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51화 (751/1,214)
  • 751화. 다른 바라는 바

    상대는 소부자의 결심을 알아채고는 가슴이 철렁했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해맑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이내 그자의 몸이 사라지더니 소부자의 오른쪽 네 번째 자리에 나타나 앉았다.

    백발 청년, 키 작은 노인, 얼굴을 가린 여자도 차례대로 오른쪽의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자리에 앉았다.

    “만벽 장로는 바빠서 못 온다 하니 다 모인 셈이로군. 이미 시간을 많이 허비했으니 서둘러 시작합시다. 이번에 그대들을 모이라 한 것은 귀언의 일 때문이오.”

    “성주님, 뭔가 단서라도 찾으신 겁니까?”

    백발 청년은 뭔가 생각이라도 난 것처럼 바로 옆에 있는 심협을 바라봤다.

    “그렇소. 자세한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심 도우를 소개하겠소. 동토 대당 춘추관의 심협 도우요. 심 도우, 이들은 우리 천기성의 장로회 구성원들이오. 차례로 무명 장로, 복 장로, 막망 장로, 매 장로요.”

    소부자가 서로를 간단하게 소개했다.

    “선배님들을 뵙습니다.”

    심협이 자리에서 일어나 포권했다.

    백발 청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키 작은 노인은 호탕하게 웃었으며, 얼굴을 가린 여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임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유일하게 보라색 옷의 매 장로만이 심협을 흘겨보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성주님, 여러 번 제자들을 보내 귀언의 흔적을 찾았으나 아무런 흔적도 찾지 못했는데 설마 심 도우가 귀언을 찾은 겁니까?”

    키 작은 노인, 복 장로가 물었다.

    “그렇소. 심 도우가 이번에 무은사해를 건너 천기성으로 오는 도중에 우연히 인형의 성 안에 들어갔고, 거기서 귀언을 만났다 하오.”

    그 말은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것처럼 큰 파란을 일으켰다!

    “심 도우, 그게 사실이오?”

    “그렇습니다. 볼일이 있어 천기성으로 오던 중이었으나…… 부끄럽게도 전송 법진을 이용하면 바로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친한 벗과 함께 무은사해를 건넜습니다. 그러던 중 무은사해에서 길을 잃었고, 우연히 땅속 어딘가를 통해서 인형의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후에 여러 일을 겪었고, 저는 운 좋게 도망쳤습니다. 허나 제 벗은 지금도 성에 갇혀 있지요.”

    심협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인형의 성에 들어갔다가 도망쳤다? 심 도우는 우리를 어린아이로 아는 게요? 인형의 성은 거원 선배께서 직접 만드신 언갑이오. 그 엄청난 위력 앞에서는 진선 후기 수사라 해도 영원히 갇힐 수밖에 없거늘, 그대가 무슨 재주로 도망쳐 나왔다는 게요?”

    매 장로가 차갑게 비웃었는데, 어지간히도 심협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복 장로와 얼굴 가린 여자, 막망도 의심스러운 눈빛이었다.

    그때, 소부자가 끼어들었다.

    “심 도우의 말은 사실이오.”

    그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복 장로 막망은 그의 말을 절대 신뢰하는 듯 놀란 눈빛으로 심협을 돌아보았다.

    매 장로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결국 별다른 반박은 하지 않았다.

    “대승 절정으로 보이는데, 심 도우의 실력이 그리 강할 줄은 몰랐구려. 역시 이번 삼계무도회의 우승자답소.”

    “과찬이십니다. 제게 그렇게 대단한 능력은 없습니다. 운이 좋았고, 벗이 도운 덕분에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뿐입니다.”

    무명 장로의 칭찬에 심협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심 도우의 벗이라면……?”

    “벗의 이름은 부동래입니다. 삼계무도회에서 친분을 쌓았지요.”

    “부동래라면…… 사타령 호랑이 요괴의 제자가 아니오?”

    무명 장로는 삼계무도회를 모두 지켜본 듯했다.

    “그렇습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엄호해줬기에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복 장로와 막망, 매 장로는 그 말을 듣자 고개를 끄덕였다. 사타령의 신통은 매우 강하고 공격력에서는 최강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언갑을 제압할 법도 했다. 만약 부동래가 목숨 걸고 엄호했다면 심협이 인형의 성에서 도망쳐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만 무명 장로만은 심협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저는 다시 벗을 구하러 가기 위해 인형의 성 안에 법력 표식을 남겨두었는데, 귀언이라는 자도 바로 알아채지는 못할 겁니다. 그 법력 표식이 있으면 여러분을 인형의 성으로 안내할 수 있습니다.”

