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0화. 몰래 숨어들어온 자들
그의 말을 들은 언무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입구의 구유음풍이 이토록 강하니 저 안의 방해도 매우 강할 것이오. 기다렸다가 가나 바로 들어가나 들어가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인 듯 싶소.”
“자죽, 구유음풍에 천지영기까지 섞여서 입구를 거의 막고 있는데 너희는 평소에 어떻게 들어가는 거지?”
심협이 묻자 자옥 대나무 지팡이 안에서 바로 자죽의 전음이 들려왔다.
“저는 음양쌍굴에서 태어났으니 이런 상황이 자연스러워서 한 번도 그 점을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선배님들 같은 경우는…… 그냥 들어가시기는 어렵겠지만, 둔술을 시전하여 힘으로 뚫고 가시면 될 겁니다.”
그러자 조비극이 황급히 말렸다.
“주인님, 그녀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음양쌍굴 안은 구유음기가 매우 짙고 강한 데다가 그 안의 상황을 알 수 없으니 함부로 둔술을 시전하여 들어가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내 생각도 그렇다. 게다가 구유음풍에는 천지영기까지 섞여 있으니 내 을목선둔으로도…….”
심협이 말은 끝내기도 전에 갑자기 표정이 급변하더니 둔광을 뿜어내며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럴 틈도 없이 오색 영광이 한발 앞서서 머리 위에 나타나더니 세 사람을 뒤덮어버렸다.
다른 반응을 하기도 전에 강력한 공간 금제의 힘이 머리 위에서 쏟아져 내려왔고, 그들은 그 자리에 갇히고 말았다.
심협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압박감에 꿈쩍도 할 수 없었으나, 간신히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세 사람의 머리 위에는 보갑(寶匣)이 떠 있었는데, 그 보갑에서 뿜어져 나온 오색 영광이 그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하하하!”
어디선가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몇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자들도 여기까지 온 건가?”
심협은 눈살을 찌푸렸다.
“원 도우, 저들을 한꺼번에 생포하다니, 정말 대단하오.”
그들 중 뚱뚱한 남자가 웃으며 감탄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영광 보갑을 발동하던 화려한 복장의 중년 남자가 겸손하게 웃고는 옆의 검은색 갑옷을 입은 우람한 남자를 돌아보았다.
“다 의부께서 잘 지도해주셔서 별로 힘들이지 않고 온 덕분이오.”
그들은 다름이 아닌 황사문과 후토종 등의 사람들이었다. 뚱뚱한 남자는 후토종의 종주, 영광 보갑을 발동하는 사람은 황사문의 원 문주였다.
다른 사람들도 낯설지 않았는데, 검은 갑옷을 입고 각진 얼굴에 눈썹이 짙은 우람한 사내는 그들의 우두머리인 마왕채 부채주 마심이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신귀파의 종 당주와 어수종의 종주가 있었다.
깡마른 노인, 종 당주는 이전에 심협에게 사로잡혔던 적이 있었기에 현재 이들을 바라보는 눈빛에 살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함부로 나설 위치가 아니었기에 억지로 참는 중이었다.
오히려 얼굴에 칼자국이 난 젊은 부인이 재촉했다.
“원 문주, 안내해줄 놈들을 찾았는데 뭘 기다리는 것이오?”
원명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마심을 돌아봤다.
“서두를 것 없다. 우선 영충을 저들과 함께 안으로 들여보내라.”
마심이 젊은 부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마심 선배님은 참으로 주도면밀하시군요.”
젊은 부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소매에서 정교한 보라색 영수대를 꺼내더니 입구를 열어 조용히 읊조렸다. 이어서 허공으로 입김을 불었다.
영수대에서 여덟 마리의 손톱만 한 영충이 날아오르더니 둘로 나뉘어 각각 심협과 언무사에게 날아갔다.
이를 보던 마심이 원명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도대체……?”
언무사가 황급히 무슨 말인가를 하려 했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머리 위의 영광 보갑이 갑자기 빠르게 옆으로 움직였다. 그러자 오색 영광이 곧바로 그들을 휘감고는 강하게 번득였다.
빛이 강하게 번쩍였고, 심협과 언무사, 조비극의 모습이 사라졌다.
* * *
음양쌍굴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은폐된 곳. 검은 도포의 사내와 목효는 바위 뒤에 조용히 서 있었다.
