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48화 (748/1,214)
  • 748화. 천금루

    “그럼 천기성 장로회는 누구누구요?”

    심협은 완전히 주명을 장악한 뒤 계속해서 물었다.

    “성주님과, 제일 장로 무명, 제이 장로 복(老福) 할아버지, 제삼 장로 막망(莫忘), 제사 장로 매(魅) 그리고 제오 장로 만벽입니다. 만벽 장로님은 제오 장로이지만 연기술로는 성주님 바로 다음이십니다.”

    주명은 화가 난 말투였지만, 여전히 아무런 망설임 없이 모두 말해줬다.

    심협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만벽의 연기술이 그리 대단하다니, 천금루가 기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성주님은 함자는 어떻게 되시오?”

    “성주님은 소부자(小夫子)이십니다.”

    “소부자?”

    심협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름이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하지만 현재 미혼 신통으로 상대를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그 점에 대해서는 더 물을 시간이 없었다.

    “언무사 도우는 날 무척 경계하는 것 같은데, 그는 어떤 분이오? 정말로 날 위해 위쪽에 연락을 취해줄 것 같소?”

    심협은 가장 관심 있는 질문을 했다. 옥침을 고치기 위해서는 만전에 대비해야 했다.

    “언 사형은 성격이 냉담하지만 사람됨이 정직하여 평소 약속을 중히 여겨왔으니 분명 약속을 지키실 겁니다. 또한, 심 선배를 향한 경계심은 낭하국 도성 폐허에서 본성의 배신자 귀언을 찾는 임무 때문일 공산이 큽니다. 그자는 본성의 몇 가지 절정급 언갑과 <천기권(天機卷)> 반 권을 훔쳐 갔는데, 심 선배가 귀언의 첩자는 아닐까 경계한 것일 테지요.”

    심협은 언무사에게 특별한 꿍꿍이가 없음을 알고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데 그는 주명이 말한 임무를 듣고는 문득 지하성의 신비의 인물이 떠올랐다.

    “절정급 언갑? 그중에 육비천룡이라는 것도 있소?”

    “있습니다. 그것은 천기성 초대 성주 거원(車轅)께서 만든 언갑으로, 위력이 엄청납니다.”

    ‘아무래도 그자가 천기성이 찾는 귀언이란 자인가 보군.’

    심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더 물으려다가 주명 눈의 푸른 빛이 사라지는 걸 보고는 입을 닫았다.

    주명의 눈빛은 금방 또렷해졌는데, 방금 미혼술에 걸렸음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심협과 나눈 대화도 모두 잊은 뒤라 천금루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금방 천금루 앞에 도착했다. 이곳은 천기성 오장로가 세운 곳인 만큼 다른 상점과는 확연히 달랐다. 총 5층이었고, 마치 화옥(火玉)으로 만든 것처럼 온통 붉은색이라 눈에 확 띄었다. 정문에는 ‘천금루’라 쓰인 커다란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금빛으로 반짝여 수십 장 밖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이 번화가 중에서 군계일학이었다.

    심협은 대승기 수사의 위압감을 거두고는 걸음을 옮겼다.

    천금루 1층의 대청은 매우 넓었다. 두 곳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왼쪽 구역이 조금 더 컸다. 안에는 수십 개의 박달나무 탁자가 놓여 있었고, 그 위로 도와 창, 도끼, 채찍 등 온갖 무기가 진열되어 있었다. 모두 보광으로 빛나는 것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오른쪽 구역에는 석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각종 영재를 사들이고 있었다. 또 하나의 접수대에는 법보 제작 주문을 받는 중이었다.

    천금루는 명성이 자자하여 손님이 가득했다. 지금도 30여 명의 수사와 점원들이 대화를 나누거나 대청 안을 돌아다니고 있어서 심협과 주명을 맞으러 나오는 점원도 없었다.

    심협도 그런 허례허식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나, 신식으로 가게 안의 무기들을 살펴보고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분명 품질이 상당히 좋은 무기들인 데다 법기도 있었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천금루는 총 5층으로 되어 있는데, 선배님께서 쓰실 만한 법보는 위에 있을 겁니다. 제가 천금루의 루주와 조금 아는 사이니 함께 만나러 가시죠.”

    주명이 그렇게 말하고는 심협을 대청 옆의 계단으로 데려갔는데, 점원들은 주명을 잘 알고 있는지 막아서지 않았다.

    루주를 직접 만날 수 있다니, 심협도 당연히 거절하지 않고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금세 5층에 도착했다. 주명은 확실히 처음 온 게 아닌 듯 곧장 심협과 함께 편청으로 향했다.

