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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61화 (761/1,214)
  • 761화. 교전(交戰)

    대량의 노란 꽃가루가 섞인 검은색 안개는 심협을 향해 다가갔고, 이내 그의 몸을 완전히 뒤덮었다.

    검은 옷의 남자는 이 광경을 보고는 득의양양해졌다. 부시등(腐尸藤)과 취인화(醉人花)는 그가 비밀리에 갖춘 최강의 공격 수단으로, 아직 누구에게도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한데 오늘 보니 과연 위력이 대단했다.

    그러나 그도 이 두 가지만으로는 심협을 완전히 굴복시킬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이에 그는 입을 벌려 고풍스러운 검은색 두루마리를 꺼냈다. 거기에는 수많은 검은색 도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사내는 원기를 뿜어내 두루마리에 넣는 동시에 양손을 빠르게 결인했다.

    검은 두루마리 그림이 빙글빙글 돌며 웅웅거리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10여 장에 이르는 거대한 그림으로 변했다.

    그림에서 뿜어져 나온 수백 개의 검은 빛은 몇 번 번득이더니 또다시 예의 검은색 비도로 변했다.

    거의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 개의 검은 비도가 허공을 빼곡하게 채우자 심협은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가라!”

    검은 옷의 남자가 양손을 휘둘렀다.

    폭풍우처럼 뿜어져 나가는 수백 개의 검은 비도가 하늘을 뒤덮은 채 마치 검은 도산(刀山)처럼 심협을 덮쳐갔다.

    기혈번의 광막은 이 도산과 충돌하기가 무섭게 산산이 부서지면서 심협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있었는데, 그 표정이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독무와 꽃가루에 시달리는 중이리라.

    이제 기혈번마저 격파돼 본래 크기로 줄며 뒤로 날아가버렸다.

    “죽어라!”

    흑의의 남자가 음흉하게 웃으며 손을 차륜처럼 결인했다.

    검은 도산은 점점 더 빨라지더니 순식간에 심협의 몸을 뒤엎었다. 수많은 칼날의 공격에 심협의 몸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고, 살점이 이리저리 흩날렸다.

    허나 이를 지켜보던 흑의의 사내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이 천인도(千刃刀)의 위력이면 심협을 가볍게 죽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검은 기운으로 심협의 살점을 가져가 자세히 살펴보려 했다.

    한데 그때, 잘린 살점이 갑자기 푸른 빛으로 번쩍이더니 허공에서 사라졌다.

    깜짝 놀란 흑의의 사내 뒤에서 금과 적의 검광이 날아들었다. 그의 목덜미가 거의 잘리기 직전이었다.

    순양검과 참마검의 공격에 그는 잔상을 남기며 옆으로 피하는 동시에 검은 기운을 더 강하게 폭발시켰다. 그러자 온몸에 가시가 달린 검은 마갑이 나타났다.

    하지만 두 검광의 속도가 조금 더 빨랐다. 순식간에 마기의 갑옷으로 뒤덮인 사내의 팔을 베었고, 두 줄기의 피가 솟구쳤다.

    흑의의 남자는 분노로 포효하며 결인을 했다. 그러자 땅에서 솟구쳐 나온 10여 개의 덩굴이 거대한 채찍처럼 순식간에 하나가 되어 날아다니는 검광을 강하게 후려쳤다.

    거대한 채찍은 닿지도 않았는데 폭발음이 울려 퍼졌고, 하늘을 찌르는 강한 힘은 허공마저 짓누를 기세였다.

    그때, 한 줄기 검은 빛이 허공에서 쏜살같이 내려와 나무 덩굴 채찍을 깊숙이 찔러 들어갔다.

    검은 단봉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빛은 쏜살같이 덩굴 채찍으로 퍼졌고, 광룡처럼 날뛰며 강하게 내리치던 덩굴은 순식간에 시들어 힘을 잃은 채 완전히 멈춰버렸다.

    덩굴은 육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빠르게 시들어 결국은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서원봉(噬元棒)! 진안에 들어 있던 마기가 바로 그것이었구나!”

    흑의의 사내는 그 광경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서원봉? 이 봉이 그런 이름이었나?”

    심협은 가볍게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검은 마봉은 다시 그의 손으로 돌아갔다.

    차가운 기운이 마봉에서 흘러나와 그의 몸으로 전해지자 좀 전에 당했던 내상이 치료됐고, 소모된 법력도 보충됐다. 이에 심협은 매우 기뻤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어. 어떻게 그 짧은 시간에 시독과 화독을 제거할 수가 있지?”

    흑의의 사내는 금세 평정을 되찾고는 심협을 노려봤다.

    “그야 당신이 알 바 아니오. 또 다른 수단이 있으면 얼마든지 와보시오.”

