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41화 (741/1,214)
  • 741화. 함정

    “이번에는 정말 위험했습니다. 그 시체가 지살시화를 사용할 줄이야……. 그래도 천살시화(天煞尸火)가 아니라 다행이었습니다. 안 그랬으면 이번에는 정말 끝장날뻔 했습니다.”

    귀장이 옆으로 날아와 말했다.

    “천살시화?”

    심협은 처음 들어본 이름에 고개를 갸웃했다.

    “지살시화와 천살시화는 모두 연시(煉尸)의 도(道) 중에서도 절정의 신통입니다. 지살시화는 세상의 원기 대부분을 흡수할 수 있지만, 주인님의 홍련업화와 같은 힘으로 막아낼 수 있죠. 그러나 천살시화는 정말로 모든 것을 흡수할 수 있어서 듣기로는 허공마저 녹인다 합니다. 그러니 저 같은 평범한 수사는 막아낼 수 없습니다.”

    “그 승려 귀물의 기억 속에 있던 것인가?”

    심협이 진중한 얼굴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마른 시체는 이미 주인님의 손에 죽었으니 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아니, 죽지 않고 둔술로 도망쳤다.”

    그 말에 귀장은 아연실색했다. 심협의 능력은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방금 심협이 수많은 신통을 사용하고도 그 마른 시체를 죽이지 못했다고 하니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심협은 마른 시체가 사용했던 신통을 생각할수록 가슴이 떨려왔다. 만약 체내에 마기가 없었다면 정말로 처참한 꼴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시체와 검은 그림자의 협공을 피할 수 있는 자는 정말 드물 것이다.

    더욱이 바닥의 헌제대진이 자신의 신식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는 법진 곳곳을 자세히 살피며 진문을 완전히 외운 뒤 머리 위에 결인했다. 그러자 검은 빛이 번득이며 세 개의 검은 귀조가 튀어나와 헌제대진을 움켜쥐었다. 법진은 썩은 나무처럼 부서졌고, 반경 10여 장의 검은 구덩이가 생겨났다.

    진 안의 혈태석도 완전히 부서져 모두 사라졌다.

    귀장은 이 광경에 아쉬웠다. 자신은 아직 법진의 진문을 다 외우지 못했던 것이다.

    심협이 다시 결인하자 먹구름이 곧장 기혈번으로 변하여 그의 소매로 들어갔다. 이어서 그의 손발을 묶었던 네 개의 사슬도 푸른 빛에 둘러싸여서 허공에 떠올랐다. 쇠사슬은 검은색이었고, 안에는 푸른 빛이 흐르는 것이 범상치 않아 보였다.

    “이건…… 구전빈철?”

    한동안 자세히 살펴본 심협은 마침내 그 사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구전빈철은 바닷속 한철광맥(寒鐵鑛脈)에 만 년 이상 잉태된 채 수많은 한철 정화가 모여야만 만들어지는 전설의 보물이었다. 법보를 강화하는 데 최고의 재료로, 어떤 법보든 이것을 넣으면 강도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가 된다. 그가 꿈속 세계에서 사용했던 영양신철, 구천금정과 함께 진해빈철곤의 세 가지 주재료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의 현황일기곤은 진해빈철곤을 모방하여 만든 것으로, 영양신철만 들어갔는데도 신통이 대폭 증가하여 극품의 법기가 하품 법보로 탈바꿈했다. 심지어 위력만은 중품 법보 급이었다. 그러니 구전빈철까지 이 안에 넣는다면 현황일기곤은 한 단계 더 강해질 것이 분명했다.

    “이제 별다른 건 없군. 가자.”

    심협은 네 개의 쇠사슬을 챙기고는 귀장에게 말했다.

    “부 도우는 괜찮을까요?”

    “음, 함부로 깊은 곳까지 들어가지 않았기를 바랄 수밖에…….”

    귀장과 함께 대전을 나와 돌아가려던 심협은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우뚝 멈춰 섰다.