    “심 선배님,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가서 루주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주명이 심협에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하하하! 주 아우가 장사를 도우려고 이렇게 애를 쓰는데 내 어찌 주 아우를 오라 가라 하겠는가?”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오더니 회색 옷의 중년 남자가 손에 푸른 표지의 고서를 한 권 들고 들어왔다.

    심협은 사내를 살폈는데, 매우 의젓한 외모와 달리 경지는 높지 않아서 출규기 후기 정도였다. 하지만 그에게서 뭐라 말할 수 없는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방(方) 형,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동문이니 당연히 서로 도와야죠. 이분은 심협 선배님입니다. 동쪽 대당에서 오셨는데, 좋은 법보를 구매하고 싶어 하십니다.”

    주명이 일어나 두 사람을 간단히 소개하며 심협이 온 이유를 밝혔다.

    “심 선배님이셨군요. 천기성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선배님께서 어떤 법보가 필요하신지 말씀하시면 제가 알맞은 것을 가져오겠습니다.”

    회색 옷의 남자가 안으로 들어와 열정적으로 공수하며 말했다.

    두 명의 시녀가 옆문으로 들어와 심협과 주명에게 영기를 북돋아주는 좋은 차를 한잔 따라주었다.

    “방어 법보가 한두 개쯤 필요합니다. 종류는 상관없고, 진귀하면 할수록 좋습니다. 가격이 얼마든 루주님께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동안 적지 않은 수사를 죽이고 수많은 선옥을 모았기에 법보 몇 개 사기에는 충분했다. 그 선옥으로도 부족할 정도의 뛰어난 법보라면 몇 가지 진귀한 보물과 교환할 수도 있을 테니 오히려 좋았다. 지금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뇌겁을 피하는 것이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좋은 방어 법보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방 루주는 심협의 호탕한 말에 조금 의아해하면서도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는 일어나서 나갔다.

    심협은 차를 마시며 조용히 기다렸다.

    반 각 정도가 지나자 방 루주가 다시 들어왔는데, 그의 뒤에는 세 명의 시종이 붉은 천으로 뒤덮인 쟁반을 들고 따라왔다.

    천 또한 법보로서, 신식을 차단하는 효능이 있었기에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살펴볼 수 없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저희 천금루에서 가장 좋은 방어 법보 세 가지를 가지고 왔으니 선배님의 눈에 들었으면 좋겠군요.”

    방 루주는 시종들에게 쟁반을 탁자 위에 올려놓게 했다.

    심협은 무엇이 담겨 있을지 매우 궁금해 하면서 첫 번째 쟁반 위의 천을 들어 올렸다.

    쟁반에는 손바닥 크기의 작은 방패가 있었다. 검은색 타원형에 그 위로는 수많은 영문이 새겨져 있어 놀라운 영기 파동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 방패는 귀령순(龜靈盾)이라 합니다. 대승기 거북이 요물의 등껍질에 천년 된 현묵철정(玄墨鐵精) 등을 조합하여 만들었습니다. 안에는 35도 금제가 담겨 있는 중품 법보급입니다.”

    심협은 작은 방패를 들어 법력을 주입했다. 짙은 검은 빛이 흘러나왔는데, 그 안에는 짙은 수령의 힘이 담겨 있었다.

    심협은 흡족한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귀령순은 기혈번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수속성 법보라 무명공법에 잘 어울릴 터였다.

    방 루주는 심협이 만족한 듯하자 안심하고는 두 번째 쟁반의 천을 거두었다. 안에는 혈홍색 작은 그물이 있었는데, 귀기와 함께 귀신의 울음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두 번째 법보는 혈살음라망(血煞陰羅網)입니다. 흔히 얻을 수 없는 혈도의 비보로, 부드러움으로 강직함을 막아내는 데다 방어하는 동시에 혈살음뢰(血煞陰雷)를 뿜어내 보이지 않는 상대를 공격하기도 합니다.”

    방 루주는 혈색의 작은 그물을 가리키며 소개했다.

    “혈도 법보라…….”

    이 혈살음라망은 기혈번과 매우 비슷했지만, 그 재질과 품급이 기혈번에는 한참 못 미쳤다. 방어와 공격이 동시에 어우러진다는 점이 마음에 들긴 하지만, 혈보 법보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 바로 같은 뇌전에는 상극이라 뇌겁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점이었다.

    “마지막은 무엇입니까?”