검은 도포의 사내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역시 왔구나. 살아나갈 생각은 버리는 게 좋을 거다.”
“저들과 면식이 있소?”
목효의 물음에 검은 도포의 사내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별다른 설명이 없었기에 목효도 더는 묻지 않았다.
“이제 어찌 할 생각이오?”
“서두르지 마시오. 아직 더 올 사람들이 있으니 모두 모이길 기다립시다.”
검은 도포의 사내가 담담하게 말했다.
* * *
약수 근처.
소부자 일행은 진즉 이곳에 도착했고, 강가의 빈터에서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한 척의 특수한 영재로 만들어진 배가 허공에 떠 있었는데, 전체적인 구조는 거의 완성된 터라 세밀한 부분의 보충만 남겨둔 상태였다.
소부자는 배 아래에서 정교한 금색 조각칼을 들고 무언가를 열심히 조각하고 있었다.
모두가 일에 몰두하느라 떠드는 사람은 없었다.
* * *
심협의 눈앞이 흐려지더니 밝은 빛과 함께 거대한 공간에 나타났고, 귀장도 멀지 않은 곳에 나타났다. 그러나 언무사는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의 몸에서 오색 영광이 몇 번 깜빡이더니 금제의 힘도 함께 사라졌다.
몸에 붙어 있던 몇 마리 영충은 죽고 싶지 않다는 듯이 빠르게 날아올라 어딘가로 사라졌다.
심협은 벌레들에 신경 쓸 겨를 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엄청나게 거대한 지하 동굴로, 눈에 선명하게 보일 만큼 짙은 천지영기가 가득했다. 호흡할 때마다 영기가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일 정도였다.
그는 이전에도 보타산의 자죽림이나 여아촌의 구범비경처럼 천지영기가 매우 짙은 수련 성지에 가본 적이 있지만, 이곳과 비교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천지영기가 이렇게 짙은 것을 보니 영굴인 모양이군. 언 형이 보이지 않는데, 설마 음굴로 보내진 건가?”
이곳 동굴에는 천지영기뿐만 아니라 땅과 주위 석벽에 온갖 영광이 번쩍였다. 붉은빛과 푸른빛 등 여러 색깔의 강력한 영력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화문옥(火紋玉), 빙백옥(氷魄玉), 지모암백(地母巖魄)…….”
심협은 주위를 둘러보며 놀라서 소리 질렀다. 셋 모두 상당히 좋은 하품 혹은 중품 법보까지 만들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영재였다. 특히 지모암백은 토속성 영재인 현귀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작은 조각 하나를 차지하기 위해 쟁탈전이 일어날 정도인데, 이곳에는 평범한 돌멩이처럼 곳곳에 널려 있었다.
옆에 있던 조비극도 눈앞의 상황에 넋이 나가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영초나 영화의 향기와 기운이 물씬 풍겨왔다. 한 그루 한 그루에서 뿜어져 나오는 충만한 영력만 보면 모두 최소 천 년은 넘은 듯했다.
하지만 영굴에는 파헤친 흔적이 가득했다. 손을 쓴 사람은 매우 성급했는지 많은 진귀한 영재 영초가 아무렇게나 잘려나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어떻게 이런 짓을…… 귀언의 짓인가?”
심협이 눈살을 찌푸렸다.
“영굴을 이렇게 만들다니! 나 자죽이 맹세한다! 귀언, 반드시 네놈이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
유천자옥 영죽 안에서 바깥의 상황을 살핀 자죽이 분개했다.
그때, 무언가를 파헤치는 듯한 소리가 동굴 깊은 곳에서 들려왔다.
심협은 곧장 귀장을 건곤대 안으로 넣고는 연연나금의와 은신부를 발동하여 모습을 감춘 뒤 동굴 안쪽으로 조용히 나아갔다.
동굴 깊은 곳의 어느 모퉁이를 돌자 커다란 공간이 나왔는데, 그곳도 똑같이 진귀한 재료들이 가득했다. 바깥에 비해 종류는 적었지만 수는 매우 많았다.
영동(靈銅) 광맥처럼 암금색으로 빛나는 동굴 벽에는 황금색 성이 붙어 있었는데, 그 광경은 마치 작은 황금색 성이 살아 있는 생물처럼 암금색 영동을 갉아먹는 것 같았다.
암금색 빛이 빠르게 몰려들자 황금색 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점점 더 강해졌다.
“인형의 성!”
