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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58화 (758/1,214)

758화. 시도

‘됐다. 인형의 성까지 안내했으니 약속은 지킨 셈이다. 이제 알아서 하겠지.’

심협은 속으로 생각했다. 게다가 저들이 인형의 성에 온 목적은 자신과 다르니 어차피 이제 각자 움직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부 형은 어떻게 됐을까? 괜히 내가 같이 오자고 해서 위험에 빠뜨렸군.”

심협은 분노가 치솟았고, 그러자 눈에 살기가 이글거렸다. 부동래가 살아 있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귀언의 손에 죽었다면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심협은 천천히 눈을 감고 신식을 펼쳐 자신이 남긴 법력 표식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다시 눈을 떴는데, 두 눈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매 장로에게 말했던 대로 이곳은 흑유미굴 깊은 곳이라 음기가 매우 짙었고, 펼칠 수 있는 신식의 범위가 크게 좁아져 평소의 3할에도 미치지 못했다. 법력 표식이 느껴지기는 했으나 너무 희미해서 알아채기도 힘들 정도였다.

심협은 앞에 펼쳐진, 아무것도 없는 넓은 통로를 바라보며 연연나금의를 입었다. 좀 전에 푸른 구름이 되었을 때 금색 화포에 뚫렸음에도 영의에는 아무런 손상도 없었다.

이어서 그는 은신부를 꺼내 법력을 주입한 뒤 가슴에 붙였다. 부적에서 밝은 빛이 번쩍이더니 하얀 광흔이 천천히 번져 전신을 가렸다. 그 순간, 그의 모습은 통로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모습을 감춘 심협은 통로 깊은 곳을 향해 내달렸고, 동시에 방금 손에 넣은 금색 화포를 꺼내 신식으로 살폈다. 그러나 그의 신식이 들어가자마자 이전 언무사의 비연주 때처럼 부드러운 힘이 밀려나와 막았다.

‘언무사와 매 장로가 그 여시를 아는 것 같았는데, 천기성 제자였나? 그 금색 화포도 언갑 같은데…….’

그는 바로 천기성 제자처럼 신식을 최대한으로 응집시켜 천천히 금색 화포 안으로 흘려보내면서 법력도 함께 밀어 넣었다.

이번에는 그의 신식이 약간만 담겼기 때문인지 화포에서 희미한 금빛이 떠올랐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그 뒤로는 그가 아무리 노력해도 금색 화포 안으로 더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니 화포를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언갑을 사용하려면 독특한 비법이 필요한 모양이군.”

심협은 아쉽다는 듯 고개를 젓고는 금색 화포를 챙겨 넣었다.

통로는 어두웠고, 곳곳이 부패한 냄새로 가득했으며, 바닥에도 이끼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 긴 편은 아니었기에 얼마 후 끝이 보였는데, 또다시 몇 개의 갈림길이 나타났다.

심협은 잠시 읊조리고는 법력 표식과 가장 가까운 통로를 선택하여 빠르게 전진했다.

한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전방에서 마치 무언가 바닥에 끌리는 듯한 슥슥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은 조심스럽게 통로 입구로 다가가 안쪽을 들여다봤다. 두 마리의 음수가 좌우에서 시체의 두 발을 잡고는 끌고 가는 중이었다. 시체가 지나간 곳마다 기다란 핏자국이 남겨졌다.

음수들은 그의 존재를 눈치챈 듯 걸음을 멈추고 통로 입구를 돌아봤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는 텅 빈 통로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두 마리 음수는 잠시 통로 쪽을 향해 코를 찡그리며 킁킁거렸다.

그때, 그들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나더니 금빛 용의 발톱으로 가볍게 놈들의 머리를 꿰뚫었다.

심협은 두 손을 거둔 뒤 황정경 공법을 흩어버렸다. 이어서 두 음수의 시체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들이 끌고 가던 시체를 자세히 살폈다.

한 청년이었는데, 낯익은 얼굴이었다. 천기성 제자 중 하나로, 조용히 따라오기만 할 뿐 대화는 해본 적이 없는 자였다. 이 청년은 심지어 동행하는 사형제와도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했다.

“운이 없었구려.”

심협은 고개를 저으며 한탄하고는 남자의 오른손에 끼워진 약지를 보았다. 정교한 황금빛 반지에는 푸른 보석이 박혀 있었다. 저물법기였다.

심협은 그 반지를 빼 구구연보결을 운공하여 빠르게 연화했다.

저물 반지를 열어 그 안에 있던 몇 가지 물건을 꺼냈다.

그중 푸른색과 붉은색 구슬이 가장 눈에 띄었는데, 영문이 가득했다. 그것은 바로 대승기 급의 언갑으로, 품급은 평범해 보였다.

두 언갑 외에 소가죽으로 만든 수첩 하나와 단약이 담긴 병 그리고 십여 개의 주먹만 한 하얀색 정석이 있었다.

