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2화. 연시(煉尸)
어두운 궁전 안. 누군가 놀란 듯한 감탄사가 들려왔고, 관 위의 초록색 불이 펼쳐지면서 두 개의 초록색 눈이 나타났다.
이 눈에는 검은색 지네와 귀장이 격돌하는 장면이 나타났다고, 눈이 다시 초록 빛으로 반짝이자 시야가 빠르게 주위로 퍼져 나가 심협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심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왜 못 찾는 거지? 인형의 눈을 피할 만큼 강력한 은신 법보가 있는 건가?”
관 안의 목소리는 다소 초조한 듯했다.
초록색 눈동자가 번득이면서 사방을 훑었지만, 결국 심협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정말로 사라진 것 같았다.
“흥! 놀아보자는 건가? 네게 그런 능력이 있나 한번 보자!”
관 안의 목소리가 차갑게 콧방귀를 뀌더니 다시 초록색 불꽃으로 돌아왔다. 불꽃에서 여덟 개의 초록 빛이 뿜어져 나와서 주위의 법진 안으로 들어갔다.
법진에서 노란 빛이 번득이더니 여덟 개의 마른 시체가 나타났는데, 손에는 각종 법보와 도, 검, 북, 삽 등을 쥐고 있었다. 가장 큰 시체의 손에는 놀랍도록 큰 금빛 원기둥이 들려 있었는데, 심지어 자신의 몸통보다도 크고 굵었다. 금빛 기둥 안은 비어 있었고, 위로는 수많은 붉은 정석이 박혀 있었다. 마치 위력적인 화포처럼 보였다.
여덟 구의 마른 시체 뒤에는 이상한 검은 그림자가 붙어 있었는데, 이전에 심협을 공격했던 그림자와 똑같았다.
관 위의 초록색 불꽃이 번쩍였고, 기이한 음력이 여덟 개의 사체 안으로 들어가자 여덟 구의 시체는 빠르게 풍만해지더니 모두 여인으로 변했다. 그중에는 열예닐곱 살 정도에 청춘의 활력이 넘치는 자도 있었고, 성숙한 매력이 넘쳐 모든 남자를 유혹할 수 있을 법한 젊은 여인도 있었다.
이전의 늘씬한 여자도 일어나더니 다른 여덟 명의 여자와 함께 섰다.
“가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놈을 찾아내라!”
관 안의 목소리가 차갑게 말했다.
여자들은 허리를 숙여 답하고는 무지개로 변하거나 허공으로 숨어들어 멀어져갔다.
늘씬한 여자도 떠나려는데, 관에서 다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구전비철을 빼앗겼고 흑이까지 죽었으니 손해가 막심하구나. 정신선금(定神仙琴)을 빌려주마!”
목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금빛이 관에서 날아가 늘씬한 여자의 손에 떨어졌다. 그것은 칠현금이었다.
이 칠현금은 고동색에 일곱 개의 가느다란 줄이 가로로 놓여 있었다. 금색, 초록색, 남색, 붉은색, 노란색, 푸른색, 보라색 등 줄의 색깔은 모두 달랐다. 아직 연주하지도 않았는데 주위의 허공에서 희미하게 칠현금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고, 영성이 넘쳐 보였다.
“감사합니다!”
늘씬한 여자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칠현금을 받아 들더니 노란색 줄을 튕겼다.
퉁!
맑은 소리와 함께 많은 음표가 섞인 노란 빛이 칠현금에서 뿜어져 나와 여자의 몸을 감쌌고, 다음 순간 소리도 없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궁전이 즐비한 곳. 검은 지네와 충돌하고 물러선 귀장은 곧장 검은 바람으로 변하여 멀리 날아가 순식간에 겹겹의 건물 깊은 곳으로 사라졌다.
이에 검은 지네는 화가 나서 바로 뒤를 쫓았다.
그때, 또 몇 마리의 개처럼 생긴 음수가 주위에 나타나 귀장을 추격했다.
수백 장 떨어진 어느 건물 뒤. 심협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현재 그는 회색 두건을 쓰고 몸에는 은신부를 붙여 주위 환경과 완벽히 하나가 되어 있었다.
검은 지네와 견류(犬類) 음수의 행동을 본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점점 빈번해지는 각종 음수의 공격과 회복할 시간마저 주지 않는 치밀함을 보며, 심협은 상대가 자신들을 줄곧 감시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그래서 회복하는 척하면서 잿빛 두봉(斗篷: 망토. 소매 없는 외투)과 은신부로 숨은 것이다.
