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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59화 (759/1,214)

759화. 비석

심협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신장화포를 넣은 뒤로 언술에 더 흥미가 생겨나서 또다시 수첩을 뒤적거렸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수첩 뒷부분에 기록된 내용은 수련 심득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저 청년 남자의 과거에 관한 내용뿐이었다.

그의 본명은 원문례(元問禮)로, 본래 낭하국(郞夏國) 사람이었다. 낭하국은 범인(凡人)들이 사는 나라였는데, 천기성과 가까운 덕에 기관 언술에 능했고, 특히 사막을 건너는 배와 수레 등의 제작에 능하여 부유해졌다. 서역의 여러 나라와 대당과도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백여 년 전, 갑자기 닥친 재난에 부유했던 작은 나라는 멸망했고, 지도에서도 지워졌다. 성곽 건물은 남아 있었지만, 모든 국민이 하룻밤 사이에 도륙당했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과거 천기성의 제자가 된 원문례였다.

천기성은 장로들을 낭하국으로 보내 조사했지만, 몇 년이 지나도록 범인을 찾지 못했다. 결국 천기성은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하고 조사를 포기했다.

운문례의 모든 가족과 벗은 그 재난으로 목숨을 잃었고, 그는 한 나라의 마지막 백성이자 한 나라의 고아가 되었다.

종문은 조사를 포기했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순식간에 백여 년이 지났지만, 그는 끊임없이 진범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아쉽게도 결말을 짓지 못했다.

그가 이런 기록을 남긴 것은 시간이 오래 지나면서 자신조차 점점 원한을 잊고 과거를 잊은 채 살아가게 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의 글씨에는 진범을 향한 잊지 못할 원한이 가득했다.

하지만 결국 원문례는 원한을 풀지 못하고 죽었다.

심협은 수첩을 덮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이 죽으면 등불이 꺼지는 것처럼 모든 과거가 한 줄기 연기가 되어 결국은 사라지는 법.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대를 위해 무덤을 만들고 극락하기를 기원해주는 것뿐이겠구려.”

그는 통로 입구 옆에 구덩이를 파고는 자신의 옷으로 원문례의 시신을 감싸 묻어주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잠시 조의를 표한 뒤, 심협은 다시 연연나금의를 발동하고 은신부를 몸에 붙여 몸을 숨긴 채 음수들이 가려던 방향으로 빠르게 달렸다.

갈수록 법력 표식이 점점 선명하게 느껴지자 심협은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반 시진 정도 나아가자 뚝 끊긴 막다른 길이 나타났다.

“이럴 리가 없는데……? 그 음수들이 원문례를 끌고 막다른 길로 가려고 했을 리가 없다. 그것들은 영지가 높지 않으니 무언가에 이끌려 그리했을 것이다.”

심협은 길을 막은 석벽 앞에 선 채 신식을 펼쳐 주위를 살폈다. 이곳은 음기가 더욱 짙어서 신식은 겨우 2리 정도 펼칠 수 있었다.

“정말로 막다른 길인가? 길을 잘못 든 모양이군.”

그가 중얼거리며 돌아서서 떠나려 할 때였다.

“주인님, 잠시만요. 근처에 음속성 영재가 있습니다. 제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건곤대에서 나온 귀장 조비극이 석벽을 바라보며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음속성 영재? 이쪽에?”

심협은 당황스러웠지만, 연연나금의의 허화 신통과 둔지술을 발동하여 석벽 안으로 들어갔다.

귀장도 혼체(魂體)로 변하여 심협의 곁을 따랐다.

그들이 석벽 안을 한참이나 가로질러 가자 갑자기 앞이 뻥 뚫렸다.

섬뜩한 기운이 사방에서 밀려왔고, 기온이 갑자기 낮아진 느낌이 들었다.

눈앞은 캄캄했고, 발밑의 길만 어렴풋이 보였다.

심협이 신식과 영목 신통으로 주위를 살펴보려는 순간, 날카로운 바람이 휙 불어왔다.

심협은 곧장 옆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이 날카로운 바람을 피했음에도 기이한 진동이 전해졌다.

그 순간, 심협은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고, 머릿속은 마치 누군가에게 강하게 맞은 것처럼 정신이 혼미해졌다.

“이런, 음파 공격이다!”

귀장과 파사가 음파 공격에 능숙했기에 심협은 이런 공격이 낯설지 않았다.

옆에 선 귀장이 포효하며 달려들었고, 곧이어 펑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은 그 틈에 음파 공격권에서 벗어나 신식을 펼쳐 상황을 살폈다.

