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46화 (746/1,214)
  • 746화. 언무사(偃無師)

    “고작 법보 하나로 그럴 것 없다. 그나저나 이전에 음수의 시체를 흡수할 때 나왔던 흑홍빛은 무엇이냐? 처음 보는 신통 같더구나.”

    “이번에 음수에게 쫓기다가 위급한 상황에서 각성한 신통입니다. 형흉신광(形凶神光)이라 이름 붙였는데. 음속성 공격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귀장이 득의양양하게 말하고는 입을 벌리자 흑홍빛이 뿜어져 나와 주위를 날아다녔다.

    “형흉신광이라……. 대단하구나! 뛰어난 신통이니 잘 수련해 보거라. 잘하면 내 홍련업화를 넘어설 수도 있겠어.”

    “네! 주인님의 기대에 부응하겠습니다!”

    귀장은 심협의 높은 평가에 가슴이 울컥했다.

    심협은 귀장에게 몇 마디 더 일러주고는 가부좌를 틀었지만, 곧장 수련하지 않고 하얀 옥패를 꺼낸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옥패는 이전에 사우흔이 헤어질 때 주었던 수운패였다. 그리고……

    ‘그 거문고를 들고 있던 여시는…… 분명 사우흔이었어!’

    사우흔은 심협이 대승 경지에 들어섰을 때 사귄 벗으로, 두 사람은 여러 번 서로를 도우며 친분을 쌓았다. 경하 용왕 사건 뒤로 두 사람은 장안성에서 헤어졌고, 그 뒤로는 만난 적이 없었다.

    심협은 줄곧 그리워했고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었던 벗을 설마 이런 곳에서, 그런 상태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가 돌아가기로 한 것도 부동래를 찾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사우흔 때문이기도 했다. 이번 일의 경위를 밝혀내야만 했다. 그래서 만약 배후의 그자가 사우흔을 연시로 만든 것이면 어떻게든 복수를 할 생각이었다.

    심협은 옥패를 챙겨 넣고 일원진수를 꺼내 수련을 시작했다.

    * * *

    눈 깜짝할 사이에 10여 일이 지났다.

    대전 깊숙한 곳, 심협의 온몸은 푸르게 빛났고, 바다처럼 무겁고 거대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대승 후기 절정에 도달한 게 분명했다.

    그는 이전에 지하성에서 그림자를 연화한 후로 신혼의 힘이 더욱 증가했고, 며칠간 일원진수의 강력한 영력을 이용함으로써 마침내 대승 절정에 도달했다. 이제 외부의 힘을 빌려 진선기 돌파를 시도할 때였다.

    이 외부의 힘은 이미 준비됐으니, 바로 은행나무 영과였다. 이 영과에는 강력한 영력이 담겨 있어 진선기로 돌파하는 데 큰 도움이 될 터였다.

    현실에서 그의 자질은 좋지 않았지만, 꿈속 세계에서 이미 진선기로 돌파해본 경험이 있고, 여기에 은행나무 영과의 도움까지 더하면 진선기로 돌파할 가능성은 6할에 이르렀다.

    유일하게 신경 쓰이는 것은 진선 뇌겁이었다. 그에게는 적잖은 법보가 있지만, 뇌겁에 쓸 수 있는 것은 기혈번과 참마검에 불과했다. 현황일기곤이나 용각추, 순양검 등은 위력은 강하지만 뇌겁을 막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심협이 어두운 표정으로 뇌겁을 막을 방법을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주인님, 사람들이 오고 있습니다.”

    이때, 귀장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누구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족 수사인데 실력이 약하지 않습니다. 수백 장 떨어진 곳에서도 그들의 우두머리가 제 시선을 눈치채고는 황급히 물러났습니다.”

    심협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귀장은 귀체허화 신통이 있는 데다 심협에게서 받은 은신부도 가지고 있다. 심협 자신도 그런 귀장의 존재를 수백 장 떨어진 곳에서는 전혀 알아챌 수 없을 터였다. 그렇다면 이번에 나타난 자들의 우두머리가 최소한 진선기 수사라는 말인가?

    심협은 대전 주위의 금제 진반를 거두고는 동남쪽으로 날아가 금세 협곡 비슷한 곳에 도착했다.

    은신부를 몸에 붙이자 그의 모습은 금세 사라졌다.

    “그들은 어디에 있지?”

    협곡 근처의 폐허 성벽에 숨은 귀장이 답했다.

    “산골짜기 안에 멈췄는데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심협은 신식을 펼쳐 살펴본 순간, 표정이 급변하더니 재빨리 비켜서며 귀장에게 전음을 보냈다.

    “기습이다! 조심해!”

    귀장은 곧장 바로 벽에서 튀어나와 옆으로 피했다.

    그 순간, 하늘에서 귀장과 심협이 서 있던 곳으로 커다란 하얀 빛기둥이 떨어졌다.

