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55화 (755/1,214)
  • 755화. 세 곳의 진안(陣眼)

    매 장로가 양손을 휘두르자 옆에서 금빛이 반짝였고, 금두꺼비 같은 언갑이 나타났다.

    마심은 경멸하듯 코웃음을 치고는 바로 공격하려 했다.

    한데 그때, 흑연미굴 안에서 갑자기 커다란 포효소리가 천둥처럼 들려오더니 산골짜기 안에 도사리고 있던 검은 음풍이 동굴 안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자 흑연미굴의 입구가 모두의 앞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커다란 포효소리도 사라지자 모든 것이 평온해졌다.

    “구유음풍이 모두 사라졌다! 이 싸움은 나중을 기약하지!”

    마심은 한마디 말을 남기고는 검은 빛이 되어 쏜살같이 흑연미굴 안으로 들어갔다.

    황사문의 원명도 서둘러 문하 제자들을 이끌고 뒤따랐고, 다른 세 종문의 사람들도 휙 소리를 내며 날아가 눈 깜짝할 사이에 흑연미굴 안으로 사라졌다.

    매 장로는 마심과의 싸움 없이 넘어가게 되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이내 다급하게 무명 장로에게 연락하는 게 어떨지 막망 장로에게 물으려 했다.

    그때, 그의 몸에서 검은 빛이 반짝였다. 이어서 소부자와 연락을 취하던 검은색 옥패에 몇 줄의 작은 글씨가 떠올랐다.

    “성주님이 보내온 소식이로군. 성주님께서 벌써 그쪽의 표식이 새겨진 것을 처리했는데, 본 성이 오래전에 잃어버린 구곡순풍망(九曲舜風蟒) 언갑이었다 하오. 아무래도 흑연미굴 안에 귀언이 있는 모양이지.”

    매 장로는 기뻐하는 듯하더니 바로 차가운 눈빛으로 옥패를 향해 결인했다.

    “무명 장로의 연락이 왔어요. 마심의 말이 사실인 모양이에요.”

    막망 장로도 검은색 옥패를 넣으며 말했다.

    “정말 사실이었나! 그렇다면 도대체 누구의 소행이지?”

    매 장로가 중얼거렸다.

    “어쩌죠? 미굴로 들어가나요? 아니면 성주님이 오시기를 기다릴까요?”

    아무래도 그녀는 별로 주관이 없는 사람인 듯했다.

    “내 이미 이곳의 상황을 성주님께 알렸으니 조금만 기다려보세.”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수중의 검은 옥패가 반짝거렸고, 몇 줄의 작은 글씨가 떠올랐다.

    “성주님께서 들어가서 마심 등을 주시하라 하시는군.”

    매 장로가 옥패를 보더니 손에 쥐며 말했다.

    “그렇다면 어서 들어가죠.”

    “좋아. 허나 우리의 목적은 귀언을 찾는 게 우선이오. 심 도우, 그대는 수시로 표식의 위치를 감지해주시오. 아무래도 동굴에 들어가서도 그대가 길을 안내해줘야 할 듯하오.”

    심협은 매 장로를 노려봤지만,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서 있던 곳에서 매 장로 수중의 검은색 옥패를 볼 수 있었는데, 순식간이었지만 유명귀안의 안력으로 옥패의 작은 글씨를 읽는 데 성공했다.

    소부자가 보낸 전반부 내용은 정말로 흑연미굴로 들어가라는 것이었지만, 뒤의 내용은 그들에게 조심해서 움직이고 자신을 잘 보호하라는 내용이었다. 한데 매 장로는 저자가 소부자의 명령을 거짓으로 전달한 것이다. 심협으로서는 그 목적을 알 수 없었다.

    “출발!”

    매 장로가 외치자 천기성 사람들은 날아서 흑연미굴로 들어갔고, 심협도 그들을 따라갔다.

    미굴로 들어가자 그는 바로 주위의 공기에 무거운 음기가 담겨 있는 게 느껴졌다. 지금 심협의 경지로는 몸이 떨려오는 걸 막을 수 없었기에, 그는 서둘러 단전 안의 순양검을 발동했다.

    검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자 순양의 힘이 온몸 구석구석을 돌며 몸으로 파고든 한기를 몰아냈다.

    “흑연미굴 안의 구유음풍이 사라졌다고 하나 이곳의 음기는 여전히 강합니다. 심 도우, 음기를 막을 보물이 있습니까? 없다면 제게 구양주(九陽珠)가 있으니 빌려드리겠습니다.”

    옆에서 언무사가 붉은빛이 반짝이는 구슬을 꺼내서 건넸다.

    “아닙니다. 다행히 순양법보가 있습니다.”

    그러자 언무사도 더는 권하지 않고 구양주를 집어넣었다.

    * * *

    흑연미굴 깊은 곳의 어두운 공간. 이곳은 어둠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고, 허공에는 흑연미굴 입구보다 몇 배나 더 짙은 음기가 가득했다.

