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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54화 (754/1,214)
  • 754화. 마왕채(魔王寨)의 부채주

    심협 등과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알 수 없는 사해 어딘가. 소부자 등이 탄 영해 비주는 여전히 앞쪽으로 빠르게 이동했으나 아직도 네 개의 표식을 쫓아가지 못한 상태였다.

    소부자는 몸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자 검은색 옥패를 꺼내 결인했다. 옥패에 몇 줄의 작은 글씨가 떠올랐다.

    이를 본 소부자는 안색이 조금 변했다.

    “매 장로의 소식이군요.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옆에 선 복 장로는 몸이 강렬한 푸른 빛으로 강하게 번득였다. 아무래도 전력으로 영해 비주를 발동하고 있는 듯했다.

    “매 장로 쪽에서는 표식을 따라잡았다는군. 표식이 흑연미굴 안에 있다 하오.”

    “흑연미굴이라……. 아무래도 그쪽이 귀언과 인형의 성이고 이쪽은 눈속임 같습니다. 한데 아직 음풍의 쇠약기도 아닌데 귀언은 어떻게 흑연미굴에 들어갔을까요?”

    복 장로는 깜짝 놀라 진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인형의 성이 귀언의 수중에 넘어간 지 벌써 백 년이 되었으니 모든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모양이오. 인형의 성의 방어라면 구유음풍을 견디는 건 문제도 아니겠지.”

    “그럼 어쩌면 좋습니까?”

    “어쨌든 여기까지 온 이상 나는 계속 쫓아가볼 테니 그대는 곧장 흑연미굴로 향하시오.”

    소부자의 소매에서 검은 목조(木鳥)가 나오더니 그의 몸을 받쳐 들고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영해 비주보다도 몇 배는 빠른 속도였다.

    복 장로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영해 비주를 서남쪽으로 돌렸다.

    한편, 검은 목조를 타고 전방을 주시하는 소부자의 눈빛에는 서늘한 빛이 감돌았다.

    이때, 그의 몸에서 다시 검은빛이 반짝였고 그것을 꺼내자 흑옥반이 나왔다.

    소부자가 결인하자 흑옥반에 검은 빛과 부문이 떠올라 검은 법진으로 변했다. 그리고 법진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는데, 천기성을 지키는 무명 장로였다.

    “무명 장로, 무슨 일이오?”

    소부자가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 방금 정보를 입수했는데, 출처는 모르겠으나 흑연미굴의 음풍이 쇠약기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뭐라?”

    “성주님,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왜 그렇게 놀라시는지요?”

    소부자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렇다면 귀언은 흑연미굴 안에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크겠군요. 그가 그동안 줄곧 무은사해를 벗어나지 않고 숨어 있던 것도 사실 미굴 안의 능소지동(凌霄之銅)이 목적이었나 봅니다. 성주님, 절대 그자가 뜻을 이루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안 그러면 다시는 그를 제압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무명 장로가 다급하게 말했다.

    “알고 있소. 그대는 만벽에게 언갑 제조를 멈추고 염수(焰獸) 언갑을 가지고 곧장 흑연미굴로 향하라고 전하시오.”

    소부자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명령을 내렸다.

    “만벽의 염수 언갑이 강하긴 하나 인형의 성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최악의 상황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대의 말은 귀원성인(歸元聖印)을……?”

    “그렇습니다. 경천지계는 천기성을 지켜야 하니 귀원성인만이 인형의 성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이오. 무명 장로, 그대에게 귀원성인을 가동할 수 있는 자격을 주겠소. 만벽 장로에게 흑연미굴로 가지고 오라고 하시오!”

    소부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엄숙한 표정으로 위엄 있게 말했다.

    “성주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무명 장로도 엄숙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 말을 끝으로 흑옥반 법진에서 그의 모습은 사라졌다.

    소부자는 옥반을 챙겨 넣고는 몸에서 하얀 정광을 뿜어내어 끊임없이 검은 목조 안으로 주입했다.

    검은 목조의 몸이 커졌고 이동 속도도 더 빨라졌다.

    전방의 모래 바다에 한 줄기 먼지 폭풍이 일어나더니 엄청난 속도로 이동했는데, 마치 땅속에서 무언가 파고들고 있는 것 같았다.

    소부자는 검은 새를 조종했다. 검은 목조는 두 날개에서 검은 빛을 뿜어내며 아래로 쏜살같이 날아가 먼지 폭풍 위에서 두 날개를 강하게 펄럭였다.

    검은 바람의 칼날이 폭풍우처럼 쏟아져 먼지 폭풍을 뒤덮었다. 그러자 반경 수십 리의 땅이 강하게 흔들렸다.

