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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66화 (766/1,214)

766화. 배치

흑의의 사내는 나뭇가지를 손에 넣고는 감정이 격해진 듯 몸의 검은 기운이 솟구쳤다. 이어서 심협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그는 말없이 먼 하늘로 날아가 또다시 사라졌다.

“심 도우,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언무사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고, 심협도 숨김없이 흑의의 사내와의 약속에 대해 말해줬다.

“……이후 내가 귀장에게 백곡수의 시체를 가지고 배가 나아갈 곳으로 미리 보내둔 겁니다. 백곡수는 약수의 패자인 만큼 그 시체만 보고도 앞에 있던 흉수들이 겁먹고 도망친 게지요.”

“오, 그래서 백곡수를 죽인 이후로 순로웠던 것이군요. 한데 저자는 왜 저 시커먼 나뭇가지를 가져간 걸까요? 저 물건도 모종의 보물일까요?”

언무사가 감탄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 앞서 마주친 적이 있긴 하지만 저자의 정체도, 생각도, 그 무엇도 간파할 수 없었지요. 어쨌든 무사히 건너왔으니 이제 저는 법력 표식이 있는 곳으로 가서 제 동료를 구하고자 합니다. 언 도우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보물을 찾으러 가실 겁니까?”

“천기성이 흑연미굴에 들어온 목적은 귀언이니 저도 심 도우와 함께 가겠습니다.”

언무사는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잘됐군요. 언 도우와 함께라면 저도 안심입니다. 아, 혹시 전에 종 당주를 사로잡을 때 시전한 신통은 무엇입니까? 다른 자들이 펼쳤던 공격이 갑자기 다른 원숭이 언갑으로 향하던데요?”

심협은 기뻐하더니 바로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우리 천기성의 비전 신통인 봉망필로(鋒芒畢露)입니다. 일단 시전하면 신통 영향 안에서 제게 향하는 모든 공세를 다른 곳으로 비켜가게 할 수 있지요.”

언무사는 잠시 머뭇거렸으나, 이내 짧게 설명했다.

“대단한 신통이로군요! 천기성은 역시 삼계에서 손에 꼽히는 대문파답습니다.”

심협이 감탄하자 언무사는 흡족한 듯 웃었다.

잠시 후, 심협은 백곡수의 시체를 신식으로 자세히 살폈다. 이 흉수는 몸이 매우 단단했고, 피와 살은 극도로 짙은 음기와 약수의 기운이 섞여져 있었다. 그래서 약수의 침식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심협이 흉수의 시체를 가지고 온 것은 다시 약수를 건널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그때도 현음청죽 배를 다시 이용할 수 있을 거란 보장이 없지 않은가.

‘이 흉수는 약수의 영향을 받지 않았으니 시체를 잘 이용하면 약수를 건너는 것도 가능하겠지.’

심협은 손을 휘둘러 시체를 거두었다. 이제 남은 것은 백곡수의 다른 팔이 가지고 있던 검은색 구슬뿐이었다.

그는 구슬을 주워서 신식으로 살펴보고는 깜짝 놀랐다.

구슬 안에는 마기가 담겨 있었는데, 순도가 매우 높았다. 그러나 그가 마기와 법력으로 운공해봐도 구슬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심협은 잠시 고민한 끝에 고개를 젓고는 구슬을 임랑환에 넣었다.

두 사람은 이어서 둔광으로 변하여 법력 표식이 느껴지는 곳으로 향했다.

* * *

흑연미굴 어딘가. 싸우는 소리가 하늘 가득 울려 퍼졌다.

얼마나 되는지 헤아릴 수 없는 음수들이 빼곡하게 몰려와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그 범위가 반경 백 장에 이르렀다. 그것들은 거센 물살처럼 포위망 가운데에 있는 막망 장로 등을 향해 끊임없이 몰아쳤다.

막망 장로가 조종하는 언갑은 두 명의 지살시왕에게 포위되어 정신이 없었고, 음수들의 공격에 천기성 제자들이 하나둘 죽어가는 것에도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음수들에게 끌려간 천기성 제자들은 비명과 함께 몸이 갈기갈기 찢겼다.

“장로님, 살려주세요!”

한 제자가 피투성이가 되어 음수들 틈에서 빠져나와 막망을 향해 손을 뻗었다. 하지만 뒤이어 비명이 튀어 나왔다.

