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6화. 갈림길
심협이 한 손을 휘두르자 가벼운 소리와 함께 기혈번이 머리 위에 나타났다.
그는 기혈번을 1할만 발동했다. 그러자 실제와 같은 검은빛이 뿜어져 나와 검은색 광막을 만들어 그를 보호했다.
이 예사롭지 않은 검은색 광막과 음기는 두 장로의 눈길을 끌었다.
“그나저나 회림액은 어디서 난 거지? 황사문 놈들의 소행인가?”
다른 천기성 제자 하나가 투덜거렸으나 누구도 답이 없었다.
어쨌든 회림액은 분명 먼저 지나간 수사들이 설치해놓은 것일 텐데, 황사문이 아니라도 다른 세 종문일 수도, 어쩌면 마심의 짓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들은 천기성 사람들을 노린 게 분명했다. 기관술과 같은 방식으로 석벽 안에 설치해두었기에 모두가 주위의 기운 파동에만 신경 쓰느라 오히려 매우 익숙한 기관에는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다.
“아무래도 그 잡스런 종파들과 마왕채가 철저하게 준비한 모양이군.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매 장로의 얼굴은 일그러져서 흉악해졌지만, 은연중에 부끄러움이 묻어났다.
막망 장로도 표정은 좋지 않았다. 제자들은 그렇다고 쳐도 두 장로가 회림액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으니 제자들 앞에서 체면을 잔뜩 구긴 셈이었다.
이제 절반 이상의 천기성 제자들 몸에 회림액이 묻었으니 매 장로도 감히 더는 빠르게 전진하지 못하고 속도를 줄였다.
수백 장 정도 나아가자 앞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한 마리 음수가 통로 앞에 나타나 흥분한 얼굴로 달려들었다.
통로 안쪽뿐만 아니라 10여 개의 음기 파동이 양쪽의 석벽에서 느껴지더니 천기성 사람들을 뒤덮어왔다. 석벽을 통과할 수 있는 음수들이었다.
음수들의 수는 적지 않았지만, 실력은 벽곡기에서 응혼기 정도였고, 출규기는 거의 없었다.
“응전해라! 석벽과 다리 밑을 조심해라!”
매 장로의 명이 떨어지자 법보의 빛과 언갑 공격이 전방의 음수들에게 쏟아졌고, 순식간에 절반이 죽어나갔다.
매 장로가 소매를 휘두르자 10여 개의 가느다란 하얀 빛이 뿜어져 날아가 부근의 석벽을 찔렀다. 그러자 처절한 비명이 석벽에서 들려왔고, 안에서 느껴지던 10여 개의 음기 파동도 전부 사라졌다.
천기성 제자들은 두 번째 공격으로 살아남은 음수들을 전멸시켰다.
심협이 나서기도 전에 전투는 끝났다.
“어, 음혼주(陰魂珠)다!”
어떤 천기성 제자가 하얀빛으로 음수 시체가 변한 음기 안에서 검은색 구슬을 꺼내고는 기뻐하며 외쳤다.
심협은 이전에 그 구슬을 본 적이 있었다. 인형의 성에서 음수들을 죽였을 때 봤던 그 구슬이었다. 그때는 이름이 음혼주인 것도 몰랐는데, 천기성 제자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매우 진귀한 모양이다.
바닥을 정리한 그들은 다시 나아갔다.
이 통로는 놀라울 정도로 길어서 천기성 제자들이 한참을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았고, 회림액 때문에 수시로 음수들이 습격해왔다. 덕분에 그들의 속도는 한층 느려졌다.
심협이 기혈번에서 검은 음화를 뿜어내 출규기의 호랑이 음수를 죽이자 음수는 바로 검은 기운으로 변했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빛이 뿜어져 나오는 검은색 구슬이 떨어지자 심협은 재빨리 손을 내밀어 잡았다.
천기성 다른 제자들도 음수를 처리했지만, 아쉽게도 음혼주는 더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부러운 표정으로 심협 수중의 구슬을 바라봤다.
“출발!”
매 장로도 심협이 손에 든 음혼주를 힐끗거리고는 명을 내렸다.
모두가 법보, 언갑을 거두고 계속해서 전진했다.
“언 도우, 이 음혼주는 어디에 쓰는 겁니까? 귀성의 제자들은 이걸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한데 말입니다.”