    심협은 담담하게 말하며 다시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기혈번이 멀리서 날아오더니 다시 머리 위에서 천천히 돌기 시작했고, 적과 금의 빛줄기도 거의 동시에 날아와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사실 시독과 화독을 없앨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만독혼원주 덕분이었다. 심협도 이 구슬이 이 정도로 신통할 줄은 몰랐다. 그저 법력을 조금 발동한 것만으로도 구슬에서 흡입력이 흘러나와 마치 고래가 물을 마시듯이 체내의 독을 남김없이 흡수했다.

    독을 제거한 뒤 그는 곧장 기혈번 보호막의 보호 아래 거울 요괴를 불러내 거울로 분신을 그 자리에 만들었고, 연연나금의와 은신부를 이용해 근처에 숨어 있다가 상대가 긴장을 풀었을 때 갑자기 공격한 것이었다.

    하지만 흑의의 사내는 반응이 놀랍도록 빨랐고, 가벼운 상처만 입은 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제법 뛰어난 보물이라도 있는 모양이구나. 허나 겨우 그 정도로 나에게 맞설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흑의의 사내는 차갑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을 뿐, 더는 공격하지 않았다.

    “그야 싸워보면 알 것 아니오? 이제 그대의 극독과 신혼 공격은 파악했으니 다른 수를 쓰기를 추천하오!”

    심협은 갑자기 눈을 번득이더니 양손을 바로 결인했다. 그러자 주위에서 빙글빙글 돌던 적과 금의 검광이 갑자기 밝아지더니 수많은 허상을 만들어냈다. 그러더니 두 개의 검산은 엄청난 기세로 흑의의 사내를 압박하며 날아갔다.

    흑의의 사내는 분노한 눈빛으로 몸에서 검은 빛을 뿜어냈다.

    만인도(萬刃圖)의 검은 빛이 갑자기 폭증하더니 수백 개의 검은 비도가 다시 빼곡하게 나타났고, 두 개로 나뉘어 두 개의 검산을 향해 날아갔다.

    콰쾅!

    경천동지할 굉음이 동굴 안에서 폭발했다. 세 가지의 빛이 격렬하게 충돌하자 동굴이 크게 흔들렸고, 주위의 석벽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끊임없이 퍼져 나갔다. 크고 작은 돌들이 떨어지면서 동굴 안은 연기로 가득해졌다.

    하지만 검은 비도와 적금의 두 빛은 서로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고 허공에 버티고 있었다.

    양쪽 모두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심협은 허공의 도산과 검산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갑자기 돌아서더니 왼쪽 아래의 어떤 공터를 향해 쏜살같이 달렸다.

    이를 본 흑의의 사내 역시 그쪽으로 몸을 날렸다. 몸을 감싼 검은 기운에서 날개 같은 검은 형태가 나타나더니 벌떼처럼 빠르게 흔들렸다.

    이어서 기이하게도 그는 날아가다가 순식간에 허공에서 사라졌다.

    다음 순간, 그는 심협 앞 공터에 나타나더니 빠르게 달려오는 심협을 향해 양손을 휘둘렀다.

    몇 개의 검은 기운이 커다란 검은 구렁이로 변해 심협에게 달려들더니 사지를 사납게 깨물었다.

    검은 구렁이의 이빨은 어렴풋이 초록빛으로 번득였는데, 모종의 맹독이 있는 듯했다.

    심협은 악취 나는 비린내가 덮쳐오는 듯한 느낌에 우뚝 멈춰서는 양팔을 벌렸다. 양팔에서 뇌광이 폭증하더니 뿜어져 나간 금빛 뇌전이 몇 개의 번개 구렁이로 변하여 검은 구렁이와 충돌했다.

    콰쾅!

    뇌전과 충돌한 검은 구렁이는 폭발하더니 검은 기운으로 변하여 사라졌다.

    심협이 빠르게 무언가를 읊자 오른팔에서 푸른 빛이 강하게 번득였다.

    그때, 검은 기운에서 갑자기 다급한 피리 소리가 들려왔고, 그대로 그의 머릿속으로 침투했다. 그는 온몸에 소름이 돋고 머리카락이 곤두섰으며, 머릿속이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찰나의 순간, 그는 소년 시절 기억 또는 미래의 일이 보이는 듯했다. 여러 장면이 빠르게 변하면서 극도의 피곤함이 몰려와 당장이라도 정신을 놓고 싶었다.

    “신혼 공격인가?”

    마음속으로 미리 대비했던 심협은 이를 악물고 전력으로 부주진신법을 운공했다. 그러자 머릿속의 신혼이 갑자기 안정을 되찾더니 절대 흔들리지 않을 법한 우뚝솟은 산봉우리 허상으로 변했다.

    정원사리와 반룡벽에서 흘러나온 따뜻한 기운이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와 신혼을 더욱 안정시켜줬다. 이에 머릿속의 온갖 혼란스러운 장면과 함께 피곤함까지 모두 사라졌다.