    심협은 무사히 피했지만 귀장은 미처 피하지 못해 가슴을 가격당했다.

    경지가 이전보다 높아진 조비극은 검은 기운을 뿜어내 순식간에 주위에 빛의 방패를 만들었으나, 그럼에도 빛기둥은 방패를 뚫고 귀장의 가슴까지 관통했다.

    귀장은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뒤로 날아갔다.

    빛기둥은 그 뒤로도 사라지지 않고 살아 있는 것처럼 방향을 바꿔 다시 귀장을 쫓았다. 심협에게 돌진하던 빛기둥도 방향을 틀어서 귀장을 향해 돌진했다.

    두 줄기 빛은 거대한 가위처럼 귀장의 몸을 자를 기세였다.

    위기의 순간, 귀장의 몸이 검게 번쩍이더니 기혈번이 날아올라 촥 펼쳐지면서 두 줄기 하얀 빛을 막았다.

    빛기둥과 충돌하자 엄청난 폭음이 울려 퍼지면서 기혈번은 움푹 들어갔으나 그 위의 검은 빛은 요지부동이었다.

    기혈번의 검은 빛이 더욱 크게 번쩍였고, 두 개의 검은색 음화가 뿜어져 나가 손으로 변하더니 빛기둥들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가벼운 소리와 함께 두 개의 빛기둥은 단번에 부서졌다.

    “귀하는 뉘시오? 어찌하여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오?”

    심협은 건곤대의 음기로 귀장의 상처를 치료했으나, 시선은 멀지 않은 공터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귀장은 빠르게 회복되어 몇 호흡 뒤에는 상처가 완전히 사라졌고, 안도의 한숨을 쉬더니 검은 귀도를 꺼내 언제든 싸울 태세를 갖췄다. 하지만 공터는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조용했다.

    “은닉 신통으로 속일 생각인가?”

    심협이 냉소하더니 몸에서 푸른 빛을 뿜어내며 소매를 휘두르자 10여 개의 붉은 검기가 모래언덕 상공을 베었다.

    몇 번의 굉음이 울려 퍼지고 검기가 터지면서 커다란 하얀 그림자가 나타났는데, 머리가 몇 장 크기인 하얀색 이수(異獸)였다. 도마뱀처럼 생겼지만, 진짜가 아닌 꼭두각시 같았다.

    심협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눈앞의 꼭두각시를 살폈다.

    도마뱀처럼 생긴 꼭두각시의 두 눈은 하얀 빛으로 반짝였는데, 좀 전의 빛기둥은 거기서 뿜어져 나온 듯했다.

    한데 검기의 공격에도 흔적이 전혀 없었던 것처럼 깨끗했기에 심협은 의아했다. 비록 전력을 다해 쏜 것은 아니지만 적잖은 법력이 담겨 있어서 어지간한 법보의 위력과 비슷한 정도였다. 그런데도 아무런 흔적조차 남지 않은 것이다.

    ‘엄청 단단한데?’

    심협이 도마뱀 꼭두각시를 살피고 있는데, 꼭두각시 안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도마뱀 언갑(偃甲)의 은신을 알아챈 건가?”

    “언갑? 설마 천기성 제자시오?”

    “그렇소만, 귀하는 누구시오?”

    도마뱀 언갑 안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당 춘추관의 제자인 심협이라 하오.”

    “심협? 설마 이번 삼계무도회에서 우승한 그 심협이오?”

    “그렇습니다.”

    심협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 주위를 감싸고 있는 푸른 빛을 거두었다.

    “정말 심 도우였군요. 삼계무도회에서 보여준 고명한 실력에 감탄했소.”

    도마뱀 언갑 배 부분에 구멍이 열리더니 몸집이 크고 얼굴이 까만 사내가 안에서 나왔는데, 심협에게 매우 탄복한 표정이었다.

    “과찬이십니다.”

    “전 임감(林憨)이라 합니다. 그나저나 심 도우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이오? 나는 또 악인인 줄 알았소.”

    까만 사내의 말에 심협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사과인가 아니면 비꼬는 말인가? 사과라고는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비꼬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사내의 표정은 또 너무 진지하지 않은가?

    심협은 수양이 깊은 만큼 결례가 되는 말에도 흔들리지 않았지만, 그만큼의 수양이 없던 귀장은 버럭 화를 내려 했다. 한데 그때였다.

    “임감 사제, 그게 무슨 망언인가!”

    멀리서 노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금빛 유광이 쏜살같이 날아왔다. 그것은 금색 원숭이 언갑이었다.

    원숭이 언갑은 도마뱀 언갑보다 두 배는 커서 거의 10여 장에 이르렀고, 온몸이 금빛으로 번득여서 마치 거대한 신 같았다.

