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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52화 (752/1,214)
  • 752화. 의심

    심협이 법력을 주입하자 금빛이 다시 폭발했고, 검은 빛이 보일 듯 말 듯 뿜어져 나왔다. 금제도 48도나 되어 중품 법보의 한계에 도달했다.

    심협은 내심 실망했다. 그의 예상대로라면 이렇게 많은 구전빈철을 넣으면 상품 법보에 도달했어야 했다.

    “자네의 곤봉에는 현귀판, 영양신철, 구전빈철 세 가지 진기한 재료가 들어가서 품질로는 평범한 상품 법보보다도 훨씬 뛰어나네. 다만, 여의금고봉을 모방한 이 곤봉의 지나친 날카로움이 세 가지 영재의 충돌을 불러왔지. 특히 구천금정이 없으니 영양신철과 구전빈철의 영력의 균형을 잡을 수 없었네. 그래도 법보의 금제는 충분히 늘어났으니 자네 곤봉에는 아무런 해가 없을 걸세.”

    심협의 의아함을 알아챈 소부자가 묻기도 전에 설명해줬다.

    “그렇군요. 선배님께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심협은 현황일기곤을 넣고는 소부자에게 인사를 올렸다.

    소부자는 소매를 휘둘러 천기신공로를 넣고는 두 눈을 감았다.

    심협은 그에게 부서진 옥침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차마 말하기 어려워 묵묵히 두 가지 보물 안의 금제를 연화했다.

    대전 안은 점점 조용해졌다.

    * * *

    천기성 하성(下城) 천금루의 어느 은밀한 방. 검은색 돌기둥이 우뚝 솟아 있고, 그 기둥 끝에서는 검은 촛불이 조용히 타오르고 있었다.

    촛불에는 사람 형태의 검은색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는데, 뿜어져 나오는 빛도 검은색이라 방 안을 온통 기이한 검은빛으로 물들였다. 바깥의 어떤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고, 방안의 어떤 기운도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아서 마치 세상과 차단된 것 같았다.

    문밖 복도에서는 천금루의 방주 방예(方銳)가 다급히 방으로 다가왔는데, 두 눈에서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방예는 호흡과 표정을 가다듬은 뒤, 방 문을 밀고 들어가 바로 다시 닫았다.

    바깥의 모든 것이 차단되자 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방예가 돌기둥 옆으로 다가와 자신의 손을 베더니 피 한 방울을 촛불의 불꽃 위로 떨어트렸다.

    사람 머리 모양의 불꽃이 두 배로 커지더니 눈 부근에서 살아 있는 듯한 핏빛이 흘러나왔다.

    “주인님, 상성에서 소식이 왔는데, 천기성이 귀언의 흔적을 찾아 지금 토벌대를 꾸리고 있다 합니다.”

    방예는 사람 머리 모양의 불꽃을 향해 절하고는 조용히 말했다.

    “허, 드디어 알아차렸나? 심협과 부동래를 인형의 성으로 유인한 게 헛수고는 아니었군.”

    “주인님의 계획에 어찌 실패가 있겠습니까? 이번에야말로 천기성의 힘을 빌려 순조롭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네가 할 일은 쓸데없는 아첨이 아니라 천기성의 동향을 파악하고 그들이 누구를 보내는지 알아보는 일이다!”

    사람 머리 불꽃이 차갑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바,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방예는 당황하여 서둘러 허리를 숙였다.

    “항상 언행을 조심해라. 천기성의 관천경(觀天鏡)은 절대 우습게볼 수 없다. 너를 천기성에 보내고 그 자리에 앉히느라 얼마나 많은 힘과 자원이 들어갔는지 잘 알고 있겠지? 항상 기억해라. 네 목숨은 네 것이 아니라 마조님의 것임을!”

    “예!”

    방예는 마조의 이름을 듣자 몸을 덜덜 떨었고, 허리를 더욱 깊이 숙였다.

    사람 머리 불꽃에서 붉은 빛이 사라지더니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방예는 그제야 허리를 펴며 식은땀을 닦았고, 자신의 상태를 점검한 뒤 다시 방에서 나갔다.

    * * *

    반 시진이 빠르게 지났고, 무명 장로 등은 다시 대전으로 모였다. 이번에는 네 사람 외에도 30여 명의 천기성 제자들도 함께였는데, 경지가 가장 낮은 자도 출규 후기였고, 대승기 수사들도 있었다.

    안면이 있던 언무사와 임감, 주명도 있었는데, 어째서인지 언무사는 안색이 창백했고, 기운이 고르지 않은 것이 부상을 당한 듯했다.