그곳은 거대한 지하 공간이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음속성 영목과 영초가 숲을 이루고 있었다. 모든 영재에서 강렬한 음기의 파동이 느껴졌는데, 품급이 낮지 않아 보였다.

공간 중앙 바닥에는 거대한 법진의 도문이 새겨져 있었고, 그 안에는 하얀 돌로 쌓은 제단이 보였다.

제단 중앙에는 검은색 돌비석이 세워져 있었는데, 높이는 3척 정도였고, 겉에는 어떤 부문이나 문자도 없어서 거울처럼 매끄러웠다.

법진 돌비석 주위에는 각종 음수가 가득했는데, 대다수가 반은 인간이고 반은 박쥐의 모습이었다. 대승기 음수도 십여 마리나 됐는데, 보아하니 비석과 법진을 지키고 있는 듯했다.

좀 전에 심협을 공격한 것은 한 마리 대승 후기의 박쥐 음수였다. 다만 귀장은 본래도 약한 편이 아닌 데다 심협에게서 받은 검은색 귀도 법보가 있었기에 박쥐 음수의 공격을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승기를 잡기까지 했다.

심협은 연연나금의를 힐끗 내려다보더니 한 손으로 결인했다.

후욱!

연연나금의에서 피어오른 십여 장 크기의 푸른 구름이 그의 몸을 뒤덮었다.

구름에 뒤덮인 심협은 낮게 외치고는 법진과 비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박쥐 음수들은 눈에서 흉흉한 빛을 발하며 날개를 펄럭여 돌진해왔다.

반투명한 음파가 휘몰아쳤고, 큰 파도와 같은 음파 공격이 푸른 구름을 수없이 공격했다.

구름 주위 허공에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떨리는 음파가 몰아쳤지만, 푸른 구름은 그저 떨리기만 할 뿐 여전히 빠르게 이동했다. 이에 박쥐 음수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음수 하나하나의 음파 공격은 위력이 그리 강하지 않았지만, 하나로 합쳐지면 진선기 존재도 감히 정면으로 맞서지 못할 정도였다.

연연나금의는 허화되어 공격을 회피할 수 있지만, 신장화포 정도의 강력한 공격은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음파류처럼 강도가 높지 않은 광범위한 공격에 대응하기에는 가장 적합했다.

푸른 구름이 엄청난 기세로 박쥐 음수 떼로 돌진해 녀석들을 갈라놓았다.

휙! 휙!

붉은색과 금색의 검광이 하늘을 찌르는 검기를 발하며 구름에서 나오더니 하늘을 베어버릴 기세로 빠르게 음수들 틈으로 떨어졌다.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음수 하나가 검광에 베어 몸이 두 동강 났고, 검은 기운으로 변하여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십여 마리의 음수가 죽자 남은 박쥐 음수들은 당황하여 뿔뿔이 흩어졌다.

귀장과 싸우던 대승 후기 박쥐 음수도 이를 보고는 깜짝 놀라더니 음기를 있는 대로 뿜어내 고막을 찢는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검은 음파가 빠르고 강하게 귀장을 향해 날아갔다. 음파는 흉망(凶芒)으로 반짝였고, 지나가는 곳마다 허공이 떨려왔다.

귀장은 안색이 변하여 감히 맞서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박쥐 음수는 그 틈에 두 날개를 빠르게 펄럭여서 사라지더니 멀리서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고 있는 박쥐 떼 근처에 나타나 다시 한번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그러자 도망가던 박쥐 음수들이 바로 안정을 되찾았다.

모든 대승 후기 박쥐 음수가 날아와 나란히 서더니 동시에 날개를 펄럭였다. 그리고 이 대승 후기 음수들을 중심으로 모든 박쥐 떼가 몰려와 대열을 이루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박쥐가 커다란 날개를 펄럭이는 것 같았다.

“이건……?”

푸른 구름 안에 있던 심협은 그 광경에 내심 당황했다.

“꽤액!”

거대한 박쥐 하나가 울부짖자 이전보다 열 배나 더 커다란 검은색 음파가 하늘을 뒤덮으며 날아왔다.

‘저건 위험하다!’

구름 속의 심협은 표정이 급변해 허공에 떠 있는 두 개의 비검으로 막으려 했다. 그러다가 순간 무언가 퍼뜩 떠오른 것이 있었다. 바로 신장화포였다.