    심협은 무명 장로의 눈빛을 신경 쓰며 설명을 이어갔는데, 무명 장로는 심협의 마지막 말에 흥분한 목소리로 소부자에게 말했다.

    “성주님, 심 도우가 그곳을 찾을 수 있다 하니 어서 가시죠. 늦었다가는 일이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복 장로 등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 일을 의논하고자 그대들을 소집한 것이오. 누군가 재주를 부려서 지체하지 않았다면 벌써 출발했겠지.”

    소부자는 매 장로를 힐끗 쳐다보고는 말을 이었다.

    “반 시진 뒤 출발할 것이니 만반의 준비를 하시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언갑과 천기권을 가지고 와야 하오!”

    “네!”

    장로들은 호기롭게 대답하고는 둔광으로 변하여 밖으로 날아갔다.

    대전 안에는 이제 심협과 소부자만 남게 됐다.

    “성주님, 제가 인형의 성에 가봤으니 그곳의 변화를 대략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또한 벗을 구해야 하니 저도 동참해도 되겠습니까?”

    심협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부자에게 예를 올리며 물었다.

    “심 도우의 수단이면 확실히 도움이 되겠지. 한데 이리 적극적으로 나오는 걸 보니 뭔가 다른 바라는 바가 있는 것 같은데, 할 말이 있으면 말해보게.”

    소부자는 심협을 살펴보더니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성주님의 안목에 감탄했습니다. 사실 바라는 게 있긴 합니다. 그 귀언의 실력은 매우 강하여 제 능력으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주님의 신통으로 저의 두 가지 법보를 수리해주신다면 저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심협은 현황일기곤과 구전빈철 사슬 그리고 망가진 잿빛 두건을 꺼냈다.

    “음, 이 곤봉에는 적지 않은 영양신철이 담겨 있는데 이제 구전빈철까지 넣겠다? 이걸 여의금고봉으로 만들 생각인가? 허나 아쉽게도 구천금정이 사라진 지 오래지. 본 성도 여러 번 찾아다녔지만 소득이 없었네. 아무래도 도우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군.”

    심협은 그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소부자의 시선은 현황일기곤에서 떠나 잿빛 두건으로 향했는데, 이내 놀란 눈빛으로 손을 들었다. 잿빛 두건은 심협에게서 날아가 그의 손에 떨어졌다.

    “이건 설마 연연나금의(軟煙羅錦衣)? 그래, 분명해. 한데…… 누군가 다시 제련하면서 내부가 엉망이 되었군.”

    소부자는 살펴보고는 얼굴에 화색이 돌다가 이내 다시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연연나금의?”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 과거 북해 용초선자(龍綃仙子)의 왕모께서 축원하여 만든 중보인데, 천 년 전에 도둑맞았다네. 천정은 이로 인해 체면을 잃을까 우려하여 비밀에 부쳤으니 삼계에서는 극소수만 알고 있는 사실이지. 나도 천정의 반도성회(蟠桃盛會)에 갔다가 우연히 본 적이 있어서 알고 있는 것일세.”

    “선배님께서는 이 보물을 알고 계시니 고치실 수도 있겠군요?”

    “이 연연나금의는 북해 연연초사(軟煙綃紗)와 은하수 깊은 곳 나금천(羅錦天)의 누에실을 조합하여 만든 것이라네. 이전이었다면 나도 자신이 없었겠지만 얼마 전, 연연초사와 나금천 누에실을 구매했으니 아직 조금 남아 있을 걸세.”

    소부자가 소매를 휘두르자 적홍색 연기로가 대전 안에 나타났다.

    이 연기로는 3장 크기에 조롱박 모양이었고, 위에는 수많은 기계 기관 같은 영문이 새겨져 있었다. 언갑에서 본 문로와 매우 유사했지만, 그보다 더 복잡했다. 연기로 중앙에는 불꽃 모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안에는 고전자(古篆字)로 ‘천기’라 적혀 있었고, 연기로 끝에서는 수시로 보라색 안개가 피어올라 매우 현묘해 보였다. 오장관에서 본 일월주천신로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었다.

    이런 연기로를 가진 소부자에 대한 신뢰가 더욱 커졌다.

