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7화. 여시왕(女尸王)
“매 장로님, 이제 어디로 가죠?”
언무사가 갈림길을 바라보며 매 장로에게 물었다.
매 장로는 말없이 또다시 은색 가루를 뿌렸다. 은색 가루는 몇 개의 통로로 흩날렸다.
한데 그때, 모두의 발밑에서 갑자기 이상한 혈광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안에서 대량의 핏빛 안개가 솟아 나와 빠르게 퍼졌다.
모두가 당황하여 서둘러 물러났고, 법보나 언갑을 소환하여 몸을 보호했다.
하지만 혈무는 가볍게 법보와 언갑의 영광을 뚫고 몸으로 침투하더니 기이한 기류로 변하여 머릿속으로 돌진했다.
심협은 깜짝 놀라 더는 숨기지 않고 전력으로 황정경을 운공하는 동시에 순양검과 참마검의 위능을 발동했다. 하늘을 찌르는 순양의 금빛이 폭발하면서 제때 혈무를 막아냈지만, 일부는 그의 몸을 타고 흘러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머릿속이 웅 하고 울리더니 피와 살육에 대한 욕구가 솟구쳤다. 두 눈에는 핏발이 섰다.
허나 그는 여러 번 이런 상황을 겪어왔기에 능숙하게 부주진신법을 운공하여 머릿속 신혼의 힘을 거대한 산맥의 허상으로 만들어 순식간에 살의를 억눌렀다. 동시에 반룡벽과 정원사리가 동시에 빛을 뿜어냈다. 두 개의 순수한 힘이 체내로 흘러들어와 부주진신법과 함께 살의를 완전히 몰아냈다.
심협은 눈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수십 장을 날아가 혈무의 범위를 벗어났다.
‘살육을 유도하는 혈무라니, 이게 임감이 이전에 말했던 이상한 혈무인가?’
그는 혈무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휙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오더니 두 사람이 혈무에서 빠져나와 그의 근처로 와서 섰다. 매 장로와 언무사였다.
매 장로는 온몸이 보라색 노을빛으로 덮여 있었는데, 그 안에는 꽃무늬 허상이 어른거렸다. 그러나 여전히 무슨 신통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언무사는 이상하게 생긴 언갑을 입고 있었는데, 등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날개가 달려 있었고, 머리에는 백옥색의 옥관을 쓰고 있었다. 옥관에 박힌 하얀 구슬에서 흘러나온 하얀 노을이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매 장로는 의아한 표정으로 심협을 흘끗 보았다.
안타깝게도 세 사람 외의 천기성 제자들은 빠져나오지 못했고, 두 눈이 혈홍색으로 변해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서로 물어뜯고 싸워댔다.
땅에서는 핏빛 안개가 계속해서 뿜어져 나와 심협 등을 향해 뻗어왔다.
이를 본 매 장로가 소매를 휘두르자 푸른색 구슬이 나와 빠르게 풍차 형태의 푸른색 언갑으로 변했는데, 거기에는 광풍 같은 영문이 가득했다.
그가 뭔가를 중얼거리자 풍차 언갑의 영문이 번득이면서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바람 소리와 함께 뿜어져 나온 푸른 광풍이 순식간에 수십 장 크기의 소용돌이로 변하여 휘몰아쳤다. 소용돌이에 혈무가 전부 흩날리자 안에 있던 대여섯 명의 천기성 제자가 나타났다.
혈무가 사라지자 서로 싸우던 천기성 제자들이 싸움을 멈췄다.
이어서 매 장로가 다시 팔을 휘두르자 소매에서 아홉 개의 푸른색 줄이 번개처럼 날아가 천기성 제자들을 휘감았다. 뒤이어 그가 힘껏 당기자 천기성 제자들은 휙 끌려와 혈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다.
심협은 손에서 푸른 빛을 뿜어내며 천기성 제자들을 구하려 했는데, 매 장로가 먼저 나서자 푸른 빛을 없애고 정원사리를 발동했다. 그러자 아홉 개의 금빛이 날아가 천기성 제자들의 머릿속으로 들어갔다.
천기성 제자들의 머릿속에 가득하던 살의와 피에 대한 탐욕이 정원사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선정(禪定)에 의해 많이 사라졌고, 눈의 혈광도 사라져갔다.
“불문의 사리인가? 어쩐지…….”
매 장로는 심협의 손에 맺힌 금빛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자들의 회복을 도우려 했다.
한데 평온이 찾아오기도 전에 다시 변고가 일어났다!
우르릉!
땅바닥이 갑자기 크게 흔들리더니 짙은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와 주위를 모두 덮어버렸고, 이에 시선이 차단됐다. 검은 연기에는 극한의 음한의 힘과 원한이 담겨 있어서 신식도 제대로 펼칠 수 없었다.