    방금 분명히 걸어왔던 길이 갑자기 사라졌고, 대전 하나가 그곳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대전 양쪽으로는 작은 길이 굽이굽이 앞으로 뻗어 있었고, 옆의 수많은 건물도 모습이 바뀌어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귀장도 앞의 변화를 감지하고는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래도 함정에 빠진 모양이다.”

    심협은 냉정함을 되찾고는 푸르게 빛나는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함정!”

    “환술이든 실제로 지형이 바뀐 것이든 쉽게 풀 수 없을 듯하구나. 차라리 환술인 편이 낫겠지.”

    유명귀안을 사용하여 살펴봤음에도 환술의 흔적도, 법진의 변화도 없었다.

    이렇게 순식간에 주변 지형을 바꿨는데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신통이라면 꿈속에서 봤던 산하사직도에 견줄만 했다.

    “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우선 처음 들어온 곳으로 돌아가서 출구를 찾아봐야겠지.”

    심협은 유명귀안을 거두며 왔던 방향으로 돌아갔고, 귀장도 두말없이 따라갔다.

    * * *

    어두운 지하 궁전 안. 한 마리의 매우 흉악한 괴수가 주위의 어둠 속에 숨어서 모든 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처럼 곳곳이 이상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이 기운의 근원은 궁전 한가운데에 놓인 검은 관이었다.

    묵옥(墨玉)으로 만든 이 관은 보통의 관보다 두 배 이상 컸고, 위에는 수많은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림 같기도 하고 글자 같기도 하여 매우 현묘했다.

    관 꼭대기에는 사람 머리통만 한 비취색 불꽃이 떠다녔는데, 이 불꽃에서도 음산하고 기이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관 주위의 바닥에는 아홉 개의 암홍색 법진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진문은 헌제대진과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달랐다.

    법진 내부가 번득이더니 마른 시체가 나타났다.

    “주인님, 제가 실수하여 흑이(黑二)도 적에게 참살당했습니다. 벌을 내려 주십시오!”

    마른 시체는 관을 향해 절을 올리며 말했다.

    “오, 너와 흑이의 협공이 실패했다? 어떻게 된 거지?”

    마른 목소리가 관 안에서 들려오자 시체는 심협과의 교전을 간략히 설명했다.

    “붉은색 불꽃으로 지살시화를 막았다? 금룡과 금상이라면 방촌산의 황정경 같은데 몸에 마기가 침투해 있다니, 재미있구나. 그런 자에게라면 네가 패한 것도 당연하다. 헌제대진이 파괴되었을 때 인형의 성을 가동했으니 그자들은 도망치지 못할 게다. 여기를 지키고 있다가 그들이 탈진하여 쓰러졌을 때 죽여라.”

    “예!”

    마른 시체는 짧게 답한 뒤, 법진 안에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관 위의 초록색 불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시체의 머리로 들어가자 이 시체는 풍만해지기 시작했다. 피부도 윤기가 돌면서 흉측했던 이목구비도 점점 청초해져갔다.

    몇 호흡 뒤, 흉측했던 마른 시체는 기다란 두 다리와 솟아오른 가슴, 가느다란 허리를 가진 아름다운 여자로 변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는 지독히도 매혹적이었다.

    미인과 관, 음화가 한자리에 모여있는 모습은 기묘한 그림과도 같았다.

    * * *

    순양검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면서 떨리자 수많은 검의 허상이 나타났다. 검의 허상들은 거대한 검망으로 변하여 두 마리의 거대한 원숭이를 뒤덮었다.

    원숭이들은 발악하며 각자 회색 바람기둥을 뿜어내 맞섰다.

    그러나 붉은 검망은 매우 예리하여 가볍게 바람기둥을 잘라버렸고, 뒤이어 두 마리의 거대한 원숭이들마자 산산조각을 내버렸다.

    조각난 원숭이는 금세 녹아서 수많은 회색 기운으로 변하여 휘날렸다. 그러자 옆에서 기다리던 귀장이 바로 달려들어 입을 크게 벌리고 회색 음기를 전부 흡수하더니 몸의 음기가 더 짙어졌다.