    어두운 공간 안에는 핏빛 존재가 해골 의자에 반쯤 눕듯이 앉아 있었다. 이 존재는 핏빛 해골이었다. 크기는 1장 정도였고, 매우 순수한 혈광이 흐르고 있었는데, 음랭의 기운이 아닌 순양의 기운이 느껴졌다.

    만약 음수나 귀물에 일가견이 있는 자가 이를 봤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이 핏빛 해골은 전음화양(轉陰化陽)의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이 경지에 도달하면 음회(陰晦)의 몸을 벗어나 순양의 몸으로 변할 수 있는데, 그 상태로 태을 경지에 도달한다면 평생을 살 수 있고 영원히 썩지 않는 몸을 가지게 된다. 이는 모든 음수와 귀물의 평생 목표이기도 했다.

    혈색 해골이 앉아 있는 해골 의자 뒤에는 세 개의 핏빛 뼈 기둥이 우뚝 솟아 있었다. 기둥 끝마다 조용히 타오르는 핏빛 불꽃은 어두운 공간을 더욱 음산하게 만들었다.

    핏빛 해골이 눈에서 혈광을 뿜어내며 수중의 노란색 옥간을 들여다봤다.

    “훌륭해! 천시진경 실로 정교하구나. 특히 지살시왕(地煞尸王)과 천살시왕(天煞尸王)을 기르는 방법이 내 몸을 다듬는 데 큰 도움이 됐어.”

    핏빛 해골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에서 기이한 웃음소리를 냈다.

    “선조님, 수많은 인간족 수사가 흑연미굴로 들어왔는데 하나같이 실력이 강합니다. 음수들이 그들과 여러 번 충돌했는데 모두 격파당했습니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박쥐의 모습을 한 음수가 바깥에서 날아와 핏빛 해골 앞에 멈추더니 바닥에 엎드린 채 다소 당황한 듯 말했다.

    “구음유풍이 약해질 때마다 인간족 놈들은 죽으러 들어오곤 하지. 당황할 것 없다. 어디 종파 놈들이더냐?”

    핏빛 해골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

    “황사문, 후토종, 신귀파, 어수종의 수사들 같습니다.”

    핏빛 해골의 침착한 모습에 박쥐 음수도 침착함을 되찾고는 대답했다.

    “어리석은 놈들이 죽으려고 제 발로 찾아왔구나. 그들이 깊은 곳까지 들어오면 모두 죽여라.”

    핏빛 해골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들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했다.

    “네!”

    반 박쥐 음수가 대답하고는 자리를 떠나려 했다.

    “그리고 귀언에게 수하의 언갑과 지살시왕을 보내라고 해라. 이곳에 왔으니 흑연미굴을 지키는 일에 힘은 보태야지.”

    박쥐 음수는 대답하고는 밖으로 다시 나갔다.

    “대왕님, 귀언이 돕겠습니까?”

    박쥐 음수가 나간 뒤, 핏빛 해골 옆의 허공에서 파동이 일더니 귀신 같은 보라색 그림자가 나타났다.

    “흑연미굴은 내 땅이다. 귀언이 밖에서 아무리 설치고 다녔어도 이곳에 왔으면 내 명을 따를 수밖에 없지. 그리고 밖의 인간족 수사들은 그놈을 따라온 것일 테니 그자도 마음이 편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대왕님 말씀이 옳습니다. 외부의 적이 침입했으니 만일을 대비해 제가 가서 진안(陣眼)을 지키겠습니다.”

    “그래, 세 곳의 진안은 절대 잃어서는 안 된다. 유명(幽冥)과 수라(修羅)에게도 그들의 목표물을 잘 지키라고 일러라.”

    보라색 그림자가 대답하고는 떠나려다가 문득 뭔가 생각났는지 우뚝 멈췄다.

    “무슨 일이냐?”

    “내굴(內窟)의 진안은 저와 유명, 수라가 지키니 괜찮겠지만, 외굴(外窟)의 진안은 어찌 할까요? 저희는 음굴의 제한 때문에 외굴로 가지 못하니 음수들을 더 보내서 지키게 하는 게 어떠십니까?”

    “귀언이 나타나면 음수들을 보내겠다. 그곳의 진안은 은밀한 곳에 숨겨져 있으니 통로를 따라 걷는 인간족은 찾지 못할 가능성이 크니까 괜찮다.”

    “대왕님의 혜안에 감복했습니다!”

    “언제 인간족들이나 해대는 아첨을 배운 것이냐? 내게는 그런 건 안 통하니 네 임무나 잘해라!”

    핏빛 해골은 호통을 쳤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보라색 그림자 역시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하고는 허공으로 사라졌다.

    핏빛 해골은 방금 일어났던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계속해서 노란색 옥간을 바라봤다.