당황한 심협은 곧장 기혈번의 위력을 최대한으로 발동했다. 뿜어져 나온 검은빛이 주위에 검은 광막을 만들어 모든 음기와 원한을 차단했다.
“하앗!”
그가 기합을 내지르며 결인하자 검은 음화가 타오르는 검은 손이 튀어나와 주위의 짙은 검은 연기를 밀어냈다.
검은 연기는 얼음에 닿은 불꽃처럼 녹아버렸고, 그 뒤로 수십 장 크기의 구멍이 생겨났다.
거기로 빠져나가려던 심협은 잠시 멈춰 서더니 연연나금의를 꺼내 입었다.
구름 같은 푸른 빛이 흘러나오더니 그의 주위에 몇 장 크기의 푸른 안개가 깔렸다.
이 무렵, 매 장로와 언무사 등이 신통을 부린 것인지 검은 안개 다른 곳에서도 펑펑 소리가 들려왔고, 모든 것을 뒤덮은 검은 연기가 강렬하게 흔들리며 완전히 사라졌다. 동시에 언무사 등의 놀란 얼굴이 나타났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이내 차갑게 굳어버렸다.
사방에는 어느새 음수들로 빼곡했다. 주위의 통로마저 음수들로 가득하여 몇 마리인지 셀 수조차 없었다. 이 음수들은 겹겹으로 심협 등을 포위했다.
지하와 머리 위의 석벽에서도 음기의 파동이 가득하여 도망칠 곳이 없었다.
이들을 포위한 음수 중 40여 마리는 대승기였고, 더 멀찍한 곳에는 훨씬 많은 수의 출규기 음수들이 있었다.
심협 등은 가슴이 철렁했다. 이렇게 많은 음수 앞에서는 진선기의 매 장로가 있다 해도 승산이 없을 터였다.
심협도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포기하는 대신 이 난관을 어떻게 빠져나갈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그때, 앞의 음수 무리가 갑자기 양쪽으로 갈라지면서 그 사이로 얇은 옷을 입은 묘령의 여인 둘이 걸어왔다. 한 명은 푸른 괴검을 들고 있었고, 키가 더 큰 다른 한 명은 어깨에 금색 화포를 들고 있었다. 심협이 일전에 만났던 두 명의 지살시왕이었다.
특히 키큰 여시가 든 화포는 그에게 중상을 입혔던 그 화포였다. 저 화포의 위력은 너무도 강력해서 지금까지도 깊은 인상이 남아 있었다.
“역시 귀언은 여기 있었구나!”
앞에 나타난 두 명의 여시왕을 본 심협은 곧장 흑옥반으로 귀언이 여기 있다는 사실을 소부자에게 알렸다.
한데 그때, 언무사는 키가 큰 여자를 보고는 실성한 듯 외쳤다.
“북궁영(北宮塋)! 당신이 왜 여기에……? 이 기운은…… 설마 연시가 되어 버린 건가?”
“북궁!”
매 장로도 그녀를 보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 순간, 음수들이 덤벼들었다.
심협은 주위의 검은 빛과 푸른 안개를 더 짙게 만들고는 한쪽으로 포위를 뚫기 시작했다. 지금은 음수가 너무 많아 다른 사람까지 돌볼 겨를이 없었다.
“눈을 감고 호흡을 멈춰!”
매 장로가 보라색 깃발을 꺼내는 동시에 신식으로 언무사 등을 뒤덮으며 전음으로 크게 외쳤다. 허나 일부러 그런 것인지 아니면 미처 신경을 못 쓴 건지, 이미 밖으로 돌파하기 시작한 심협에게는 전음이 오지 않았다.
언무사 등은 바로 숨을 참고 두 눈을 감았다.
매 장로가 깃발을 강하게 흔들자 보라색 빛이 뿜어져 나왔고, 몇 번 번쩍이더니 폭발하기 시작했다.
콰쾅!
수많은 보라색 안개가 깃발에서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반경 수십 장 안의 음수들을 휘감았다.
코를 찌르는 냄새가 담긴 보라색 안개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왔고, 미처 피하지 못한 음수들은 눈을 가리고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날뛰었다.
심협도 보라색 안개에 뒤덮여서 코를 칼에 베인 것 같았고 눈도 보이지 않아서 오감이 틀어진 것만 같았다. 그는 곧장 전력으로 황정경을 운공했다. 그러자 얼굴이 순식간에 황금색으로 변하면서 반짝였다. 이어서 전신이 황금색으로 변했는데, 이것은 칠십이변 변화술이었다. 황금은 매우 견고하여 쉽게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기에 독무 같은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다.
동시에 심협은 몸의 법력을 전부 머릿속으로 흘려보냈다. 법력은 성난 파도처럼 머리 곳곳을 휘몰아치며 돌아다녔다.
