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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71화 (771/1,214)
  • 771화. 탈출로

    심협은 낮게 신음하고는 기혈번을 향해 결인했다. 그러자 검은색 보호막이 순식간에 열 배로 줄어들면서 그의 몸 주위를 둘러쌌고, 동시에 수십 개의 검은색 음화를 뿜어내 불의 장벽으로 불바다의 접근을 막았다.

    심협은 그 틈에 사월보와 이형환영 신통으로 그 자리에서 사라져 동굴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미처 안도하기도 전에 위쪽 허공에서 푸른 빛이 번득이면서 서천호가 귀신처럼 나타났다. 등에는 눈이 부시도록 푸른 빛을 발하는 날개가 있었다.

    이 거대한 호랑이가 입을 쩍 벌리자 다시 한번 불꽃이 뿜어져 나와 이번에는 그를 완전히 뒤덮어 버렸다.

    거의 동시에 불바다에서 금빛이 반짝였고, 거력신원이 쏜살같이 나타나 들고 있던 검은색 철봉을 휘두르며 불바다 안의 심협을 향해 돌진해 왔다.

    퍼펑!

    이어 엄청난 굉음이 허공에서 폭발했다.

    파동과 함께 커다란 검은색 철봉의 허상이 나타나 불바다에서 허우적대는 심협을 향해 떨어졌다.

    아직 닿기도 전인데 철봉의 허상이 뿜어내는 괴력이 광풍처럼 휘몰아쳤다.

    심협은 마치 만 장 크기의 커다란 산이 몸을 압박해오는 것 같은 느낌에 팔 하나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다.

    ‘이 정도로 강할 줄이야! 저 둘은 요수도, 언갑도 아닌 언갑의 괴물이 돼버렸구나!’

    그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제 더는 손에 사정을 둘 여유가 없었다.

    심협은 황정경을 운공하는 동시에 현황일기곤을 꺼냈다.

    굉음과 함께 몇 개의 금색 곤봉 허상이 불바다에서 쏟아져 나와 검은 철봉의 허상과 충돌했다.

    콰쾅!

    천지가 흔들릴 정도의 굉음이 울려 퍼졌다.

    검은 철봉의 허상은 굉음과 함께 사라졌고, 거력신원도 충격에 손이 마비되어 검은 철봉을 놓쳐버렸다. 곤봉의 허상은 기세를 몰아 거력신원에게 직접적인 충격을 가했고, 거력신원은 검은 피를 뿜어내며 충격에 날아가 버렸다.

    곤봉의 허상으로 인해 통로가 생겨나자 심협은 재빨리 빠져나갔다.

    이를 본 서천호는 푸른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푸른 환영으로 변하여 심협을 뒤쫓았고, 그 몸에 새겨진 푸른색 영문이 번득였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서천호 몸에서 뿜어져 나온 화살 같은 푸른 빛줄기가 심협을 뒤덮었다.

    그때, 심협 역시 입을 벌려 푸른 빛을 뱉어냈다. 두 푸른 빛이 충돌하면서 극한의 기운이 폭발했는데, 이로 인해 서천호는 꽁꽁 얼어버렸다.

    이곳은 천지영기가 매우 짙고 물의 영력도 기이할 정도로 풍부하여 진창해 신통의 위력이 배나 강해진 결과였다.

    멀리서 지켜보던 대머리 남자는 표정이 어두워져 다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인형의 성이 노랗게 번득이더니 여덟 개의 노란색 시체가 쏟아져 나왔다. 이전에 맞붙었던 지살시왕들이었다.

    시왕들은 곧장 심협에게로 달려들었다. 그들이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손톱에서 뿜어져 나온 가느다란 실이 커다란 그물이 되어 심협을 덮쳐왔다. 노란색 그물은 눈 깜짝할 사이에 심협을 쫓아왔다.

    심협이 양팔의 풍뢰영문을 발동하자 천둥소리와 함께 수십 개의 금색 뇌전이 그물을 공격했다.

    하지만 금색 뇌전이 닿는 순간, 그물에서는 노란색 불꽃이 타올랐고, 뇌전은 순식간에 그물에 모두 흡수되었다.

    “지살시화!”

    노란 그물의 불꽃은 지살시화였는데, 이런 방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심협은 내심 감탄했다.

    그물이 빠르게 내려오자 심협의 머리 위에서 붉은 검망이 번쩍이더니 순양검이 쏜살같이 튀어나와 빙글빙글 돌면서 대량의 홍련업화를 뿜어냈고, 이어 홍련업화는 노란색 그물을 막아냈다.

    심협이 안도하며 이 곤경에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할지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거문고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선금을 들고 있는 지살시왕이었다.

    심협 주위의 천지영기가 바로 요동쳤고, 불꽃과 바람의 칼날이 폭풍우처럼 쏟아져 날아왔다.

    어느새 또 다른 지살시왕이 다가와 괴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백 장 길이의 거대한 한빙 검기가 심협을 향해 떨어졌다.

