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60화 (760/1,214)
  • 760화. 비석 속의 물건

    눈앞의 저 연혼화는 형체를 갖추기까지 한참이나 남았지만, 그 안에 담긴 음기가 풍부한 것으로 미루어 대승 절정에 견줄 만한 귀물이었다. 능력도 귀장과 매우 흡수하니 만약 저것을 연화한다면 귀장은 많은 것을 얻게 될 터였다.

    신이 난 귀장을 뒤로한 채, 심협은 주위의 다른 영재와 영초를 지나쳐 중앙의 법진과 비석을 향해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 법진과 비석을 한참이나 살폈지만, 어떤 현묘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험 삼아 푸른 빛을 쏴 봤지만, 비석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데 그때, 법진 안의 부문이 갑자기 검은 빛을 발하더니 뒤이어 심협의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법력을……?”

    심협은 깜짝 놀라 체내를 살폈으나, 오히려 그러자마자 더욱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의 법력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치우의 마기가 줄어들었던 것이다.

    심협은 이전에 묵림갑과 유령주로 마기를 흡수했음에도 그 표면적인 힘만 흡수할 수 있었을 뿐, 경맥 안의 마기는 건드리지도 못했다. 한데 이 비석은 경맥 깊은 곳에 있는 치우의 마기까지 곧바로 뽑아낸 것이다.

    “이 비석은 뭔데 치우 마기를 흡수한 걸까?”

    심협은 내심 흥분하며 중얼거렸다.

    그는 이전에 몇 차례 현양화마 신통을 사용함으로써 체내의 마기를 폭증시켰는데, 본래 균형을 이루던 음양이 위태롭게 되어 다시는 감히 그 신통을 사용할 수 없었다.

    한데 지금 이 비석이 마기를 흡수하다니, 하늘이 돕는 것일까?

    심협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푸른 빛을 발사했다. 이번에는 비석이 아닌 주위의 법진을 향해서였으나, 법진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심협은 그제야 안심하며 곧장 법진 안의 제단으로 올라가 손을 비석에 올려놓고는 마기를 운공하여 비석 안으로 주입했다. 그러자 검은 비석이 번득이더니 고래가 물을 마시듯 치우 마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마기를 빨아들이는 속도에 깜짝 놀란 심협은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고, 비석에게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마기가 빠져나가는 속도를 통제했다.

    체내에서 폭증하던 마기가 빠져나가는 속도가 줄어들자 심협은 자신을 짓누르던 커다란 산이 조금씩 깎여 나가는 듯한 마음이 들었다.

    허나 안타깝게도 비석이 마기를 빨아들이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비석이 흡수할 수 있는 마기의 양에 한계가 있는 모양이군.”

    아니나 다를까, 좀 더 지나자 체내의 마기는 더 이상 빠져나가지 않았다.

    심협은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비석이 흡수한 마기도 저번에 폭증하여 생긴 일부에 불과해 마기가 폭증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간 정도였다.

    그가 내심 실망하고 있는데, 비석에서 갑자기 변화가 일어났다.

    검은 비석에서 갑자기 금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공법 구결 같은 글자가 비석에 나타났다.

    심협은 의아했지만, 정신을 가다듬고 자세히 살펴봤다. 그것은 열석보(裂石步)라는 마족의 신법이었다.

    비석에 새겨진 기록에 의하면 이 신법의 정수는 강력한 육체를 토대로 속도와 힘을 통해 온갖 놀라운 신법 변화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높은 경지까지 익힌다면 수행자는 매우 적은 법력만으로도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게 되는데, 그 정묘함은 사월보를 훌쩍 뛰어넘었다. 게다가 어느 정도의 공격력도 갖추고 있었기에 공수를 겸비함으로써 그 용도가 무궁무진했다.

    다만 아쉽게도 이 신법을 수련하려면 마기를 온몸의 경맥으로 흘려보내야만 했기에 심협은 당연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신 연구한 것만으로도 큰 깨달음을 얻게 됐으니, 후에 사월보나 다른 신법을 사용할 때 참고할 만했다.

    잠시 후, 비석의 부문은 서서히 사라져 원래대로 돌아갔다.

    심협은 다시 비석에 손을 올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기를 계속 주입했지만, 역시나 되지 않았다. 비석, 제단 모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미 얻은 게 상당하니 더는 욕심 부리지 말자.”

    심협은 웃으며 손을 거두었다.

    한데 그의 손이 비석에서 떨어지는 순간, 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평범한 비석이 부서질 때와는 달랐다.