심협은 먼저 병들을 살폈는데, 그 안에는 단약이 담겨 있었다. 평범한 대승 초기 수사에게 쓸모 있는 단약으로, 효능에는 제한이 있어 그에게는 큰 소용이 없을 터였다.

하얀 정석에는 평범한 선옥보다 강력한 영력이 담겨 있었지만, 매우 혼란스러워 그리 순수하지 못했다.

이어서 수첩을 펼쳐 뒤적거려보니 청년이 수련하며 얻은 깨달음과 언갑을 만드는 방법, 꼭두각시를 조종했던 경험 등이 담겨 있었다. 그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영혼의 힘을 단련하는 천기성의 비술이었다.

수첩에 내용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심협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많았다.

심협은 언갑이 사람과 요수의 신체 구조를 본떠서 만든 것임을 수첩을 통해 알게 됐다. 초급 언갑은 보통의 나무인형 꼭두각시보다 약간 강한 편이지만, 그 자체의 재료도 더 튼튼하고 조종이 간편하며 살상력도 상대적으로 뛰어났다.

중급 언갑은 부적이나 법기 등으로도 다룰 수 있지만, 여전히 주인이 신경 써서 조종해야 했다. 그리고 아무나 조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천기성이 만든 언갑은 법보와 마찬가지로 반드시 독문 비법으로 제련해야 움직일 수 있었다. 또한, 언갑을 조종하려면 신혼의 힘이 중요했다. 그래서 천기성 제자들은 천기단신결(天機鍛神訣)을 통해 신혼을 단련했다. 이 신결 덕에 천기성이 지금의 수준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본 심협은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무거워졌다. 언갑은 제련을 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데 천기성의 독문 제련술이 없으면 금색 화포나 저물법기 안에 있던 두 개의 대승기 언갑도 모두 사용할 수 없지 않은가.

“선천연보결은 홍황 시기 여와 성인이 만든 신통이라 세상 모든 법보를 연화할 수 있는데……. 혹시 언갑도 제련할 수 있을까?”

그는 그런 생각이 떠올랐으나 바로 시도하지 않고 우선 수첩을 더 살폈다.

고급 언갑은 품질이 비약적으로 향상돼 언갑 자체에 신혼 같은 물건이 생겨나 각 부위와 조화를 이룸으로써 강력해진다. 앞서 천기성 사람들이 음혼주를 수집했던 이유였다. 음수의 신혼의 힘이 담긴 음혼주를 언갑 머리의 혼실(魂室)에 넣으면 신혼을 나누거나 혹은 완전한 상태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당연히 고급 언갑일수록 더 강한 신혼의 힘이 필요해진다.

“인형의 성도 언갑이라고 했지? 그렇다면 그 안에 있던 음혼주에는 얼마나 강력한 신혼의 힘이 담겨 있다는 거야?”

상상만으로도 섬뜩했다.

고급 언갑을 사용하려면 수사 역시 더 큰 신혼의 힘이 필요한데, 반드시 혼사(魂絲)를 만들어야만 가능하다고 수첩에는 기록되어 있었다.

“혼사? 언무사나 매 장로가 언갑을 조종할 때 미간에서 뿜어져 나온 그건가?”

그러나 언갑 등급에 관한 내용은 여기가 끝이었다.

심협은 수첩을 접고 두 개의 언갑 구슬을 꺼내 법력과 신혼의 힘을 주입했고, 선천연보결로 제련을 시작했다.

두 구슬에서 영문이 반짝거리며 떠오르더니 점점 밝아졌다.

심협은 이 광경을 보며 기뻐했다. 선천연보결은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신통해 언갑도 연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마음을 다잡고 언갑 연화에 집중했다. 그리고 반 각 정도가 지나자 두 개의 구슬에서 영광이 뿜어져 나왔다. 연화가 완성된 것이다.

구슬을 던지자 금속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두 개의 구슬 모두 빠르게 커져서 순식간에 1장 크기의 우람한 병사로 변했다.

하나는 온몸이 붉은색이었고, 허리에 6척 장도(長刀)를 차고 있었으며, 가슴에는 커다란 둥근 구멍이 있었다. 구멍 주위에는 불꽃 모양의 부문이 그려져 있었고, 온몸에서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다른 하나는 푸른색과 검은색이 섞인 갑옷을 입은 채 손에는 검은 방패를 들고 있었다. 허리에는 은색 사슬이 휘감겨 있었다. 가슴에는 하얀색 정석이 박혀 있었는데, 온몸에서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두 언갑은 약하지 않았지만, 품급은 중품으로 높지 않았다.

심협이 신혼의 힘을 운공하자 언갑 안의 언문법진(偃紋法陣)과 연결되었다.

다음 순간, 붉은 언갑의 두 눈이 붉게 번득였고, 흐트러져 있던 자세가 갑자기 곧아지더니 가슴의 불꽃 문로(紋路)가 번쩍였다. 그러자 가슴의 구멍에서 뜨거운 불길이 타올랐다.