    심협은 손에서 푸른 빛을 뿜어내며 강하게 땅을 내리쳤다. 그러자 극한의 기운이 갑자기 폭발했고, 순식간에 생겨난 두꺼운 얼음이 흑의의 사내를 향해 빠르게 퍼져 나갔다.

    상대는 검은 피리를 불고 있다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는지 재빨리 피리를 거두고는 양손을 빠르게 결인했다. 그러자 검은 기운이 솟구쳐 나오며 순식간에 바닥에 검은 안개의 벽을 만들어 몰려오는 단단한 얼음을 막아냈다.

    얼음은 검은 안개 벽과 닿자 그 안으로 침투했다. 검은 안개 벽은 갑자기 강렬하게 떨렸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다.

    흑의의 사내는 이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데 그때, 옆에서 갑자기 심협이 나타나더니 두 손을 안개 벽에 대고 푸른 빛을 강하게 뿜어냈다.

    극한의 기운이 갑자기 배로 강해지면서 검은 안개 벽은 순식간에 얼음벽이 되었고, 그 너머 있던 흑의의 사내와 주위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얼음에 갇혀버렸다.

    심협은 눈앞에 얼어버린 흑의의 사내를 보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벌렸다.

    휙!

    예리한 금빛이 얼음을 찔러 들어갔다. 이 금빛은 겹겹의 얼음을 시든 나무처럼 뚫고 들어가 깜짝할 사이에 흑의의 사내 미간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그 순간, 사내의 허리에서 은빛이 반짝이더니 은색 옥패가 소리 없이 부서졌고, 사내는 얼음 속에서 사라져 동굴 다른 곳에 나타났다. 거의 동시에 심협 주위에서는 매우 가느다란 붉은 실이 수없이 떠올라 엄청난 기세로 심협을 향해 휘몰아쳤다. 멀리서 보면 심협은 만치 반투명한 붉은 구슬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구슬은 빠르게 줄어들었고, 뒤로 물러날 곳은 보이지 않았다.

    이 혈사(血絲)를 자세히 보니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고, 보이지 않는 흡입력이 느껴졌다.

    심협의 몸을 두르고 있던 영광은 빠르게 어두워졌고, 체내의 법력도 폭주하여 빠르게 밖으로 쏟아져 나가 그 혈사에 흡수되려 했다.

    혈사는 법력을 흡수하자 마치 거머리가 피를 빨아먹은 것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비록 겉보기에는 머리카락처럼 가늘어 보여도 그 속도는 점점 빨라져갔다.

    이내 그 속에 갇혀서 죽을 것 같았으나, 심협은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결인을 했다. 그러자 얼음 속을 찔러 들어갔던 금빛이 반짝이며 순식간에 커지더니 거대한 금색 봉으로 변해 주위의 모든 얼음을 부수고는 엄청난 기세로 흑의의 사내 쪽을 강하게 후려쳤다.

    꽝!

    굉음과 함께 땅에는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 동시에 사람 반 정도 되는 이상한 핏빛 식물이 땅속에서 나타났는데, 금색 봉의 괴력에 힘없이 붉은 살점으로 변해버렸다.

    혈홍색 식물이 현황일기곤에 맞아죽자 허공에 떠 있던 혈사도 마치 생기를 잃은 듯 순식간에 시들더니 땅으로 떨어졌다. 마치 혈우가 떨어지는 듯했다.

    “명계의 풀까지 조종할 수 있을 줄은 몰랐군.”

    심협은 몸에 다시 영광을 둘러 떨어지는 혈사를 막아내고는 먼 곳에 선 흑의의 사내를 돌아봤다.

    이 혈사들은 두께가 소털의 1푼도 되지 않았으나, 연혼화처럼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매우 은밀하고 기이한 공격을 가해와 신식으로도 알아채기 힘들었다. 가끔 발견될 때면 그 안에 갇힌 자는 이미 목숨을 잃은 뒤였다. 심협도 유명귀안이 아니었다면 위험했을 터였다.

    사실 흑의의 사내는 좀 전에 일부러 심협에게 말을 걸어 혈사가 퍼질 시간을 벌었다. 그렇게 치밀한 계획이 무위로 돌아가자 그는 말없이 심협을 살폈다.

    방금 대량의 검은 기운을 뿜어내어 진창해 신통을 막아내느라 몸에 감돌던 검은 기운이 많이 희박해졌는지 어렴풋이 반짝이는 눈동자가 보였는데, 퍽 놀란 듯했다. 심협의 신통에 놀란 건지 아니면 혈사의 존재를 눈치챘다는 사실에 놀란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혈사를 발동한 식물의 본체를 단번에 간파당한 것에 놀란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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