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62화 (762/1,214)
  • 762화. 검은 물

    “호오, 이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군. 너라면 서원봉을 사용할 자격이 충분하다. 미굴 깊은 곳, 보물이 숨겨진 곳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지.”

    흑의의 사내는 가볍게 웃으며 말하고는 검은 허상으로 변하여 허공에서 사라졌다. 꽤나 호쾌한 모습이었다.

    심협은 상대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했고, 뭔가 해보려 했을 때는 사내가 이미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이렇게 간다고? 허! 저자는 이곳의 법진과 비석, 저 마기까지 모든 존재를 알고 있었다. 도대체 누굴까?”

    그의 머릿속에서 끝없는 의혹이 일어났다.

    함께 온 천기성 사람들이나 황사문 무리 중에는 마기와 법력이 섞인 이상한 기운을 가진 자는 없었다.

    “외부에서 온 다른 수사인가? 아니면 귀언의 무리?”

    아마도 후자는 아닐 터였다. 자신이 진창해 신통을 펼쳤을 때 상대는 진심으로 놀랐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전에 인형의 성에서도 진창해 신통을 시전한 바 있으니 만약 그가 귀언의 무리라면 그 신통에 놀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자가 모든 일의 배후일까?”

    심협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자 걱정이 밀려왔다.

    그 흑의의 사내는 여기가 무슨 진안이라고 했다. 또한 이 마봉을 간절히 원하는 듯했다. 더욱이 마지막에는 미굴 깊은 곳, 보물이 숨겨진 곳으로 찾아오라고 했다. 이 일련의 상황으로 미루어, 심협은 곤란한 상황에 빠진 것이 분명했다.

    “됐다. 지금 더 생각해봐야 알 길이 없으니 차례차례 해결해보자.”

    심협은 이내 고개를 저어 생각을 비우고는 빠르게 동굴 안을 뒤져 값이 나가는 음속성 영재를 모두 캐낸 뒤 손을 휘둘렀다.

    누군가가 건곤대에서 나와 근처 땅으로 내려왔다. 거울 요괴였다.

    “여기는 너무 위험하니 이제 돌아가라.”

    말을 마친 심협은 통령수동을 열려고 했다.

    “전 겁나지 않아요. 주인님의 영수가 된 이후로 저에게 많은 것을 주셨는데 저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저도 남아서 돕게 해주세요. 저도 계속 그 주머니에 숨을 수 있으니 주인님께 방해되지 않을 거예요.”

    “건곤대 안은 음기가 가득한데 괜찮겠어?”

    심협은 거울 요괴의 말에 감동하면서도 걱정이 돼 물었다.

    “저는 본래 수속성이니 음기에는 강하답니다. 그리고 이 거울로 저를 보호할 수도 있고요.”

    거울 요괴는 푸른 거울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래, 그럼 건곤대에 들어가 있거라. 나중에 필요하면 다시 소환하지.”

    심협은 가볍게 웃으며 손을 휘둘러 거울 요괴를 건곤대 안으로 넣었다. 생각해보면 거울 요괴의 분신은 매우 현묘하니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는 곧장 둔지부와 연연나금의를 발동하여 곧장 석벽을 뚫고 법력 표식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향했다.

    반 시진 정도 지나자 그의 눈앞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앞에는 매우 거대한 지하 동굴이 있었는데, 천장도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높았고, 양쪽 끝도 한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만약 계속해서 법력 표식을 감지하며 오지 않았다면 길을 잘못 들어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땅속 깊은 곳에 이런 별천지가 또 있을 줄이야…….”

    심협은 중얼거리며 다시 나아갔다. 법력 표식은 여전히 앞쪽에서 느껴졌다.

    이곳의 땅은 평탄한 편이었고, 곳곳에 크고 작은 검은 바위가 마치 흉수의 이빨처럼 솟아 있었다. 풀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벌레나 짐승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매우 황량한 곳이었다. 게다가 흑염미굴의 음기는 깊이 들어갈수록 짙어져 이곳에 이르자 뼈를 찌를 정도였고, 이에 신식은 고작 2백여 장밖에 펼칠 수 없었다.

    심협은 제자리에 서서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다시 날았다.

    이곳은 너무나 이상했고 또 신식도 멀리 펼칠 수 없었기에 아주 천천히 이동했다.

    일각 정도를 날아가도록 환경에도 변화가 없고 음수들의 습격도 없자 그는 조금 안도하고는 속도를 높일까 고민했다.

    한데 그때, 갑자기 앞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은 경게하면서도 속도를 조금 높여 다가갔는데, 금세 검은 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곳의 수역도 마찬가지로 매우 넓었고, 수면에는 검은 기운이 가득하여 현실 같지가 않았다.