청흑 언갑도 두 눈이 하얀 빛으로 번쩍였고, 코에서 훅 하고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갑옷에서는 쩌적 하는 소리가 울리더니 한기가 흘러나왔다. 이어서 방패를 든 손을 앞으로 내밀었고, 다른 손으로는 허리춤의 사슬을 움켜쥐더니 휘둘렀다.

촤르륵!

은색 사슬이 순식간에 팽팽해졌고, 차가운 빛이 감도는 장검으로 변했다.

“훌륭해! 평범한 음수나 동급의 수사와 싸우기에 충분하겠어!”

심협은 크게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의식을 발동하자 붉은 언갑이 챙 하며 허리춤에서 칼을 빼 들더니 옆에 선 청흑색 언갑을 향해 강하게 내리쳤다.

청흑 언갑도 심협의 지령대로 방패를 들어 공격을 막은 뒤, 곧장 은색 장검을 가로로 베었다.

거대한 방패가 검 앞을 막았으나, 방패에 닿기 직전 장검이 갑자기 느슨해지면서 다시 사슬로 변했다. 사슬은 부드럽게 꺾이면서 날카로운 사슬 끝으로 붉은 언갑을 찔렀다.

“병연검(柄鏈劍)이었구나!”

심협이 내심 감탄했다.

한편, 붉은 언갑이 방패를 내리자 연검은 그대로 가슴의 텅 비어 있는 부분을 찔러 들어갔다.

뒤이어 가슴의 불꽃 문로가 번득이면서 텅 비어 있던 곳에서 불꽃이 폭발했고, 그대로 청흑의 언갑을 향해 뿜어낼 기세를 보였다.

“그만!”

심협이 바로 제지했다.

이번 싸움에서 그는 처음에만 서로를 공격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후로는 간섭하지 않았는데 두 언갑은 음혼주를 통한 신혼의 힘으로 전투 본능을 발휘하여 서로 공격을 펼친 것이다.

“역시 보통의 꼭두각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겠어!”

두 언갑의 힘은 그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이에 따라 천기성에 관한 평가도 한 단계 더 높아졌다. 일개 제자가 만든 언갑이 이 정도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방전이 끝나자 붉은 언갑의 영광이 빠르게 어두워졌다.

심협이 손으로 언갑의 배를 톡톡 두드리자 그 부근에서 철컥 소리가 나면서 움푹 들어갔다. 그 안에는 하얀 정석이 꽂혀 있었는데, 저물법기 안에 있던 정석들과 똑같은 것이었다. 다만 그 안의 영력은 바닥난 상태였다.

심협은 수첩을 통해 이 하얀 정석이 천기성의 특수한 비법으로 대량의 선옥을 이용해 만든 언정(偃晶)임을 알아냈다. 이것이 바로 언갑의 힘의 근원이었다.

그가 새로운 언정을 꺼내 안에 장착하자 붉은 언갑의 영광이 다시 밝아졌다.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휘두르자 두 개의 언갑은 무기를 거두었고, 영광과 함께 다시 구슬 형태로 돌아갔다.

그는 두 개의 구슬을 챙긴 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금색 화포를 꺼내 법력과 신혼의 힘을 주입하였다. 동시에 선천연보결로 연화를 시도했다.

금색 화포가 금빛으로 번쩍이기 시작했고, 빛은 점점 강렬해졌다.

이번에는 일각 정도 지나서야 금색 화포 안의 금제를 제련할 수 있었다.

제련이 끝나자 신식도 순조롭게 금색 화포 안까지 들어갔는데, 그 안에는 화포의 이름과 등급, 발동법 등이 적혀 있었다.

“신장화포(神匠火砲)?”

이 화포는 고급 언갑 중에서도 절정급이었다. 다만 좀 전의 두 언갑과 달리 기능이 단순하여 법보에 가까웠다. 그러니 사용은 더 간단했고, 신혼의 힘만 충분히 강하면 혼사를 단련하지 않아도 조종할 수 있었다.

심협의 얼굴에 주체할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이 상태라면 자신도 바로 화포를 사용할 수 있을 터였다.

신장화포의 위력은 그도 잘 아는데, 거의 신기(神器)라고 할 만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바로 언정이었다.

심협이 신장화포 끝을 두 번 두드려 움푹 들어간 곳에 장착된 하얀 언정을 보았다. 이 언정은 앞서 본 두 언갑의 것보다 두 배는 컸다.

천기성의 언갑은 품급에 따라 필요한 언정도 품급이 달랐다. 인간 형태의 언갑이 사용하는 것은 중급 언정이었고, 신장화포에 필요한 것은 고급 언정이다. 현재 그에게는 고급 언정이 이것 하나밖에 없었다. 현재 상태로는 두 번 정도 사용하면 언정에 담긴 영력이 고갈될 터였다.

‘어쨌든 나중에 고급 언정을 구할 방법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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