    검은 비석은 심협의 손에 그대로 부서져 수많은 돌가루가 되어 떨어졌다. 그런데 돌가루 사이에서 2척 길이의 검은색 단봉(短棒)이 나타났다. 단봉은 돌가루와 같이 떨어지지 않고 허공에 떠 있었다.

    심협이 손을 살짝 비틀자 이 단봉도 같이 따라 움직였다.

    “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연결이 느껴지는데……. 내 몸 안의 치우 마기를 흡수해서 그런 건가?”

    심협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리고는 검은색 단봉을 움켜쥐었다.

    한데 단봉을 쥐자 기이한 흡인력이 바로 단봉에서 흘러나왔다.

    심협은 단봉을 가볍게 던졌다.

    봉은 검은 허상으로 변하여 부근의 귀화수를 두들겼고, 그 순간 나무 꼭대기에 약한 붉은 빛이 떠올랐다.

    본래 두껍고 무뎠던 봉이 마치 예리한 신병처럼 단단한 귀화수 나무줄기를 뚫고 들어갔다.

    빠르게 반짝거리던 귀화수의 초록 빛이 순간적으로 굳더니 빠르게 어두워졌고, 가지와 나뭇잎도 마치 모든 수분을 빼앗긴 것처럼 빠르게 말라버렸다. 나뭇잎들이 우수수 떨어졌고, 커다란 나무는 와르르 무너져 수많은 자갈 같은 부스러기가 되어 땅에 흩날렸다.

    심협은 이 광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손을 들었다.

    허공에 떠 있던 검은 봉이 빠르게 날아와 다시 그의 수중에 들어오는 순간, 손에서 갑자기 시원한 기류가 느껴지더니 온몸 곳곳을 빠르게 돌아다녔다.

    앞선 전투로 비록 중상을 입지는 않았어도 크고 작은 상처가 적지 않았고 온몸이 조금 뻐근했는데, 이 시원한 기류가 한 바퀴 돌고 나자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거의 절반이 순식간에 회복된 것이다.

    “이건……?”

    그는 놀란 표정으로 다시 단봉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단봉은 굵기가 팔뚝 정도였고, 표면이 차가워 나무 같으면서도 또 철 같기도 했다. 단봉 안에는 어렴풋이 수많은 붉은 실이 보였는데, 서로 뒤엉켜 있어서 마치 사람 몸속의 핏줄 같았다.

    심협이 법력을 주입하자 검은 봉에서 갑자기 엄청난 검은 빛이 떠올랐다. 더없이 순수한 마광(魔光)이었다.

    검은 마광에는 붉은 실이 섞여 있었는데, 매우 기이했다.

    “이건 마기(魔器)로구나. 그래서 이렇게 엄청난 흡입력이 있었던 거야!”

    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치우 마기가 있었기에 마봉에도 보통 사람처럼 반감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 마봉이 무척 마음에 들어 한참을 살피다가 챙겼다.

    그때, 날카로운 바람 소리가 옆에서 들려오더니 강렬한 귀기 파동이 느껴졌다.

    얼른 돌아보니 이미 연혼화 안의 음기를 전부 빨아들여 귀기가 폭증한 귀장이 서 있었다. 현재 그는 대승 후기로 돌파하기 위해 땅에 가부좌를 튼 채 폭증하는 귀기를 다스리고 있었다.

    귀장의 몸에서는 귀기가 흘러나왔는데, 어렴풋이 검붉은 가사를 입은 사악한 중의 허상이 보였다. 얼굴 반쪽은 한없이 자비로웠지만, 나머지 반쪽은 흉악하게 일그러져 있어서 매우 기괴한 모습이었다.

    심협은 서둘러 귀장 옆으로 다가와 그 뒤에 나타난 사악한 중의 허상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잠시 후,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귀장을 건곤대 안으로 넣었다.

    흑연미굴에는 음수가 많아서 언제 위험이 닥쳐올지 알 수 없으니 건곤대 안에서 안정적으로 수련하는 게 더 나을 터였다.

    “감사합니다, 주인님. 잠시만 경지를 안정시키면 바로 싸울 수 있을 겁니다.”

    귀장의 목소리가 건곤대 안에서 들려왔다.

    심협은 귀장의 말에 개의치 않고 주위의 음속성 영재를 둘러보고는 두 개의 푸른 빛을 번득이며 빠르게 채취했다.

    이 음속성 영재들은 비록 연혼화에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밖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한데 그때, 동굴 위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한 인영이 허공에서 떨어졌다.