    소부자는 검은 목조를 따라 내려가지 않고 허공에서 매 장로와 연락하던 검은색 옥패를 꺼내서 결인하기 시작했다.

    * * *

    흑연미굴 동굴. 조용히 기다리던 매 장로의 안색이 급변했고, 막망 장로도 눈을 들어 동시에 먼 곳을 바라봤다.

    심협은 그들보다 한 박자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먼 하늘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몇 호흡 뒤에는 선명해졌는데, 수십 개의 둔광이었다. 이 빛줄기들은 금세 근처까지 다가왔다.

    이 수사들은 아래의 천기성 사람들을 보고는 깜짝 놀랐는지 우뚝 멈춰 서더니 허공을 빙빙 돌다가 멀지 않은 공터로 내려갔다. 70여 명의 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심협이 자세히 살펴보니 저들은 복장으로 봐서는 모두 네 개의 종파인 듯했다. 인원수가 가장 많은 자들의 노란색 도포에는 노란색 폭풍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선두에는 화려한 복장의 중년 남자가 서 있었는데, 가느다란 눈썹에 작은 눈은 매우 교활해 보였다.

    옆에 푸른 옷을 입은 무리가 있었는데, 소매에 푸른색 거북이가 수놓아져 있었다. 마른 노인이 그들 가운데서 품에 커다란 검은색 자라를 안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매우 이상해 보였다.

    나머지 두 무리는 복장이 갈색과 보라색이었다. 갈색 복장의 수사들은 모두 등에 노란색 큰 방패를 매고 있었고, 보라색 도포의 수사들은 허리에 불룩한 작은 자루들을 많이 달고 있었다. 이들의 자루가 가끔 꿈틀거리는 것으로 봐서는 살아 있는 무언가를 담고 있는 듯했다.

    두 무리의 선두는 뚱뚱한 남자와 초록색 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었다.

    뚱뚱한 남자는 온몸이 살뿐이었고, 얼굴 피부는 겹겹이 쌓여 있었으며, 눈가는 주름으로 가득했다.

    초록색 옷의 젊은 부인은 초록색 화려한 복장에 오색 부채를 들고 있었다. 몸매는 우아했지만, 얼굴에는 마치 굵은 지네 한 마리가 붙은 것 같은 칼자국이 이마부터 턱을 가로지르고 있어 미모를 망가트렸다.

    “황사문의 원(袁) 문주, 신귀파의 종(鍾) 당주, 후토종의 임(林) 장로, 어수종의 엽(葉) 종주. 바쁘신 네 분께서 어찌 이곳까지 행차하셨나?”

    매 장로는 네 종파의 수사들을 훑어보더니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심협은 그 말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언무사가 말해준 종파들 중 네 군데를 이렇게 바로 만날 줄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네 종문의 실력은 우습게볼 수 없었는데, 특히 황사문이 그랬다.

    심협은 황사문의 중년 남자를 바라봤다. 화려한 복장과 표정은 경박해 보였지만, 몸의 법력은 강력하여 이미 진선기에 도달해 있었다. 다른 세 종문을 이끄는 자들도 대승 후기 절정이라 경지만 봐서는 그에게 크게 뒤처지지는 않았다.

    “흑연미굴은 무은사해의 것이지 천기성의 것이 아니지 않은가? 너희 천기성이 여기 있다고 우리가 못 올 이유는 없다고 보는데?”

    황사문의 중년 남자가 차갑게 웃고는 의외로 강한 어조로 대꾸했다.

    “내 말이 그 말이네.”

    신귀파의 마른 노인이 호응했고, 후토종의 뚱뚱한 남자와 어수종의 젊은 여인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가운 눈빛으로 천기성 사람들을 노려봤다.

    최소한 겉으로는 지금껏 천기성에 공손한 태도를 보이던 종파들이 이렇게 나오자 매 장로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원 문주의 입이 이렇게 험악할 줄은 몰랐소. 듣기로는 최근에 열지과(裂地戈) 법보를 얻어서 실력이 크게 정진했다더니 이제 우리 천기성은 안중에도 두지 않는 모양이군. 내 친히 천기성의 위대함을 일깨워줘야겠소?”

    매 장로가 보랏빛을 뿜어내며 성큼성큼 다가가자 중년 남자는 당황하여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한데 그때,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매 장로, 그렇게 싸우고 싶으면 본존이 놀아줄까 하는데 어떤가?”

    이 목소리는 멀리서 들려왔고, 처음에는 미약했지만, 갈수록 웅대해져 나중에는 마치 성난 파도 소리 같았다.

    목소리와 함께 검은색 둔광이 하늘에서 내려와 매 장로 앞에 떨어졌는데, 함께 날아온 바람에 매 장로 등 천기성 사람들의 옷이 펄럭거렸다.

