매 장로가 눈물을 글썽이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자 옆에 있던 복 장로가 발을 동동거리며 안타까워했다.
“성주님, 이런 놈은 왜 구하신 겁니까? 파군신노(破軍神弩)뿐만 아니라 운상전(雲霜箭)도 세 개나 소모했습니다.”
매 장로는 그제야 보선 위에 있는 8장 길이의 궁노가 눈에 들어왔다. 이것은 신장화포보다 더 강력한 고급 언갑이었다.
“성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매 장로는 그제야 정색하고는 절을 올렸다.
“어서 일어나시오. 한데 어찌 된 일이오? 왜 혼자서 이러고 있는 것이오?”
“휴, 막망 장로와 헤어진 뒤 음수 떼의 습격을 받았고, 혼전 중에 다른 사람들과 헤어지게 됐습니다. 본래 개조한 언주 배로 약수 맞은편으로 건너가 그들을 찾으려 했는데 도중에 저놈들을 만났지 뭡니까?”
“언무사는?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는 것이오?”
소부자의 연이은 물음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매 장로에게 쏠렸다.
언무사는 다음 세대 제자 중 자질이 가장 뛰어나고 심성도 곧아 그가 차기 천기성 성주가 될 것은 기정사실이라 할 만했다. 그러니 그의 생사에 모두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헤어질 때 언무사와 심협의 몸에 회접분(灰蝶粉)을 뿌려놨으니 아무리 멀어도 그들이 남긴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현재 약수를 무사히 건넜고, 큰 탈이 없어 보입니다.”
매 장로의 말에 소부자는 표정이 한층 누그러졌다고, 잠시 생각한 끝에 명을 내렸다.
“약수는 위험하니 서둘러 강을 건너 그들을 찾는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모두가 전력을 다해 보선을 발동했고, 서둘러 약수를 건넜다.
맞은편에 도착하자 매 장로는 회접분의 냄새를 따라 그들을 안내했고, 한참 지나서야 무사히 거대한 동굴 앞에 도착했다.
“회접분 냄새가 여기서 사라졌습니다. 아무래도 여기로 들어간 모양입니다.”
동굴 입구에서 끊임없이 불어오는 음기와 천지영기가 섞인 광풍을 마주하며 말했다.
“신식으로도 살펴볼 수 없습니다.”
막망 장로가 눈을 감고 시도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복 장로는 심지어 손바닥만 한 참새 모양 언갑을 동굴 안으로 날려 보냈다.
참새 언갑은 광풍을 뚫고 들어갔지만, 다음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복 장로가 아무리 소환해도 반응조차 없었다.
“어차피 들어갈 테니 살펴볼 것 없소. 어서 들어갑시다.”
“네!”
앞으로 나선 소부자는 은백색 피풍을 두르고 있었다.
피풍에는 만천성진도문(滿天星辰圖紋)이 수놓아져 있었고, 이름 모를 정석들이 박혀 있었다. 그가 동굴 광풍 앞에 다가서자 피풍이 갑자기 화려하고 찬란한 별빛을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온 하늘의 별이 인간 세상을 비추는 듯했고, 모든 별의 궤적은 하나의 정선(晶線)으로 연결되면서 성진대진(星辰大陣)을 이루어 소부자의 반경 10여 장 허공을 뒤덮었다.
천기성 장로와 제자들은 대진 영역 안으로 들어섰고, 소부자와 함께 동굴 안으로 걸어갔다.
동굴에서 불어오는 광풍은 별빛에 닿자마자 가볍게 갈라졌고, 바람에 담겨 있던 천지영기가 오히려 성진대진 안으로 흘러들어오자 대진 안의 별들이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모두가 안으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앞에 우뚝 솟은 커다란 산맥이 나타났다. 좌우로는 입구가 있었다. 왼쪽 입구에서는 음살의 기운이 충만했고, 오른쪽은 짙은 영광이 빛났다.
“매 장로, 언무사와 심협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겠소?”
“안에 들어오니 냄새가 희미하게 느껴지네요. 언무사는 왼쪽으로 갔습니다.”
매 장로의 말에 소부자는 한참을 침묵하더니 말했다.
“오른쪽 동굴의 영기에서 언갑의 기운이 느껴지고 있소.”
“설마…… 인형의 성?”
다른 장로들은 바로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성주님, 그렇다면 성주님은 오른쪽 굴로 가십시오. 언무사는 제가 데리고 오겠습니다.”
조금 통통한 몸집의 복 장로가 나서며 말했다.
“그럼 매 장로와 함께 가시오.”
“알겠습니다. 언 사질은 저와 매 장로에게 맡겨주십시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무사히 데리고 오겠습니다. 귀언과 인형의 성은 모두 만만치 않으니 부디 조심하십시오.”
“알겠소. 그럼 부탁하오.”
이윽고 일행은 둘로 나뉘었다. 복 장로와 매 장로는 제자 절반을 데리고 왼쪽 음굴로, 소부자는 막망 장로와 나머지 제자들을 데리고 오른쪽 영굴로 향했다.