    그는 마지막 쟁반을 바라봤다.

    이 쟁반에 담긴 물건은 작지 않았고, 천이 덮여 있음에도 귀령순이나 혈살음라망보다 강력한 영력 파동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건 미완성 법보인데, 한 가지 재료가 부족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방어력은 다른 두 개의 법보보다 훨씬 뛰어나죠.”

    방 루주는 심협이 혈살음라망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듯했음에도 실망하지 않고 손수건을 누르며 자신만만하게 말하고는 잠시 뜸을 들였다.

    “미완성인데도 이 정도 위능이라니, 무척이나 궁금해지는군요. 도대체 어떤 보물인지 어서 말씀해주시죠.”

    방 루주는 심협의 불쾌해하기 전에 천을 거두었다. 그러자 금색 술잔 모양의 법보가 모습을 드러냈다. 법보에서는 둥근 금빛이 흘러나왔고, 발동하지도 않았는데 그 엄청난 영력 파동에 인근의 천지영기마저 일렁거렸다.

    “이 보물은 천두금준(千斗金樽)입니다. 상고시대 대종문 천두문(千斗門)의 진파 보물로, 주위의 금(金)의 영력을 끌어들여 놀라운 방어력을 발휘하지요. 만벽 장로님께서 고방(古方)을 토대로 만드신 겁니다. 다만 아쉽게도 이 보물에는 가장 중요한 재료인 구천금정(九天金精)이 빠져 있어서 천두금준의 영력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허나 그럼에도 이미 58도의 금제가 있어서 상품 중의 상품 법보입니다.”

    방 루주가 자신 있게 말했다.

    “한번 사용해 봐도 되겠습니까?”

    천이 벗겨진 이후로 심협의 눈은 줄곧 천두금준에 향해 있었다.

    “물론입니다.”

    심협은 조심스럽게 천두금준을 들어서 살펴보고는 선천연보결로 연화를 발동했다.

    휙!

    금준은 바로 금빛을 내며 심협의 머리 위로 날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몇 장 크기로 커져 머리 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방 루주는 이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천두금준은 고방을 따라 만든 것이라 그 안의 금제는 위력을 발동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 보물이 천금루로 왔을 때 자신도 발동해보고 싶었지만, 8일째가 되어서야 간신히 됐었다. 한데 심협은 처음 보자마자 이렇게 바로 발동했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심협은 조금씩 천두금준의 특성을 이해한 뒤, 스스로 안의 금제를 발동하게 했다. 그러자 주위 허공에 있던 금의 영력이 모여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단 같은 금빛이 천두금준에서 내려와 심협 주위를 감싸더니 실체를 갖춘 금색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이 금색 보호막의 기운을 느낀 심협은 흥분을 감추기가 쉽지 않았다. 이 보호막은 기혈번보다 방어력이 훨씬 위였고, 심지어 금속성 법보라 기혈번 안의 음귀의 힘과는 달리 뇌겁에서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사실 귀령순과 혈살음라망을 봤을 때는 내심 실망했다. 그 두 가지 법보도 훌륭했지만, 그가 바라는 바와는 달랐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당장이라도 나가고 싶었지만 주명과 천기성의 체면을 생각해서 겨우 남아 있었던 것이다.

    한데 천두금준 같은 중보를 보니 기쁠 수밖에 없었다. 이 보물이 있으면 뇌겁을 견딜 가능성이 3할은 더 올라갈 것이다!

    “매우 훌륭하군요. 저 귀령순까지 사겠습니다. 선옥 몇 개면 되겠습니까?”

    심협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결인했다.

    주위의 금색 보호막이 사라지면서 천두금준도 원래 크기로 돌아가 다시 탁자 위에 내려앉았다.

    “심 선배님은 천기성의 귀빈이고 주 아우와 함께 왔으니 당연히 신경을 써 드려야죠. 귀령순은 선옥 3천 개, 천두금준은 1만5천 개 어떠십니까?”

    방 루주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값을 불렀다.

    심협은 그 정도 가격이면 괜찮다 싶었기에 두말없이 승낙했다.

    그가 소매를 휘두르자 옆의 바닥에 푸른 빛이 반짝였고, 선옥이 나타났다.

    방 루주는 신식으로 선옥의 개수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는 바로 저물 법기를 꺼내 모두 거두었다.

    거래가 성립되자 양쪽은 모두가 기뻐했다.

    한편, 심협을 바라보는 주명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 2만여 개의 선옥을 선뜻 내다니, 이는 천기성의 진선기 장로도 감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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