심협이 언무사 옆으로 다가와 전음으로 물었다.
“음혼주에 관한 일은 천기성의 기밀이라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부디 양해주십시오. 그저 이 구슬은 다른 곳에서는 쓰이지 않는다는 것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방금 그 음혼주는 품질이 좋아 보이니 천기성 상점에 팔면 좋은 값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언무사가 고개를 저으며 전음으로 대답했다.
“천기성의 기밀이라 하시니 더는 묻지 않겠습니다. 대신 묻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심협은 언무사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바로 화제를 돌렸다.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제가 알고 있는 것이라면 기꺼이 말씀드리겠습니다.”
“사실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황사문이나 후토종 같은 자들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말입니다. 그들은 귀언에게 보물을 빼앗긴 것도 아닌데 어찌하여 지금 흑연미굴에 나타난 걸까요?”
사실 이 일은 네 종파가 나타났을 때 묻고 싶었지만, 그때는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고, 미굴에 들어와서는 계속된 변고 때문에 물어볼 틈이 없었다. 저들의 목적을 도저히 짐작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불안했던 심협은 결국 틈이 나자 물은 것이다.
“아, 그걸 심 도우께 설명드리지 않았군요. 제가 너무 소홀했습니다. 흑연미굴은 위험하지만 엄청난 기연이 있습니다. 이곳의 짙은 음기로 많은 음수가 태어나지만, 미굴 깊은 곳에는 각종 음속성 영재가 있지요. 대부분은 밖에서 듣고 보지도 못한 것들이라 합니다. 매번 구유음풍이 약해질 때마다 무은사해의 여러 종파에서 이 보물을 찾으러 오는데, 그 결과는 둘 중 하나라는군요. 죽거나, 엄청난 수확을 얻거나.”
“그렇군요.”
“음속성 영재 외에도 엄청난 보물들이 있다고 전해지는데, 인간 세계에서는 매우 드물고 귀중한 영재와 구천선품도 있다고 합니다. 그것도 산처럼 쌓여 있다는데, 사실 거기까지 도달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죠.”
“그런 보물이 있었군요!”
심협의 눈빛이 번득였다.
“허나 이는 전설일 뿐, 진위는 아무도 모릅니다.”
언무사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을 맺자 심협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생각에 잠겼다.
그때, 전진하던 대열이 갑자기 멈췄다. 심협이 앞을 보니 갈림길이 양쪽으로 길게 뻗어 있었는데,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하지만 매 장로와 막망은 갈림길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신식으로 이 상황을 미리 감지한 것인지 아니면 이전에 와본 것인지, 이곳의 지형을 미리 알고 있었던 반응이었다.
매 장로가 손을 휘두르자 은색 가루가 양쪽 갈림길 통로 안으로 날아가 바닥과 석벽에 내려앉더니 반짝거렸다.
빛 속에서 알록달록한 희미한 그림자가 여럿 나타났는데, 계속 반짝거려서 그 형태는 정확히 보이지 않았다.
“마심 등도 나눠진 모양이군. 왼쪽 통로는 후토종과 신귀파, 오른쪽은 황사문과 어수종이다. 마심은 황사문 사람들과 함께 있다.”
매 장로의 말투는 매우 단호했다.
그 말에 심협이 몰래 유명귀안을 발동해봤지만, 반짝이는 빛의 정체가 무엇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매 장로의 독자적인 추적 신통 같았다. 이전에도 은종향이라는 걸 만들어냈다더니 이제는 은색 가루로 흔적을 찾아낸 것으로 미루어 각종 향료를 잘 쓰는 듯했다.
매 장로는 그에게 우호적이기는커녕 소부자의 명령까지 바꾸어버렸으니 심협으로서는 줄곧 그를 경계했다. 심지어 그와 적이 된다면 어떤 방법으로 저 신기한 향료를 상대해야 할지 생각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심협은 매 장로가 갑자기 고개를 휙 돌려 깜짝 놀랐다.
“심 도우, 표식은 어디에 있소?”
매 장로는 심협의 놀란 표정에도 신경 쓰지 않고 물었다.
심협은 두 눈을 감고 표식을 감지했고, 잠시 후 고개를 저었다.