    영초를 채취하던 심협을 본 이 검은 옷의 남자는 이곳에 누군가 있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는지 검은 기운을 뿜어냈다.

    심협도 갑자기 나타난 상대를 보고는 깜짝 놀라 채취를 멈췄다.

    사내에게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기운으로 미루어 진선기였는데, 법력과 마기, 두 종류의 파동이 흘러나오는 것이 그 기운이 매우 기이했다.

    흑의의 사내는 시선을 돌려 동굴 중앙에 있던 법진과 비석을 살피더니 이내 안색이 돌변했다.

    “네가 진안을 부수고 안에 봉인되어 있던 마기를 가지고 간 것인가?”

    검은 옷의 남자가 다시 심협을 돌아보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검은 기운에 싸여 있었음에도 심협은 그 차가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소. 안에 있던 물건을 내가 가졌소. 그대는 뉘시오? 내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 게요?”

    심협은 순순히 인정했다. 지금 자신의 실력이라면 상대가 진선 후기의 존재라 해도 두려울 게 없었다.

    “인정하니 좋군. 마기와 두 팔을 순순히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내 팔을 내놓아라? 여기 있소. 원한다면 가져가 보시오.”

    심협은 비아냥거리며 팔을 들어 올렸다.

    “명을 재촉하는구나!”

    검은 옷의 남자는 차갑게 비웃더니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입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빛이 순식간에 심협의 머리 위에 나타나더니 시커먼 비도(飛刀)가 되어 그대로 베어왔다.

    심협이 기혈번을 꺼내 가볍게 흔들자 검은 장막이 나타나 그를 보호했다.

    기혈번의 광막에 충돌한 검은 빛의 비도는 굉음과 함께 튕겨나갔다. 그러고도 광막은 멀쩡했다.

    하지만 흑의의 사내는 이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심협은 눈썹을 찌푸리며 신식을 펼쳤는데, 다음 순간 안색이 급변하더니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심협이 방금 전까지 서 있던 땅이 갑자기 쩍 갈라지더니 10여 개의 커다란 덩굴이 튀어나와 그를 휘감으려고 했다. 덩굴마다 뾰족한 가시가 박혀 있었고 틈이 벌어져 있었다. 그 틈에는 빽빽한 이빨이 박힌 채 섬뜩한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끊임없이 씹어댔다.

    심협이 한 손을 허공에 뻗자 붉은 빛과 함께 순양검이 나타났다.

    순양검을 크게 휘두르니 수많은 검의 허상이 뿜어져 나가 덩굴을 뒤덮었고, 덩굴들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나 잘린 덩굴이 갑자기 폭발하면서 수많은 자흑색 안개로 변하더니 순식간에 반경 수십 장을 뒤덮었다.

    안개에 휩쓸린 심협의 코를 역한 냄새가 찌르자 그 높은 경지와 강인한 육체에도 불구하고 눈앞이 흐려지고 오장육부에는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시독(尸毒)!”

    심협은 가슴이 철렁하여 서둘러 호흡을 멈추는 동시에 기혈번을 발동하여 더 두꺼운 검은 광막을 만들어 모든 안개를 차단했다. 그러자 한결 나아졌다.

    그는 이어서 보라색 구슬, 만독혼원주를 꺼내 입에 넣었다.

    허나 그가 구슬을 발동하여 극독을 없애기도 전에 눈앞의 허공이 흔들리더니 검은 옷의 남자가 귀신처럼 나타났다. 그는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심협은 마치 수많은 바늘로 머릿속을 찌르는 듯한 고통에 머리를 감싸 쥐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기혈번의 검은 광막이 그 영향으로 크게 흔들리면서 얇아졌다.

    검은 옷의 남자는 소매를 뿌리쳐 검은 빛을 쏘아 보내고 곧바로 몇 자루의 검은 비도를 만들어내 세차게 기혈번의 광막을 내리쳤다.

    콰직!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기혈번의 광막에 금이 갔고, 대량의 자흑색 안개가 그 틈으로 침투해왔다. 그와 동시에 땅이 다시 갈라지더니 수십 개의 커다란 덩굴이 솟아 나와서 순식간에 심협과 주위의 검은색 광막을 휘감았다.

    초록색 덩굴은 빠르게 자라났는데, 나뭇가지에서는 분홍색의 커다란 꽃송이가 피어나 노란색 꽃가루를 뿜어댔다.

    이 꽃가루의 달고 시큼한 냄새를 맡은 순간, 심협은 맥이 빠지고 힘이 풀리면서 법력 운공도 느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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