    심협에게 신장화포를 빼앗긴 지살시왕은 현재 은색 언갑 궁노를 들고 있었는데, 거대한 번개 화살이 세상에 강림하는 신뇌(神雷)처럼 하늘을 갈랐다.

    다른 지살시왕도 각자 가능한 한 강력한 공격을 사방에서 뿜어냈다.

    “캬오오!”

    성난 포효가 들려오면서 두 개의 거대한 존재가 달려왔다. 거력신원과 진창해 신통에서 벗어난 서천호였다. 산처럼 거대한 검은 철봉의 허상과 화산의 용암 같은 불바다가 다시 그를 향해 뿜어져 나왔다.

    심협은 안색이 변해 기혈번에서 검은 빛을 번쩍였고, 동시에 천두금준, 귀령순도 소환해 영광을 폭발시키며 주위에서 쏟아지는 공격들을 막아냈다.

    콰쾅! 쾅! 퍼펑!

    굉음과 폭발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고, 각종 영광이 서로 충돌했다. 영광마다 섬뜩할 정도의 기운을 뿜어냈고, 광망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허무로 변했으며, 땅에는 수십 장 크기의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각양각색의 빛이 교차하고 폭발이 일어나자 하늘에 닿을 정도의 커다란 소용돌이가 일어나 사방을 휩쓸기 시작했다. 그러자 땅의 구멍은 순식간에 열 배나 커졌고, 주위의 동굴 벽에도 찢긴 자국과 균열이 생겨났다.

    여덟 지살시왕과 서천호, 거력신원은 뒤로 물러나 소용돌이를 피하려 했다.

    한데 그때, 금빛 뇌광을 둘러싼 무언가가 소용돌이를 뚫고 나왔다. 바로 심협이었다.

    심협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산발이었고, 드러난 팔다리에는 도끼로 벤 듯한 상처가 가득하여 뼈가 보이는 곳도 있었다. 그가 걸치고 있던 연연나금의는 비록 부서지지는 않았지만 영광이 어두워져 손상이 심해 보였다.

    기혈번과 천두금준, 귀령순도 상태가 심각했다. 특히 귀령순은 거력신원의 일격에 금이 간 상태였다.

    여러 보호 수단을 발휘했음에도 심협은 중상을 입었다. 그럼에도 당장은 몸을 돌볼 겨를이 없었고, 우선 동굴 깊은 곳으로 피하여 거리를 벌릴 생각이었다.

    순간 성난 포효가 옆에서 들려왔다. 서천호가 푸른색 언갑 날개를 펼친 채 쏜살같이 날아오고 있었는데, 심협의 둔광보다 더 빨라서 금세 다시 앞을 가로막았다.

    이때, 지렁이처럼 가느다란 노란색 문로로 가득한 두 개의 노란색 정광이 인형의 성에서 빠르게 쏟아져 나와 옆의 동굴 벽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자 벽은 마치 살아난 것처럼 꿈틀거리더니 곧이어 돌로 만들어진 두 개의 커다란 팔이 불쑥 튀어나와 심협을 잡으려고 번개같이 달려들었다.

    심협은 가슴이 철렁했고, 현재 그는 중상을 입었기에 다시 앞이 막히고 포위당한다면 벗어날 길이 없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양팔에서 풍뢰영광을 뿜어내 진시천리 신통을 시전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그는 금청색 환영으로 변했고, 한 번의 날갯짓으로 서천호와 두 개의 거대한 팔에서 빠져나와 영굴 깊은 곳으로 날아갔다.

    “자죽, 넌 영굴에서 오래 살았으니 나가는 길을 알고 있지? 여기서 내가 죽으면 너도 끝이다!”

    심협은 빠르게 날아가면서 건곤대 안의 자죽에게 말했다.

    영굴 주위는 거대한 공간의 힘으로 둘러싸여 있었기에 완벽하게 밀폐된 상태라 을목신둔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었다.

    “영굴에는 원래 음굴로 이어지는 통로가 있는데 지금은 저 거대 언갑을 사용하는 자가 봉인해놨어요. 거기 외에는 저도 다른 출구를 몰라요.”

    자죽이 황급히 답했다.

    심협은 진작에 신식으로 영굴을 살펴봤기에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자죽에게 직접 들으니 더욱 암담했다.

    “아! 도망은 못 쳐도 영굴 깊은 곳에 숨을 만한 곳은 있어요!”

    자죽이 갑자기 생각난 듯 다시 말했다.

    “그게 어디야? 저 앞에 있는 연못인가?”

    영굴 앞은 별로 깊지 않아서 2리 정도 되어 보였는데, 접근할수록 천지영기가 더욱 짙어졌다. 영굴 가장 깊은 곳에는 10여 장 크기의 연못이 있었는데, 가득한 물은 우유 빛깔이었고, 지금도 많은 하얀색 물거품이 생겨나고 있었다. 물거품들은 실체를 갖춘 천지영기였다.

    “맞아요. 저 연못은 영천이에요. 깊이는 5백 장 정도 되는데, 그 깊은 곳에 커다란 공간의 균열이 있어요. 주위로는 수많은 작은 공간의 균열들이 있어서 매우 위험하고요. 자칫 잘못 건드리면 바로 빨려 들어가서 죽어요. 하지만 위험한 순간에 몸을 숨기기에는 안성맞춤이에요.”