“안 되겠습니다. 이곳의 짙은 음기가 표식을 감지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군요. 대략적인 방향만 알 수 있소.”
“그렇소? 밖에서는 그랬던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매 장로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는데, 그 말투가 거슬렸다.
“표식 감지는 신식 범위와 연관이 있소. 신식을 멀리 펼칠 수 있을수록 더 자세하게 감지할 수 있는 거요. 허나 여기서는 절반밖에 펼치지 못하니 감지하기도 더 어려운 게 당연하지 않겠소?”
심협은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다.
“그렇단 말이지……?”
매 장로의 찌푸려진 눈살은 풀어지지 않았다. 심협의 말을 전혀 믿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흑연미굴의 짙은 음기가 심식 감지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그곳의 모두가 알고 있었기에 딱히 반박할 말은 찾을 수 없었다.
“귀언의 위치를 알 수 없으니 이제 어쩌면 좋습니까?”
언무사가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는 듯 말했다.
심협은 이 일에 나설 필요가 없으니 조용히 옆으로 물러났다.
“표식을 감지할 수 없어도 성주님께서 마심과 황사문 등을 주시하라고 하셨으니 우리도 저들처럼 둘로 나눈다.”
“우리는 사람이 부족합니다. 흩어지면 더 위험하지 않을까요?”
막망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흑유미굴은 본래 위험한 곳이네. 성주님께서 우리보고 들어가라 하신 것을 보면 이런 상황을 예상하셨겠지. 그리고 마심 등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전혀 알지 못하니 천기성에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려면 위험을 무릅쓸 수밖에……. 게다가 정말로 막을 수 없는 위험에 닥친다면 다시 돌아오면 되는 법. 마심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우리 두 사람의 신통이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으니 별일 없을 걸세.”
“아, 그래요.”
막망 장로는 언변이 부족했기에 매 장로의 말에 동의했다.
매 장로는 표정을 풀고는 바로 인원을 나누기 시작했다. 심협과 언무사는 매 장로 쪽에 배치되었다.
“막망 장로님, 혹시 통신 법기를 가지고 계십니까? 성주님께서 주신 흑옥반에 위치를 표시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 제 법력 표식보다 더 선명하고 이곳의 음기에도 영향을 받지 않더군요. 통신 법기가 있으면 법력 표식의 위치를 발견했을 때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막망 장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검은색 옥패를 꺼내 심협에게 건넸다. 이전에 무명 장로와 연락하던 것과 똑같이 생긴 옥패였다. 장로회는 이 통신 법기를 자주 사용하는 듯했다.
심협이 흑옥반을 발동하자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와 막망의 손으로 떨어졌고, 그 안에 머물렀다. 그러자 흑옥반 안에 하얀 점이 또 하나 나타났는데, 바로 막망 수중의 하얀 빛 표식이었다.
이후 이들은 양쪽으로 나뉘어 통로로 들어갔다. 심협 등이 향한 곳은 마심과 황사문 사람들이 선택한 길이었다.
“속도를 높여라! 더 늦었다가는 영원히 마심을 쫓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막망 장로 등의 시선에서 벗어나자 매 장로가 바로 명했다.
“수많은 제자의 몸에 회림액이 묻어 있습니다. 너무 빨리 달리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언무사가 황급히 물었다.
“괜찮다. 이곳은 흑연미굴의 외곽이 아니라 음수들도 그렇게 대단치 않다. 지금 가장 급한 것은 마심 등을 따라잡는 것이다.”
매 장로는 손을 저으며 말을 마치고는 곧장 보랏빛으로 변하여 날아갔다.
언무사 등은 매 장로가 이렇게까지 독단적으로 굴자 당황했지만,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따랐다.
심협은 매 장로의 둔광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매 장로는 왜 저렇게 서둘러서 그들을 찾으려는 거지?’
하지만 상대가 자신만 귀찮게 하지 않으면 상관없었기에 그 꿍꿍이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일행은 금세 통로의 끝에 도착했다.
도중에 몇 차례 음수들이 습격해왔지만, 매 장로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대로 뚫고 지나갔다.
앞에 또 갈림길이 나오자 일행은 멈추고 땅으로 내려왔다. 이번의 갈림길은 일고여덟 개 정도였는데, 하나같이 어둡고 깊어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