    세 사람은 심협이 여기 있다는 것을 벌써 알고 있었는지 그를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

    “성주님, 준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언제든 출발할 수 있습니다.”

    “알겠소. 무명 장로, 천기성을 잘 부탁하오.”

    소부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렇게 말했다.

    무명 장로는 거동이 불편하여 평소에도 천기성을 관리해왔기에 소부자의 이런 결정에 아무런 이의도 보이지 않았다.

    소부자가 심협과 함께 대전을 나서자 언무사 등은 소부자를 향해 급히 예를 올리려 했다.

    “됐다. 이번 출정의 목적은 모두가 잘 알 것이다. 장로회에서 귀언의 위치를 파악했다. 이번에야말로 천기성을 배신하고 중보를 훔쳐간 배신자를 처단하고 중보를 되찾아와야 한다. 알겠느냐?”

    “네!”

    언무사 등이 일제히 외쳤다.

    복 장로가 소매를 휘두르자 사람 머리통만 한 푸른색 구슬이 날아올라 빛을 번쩍였다. 그러자 푸른색 구슬 곳곳이 튀어나오더니 모습이 빠르게 바뀌기 시작했다.

    몇 호흡 뒤, 대전에는 길이 30장에 검푸른 비주 한 척이 나타났는데, 언무사의 것과는 생김새가 달랐다. 이 비주는 외형이 거대한 게처럼 생겨서 앞뒤로 8개의 다리가 달려 있었다. 다리들은 지금은 오그라들어 있었다.

    모두가 게 모양의 비주로 뛰어올랐는데, 공간은 충분히 넓어서 그 많은 사람이 타도 꽉 찬 느낌이 없었다.

    “심 도우, 어디로 가야 할지 알려주시오.”

    복 장로가 심협을 돌아보며 말했다.

    심협은 눈을 감고 표식의 위치를 느끼자 조금 놀랐다.

    “무슨 일이 생겼소?”

    복 장로가 다급하게 묻자 소부자 등도 조금 긴장했다.

    “아닙니다. 인형의 성의 위치가 많이 달라져서 놀란 것뿐입니다. 현재 북쪽으로 제법 멀어져 있군요.”

    “표식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오.”

    안도의 한숨을 내쉰 복 장로의 발밑에서 푸른 빛이 반짝였다.

    비주가 번쩍이더니 천천히 떠올랐고, 이내 북쪽으로 날아갔다. 몇 호흡 만에 천기성 외곽의 금제 앞에 도착할 만큼 언무사의 제비 비주보다도 훨씬 빨랐다.

    복 장로가 입을 열자 푸른 빛 덩어리가 쏜살같이 뱃머리로 날아갔다.

    게 모양 비주의 뱃머리에서 갑자기 그물 같은 푸른색 영문이 반짝이더니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고, 이내 배 전체가 푸른색 영문으로 뒤덮였다. 영문으로 뒤덮인 비주는 빠르게 천기성을 둘러싼 금제를 뚫고 지나가 무은사해로 들어섰고, 계속해서 북쪽을 향해 날아갔다.

    “복 장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최대한 빨리 귀언을 따라잡는 것이니 영해(靈蟹) 비주의 속도를 최대한으로 올리시오.”

    그렇게 말하는 소부자의 얼굴에서 어렴풋한 살기를 느낀 심협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성주의 명에 복 장로가 뭔가를 읊조리자 미간에서 정광이 반짝였고, 동시에 비주가 움츠리고 있던 다리를 활짝 폈다. 그러자 다리에 새겨진 수많은 푸른 영문이 드러났다. 여덟 개의 다리는 마치 땅 위에서 기어다니듯 허공을 잡아당기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영해 비주의 속도가 두 배는 빨라지더니 바람처럼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이런 속도를 낼 수 있는 대형 비주라니, 역시 천기성의 기관술은 삼계 제일이구나.’

    심협은 천기성의 언갑 기관술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심 도우, 이 속도면 언제쯤 도착할 것 같은가?”

    “대략 반나절은 걸릴 것 같군요.”

    소부자의 질문에 심협이 어림잡아 말했다.

    소부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뭔가 상의할 일이라도 있는지 복 장로와 매 장로 그리고 막망 장로를 불러 영해 비주의 밀폐된 방으로 들어갔다.

    소부자와 세 장로가 들어간 후에야 천기성 제자들도 조금은 긴장을 풀고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아 수련하기 시작했다.

    심협도 비주 구석에 가부좌를 한 채 눈을 감고 연연나금의와 현황일기곤을 제련하려 하는데, 갑자기 언무사가 다가왔다.