    * * *

    흑연미굴 안의 기다란 통로는 아래로 굽이굽이 이어져 있어서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천기성 사람들은 만일의 위험을 대비해 몇 개의 언갑이 앞쪽을 살피며 나아갔기에 빠르게 이동하면서도 위험을 마주치지는 않았으나, 먼저 들어간 네 종파의 수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속도를 높여라.”

    매 장로는 명을 내리고는 발밑에 보랏빛을 더욱 밝혀 속도를 높였고, 다른 사람들도 속도를 높였다.

    심협은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갔지만, 조금도 뒤처지지 않았다. 또한 귀령순을 꺼내고 검은 빛으로 몸을 감싸서 보호했다.

    심협의 행동을 본 천기성 수사들은 내심 못마땅해 했다.

    ‘매 장로님과 막망 장로님이 계시고 우리도 신식으로 계속 경계하고 있는데 뭐가 위험하다고 저 난리야?’

    심협은 그들의 날카로운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귀언 수하 지살시왕의 무서움을 몸소 겪어본 바, 만약 배후가 이곳에 숨어 있다면 더욱 조심해야만 했다. 방심했다가는 이곳에 영원히 잠들게 될지도 모른다.

    일부 조심성 있는 천기성 제자들은 법보를 꺼내 자신을 보고하기도 했다.

    속도를 높여 어느 정도 전진하자 길이 갑자기 오른쪽으로 꺾였는데, 그쪽으로 접어들기가 무섭게 앞쪽 석벽이 갑자기 폭발하면서 회색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회림액(灰霖液)이다! 닿으면 안 되니 어서 피해라!”

    매 장로가 놀라서 외치고는 빠르게 뒤로 10여 장을 물러났다.

    하지만 막망 장로는 물러나지 않고 입에서 하얀색 반지를 뱉어냈다. 그러자 순식간에 열 배로 커진 반지에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와 대부분의 회색 액체를 막아냈다.

    천기성 제자들은 뒤로 물러나는 동시에 법보를 꺼내 몸을 보호하려 했다.

    하지만 회색 액체는 양이 워낙 많았고 공격이 갑작스러웠던 터라 많은 사람이 미처 피하지 못했다. 막망 장로의 반지로 보호를 받은 사람들과 심협처럼 처음부터 법보로 몸을 보호한 사람들만이 화를 면할 수 있었다.

    한편, 귀령순을 살핀 심협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자신은 무사했지만, 방패에는 회색 얼룩이 심하게 생겼던 것이다.

    이 회색 액체는 매우 기이했다. 귀령순의 검은색 영광에 막혀서 사라졌지만, 액체 안에서 솟아 나온 덩어리가 검은색 영광을 타고 흘러 방패에까지 묻었다.

    그는 법력을 주입하여 얼룩을 지워보려 했지만, 얼룩은 방패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다른 사람들의 법보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회색 얼룩은 아무런 위험도 없어 보였고, 법보를 사용하는 데에도 지장이 없었다.

    회색 액체가 몸에 닿은 사람들도 피부에 회색 얼룩이 생겼지만 별 탈은 없어 보였다.

    “막망 장로, 백교계(白蛟戒)로 회림액을 막다니, 왜 그렇게 충동적인가?”

    매 장로가 다가와 눈살을 찌푸리며 꾸짖듯 물었다.

    “괜찮아요. 천룡환(天龍環)이 이미 완성되었으니 백교계는 없어도 됩니다.”

    막망 장로는 백교계를 내려다봤다. 막망은 반지에 수많은 회색 점이 얼룩진 것을 보기 싫었는지 다시 챙겨 넣었다.

    “매 장로님, 막망 장로님. 회림액은 도대체 뭡니까? 위험한 것은 아닌가요?”

    언무사가 다가오며 물었다. 그도 처음부터 법보를 꺼내서 보호했기에 몸에는 회색 액체가 묻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봤다.

    “회림액은 음속성의 액체로, 인체와 법보에 큰 위험은 없다. 다만 오랫동안 기이한 냄새를 풍기는데, 평범한 사람들은 맡지 못하나 음수들은 강한 끌림을 느낀다.”

    매 장로의 설명에 모두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곳에는 음수가 득실거리니 이 액체로 인해 그들의 표적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몸에 회림액이 묻은 자들은 앞으로 더욱 조심하되 술법으로 가릴 생각은 말아라. 이 냄새는 법력으로 만든 보호막도 소용없다. 법보에 액체가 묻은 자들은 법보를 거두고 저물 법기 안에 봉인을 가해라. 저물 법기 안에 넣는 것만으로는 냄새를 차단할 수 없다.”

    매 장로의 말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사라지자 서둘러 거두고 봉인을 가했다.

    심협은 귀령순 외에도 다른 호신 법보가 있었기에 귀령순을 공옥 옥갑 안에 넣었다. 공옥 옥갑은 천지보감으로 살펴도 흔적을 감출 정도이니 냄새를 숨기는 정도야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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