서둘러 다가가 그를 도와주려던 막망 장로의 눈에 비친 제자의 표정은 크게 일그러지더니 이내 사악한 웃음이 떠올랐다. 이미 시왕에게 정신이 사로잡힌 것이었다.

“이런!”

막망 장로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하고는 피하려 했지만, 한발 늦었다.

한 지살시왕의 주먹이 제자의 가슴을 뚫었고, 다른 지살시왕이 그 순간을 틈타 막망 장로의 앞으로 파고들어 짐승의 발톱 같은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이렇게 끝인가……?’

막망 장로는 속으로 탄식했다.

한데 지살시왕의 발톱이 막망 장로의 가슴에 닿으려는 절체절명의 순간, 하늘에서 갑자기 검은 빛이 떨어지더니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지살시왕의 머리를 꿰뚫었다.

땅으로 떨어진 검은 빛은 부문이 가득한 검은색 장검으로 변했고, 뒤이어 반만 남은 시왕의 머리를 베었다.

다른 지살시왕은 서둘러 공격한 자를 찾아봤지만, 아무런 법력 파동도, 영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아주 가느다란 하얀 빛이 마치 버드나무 잎사귀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지살시왕이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어서 잡으려 했지만, 하얀 빛이 번쩍하면서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윽고 하얀 빛은 지살시왕 주위에서 연속으로 반짝였는데, 매우 빨라서 누구도 그 궤적을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윽고 하얀 빛이 멈추자 지살시왕은 갑자기 낮은 신음을 뱉으며 놀란 눈으로 자신의 몸을 훑어봤다. 목부터 발끝까지 균열이 이어져 있었다.

다음 순간, 지살시왕은 몸이 산산조각 나더니 추락했다.

버드나무 잎 같은 하얀 빛은 검은색 비검과 허공에서 충돌했다. 흑백의 빛이 반짝이자 그대로 하나로 합쳐져 검은 칼집과 하얀 칼날로 이루어진 정교한 장검으로 변했다.

장검에는 고급 언정이 박혀 반짝거렸고, 검 전체에는 복잡한 부문이 떠올라 현묘한 빛을 반짝이고 있었다.

휙! 휙!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듯한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비검이 회전하기 시작했다. 검에서 쏟아져 나온 하얀 검광이 사방의 음수들을 향해 끊임없이 날아갔다.

단숨에 수많은 음수가 목숨을 잃고 잘 익은 벼처럼 줄줄이 쓰러졌다.

잠시 후, 음수의 절반은 목숨을 잃었고, 남은 음수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막망 장로와 가까스로 살아남은 세 명의 천기성 제자는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는데, 하늘을 뒤덮으며 폭풍우처럼 쏟아지던 검광들은 하나하나가 절묘하게 제어되어 그들에게는 조금도 닿지 않았다.

“천, 천기검(千機劍)! 성주님이다! 성주님이 오셨어!”

제자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한편, 막망 장로는 땅에 가득한, 산산조각 난 천기성 제자들의 시체를 바라보았는데, 그 눈에는 원통과 분노가 가득했다.

그녀는 갑자기 뭔가 생각났는지 서둘러 두 지살시왕의 시체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머리가 부서진 시왕이나 몸이 산산조각 난 시왕 모두 보이지 않았다.

“놓쳤나……?”

너무나 원통했다.

그때, 허공에서 맴돌던 천기검의 기세가 서서히 약해졌고, 뿜어져 나오던 하얀 검광도 점점 줄어들더니 검날은 거꾸로 돌아 먼 곳으로 날아갔다.

어둠 속에서 검광이 내려왔고, 몇 명이 빛 속에서 걸어 나와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막망 등을 바라봤다.

“성주님을 뵙습니다.”

막망 장로가 서둘러 인사했고, 다른 세 명의 제자도 바로 다가와 그녀 뒤에 서서 묵묵히 포권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참혹하군요!”

복 장로가 암담한 표정으로 탄식했다.

“성주님, 제가 무능하여 천기성 제자들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막망 장로가 크게 자책했다.

“그대 탓이 아니오. 내가 늦게 온 탓이지.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소?”

소부자가 고개를 저으며 막망을 다독이고는 물었다.

“두 갈래로 나누어 움직인 터라 그들의 상황은 알지 못하나, 위기를 겪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막심한 피해를 보았으니 더더욱 목표를 달성해야 하오. 계속 가다 보면 매 장로나 다른 사람과 만날 수 있을 것이오.”