심협은 전에 들어가 본 적이 있기에 황금색 성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봤다. 자신이 남긴 법력 표식 역시 그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거기 누구냐?”
인형의 성을 보고 놀란 나머지 심협의 기운이 연연나금의와 은신부를 뚫고 조금 새어 나갔는지 성안에서 외침과 함께 노란색 도포를 입은 대머리 남자가 나타났다. 일전에 인형의 성안에서 심협과 크게 싸웠던 자였다.
하지만 심협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연연나금의로 다시 기운을 숨기고는 조용히 옆으로 이동했다.
“흥! 그래도 안 나오겠다는 것이냐? 어서 모습을 드러내라!”
대머리 남자가 차갑게 비웃고는 소매를 휘둘렀다.
두 개의 거대한 물체가 나타났는데, 하나는 거대한 호랑이였다. 몸길이가 8장에 이를 정도였고, 온몸은 하얀 털로 뒤덮여 있었으며, 중간중간 검은 반점이 새겨져 있었다. 두 개의 칼날 같은 송곳니가 밖으로 튀어나와 있어 매우 험악해 보였다. 몸길이 정도 되는 기다란 꼬리가 흔들릴 때마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천호(噬天虎)!’
심협은 또다시 깜짝 놀랐다. 저 거대한 호랑이는 꿈속 세계에서 봤던 요수 서천호였던 것이다. 그러나 꿈속에서 봤던 것보다 더 컸고, 요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데다 눈빛이 멍한 게 마치 꼭두각시 같았다.
다른 하나는 금색의 거대 원숭이로, 서천호보다도 더 컸으며, 온통 근육이 불룩한 온몸은 금색 털로 가득했다. 두 팔은 특히 길고 두꺼웠다. 손에는 거대한 기둥 같은 검은 철봉(鐵棒)을 들고 있어서 그 힘이 느껴졌다.
심협은 견문이 남달라서 금색 거대 원숭이가 거력신원(巨力神猿)이라는 보기 드문 요수임을 한눈에 알아봤다. 동승신주에 사는 이수였다.
한데 거력신원 역시 요기는 느껴지지 않았고, 눈빛이 어두웠다.
대머리 남자가 뭔가를 읊조리자 미간에서 갑자기 두 개의 핏빛 정광이 반짝였다. 천기성의 독문인 혼사(魂絲) 신통이었다. 다만 어째서 핏빛을 띠는지는 알 수 없었다.
혈광이 흡수되자 서천호의 눈에서는 섬뜩하고도 차가운 빛이 떠올랐고, 갑자기 복잡한 영문이 떠올라 온몸 곳곳을 뒤덮었다. 이 영문들은 푸른색과 붉은색이 뒤섞여 마치 풍화(風火)의 형상 같았다.
거력신원의 몸에서도 빼곡한 영문이 떠올랐는데, 은색의 영문은 금빛 털과 대조를 이루었다.
꽈르릉!
두 개의 강력한 기운이 두 이수의 몸에서 폭발하자 기운이 진선기에 도달했다. 진선 초기라고는 해도 그 기세는 매 장로나 막망 장로 같은 진선 중기 존재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저건 언갑의 언문! 선천호와 거력신원의 몸에 어째서 언문이 나타난 거지?’
심협은 두 요물의 영문을 보고는 당황했으나, 연연나금의와 은신부로 계속 행적을 숨기며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그때, 서천호의 눈이 흑백으로 빛나더니 갑자기 심협이 숨어 있는 곳을 돌아봤다. 동시에 붉은 영문이 반짝이면서 입에서는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일대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어 심협이 있는 곳까지 집어삼켜 어디로도 피할 길이 없었다.
타오르는 불꽃은 이상할 정도로 빨랐고, 용암처럼 뜨거워 주위의 각종 영재를 녹여버렸다.
연연나금의는 수속성 법보였지만, 이 불꽃에 닿자 영력이 흔들리면서 은신 능력이 사라졌다. 이에 심협의 모습이 드러나 버렸다.
심협이 서둘러 기혈번을 발동하자 검은 광막이 나타나 불꽃을 막았다.
꽈르릉!
천둥 같은 굉음이 들려올 때마다 심협은 보호막과 함께 뒤로 밀려났고, 기혈번의 보호막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서천호가 뿜어낸 불꽃의 위력은 너무도 강력했고, 기혈번은 이런 불꽃과 상극인 음속성 법보라 기세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