    그는 날아가면서 수역을 자세히 살폈는데, 그 순간 갑자기 몸의 법력이 완전히 멈춰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이에 그는 평범한 사람처럼 추락했다.

    깜짝 놀란 심협은 검은 물에 닿기 전 허리를 새우처럼 굽히는 동시에 두 발을 쏜살같이 허공으로 내디뎠다. 법력은 운공할 수 없었지만 황정경 수련을 통해 얻은 강인한 육체 덕분에 두 발로 허공을 내딛자 휙 소리와 함께 비스듬히 빠져나와 근처 땅에 떨어졌다.

    심협은 진중한 얼굴로 눈앞의 검은 물을 바라봤다.

    이 물에는 법력을 봉인하는 힘이 있어서 그대로 들어갔다면 위험할 뻔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뒤, 그는 법력을 운공할 수 없다는 것 외에 다른 이상 징후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찬찬히 기이한 검은 물을 관찰했다. 자세히 보니 보통 물보다 훨씬 끈적거렸고, 바닥에서는 거품이 솟아 올라왔다. 거품이 터질 때마다 시큼한 기운이 밀려왔다.

    “부식성?”

    심협은 기다란 돌을 들어 그 끝을 검은 물에 담갔다가 잠시 후에 꺼냈다. 검은 물에 담겼던 부분이 절반이나 부식되어 있었다.

    “이곳의 돌들은 오랜 세월 음기에 노출되어 보통의 돌보다 훨씬 단단해졌을 텐데도 이렇게 순식간에 부식되다니!”

    놀란 심협이 더 자세히 살펴보려는데, 눈앞의 검은 물이 갑자기 폭발하더니 붉은 그림자가 번개처럼 날아왔다.

    심협은 깜짝 놀라 두 발로 강하게 땅을 박차며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법력을 운공할 수 없었기에 오직 육신의 힘으로만 움직여야 했고, 가까스로 붉은 그림자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

    심협은 그제야 ‘그것’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붉은색 촉수였다. 위에는 두 줄의 빨판이 달려 있는 것이 문어의 다리와 매우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그가 안심하기도 전에 세 번의 굉음이 울려 퍼졌고, 검은 물에서 다시 세 개의 촉수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쏜살같이 덮쳐왔다.

    심협은 손과 발을 놀려가며 간신히 두 개의 촉수를 피했으나, 세 번째 촉수는 도저히 피할 수 없었다.

    그때, 왠지 모르겠지만 심협은 비석에서 봤던 열석보 보법이 생각났다. 그리고 무의식중에 몸을 좌우로 비틀자 전신의 근육과 뼈에서 기이한 소리가 울렸다. 그 순간, 뒤로 물러나는 속도가 세 배는 빨라져 무사히 촉수를 피할 수 있었다.

    쾅!

    굉음과 함께 촉수는 땅에 꽂혔는데, 그곳에는 몇 장 깊이의 구멍이 생겨났다.

    심협은 안도했고,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열석보가 이토록 현묘할 줄이야! 육신의 힘만으로 이 정도 속도를 낼 수 있다니, 사월보나 이형환형에 뒤처지지 않아!’

    하지만 아직 열석보를 완전히 익히지 못한 몸으로 무리해서 시전한 탓에 온몸의 근육이 아파왔다. 그래도 다행히 큰 영향은 없었다.

    그때, 검은 물에서 낮은 외침과 함께 땅에 촉수들이 갑자기 튕겨 올라갔고, 몇 개의 빨판이 붉게 번쩍이더니 갑자기 10여 개의 가느다란 수염이 촉수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날아와 심협을 휘감았다.

    심협은 문어의 촉수에 이런 신통까지 있을 줄은 예상치 못했기에 꼼짝 없이 붙들렸고, 육신의 힘을 쥐어짜 발버둥 쳤다.

    이때, 시커먼 무언가가 심협의 허리에서 튀어나왔다. 그 인영이 들고 있는 검은 도에서는 밝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휙! 휙!

    심협을 휘감고 있던 10여 개의 수염이 잘려나갔다.

    그 후로도 도광은 멈추지 않고 다시 붉은 촉수를 베었다. 촉수는 두 동강 났고, 뿜어져 나온 피가 땅에 닿자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은 검게 타들어갔다.

    검은 물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지더니 거대한 문어의 머리가 천천히 올라왔다. 그 머리는 말 그대로 거대했고, 등불처럼 붉게 빛나는 두 눈은 심협을 노려보고 있었다. 광기와 갈망으로 가득한 두 눈에 심협은 가슴이 철렁했고, 등골이 오싹해 서둘러 달아나려 했다.

    한데 혈홍색 문어는 심협을 잠시 노려보더니 천천히 검은 물로 들어가 사라졌다.