소부자가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

“네!”

성주가 왔으니 막망 장로 일행도 더는 걱정이 없었기에 바로 수긍했다.

* * *

흑연 미굴 깊은 곳. 어두운 공간에서 핏빛 해골이 옥간을 이리저리 가지고 놀며 수하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대왕님, 이번에 들어온 자들의 상당수가 천기성 사람들인데, 그중에는 적지 않은 강자가 있어서 음수들이 패하여 물러났습니다. 또한 귀언 대인의 지살시왕도 패하여 중상을 입고 도망쳤습니다.”

수하는 조심스레 보고했다.

“귀언, 그놈은 말만 청산유수지 지살시왕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군.”

핏빛 해골이 고개를 저으며 비아냥거렸다.

“다른 자들은 매우 빠르게 움직여 벌써 약수를 건넌 자들도 있습니다.”

그때까지 침착했던 핏빛 해골은 그 말에 옥간을 가지고 놀던 손이 멈췄다.

“뭐라고 했느냐? 약수를 건넜단 말이더냐?”

“그, 그렇습니다…….”

높아진 목소리에 보고하던 수하는 겁에 질려 몸을 덜덜 떨었다.

“그놈들의 짓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다면 외부인이 이토록 빨리 약수를 건널 수는 없어.”

핏빛 해골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잠시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가서 모든 음수에게 법진을 지키게 해라. 다른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네.”

수하는 명령을 받자마자 대답하고는 물러갔다.

“대왕님. 귀언이 <천시진경>을 넘기는 조건으로 천기성 수사들을 막아주기로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한데 어찌……?”

그의 옆에서 진선기 음수가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귀언과의 약속은 그냥 한 말일 뿐이다. 귀언도 내가 약속을 지킬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을 게다. 그동안 막아준 것만으로도 할 도리를 다한 셈인데 우리가 피해를 보면서까지 지킬 필요가 있겠느냐? 그리고…… 귀언이 천기성 수사들과 죽기 살기로 싸우면 우리는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지 않겠느냐?”

핏빛 해골이 웃으며 말했다.

“역시 대왕님의 혜안은 놀랍습니다.”

진선기 음수가 바로 절을 하며 말했다.

“방심하지 말고 양쪽의 동태를 잘 살피고 수시로 보고해라.”

“네!”

* * *

심협과 언무사는 끊임없이 이동했다.

그러던 중, 언무사가 갑자기 심협을 불러 세우더니 아래의 어두운 골짜기로 내려갔다.

“이렇게 순수한 음살지기라니!”

두 사람이 땅에 닿기도 전에 아래쪽에서 왕성한 음기가 느껴졌다. 음풍이 하늘을 향해 샘물처럼 솟구치고 있었다.

심협과 언무사는 땅에 착지해 골짜기 안을 살폈다. 그곳에는 키가 2척 정도 되는 식물이 두 개 있었다. 잎은 있지만 꽃이 없었다. 잎은 조금 넓었고, 가장자리는 톱니 모양이었으며, 겉에는 마치 얼음으로 조각한 것처럼 은은한 푸른빛이 감돌고 있었다.

“귀절초(鬼切草)! 여기에 이런 게 있다니!”

언무사가 깜짝 놀라 외쳤다.

심협은 대답 대신 두 개의 귀절초 잎사귀를 자세히 살폈다. 양쪽 모두 완벽하게 똑같은 한 쌍의 잎사귀로, 각각이 열 조각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것도 보통 귀절초가 아니라 실로 보기 드물다는 십엽귀절초(十葉鬼切草)군요. 천 년에 한 번 난다는 음속성 영초로, 진선급의 보약류 단약 중 이 풀을 주재료로 삼아야만 되는 것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언무사가 기뻐하며 말했다.

“언 형은 연기뿐만 아니라 연약(煉藥)에도 능통하구려.”

“능통이라니, 가당치 않습니다. 그저 주워들은 것뿐이지요. 사실, 연기와 연약은 많은 공통점이 있는데…… 말하자면 복잡합니다. 심 형, 이 십엽귀절초의 품질은 전혀 차이가 없으니 하나씩 갖는 게 어떻습니까?”

언무사가 제안했고, 당연히 심협으로서도 이견이 없었다.

두 사람은 바로 영초를 캐서 각자의 옥갑에 잘 넣고는 다시 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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