음수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두건과 은신부로 숨으면 감지를 피할 수 있는 듯했다.
귀장이 걱정되기는 했으나, 언제든지 숨만 들이켜면 이곳의 짙은 음기를 흡수할 수 있었기에 몸을 피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기혈번까지 있지 않은가.
심협은 더 머물지 않고 다른 곳으로 날아가면서 신식을 펼쳐 주위를 살피는 동시에 유명귀안을 극한으로 발동했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어서 그는 하얀색 옥부를 꺼냈다. 바로 양의미진부였다. 이 옥부를 몸에 넣자 순수한 환력(幻力)이 흘러나와 주입되면서 두 눈이 푸른 빛으로 반짝였다.
심협의 유명귀안은 이미 대성을 이루었으니 양의미진부의 힘을 흡수한다고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으나, 안력을 잠깐은 더 높일 수 있었다. 여기에 방대한 신식도 천천히 운공하여 영목의 관찰을 보조했다.
잠시 후, 심협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의 눈에 마침내 아래의 성과 땅속에 있는 가느다란 노란색 영광이 포착된 것이다. 너무나 빼곡하여 몇 개나 있는지도 알 수 없고, 극도로 옅어서 가까스로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저 영광은 뭐지? 금제는 아닌 것 같은데…….”
심협은 자세히 살펴보며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했지만, 끝내 그 정체를 추론해낼 수 없었다. 이에 더 깊게 생각하지 않고 길을 재촉했다.
노란색 영사(靈絲)는 그의 예상보다 널리 퍼져 있어 아무리 날아가도 온통 건물과 땅속에 노란색 영사로 가득했다.
“아무래도 성 전체에 이 영사가 있는 모양이군. 이 영사의 방해 때문에 빠져나갈 수 없었던 것인가?”
생각에 잠겨 있던 심협은 갑자기 표정이 변하더니 비둔을 멈추고 눈에서 푸른빛을 발했다.
주위의 건물 안에서 갑자기 노란색 영사들이 무수한 작은 뱀들처럼 움직이더니 건물 안의 벽돌과 지상의 흙, 돌들도 갑자기 생명을 얻은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성 전체가 빠르게 변하면서 어떤 건물들은 갑자기 땅으로 내려앉았고 어떤 건물들은 솟아오르면서 길도 순식간에 완벽하게 바뀌었다. 찰나의 순간에 눈앞의 모든 것이 바뀌었다.
“환술도, 진법이나 금제의 변화도 아닌데…… 기이하군.”
잠시 생각하던 심협은 다시 날아가다가 이내 커다란 건물 근처로 내려가 땅속을 바라봤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손으로 땅을 가볍게 누른 뒤 아주 미세한 법력을 흘려보내 땅속 어딘가에 초록색 법력 표식을 남겼다.
표식을 남긴 그는 바로 뒤의 먼 거리까지 신식을 펼쳐 주의 깊게 동정을 살폈다.
한참이 지났지만 아무런 이상이 나타나지 않자 그는 안심했다.
설령 진선기 수사라 해도 방금 일어난 성의 엄청난 변화로 인해 이곳에서 어떤 실마리를 찾기란 어렵겠지만, 심협은 달랐다. 그는 꿈속 세계에서 수많은 경험을 했고, 유명귀안과 방대한 신식이 있기에 조금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아직 원리는 모르겠지만 그 노란색 영사가 지형 변화의 열쇠가 분명했다. 그가 방금 법력 표식을 붙인 곳도 노란색 영사의 연결점이었다.
심협은 계속해서 나아가 조금 먼 곳에 내려섰다.
이곳도 하나의 연결점이었다.
그는 법력을 모아서 또다시 표식을 남기고는 성 깊은 곳으로 날아가 작은 광장 위에 멈춰 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술법을 펼치지 않았다.
방금 성의 변화로 그는 두 개의 연결점을 발견했다. 그리고 지금은 성이 움직이지 않으니 노란색 영사들도 잠복하고 있는 터라 현재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또다시 성이 변하기를 기다려야만 연결점을 찾을 수 있을 터였다.
다행히 오래지 않아 주위의 건물들이 다시 변화를 일으켰고, 그는 서둘러 유명귀안을 사용하여 순조롭게 세 개의 연결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심협은 몸을 날려 표식을 남기고 끈기 있게 다음 변화를 기다렸다.
한데 말들이 달려오는 듯한 굉음이 앞에서 들려왔다.
그는 굉음의 원인을 찾지 못했기에 방심하지 않고 건물 한쪽에 몸을 숨겼다.