그들이 들어가고 난 뒤, 광풍 속에서 몇 사람이 천천히 들어왔다. 바로 황사문주 원명 일행이었다. 갈림길에 도착한 그들은 망설임 없이 왼쪽 음굴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도 사라진 뒤, 또다른 누군가가 나타났다. 마치 매미를 노리는 사마귀 뒤의 참새와도 같이 나타난 그 사람은 커다란 초록색 도포를 입은 채 허공에 떠 있는 목효였다.
“후.”
그는 가볍게 웃고는 곧바로 음굴로 향했다.
* * *
영굴 연못 깊은 곳. 심협의 몸에서 갑자기 금빛이 화산처럼 폭발하면서 주위의 연못물을 전부 밀어냈다. 그 안쪽 심협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연이은 충격에 상단전은 마침내 활짝 열렸고, 마치 광룡(狂龍)이 바다로 들어가 헤엄치며 날뛰듯이 법력이 쏟아지며 들어가기 시작했다.
찰나의 순간, 심협은 마치 천인지문(天人之門)을 밀고 들어가듯이 갑자기 새로운 경지에 들어섰다.
주위의 천지영기가 밀려들어와 순수하기 그지없는 법력으로 변하여 빠르게 그의 단전과 법맥을 채웠다.
단전과 법맥은 빠르게 넓어져 눈 깜짝할 사이 배로 늘어났고, 법력도 배나 늘어나 대량의 액체 같은 법력이 요동쳤다. 주위를 둘러싼 천지영기는 혼란스럽게 흔들렸다.
그의 육신도 빠르게 천지영기를 흡수하면서 천지개벽의 변화를 일으켰다. 손발의 근육이 일정 박자에 맞춰 꿈틀거렸고, 주위의 공기가 떨려왔다.
골격과 근육, 피부 안에서부터 그윽한 금무늬가 떠오르면서 점점 무겁고 강력한 압박감이 흘러나왔다. 흔들리지도, 무너지지도 않을 금신(金神) 같은 모습이었다.
법력과 육신뿐만 아니라 신혼도 법력이 늘어날수록 함께 커져서 몇 호흡 사이에 두 배나 커졌다.
심협이 서둘러 부주진신법으로 신혼을 안정시키자 다시 이변이 이어졌다.
서로를 짓누르며 커져가던 신혼의 힘이 갑자기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혼의 힘은 실체화되어 번쩍거렸는데, 마치 천기성의 혼사와 흡사했다.
팽창하여 부서질 것만 같았던 머릿속이 텅 비어버렸지만, 힘은 흘러넘쳤다.
심협이 기뻐하며 계속해서 몸의 변화들을 감지하는데, 그때 갑자기 세 번의 북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와 혼백을 뒤흔들었다.
“천겁이 오는구나!”
그는 당황하지 않고 위를 올려다봤다.
이번 천겁은 꿈속 세계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차분했고, 진선기로 돌파하기 전에 강림한 덕에 그로서는 여러 여지가 있었다.
마지막 천고(*天鼓:천둥번개)가 멈추면서 금색 노을빛이 머리 위에 떠올랐고, 곧이어 네 개의 금색 노을빛은 네 명의 금색 천장으로 변했다. 한데 천장들 모두가 금색 도끼를 들고 있었다. 꿈속 세계에서 본 적이 있는 집법천병(執法天兵)이었다.
“이놈! 누가 감히 뇌겁을 막는 것인가!”
네 명의 천병은 주위에서 감금의 힘이 느껴지자 분노로 일갈하며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도끼에서 뿜어져 나온 네 개의 거울 같은 금빛 뇌광이 상공의 연못을 찢어 없애 버렸다!
심협은 이 광경을 보고는 크게 기뻐했다.
‘역시 집법천병들은 패도가 넘쳐서 천뢰를 집행할 때 인간 세계의 수사가 방해하는 것을 못 견디는구나!’
다음 순간, 하늘이 흔들릴 정도의 굉음이 위에서 들려왔고, 연못 전체가 강하게 흔들렸다. 이에 따라 심협의 몸도 맹렬하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연못 위에 있던 황동성의 아랫부분에서부터 네 개의 금색 뇌광이 뚫고 올라가자 황동성은 굉음을 내며 추풍낙엽처럼 무너져 그대로 근처 동굴 벽에 처박혀 버렸다.
네 개의 금색 뇌광은 바로 다시 폭발하여 채찍처럼 연못 주위의 법진을 가볍게 부쉈고, 바닥에는 거대한 흔적이 남았다.
한편, 영굴 안의 시왕들과 두 개의 언갑은 이 광경에 크게 놀랐다. 귀언도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 뇌전의 기운은…… 뇌겁의 힘! 설마 그놈이 연못 안에서 진선기로 돌파한 건가?”
그는 가슴이 철렁했다. 대승 절정에도 그 정도로 강력했던 자가 진선기로 돌파한다면? 귀언 본인도 그를 제압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게 될 터였다. 더욱이 자신은 인형의 성을 정진해야 했기에 움직일 수 없었다.
귀언이 여덟 시왕과 언갑에게 내려가서 심협의 돌파를 저지하라고 명을 내리려던 순간, 또 한 번의 굉음이 들려왔다. 이번 굉음이 들려온 곳은 영굴 밖이었다. 누군가 귀언이 봉인해놓은 영굴 입구를 공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