    검은 둔광이 사라지자 검은색 갑옷을 걸친, 네모 각진 얼굴에 눈썹이 진한 우람한 사내가 차가운 미소를 띠며 매 장로를 노려봤다.

    “마심(魔心), 네놈이!”

    매 장로의 안색이 돌변했고, 막망 장로의 눈썹도 일그러졌다.

    언무사 등 천기성의 제자들도 그 사내를 보고는 표정이 일그러졌고, 심협도 경계심이 일었다.

    우람한 사내는 마족이었고, 몸에서 아주 짙은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수련 경지는 진선 후기에 도달하여 진선 중기의 매 장로와 막망 장로보다 높았고, 기고만장한 태도를 보니 신분도 상당한 게 분명했다.

    “언 도우, 저 마심이란 자의 신분이 어떻게 됩니까?”

    심협이 전음으로 언무사에게 물었다.

    “저자는 마왕채(魔王寨)의 부채주입니다.”

    심협은 그 말을 듣고는 가볍게 숨을 들이마셨다. 마왕채는 마족 중 가장 큰 세력으로, 삼계무도회에서 그들의 엄청난 신통을 직접 본 적이 있다. 그의 인상에 깊게 남은, 칠살이라는 마족 청년이었다.

    “마왕채와 천기성은 사이가 안 좋은 모양이군요?”

    “직접 충돌한 적은 없지만, 저 황사문의 원 문주가 이전에 마심을 의부(義父)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 황사문과 천기성이 영맥을 두고 충돌이 일어났을 때 마심이 와서 몇 번 충돌이 있었지요.”

    “인간족이 마족을 의부로 삼았다고요?”

    심협은 어리둥절했다. 현재 모든 종족이 삼계에서 평화롭게 공존한다고는 하지만, 각 종족 간에는 여전히 마찰이 있어서 서로 대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인간족과 마족은 수백 년간 서로 물러서지 않는 적수였다. 한데 문주라는 자가 마족을 의부로 삼다니. 문하 제자들의 비판이 두렵지도 않단 말인가?

    “원 문주란 자는 줄곧 약자를 업신여기고 매우 교활하지만, 그의 경지는 황사문에서 독보적이라 문중의 장로들도 감히 반대하지 못합니다.”

    언무사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목소리가 한층 싸늘해진 것이 상대의 행동에 반감이 심한 모양이었다.

    심협은 수많은 수사를 만나봤지만 이런 교활하고 뻔뻔한 일은 처음이었기에 피식 웃고는 더는 묻지 않았다.

    멀리서 원 문주라는 자의 귀가 움직이더니 심협과 언무사 쪽을 바라봤다. 그는 표정이 험악해졌지만 이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싸울 건가 말 건가? 매 장로, 통쾌하게 대답 좀 해보게.”

    마심은 도발하려는 듯 비꼬며 매 장로를 바라봤다.

    “나와 싸우고 싶다니 기꺼이 받아주마. 허나 그전에 묻고 싶은 게 있다. 너희는 흑연미굴의 구유음풍이 약해진 것을 어떻게 알았지?”

    매 장로가 마심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

    “몰랐나? 최근에 무은사해의 각 문파에 이곳의 구유음풍이 약해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는데. 원명(袁明) 등은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살펴보러 온 건데 지금 보니 사실인 모양이구나. 한데 너희 천기성은 그 사실을 들은 적이 없는 건가?”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매 장로와 막망 장로 모두 깜짝 놀랐다. 그들은 이틀 동안 귀언을 쫓고 있었으니 그 소식을 들은 적이 없는 게 당연했다.

    막망은 바로 검은색 옥패를 꺼내서 결인하여 천기성의 무명 장로에게 물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심협은 눈이 가늘어졌고 머릿속에서는 이전의 추측들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정말로 누군가가 파문을 일으켜서 천기성과 귀언을 도발하고 무은사해의 모든 종문이 서로 싸우게 하려는 것 같다. 한데 도대체 왜?’

    그는 머릿속으로 빠르게 각종 자구책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두 도우는 정말로 몰랐나보군. 매 장로, 네 궁금증을 풀어줬으니 이제 뜨겁게 놀아보자고. 크하하핫!”

    마심은 차갑게 웃고는 손에서 혈광을 뿜어냈다. 그러자 가느다란 혈색 장도가 나타났다. 칼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하여 구역질이 났다.

    “혈마도(血魔刀)!”

    매 장로는 혈도를 보고는 표정이 잔뜩 굳어졌다.

    마심의 경지는 그보다 위인데 마도의 무기까지 들고 있으니 그에는 승산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천기성의 명예와 관계되는 일인 만큼 쉽게 물러날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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