    ‘내가 귀언과 인형의 성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으로 따지려는 걸가?’

    심협은 언무사가 다가오는 이유를 어림짐작하고는 그에게서 원망을 사지 않을 방법을 생각하느라 바빴다. 언무사는 천기성에서 지위가 낮지 않으니 상대의 미움을 사지 않는 게 좋았다.

    한데 예상과는 달리 언무사는 3척 정도 떨어진 곳에 서서 허리를 숙였다.

    “심 도우, 저번에 도우를 적대 세력이 천기성에 보낸 첩자인 것으로 의심하였소. 결례를 양해해 주시오.”

    뜻밖의 상황에 심협은 일순 당황했고, 잠시 후에는 다른 의문이 들었다. 이런 사소한 일에 이토록 정중하게 사과한다는 것은 과연 언무사가 원래 이렇게 정직한 사람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일까?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런 상황에서 처음 만난 외부인이니 언 도우가 그런 의심을 하는 건 당연지사입니다.”

    그는 빠르게 머릿속을 회전하며 말했다.

    “제가 사사로운 마음으로 심 도우를 추측하여 선의로 다른 정파 도우들과 사귄다는 천기성의 규율을 어겼습니다. 이번 임무가 끝나고 천기성으로 돌아오면 바로 계율당(戒律堂)으로 들어가 벌을 받을 테니 부디 도우의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언무사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정색하며 말했다.

    “언 도우는 너무 진지하시오. 이런 사소한 일은 이제 신경 쓰지 마십시오.”

    심협은 언무사의 표정을 보고는 상대가 모든 일에 꽉 막힌 사람임을 알게 되어 웃음이 터질 뻔했다.

    “규율이 무너지면 그 집단은 무너지는 법. 천기성은 삼계 곳곳의 언사들이 모여 연맹한 종파이기에 계율이 특히 중요하고, 절대 어겨서는 안 됩니다.”

    심협은 어깨를 으쓱해 더는 이 일로 논쟁하기 싫다는 뜻을 보이고는 화제를 돌렸다.

    “한데 언 도우께서는 저를 적대 세력의 첩자라고 의심했다고 하셨소? 천기성은 무은사해에 있는데 적대 세력이 있습니까?”

    “무은사해는 천지영기가 희박하지만 특산 영물이 있기에 소형 종문들이 이곳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우리와 우호적인 것은 아니지요. 게다가 우리 천기성의 언갑술과 연기술이 삼계 제일이다 보니 적지 않은 무리가 다른 속셈을 가지고 무은사해에 잠복하여 본 성을 염탐하기도 합니다.”

    “무은사해에 천기성 외에 또 어떤 종문이 있습니까?”

    “대략 10여 곳인데, 가장 큰 곳이 황사문(黃沙門), 그리고 신귀파(神歸派)와 후토종(厚土宗), 어수종(御獸宗)…….”

    언무사가 10여 개의 종문을 일일이 나열하며 말했다.

    “그 종문들은 어떤 신통에 능합니까?”

    심협이 추궁하듯이 바로 물었다.

    “황사문은 말 그대로 모래를 다스리는 신통에 능하고, 신귀파는 도굴하는 종파인지라 풍수지리와 점혈을 찾는 데 능합니다. 후토종은 토속성 법술이 뛰어나고, 어수종은 각종 영충과 영수를 다스리며…….”

    언무사는 심협에게 미안한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는지 그의 질문에 상세하게 답을 해줬다.

    “한데 심 도우는 이런 걸 왜 물어보시는 겁니까?”

    설명이 끝난 후에야 언무사는 의아한 듯 되물었다.

    “아, 별거 아닙니다. 그저 궁금해서요.”

    심협은 웃으며 말했고 언무사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심협이 더 묻지 않자 인사한 뒤 멀지 않은 곳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심협은 비주의 바닥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가 언무사에게 질문한 것은 당연히 그저 궁금해서가 아니라 문득 무언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인형의 성은 본래 천기성의 것이니 천기성은 끊임없이 그 위치를 찾을 것이고, 귀언은 당연히 조심스럽게 숨어 있었을 것이다. 한데 자신과 부동래는 어떻게 그곳을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었던 걸까?

    처음에는 우연이라 여겼지만, 생각해보니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을 이용하여 귀언의 위치를 천기성에 알리려 한 것이라면, 상대방의 진짜 목적은 무엇일까? 그는 천기성과 무은사해에 관해 아는 것이 적었기에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이 암암리에 숨어서 매복하고 있다면 이번 귀언 추격전은 시작부터 호랑이의 입에 고개를 들이미는 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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