    자죽의 말에 심협은 내심 불안했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따르기로 했다.

    그는 번개처럼 연못 상공으로 날아갔고, 망설임 없이 아래로 뛰어들었다.

    심협이 안으로 들어가자 서천호와 거력신원, 여덟 개의 지살시왕도 빠르게 날아와 연못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연못에는 공간의 힘이 요동쳐서 수많은 공간 균열이 있다. 위험하니 더는 쫓지 마라.”

    대머리 남자의 목소리에 서천호 등은 바로 멈췄다.

    “주인님, 제 신장화포를 저자가 빼앗아 갔습니다. 반드시 되찾아야 합니다.”

    언갑 궁노를 든 지살시왕이 다급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인형의 성의 진화가 모두 완성되면 저놈뿐만 아니라 흑연미굴로 들어온 모두를 죽일 수 있다. 그러니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대머리 남자는 말을 마치고는 한 발로 인형의 성을 건드렸다. 그러자 성안에서 뿜어져 나온 굵은 노란색 정광이 연못 부근의 동굴 벽을 두들겼다.

    이어 동굴 벽에 황동색(黃銅色) 금속이 가득 생겨났고, 보기에는 매우 진귀한 금속성 영재 같았다.

    인형의 성의 노란 빛이 닿자 황동색 영재는 바로 살아나 밖으로 몰려나가더니 순식간에 변형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인형의 성의 신통으로, 세상 모든 것을 인형화하는 것이었다.

    두세 호흡 사이에 동굴 벽의 모든 황동색 영재가 빠져나와 거대한 황동 성으로 변했는데, 마치 또 다른 인형의 성 같았다.

    쿠쿵!

    굉음과 함께 황동성은 아래의 연못으로 떨어져 연못과 부근의 땅까지 전부 뒤덮어 버렸다.

    인형의 성에서 뿜어져 나온 노란색 정광은 멈추지 않고 황동성으로 주입되었다.

    언갑 영문이 황동성 안에서 흘러나와 주위의 땅으로 빠르게 퍼졌고, 이내 영굴 깊은 곳을 완전히 뒤덮어 거대한 법진으로 변했다.

    눈부신 영광이 법진 안에서 뿜어져 나오며 발동되자 법진 안의 황동성에서도 하늘을 찌르는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봉인의 거성(巨城) 같았다.

    대머리 남자는 그제야 인형의 성의 발동을 멈췄다. 안색이 하얗게 질린 것이 좀 전의 과정에서 상당한 영력 소모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인형의 성은 영광도 많이 약해졌고 기운도 다소 줄어들었다.

    “이 봉인동성(封印銅城)이 있으면 그놈이 아무리 강해도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영굴 곳곳을 경계하다가 들어오는 자가 있으면 죽여 버려라!”

    대머리 남자가 차가운 목소리로 명을 내리자 여덟 시왕과 서천호, 거력신원 모두 영굴 곳곳으로 흩어졌다.

    대머리 남자는 좀 전에 소비한 힘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다.

    * * *

    연못으로 들어간 심협은 빠르게 밑으로 헤엄쳐 갔고, 바닥에 도착한 후에야 멈췄다.

    그는 신식으로 아래에 있는 작은 공간 균열을 살펴봤는데, 어떤 것은 기운이 뚜렷했고 또 어떤 것은 빠르게 숨어들어 거의 알아차릴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도 더 내려갈 수 없었다.

    “영안(靈眼) 안의 공간 균열은 어떤 것은 뚜렷하고 어떤 것은 숨어 있는데, 또 완전히 흔적을 숨긴 것도 있어요. 게다가 공간 균열의 위치가 계속해서 바뀌니 조심하셔야 해요!”

    자죽이 주의를 주자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뿜어져 나오는 금빛을 줄이고 푸른 빛을 발하여 빠르게 확산시켰다. 그러자 반경 백여 장의 푸른색 영역이 생겨났다.

    공간 안의 연못은 조금 떨리더니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고, 푸른 빛은 점점 사라져서 흔적도 남지 않았다.

    이 신통은 무명 공법을 대승기까지 수련하면 자연히 따라붙는 신통인 수계술(水界術)로, 별다른 공격력은 없지만 강력한 봉인 작용이 있다. 푸른색 수계에 발을 들이는 사람들은 모두 수계술에 갇히게 되는데, 비록 완벽하게 봉인되지는 않더라도 법력 운공과 몸을 통제하는 능력에 큰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이 신통에는 큰 약점이 있었으니, 물속에서만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물이 없는 곳에서도 시전은 가능하지만, 그 위력은 크게 줄어든다. 게다가 푸른색 수계가 밖에서는 선명하게 보이기 때문에 눈에 띈다. 오직 물속에서만 수계의 푸른 빛이 주위에 흐르는 물과 어우러져 은밀하게 숨길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약점 때문에 심협은 지금까지 이 신통을 쓸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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