강력한 법력의 공격에 보라색 안개가 그의 콧구멍을 타고 밀려 나오자 틀어진 오감이 한결 나아졌지만, 눈부심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허나 위급한 상황이었기에 심협은 눈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신식으로 주위를 살피며 돌진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는 십여 마리의 음수를 지나 대승기 음수가 있는 포위망 근처까지 다가왔다.
이곳은 보라색 안개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안개가 확실히 적었다. 그래서 음수들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고, 그중 세 마리 대승기 음수는 바로 심협의 존재를 눈치채고 공격해왔다.
회색 번개와 세 줄기 검은색 음화 그리고 거대한 검은색 바람 칼날이 푸른 구름을 향해 강렬하게 날아왔다. 그러나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구름은 그대로 바람 칼날을 뚫고 지나갔고, 세 마리의 대승기 음수는 이를 보고 모두 멍해졌다.
푸른 구름은 세 마리 음수가 넋이 나간 틈을 타 그 사이로 빠르게 지나갔다.
바깥에 있던 출규기 음수들은 그제야 공격을 퍼부었다. 이 공격들은 소나기처럼 푸른 구름에 쏟아졌지만, 역시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푸른 구름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이 공격들을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막 포위망을 완전히 벗어나려는 순간, 금색 화포를 멘 여시왕이 앞에 나타나 심협을 조준했다.
퍼펑!
화포의 입구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굉음과 함께 하얀 빛기둥이 뿜어져 날아와 순식간에 구름 앞까지 다가왔다.
심협은 저 화포의 강력함을 알고 있었기에 조금도 방심하지 않고 법력을 뿜어내 푸른 구름을 몇 배나 키웠다.
하얀 빛과 충돌하자 푸른 구름은 움푹 파이면서 그대로 뚫렸다. 대신 하얀 빛도 많이 줄어들었지만, 이 빛기둥은 그대로 구름 속의 심협을 향해 날아갔다.
심협은 머리 위의 기혈번을 향해 결인했다. 그러자 기혈번의 검은 빛이 주위의 검은 광막으로 흘러들어갔고, 광막은 순식간에 두 배로 두꺼워져 완전히 실체처럼 변했다. 그 모습은 난공불락의 성벽 같았다.
동시에 심협의 머리 위에서 금빛이 반짝이며 천두금준도 나타났다. 머리 위에 나타난 금색 노을빛이 밑으로 떨어지면서 금색 보호막을 만들었다.
이 모든 과정을 끝내자 하얀 빛기둥이 기혈번의 검은 광막에 떨어졌다.
푹!
빛기둥은 광막에 이어 천두금준의 금색 보호막마저 가볍게 뚫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빛기둥 역시 크게 줄어들어 처음의 3할밖에 남지 않았다.
심협은 어느새 꺼내 든 현황일기곤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허공에서 갑자기 바람 갈라지는 소리가 울렸고, 현황일기곤은 거대한 금색 곤봉이 되어 산을 쪼갤 기세로 하얀 빛기둥에 떨어졌다.
꽈꽝!
굉음이 울려 퍼졌고, 반경 몇 리의 지하 미굴은 강렬하게 흔들리다가 무너졌다. 음수를 포함한 모두가 안에 파묻혔다.
여시왕도 마찬가지였다. 일격을 날린 뒤였던 그녀는 기운이 많이 약해져 수중의 금색 화포의 빛도 어두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지하에 파묻히는 와중에도 신경 쓰지 않고 빠르게 주위의 음기를 흡수하여 회복했다.
그때, 여시왕 옆에서 푸른 빛이 반짝이더니 반쯤 허상이 된 심협이 나타나 십여 개의 붉은 검사를 입에서 뿜어냈다. 이 검사들은 여시왕을 향해 번개처럼 날아갔다.
여시왕은 안색이 변하더니 몸에서 황금빛을 강하게 뿜어내 금색 화포로 막아내려 했다. 땅속에 묻힌 그녀는 불사불멸이라는 지살시왕인 만큼 약간은 움직일 수 있었지만, 금색 화포는 커다란 바위에 깔려서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십여 개의 검기가 베고 지나가자 여시왕의 몸은 수십 조각으로 잘려나갔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금색 화포를 놓지 않았다.
심협의 오른팔에서 뇌광이 번쩍였고, 수십 개의 금색 뇌전이 날아가 금색 화포에 꽂혔다. 그러자 화포를 쥐고 있던 그녀의 손은 가루가 되어 부서졌다.
심협은 그 틈에 금색 화포를 임랑환에 집어넣었다.
“크아아!”
여시왕이 분노와 원한으로 가득한 포효를 내지르자 심협은 가슴이 철렁했다.
하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고 연연나금의의 허화 능력과 둔지부의 힘을 이용해 땅속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잠시 후, 한 통로에서 노란 빛이 반짝이더니 심협이 나타났다.
땅속으로 한참을 지나왔기에 이곳이 어딘지 알 수 없었다. 언무사 등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신식을 사방으로 펼쳤지만, 여전히 천기성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