신식과 법력을 주입하자 언문(偃紋)이 순식간에 환하게 빛났다. 뒤이어 포구에서 하얀 빛이 번쩍이더니 거대한 빛기둥이 뿜어져 검은색 음파의 중앙에 꽂혔다. 그러자 음파는 썩은 나뭇잎처럼 가볍게 부서졌다.

게다가 위력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하얀 빛기둥이 계속해서 날아가면서 몇 마리의 음수가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다.

심협이 법결을 바꾸자 갑자기 폭증한 하얀 빛기둥에 절반의 박쥐 음수들이 휩쓸렸다.

심지어 대승 후기 박쥐조차 이 하얀 빛에 휩쓸리자 햇살 아래의 눈처럼 순식간에 증발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 번의 발사로 수백 마리의 음수들이 사라진 것이다!

남은 음수들은 겁에 질린 듯 사방으로 흩어져 눈 깜짝할 사이 모두 사라졌다.

심협도 굳이 녀석들을 쫓아가지 않고 신장화포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포의 위력은 강력하지만 이제 한 발밖에 남지 않았구나. 정말로 아껴 써야겠어.’

신장화포를 거둔 그는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주인님, 방금 그건 뭐였습니까? 위력이 너무 강력해 음수들이 부스러기조차 남지 않았으니 너무 아깝습니다.”

귀장이 다가오며 말했는데, 그 목소리에는 원망이 섞여 있었다.

심협은 귀장을 신경 쓰지 않고 동굴 중앙의 법진과 비석을 향해 다가갔다.

한데 막 두 걸음을 옮겼을 때, 발밑에 무언가가 걸렸다.

그가 뭔지 확인하려는데 발 근처에서 갑자기 도깨비불 같은 초록색 빛이 반짝였다. 뒤이어 이 빛은 갑자기 심협 앞에서 저 멀리로 빠르게 날아갔다. 빛이 지나는 곳마다 불이 붙은 듯 일제히 초록빛으로 반짝거렸다.

이 빛은 삽시간에 수백 장까지 퍼지자 지하 동굴 전체가 초록빛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그제야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앞에는 높이 십여 장의 이상한 나무들이 자라 있었는데, 넓은 나뭇잎이 무성했다. 수십 장 길이의 덩굴이 땅에 드리워져 있어서 마치 타오르는 초록색 불꽃 같았다.

방금 그의 말에 걸린 것도 바로 길게 늘어진 덩굴이었다.

“귀화수(鬼火樹)?”

이상한 나무의 정체를 알아본 심협의 눈이 커졌다. 실로 흔하지 않은 음속성의 음수(陰樹)였던 것이다.

귀장은 환호성을 지르며 앞으로 달려갔는데, 귀화수가 아니라 그 부근에 있는 몇 척 크기의 크고 검은 영화(靈花)를 향해 달려갔다.

이 꽃은 줄기에 대나무처럼 마디가 있었다. 마디는 총 여덟 개 정도였고, 꽃잎은 기괴하게도 사람의 웃는 얼굴 같았다. 이 꽃에는 검은 기운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반경 몇 장이 텅 빈 상태였다.

귀장이 검은색 괴화(怪花)에 다가가자 이 꽃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귀장을 향해 얼굴을 돌리더니 꽃잎에서 검은 기운을 뿜어냈다.

귀장은 당황하지 않고 입을 벌려 검붉은 빛을 뿜어내 오히려 괴화의 검은 기운을 휘감았다. 익힌 지 얼마 되지 않은 형흉신광 신통이었다.

괴화가 뿜어낸 검은 기운을 모두 빨아들인 검붉은 형흉신광의 빛은 곧장 꽃의 본체를 휘감았다.

짙은 검은 기운이 괴화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형흉신광의 빛에 빠르게 흡수되었고, 빨려 들어가는 검은 기운에서 어렴풋이 귀신 같은 모습이 보였다.

귀장은 쉬지 않고 빨아들였다.

“저건 연혼화(煉魂花)인가?”

심협은 멀리서 이 검은 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귀시에서 읽었던 영초에 대한 서책에 저 꽃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 꽃은 초목임에도 공격성이 있어서 가까이 다가온 생명의 살과 혼을 모두 잡아먹고 흡수해 버리는데, 이는 귀장의 형흉신광과 비슷했다.

이 꽃은 성장이 매우 느려서 천 년에 열매 하나를 맺는데, 한 번에 열 개 정도가 맺히면 영초의 모습에서 벗어나 사람의 모습으로 변한다. 이 꽃이 화령(化靈)에 성공한다면 신통의 강력함은 진선기의 존재보다도 훨씬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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