    심협은 그제야 안심하고는 귀장을 바라봤다.

    “넌 법력을 쓸 수 있는 것이냐?”

    전음으로 물으니 거울 요괴는 요력이 봉인되었다고 했으나, 귀장은 가볍게 공수하며 답했다.

    “제 귀력도 절반은 봉인됐지만 조금은 쓸 수 있습니다.”

    심협은 의아했다. 지금 그의 경지로도 봉인의 힘을 막아내지 못했건만, 귀장은 어떻게 막아냈단 말인가?

    ‘음, 이곳의 봉인은 아마도 이 검은 물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 물은 음에 속하고 귀장 역시 음혼의 몸이니 이곳의 금제를 막아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는 귀장과 함께 뒤로 물러나 검은 물에서 떨어졌다. 그러자 봉인의 힘은 조금씩 약해지기 시작했고, 30여 장을 물러나자 완전히 사라졌다.

    “법력 표식이 앞에 있으니 저 검은 물을 건널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는 더 높이 올라가서 지나갈 수 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그동안 나를 옆에서 보호하거라.”

    “예!”

    심협은 계획대로 막 날아오르려 했으나, 어떤 기운이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끼고는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 그는 귀장을 건곤대에 넣고 연연나금의와 은신부를 발동해 순식간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잠시 후, 보라색 둔광이 날아왔다. 그 위로는 번개가 흘렀고, 매우 빨랐다.

    눈 깜짝할 사이 가까이 다가온 보라색 둔광 속의 사람도 검은 물을 발견하고는 속도를 줄이긴 했지만 멈추지 않고 날아갔다. 그리고 이내 검은 물 금제 구역에 들어갔다.

    그 둔광도 좀 전의 심협처럼 순식간에 사라졌고, 돌덩이처럼 허공에서 떨어졌다.

    하지만 그자는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법력을 잃고 떨어지는 와중에도 등에서 거대한 보라색 날개를 활짝 펴더니 마치 거대한 새처럼 허공을 날아 가볍게 검은 물 근처 땅으로 내려선 것이다.

    그의 얼굴을 본 심협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다름 아닌 언무사였던 것이다.

    언무사를 알아본 심협은 그에게 다가가 금제와 물속의 흉수에 대해 알려주려 했으나, 이내 눈빛이 변하더니 다시 뒤를 돌아봤다.

    거의 동시에 언무사도 같은 곳을 바라봤다.

    몇 개의 둔광이 뒤쪽 하늘에서 나타나더니 강력한 기세를 뿜어내며 다가왔다.

    심협은 가까운 돌 숲에 몸을 숨겼다.

    언무사는 안 그래도 법력이 봉인 당했는데 이리 많은 수사가 다가오자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그는 영민한 사람이라 법력이 눈앞의 검은 물과 관련 있음을 금세 알아채고는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는 곧 검은 물의 금제 영역에서 벗어났고, 법력을 되찾았다. 다만 둔광들은 벌써 근처까지 다가왔기에 몸을 숨기기에는 늦은 때라 태연하게 그 자리에 서서 다가오는 자들을 살폈다.

    이 둔광들은 거의 동시에 검은 물 금제에서 몇 장 떨어진 곳으로 내려왔다.

    이를 지켜보던 심협은 눈을 가늘게 떴다.

    ‘저들은 검은 물의 금제를 알고 있다!’

    둔광들에서는 다섯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바로 황사문의 원명과 신귀파의 종씨 당주, 후토중의 임씨 사내, 어수종의 초록색 옷 부인 그리고 마심이었다.

    심협은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황사문이나 신귀파 등은 개의치 않지만, 마심은 매우 신경이 쓰였다. 그자는 진선 후기의 존재인 데다 마왕채의 부채주다. 공법이나 마보(魔寶) 모두 보통이 아니니 그를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언무사 역시 그들을 보자 표정이 급변했다.

    “천기성의 제자인가? 알아서 여기까지 와주다니, 힘들게 찾으러 다닐 필요가 없게 됐구나. 저자를 잡아라!”

    마심은 언무사를 바라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원명과 종씨 노인 등은 독수리가 먹이를 노리듯 달려들었고, 언무사는 뒤로 물러나는 동시에 양손을 휘둘렀다.

    금색과 푸른색의 구슬이 두 개씩 나타나더니 빠르게 변하여 순식간에 네 개의 언갑으로 변했다. 두 개의 금색 언갑은 이전에 봤던 거대한 원숭이였다. 한편 처음 보는 푸른색 언갑은 퍽 신기했다. 사람 모습에 대궁(大弓)을 든 것이 두 개의 궁병 장군 같았는데, 몸에는 푸른색 가시가 가득해 마치 고슴도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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