    금빛 원숭이의 배 부분이 번쩍이더니 검은 구멍이 생겨났고, 그 안에서 스물 초반쯤 되어 보이는, 차가운 표정의 청년이 나타났다. 검은 도포를 입고 양팔에는 검은 장갑을 끼고 있었는데, 가슴에는 금색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 아래에는 고전(古篆) 문자로 ‘천기’라 쓰여 있었다.

    이를 본 심협은 내심 놀랐다. 삼계무도회 때 천기성 복장의 특징을 알게 됐는데, 이 청년의 옷에 있는 금색 구름무늬는 천기성 대언사의 상징이었다.

    “두 분 도우께서 양해해 주십시오. 임감 사제는 어려서부터 천기성에서만 자란 터라 세상 물정에 어둡고 말솜씨가 서툴러 그런 것일 뿐, 두 분께 불경한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차가운 표정의 사내가 심협과 귀장에게 공수했다.

    “괜찮습니다.”

    심협도 화를 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 언무사(偃無師)라 합니다. 대당의 고사(高士)이신 두 분께서는 어쩐 일로 무은사막의 낭하국(郞夏國) 폐허에 계셨던 것인지요? 저희 천기성은 이곳의 지주나 마찬가지이니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

    청년은 마치 얼음조각처럼 표정이 차가웠지만, 말투는 매우 겸손해서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어쨌든 그의 말로 봐서는 이 폐허에 무척 신경 쓰는 듯했다.

    “무 도우셨군요.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마침 천기성의 성주님을 찾아뵈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다만 천기성의 위치가 너무나 은밀하고 길을 안내해주는 이가 없어 길을 잃었다가 잠시 이곳에서 쉬며 법력을 회복하고 있었을 뿐,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는 전혀 몰랐습니다.”

    “심 도우는 저희 성주님을 찾아오신 거였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언무사의 긴장된 표정이 좀 풀어졌다가 심협의 말을 듣고는 다시 엄숙해졌다.

    “천기성의 연기술이 삼계에서도 독보적이라는 명성을 들었습니다. 제게 중요한 법보가 있는데 망가졌기에 천기성 성주님께 복구 방법을 여쭙고 싶었습니다. 언 도우께서 혹시라도 천거해주신다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심협은 잠시 생각하더니 포권하며 말했다. 본래는 곧장 진선기로 돌파하려 했으나, 어렵게 천기성 제자를 만난 이상 순서를 바꿔야 했다. 만약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천기성 제자를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먼저 천기성으로 가서 옥침 문제가 순조롭게 끝나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다면 곧장 나와서 부동래를 구할 생각이었다.

    “하하! 심 도우께서도 눈썰미가 제법이시구려. 법보 복구라면 우리 성주님을 찾는 게 당연한 일이죠. 그 어르신의 연기술은 천하제일이라 지금까지 복원하지 못한 법보가 없소이다. 하하하!”

    옆에 있던 임감이 득의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임 사제, 입 좀 다물게!”

    언무사가 노려보자 임감은 움찔 떨더니 목을 움츠리고는 바로 입을 닫았다.

    “천기성 성주님의 명성은 저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부디 언 도우께 천거를 부탁드립니다.”

    임감의 말을 들은 심협은 속으로 기뻐하며 다시 공수하고 간청했다.

    “그야 문제없습니다만, 성주님은 본인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시는데, 현재 몇 년간 폐관하며 언술 연구에 빠져 계시는 터라 저도 그동안 그분을 뵙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성주님을 뵐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군요.”

    “성주님을 뵐 수 있을지는 제 운이겠군요. 그렇다면 운에 맡기는 수밖에요. 언 도우께서 안내 좀 해주십시오.”

    일이 어찌 되든 우선 천기성의 위치라도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심협은 그렇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를 따라오십시오.”

    “한데 두 분께서는 무슨 일로 여기에 오신 겁니까? 저 때문에 일에 방해가 생긴 건 아닌지요.”

    “저희는 어떤 물건을 찾으러 왔다가 마침 천기성으로 돌아가는 길일 뿐입니다. 전혀 방해된 것 없으니 우려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언무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하고는 하늘을 향해 푸른 빛을 쐈다.

    몇 개의 둔광이 산골짜기 안에서 날아오더니 언무사 뒤에 몇 사람이 나타났다. 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심협과 귀장을 바라봤다.

    그들의 소매에는 화운(火雲) 무늬가 새겨져 있었는데, 모두 화련사(火煉師)급의 제자라는 의미였다.

    “임무는 잠시 멈추고 천기성으로 돌아간다.”

    언무사의 말에 천기성 제자들은 의아해한 얼굴로 서로를 돌아봤지만, 아무도 토를 달지는 않았다.

    이를 본 심협은 언무사 등이 여기서 어떤 임무를 수행 중이었음을 알 수 있었지만, 천기성의 비밀을 캐물을 수는 없었기에 잠자코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