    소부자가 결인하자 연기로 뚜껑이 열리면서 붉은 하광이 뿜어져 나와 잿빛 두건과 현황일기곤 그리고 구전빈철 사슬을 휘감더니 휙 연기로 안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붉은 연기로가 웅웅 떨리더니 주위의 문양이 붉은 불꽃을 뿜어냈고, 대전 안의 온도는 빠르게 올라갔다.

    “두 가지 보물을 한꺼번에? 저러다가…….”

    심협은 연기에 관해 자 알지 못했지만 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집중하는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기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 천기신공로(天機神工爐)는 보통 연기로와 달리 수많은 연기 공간이 나누어져 있네. 두 개는 물론이고 열 개, 스무 개도 한꺼번에 만들 수 있지. 걱정하지 말게.”

    소부자의 설명에 심협은 입을 다물었다.

    소부자가 계속해서 천기신공로를 발동하자 연기로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고, 주위의 불꽃은 갈수록 거세져 천기신공로를 덮어 버렸다. 이어서 소매에서 나온 영재들이 결인과 함께 일제히 연기로 안으로 들어갔다.

    연기로 안에서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는 금빛과 푸른빛은 마치 불꽃이 피어오르듯이 주위의 허공에서 계속 번쩍거렸다.

    심협은 기쁜 눈으로 이를 보며 방해하지 않고 옆에서 조용히 기다렸다.

    반 시진 정도 지나자 천기신공로가 갑자기 멈췄고, 뚜껑이 저절로 날아올랐다.

    찬란한 빛이 연기로 안에서 뿜어져 나와 천장까지 솟아올랐지만, 대전 천장의 하얀 빛에 막혀 버렸다.

    뒤이어 웅웅거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금빛과 푸른빛이 연기로 안에서 날아오르자 봉황의 울음 같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영광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면서 부근의 천지영기마저 흔들렸다.

    “이렇게 빨리……?”

    심협은 놀라는 동시에 소매를 휘둘러 금빛과 푸른빛을 끌어당겼다.

    “자네의 곤봉은 재료를 넣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고, 연연나금의의 금제는 손상을 입지 않았으니 준비된 재료만 넣는 것으로 충분했네. 사실 이것도 너무 오래 걸린 게야.”

    소부자는 불만족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심협은 소부자의 말에 멍해졌다.

    알아야 할 것은 그가 이전에 만년화린목을 순양검배 안에 넣을 때 엄청난 공이 들었고 며칠이 걸려서야 성공했다. 한데 소부자는 반 시진도 걸리지 않아 두 가지 법보의 제련을 마쳤다. 이 차이는 커도 너무 컸다.

    심협은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털어내고는 수중의 두 빛 덩어리를 바라봤다. 연연나금의는 마치 푸른 구름처럼 변해 있었는데, 마치 언제든 허공으로 사라질 것처럼 보일 듯 말 듯했다.

    심협이 선천연보결로 운공하여 연화하고 법력을 흘려보내자 금제가 너무도 순조롭게 스며들었다. 이전에 제련할 때 들었던 어려운 느낌이 전혀 없었다.

    연연나금의 안의 금제는 모두 49도나 되어 상품 법보급에 도달했으며, 금제에 담긴 신통은 그가 이전에 알아냈던 은신 외에도 한 가지 신통이 더 있었다. 이것이 바로 연연나금의의 가장 핵심적인 기능인 회피였다.

    이 회피 신통은 이전의 두 개보다 더 정교했는데, 당장은 시험해보기가 마땅치 않았다.

    심협은 연연나금의를 계속 법력으로 연화하면서 시선을 현황일기곤으로 돌렸다.

    현황일기곤의 외형은 이전과 큰 변화가 없었지만, 그 위의 쩍쩍 갈라졌던 균열은 모두 사라졌다. 대신 아홉 개의 검은색 영문이 나타났고, 안에서부터 검은 빛을 띠어서 이전보다 더 강해 보였다.

    현황일기곤을 감싸고 있는 기운도 완전히 바뀌어 반경 수십 장의 허공이 무거운 기운에 휩싸였고, 이 봉의 위능을 감당하기 벅찬지 바닥이 조금씩 흔들렸다.

    심협이 손을 뻗어 차가운 곤봉을 움켜쥐자 뿜어져 나오던 검은 빛은 고래가 물을 들이마시듯이 사라졌고, 무거운 기운도 전부 거두어졌다.

    현황일기곤을 손에 쥐자 마치 혈맥이 연결되어 그의 몸과 하나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곤봉이 그에게 연화되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소부자의 솜씨가 정묘해서 인지는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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