심협이 숨자마자 수많은 음수가 나타났는데, 어떤 것은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고, 어떤 것은 허공을 날고 있었다. 그야말로 천지를 뒤덮은 채, 건물과 집들을 부수며 다가왔다.
“저토록 많은 음수라니, 아무래도 더는 못 참겠는 모양이지?”
심협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배후의 누군가가 조급해한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기뻐하며 두건의 허환신통(虛幻神通)을 시전하여 조용히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땅속에도 검은 지네 같은 음수들이 있지만, 그 수는 지상보다 훨씬 적었기에 심협은 발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심협 역시 알아채지 못한 것이 있었다. 음수들이 지나간 뒤, 공중에서나 땅속에서나 매우 희미한 음기의 가느다란 실, 약간의 음기로 뭉쳐진 무언가가 잠깐 머물렀다가 몇 호흡 뒤에는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 가느다란 음기 실은 심협의 회색 두건에도 묻었다.
땅의 음수 떼가 지나간 후 다시 올라온 순간 심협은 갑자기 눈빛이 굳어지면서 앞쪽 어딘가를 바라봤다.
그의 눈이 꽂힌 곳에서는 검은 그림자가 날아오고 있었는데, 이전에 마른 시체와 싸울 때 나타났던 그 그림자와 똑같았다.
“또 왔군. 저들이 음수들을 쫓아낸 건가?”
심협은 홍련업화로 그림자를 연화하여 신혼의 힘을 증강하고 싶은 충동을 참아내며 생각했다.
그 그림자들이 사라진 후에야 심협은 다시 천천히 땅 위로 나와서 음수의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했다.
한데 그의 등 뒤 허공에 파동이 일어나더니 여인의 모습이 허공에 나타났다.
가느다란 눈썹과 봉황의 눈, 아름다운 코와 부드러운 입술. 그야말로 절세의 미인이었지만,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아홉 명의 여자 시체 중 하나인 그녀는 검은 장도로 심협의 머리를 노리고 휘둘렀다.
이 흑도는 흉악하게 생긴 해골이었는데, 사람의 것 같지도, 짐승의 것 같지도 않았다. 길이는 3척 정도였고, 등이 넓고 날이 얇았으며, 무서운 음기가 감돌았다.
검은 도가 베어오자 귀신의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주위의 음기가 전부 끌려와 강렬한 도기와 하나가 되어 결계처럼 심협을 덮쳐왔다.
깜짝 놀란 심협은 번개처럼 뒤로 돌아 현황일기곤을 꺼낸 뒤 순식간에 발천난봉을 시전했다.
땅! 땅! 땅! 땅!
굉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고, 강력한 힘이 폭발하면서 도광이 만든 결계가 단숨에 부서졌다.
심협은 뒤로 두 걸음 물러나 멈춘 반면, 여인은 도와 함께 뒤로 날아갔다.
현재 심협은 황정경 공법을 제5층의 경지까지 수련한 만큼 발천난봉의 위력은 더할 나위 없었다.
“연시(煉尸)!”
심협은 신식으로 여자의 몸을 살펴보고는 깜짝 놀랐다.
여시(女尸)가 어떤 신통을 사용하여 인간의 모습을 갖췄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전에 만났던 마른 시체처럼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시기를 감출 수는 없었다.
여자가 연시라는 것을 알게 된 심협은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그는 순양검을 힘껏 던졌다.
순양검에서 붉은 검광이 강하게 뿜어져 나오자 백여 장 크기의 거대한 검광이 여시 위에 나타났고, 검광에서 붉은 홍련업화가 타올랐다. 불꽃을 휘감은 검강은 휘황찬란했고, 위력이 더 강해졌다.
간신히 몸을 가눈 여시는 거대한 검광이 머리 위에서 내려오자 기합을 내지르며 지살시화를 뿜어내어 불의 보호막을 펼쳤다.
퍼펑!
거대한 검광과 불의 장막이 충돌하자 굉음이 울려 퍼졌고, 빛이 사방으로 튀었다.
불의 보호막은 얇아 보였지만 지살시화로 만들어진 것이라 검광의 일격을 막아냈다.
이를 본 심협은 담담하게 웃더니 검결을 변환했다.
붉은 검광이 갑자기 희미해지더니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의 보호막 안쪽에 똑같이 생긴 거대한 검이 나타나 순식간에 여시를 베었다.
여시의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아름답던 얼굴에 절망스럽고 애처로운 표정이 나타났다. 보는 이들마저 안타까움이 생길 정도였다.
하지만 검광은 망설임 없이 시체를 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