    흡족해하는 귀장과 달리 심협은 어두운 안색으로 순양검을 거두었다.

    두 사람이 지하성을 돌아다닌 것도 꼬박 하루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음기로 만들어진 각종 괴물의 습격이 잦아졌다. 음랑(陰狼)과 음호(陰虎), 음사(陰蛇) 그리고 이전에 그들을 공격했던 야나찰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더욱이 음수들의 실력도 점점 강해져 이제 대승기에 근접했다. 싸움이 계속되다보니 심협과 귀장도 힘이 들기 시작했고, 법력 소모가 커져 이제는 절반도 남지 않게 됐다.

    부동래의 몸에 새긴 표식이 부서진 것인지 아니면 성의 금제가 감각을 차단한 건지, 심협은 그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가장 번거로운 것은 별로 커 보이지도 않은 이 성 자체였다. 어검비행으로도, 둔지부로도, 을목선둔으로도 이 성 밖으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통령지술도 사용할 수 없었다. 심협의 통령지술은 거리에 제한이 없는데도 실패했다는 것은 술법을 막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의미였다. 허나 이는 평범한 법진 금제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무래도 산하사직도 같은 보물 안에 갇힌 게 틀림없겠군.’

    적잖은 법력을 낭비한 뒤에야 심협은 교묘한 수단을 발휘하기보다는 이곳의 허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게다가 자기 몸 하나 돌보기도 바빴기에 부동래에 대해서는 걱정이 되면서도 그저 무사하기를 비는 수밖에 없었다.

    “주인님, 계속 앞으로 가실 겁니까?”

    귀장은 흡수한 음기를 모두 연화하며 물었다.

    지하성에는 음기가 충만하여 귀물이 활동하기에 제격이었고, 계속해서 죽인 음수의 원기를 흡수하면서 조비극의 귀기는 갈수록 짙어졌다. 이제 대승 후기로 돌파할 징조까지 보였다.

    “잠시 쉬면서 법력을 회복해야겠다. 주위를 경계하거라.”

    귀장은 기혈번을 귀장에게 건네며 말했다.

    귀장은 기혈번의 강력한 위능을 직접 목격했기에 조심스레 받고는 귀력을 주입하여 운공했다.

    심협이 소매를 휘두르자 주위에 법진이 나타났고, 두꺼운 노란색 광막이 그의 몸을 뒤덮어서 사방팔방을 보호했다.

    모든 일을 마친 그는 가부좌를 한 채 초록색 단약을 꺼내 먹었다. 운몽택 여우 요물의 저물 법기에서 얻은 단약으로, 품질도 뛰어난 데다 수도 많았다.

    단약은 금방 연화되어 순수한 법력으로 변하였고, 심협은 소모한 법력을 천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

    심협이 회복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더니 검은 괴조(怪鳥) 무리가 날아왔다. 그 수가 무려 스무 마리나 되었다.

    이 새들의 머리에는 기다란 뿔이 있었고, 네 개의 날개가 돋아 있었으며, 음기의 파동이 강력하여 출규기 후기 수준 정도였다.

    귀장은 안색이 변했다. 그는 대승 중기이지만, 스무 마리의 출규 후기 음수 앞에서는 자신이 없었다.

    그는 뒤에 있는 심협을 흘끗 보고는 다시 수중의 기혈번을 내려다보더니 이를 악물고는 귀력을 기혈번에 주입했다. 그러자 하늘을 뒤덮을 정도의 거대한 먹구름이 기혈번에서 뿜어져 나와 모든 괴조를 뒤덮었다.

    먹구름에서 금세 격렬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 괴조의 울음소리와 귀장의 음파 등 온갖 소리가 뒤엉켜 주위의 허공을 요동치게 했다.

    한참이 지나자 하늘 대부분을 뒤덮었던 먹구름이 서서히 걷히면서 귀장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한쪽 팔이 보이지 않았고, 몸에도 많은 상처가 생긴 상태였다. 다행히도 괴조 음수들은 흔적도 남지 않았다.

    귀장은 감탄하며 기혈번을 바라봤다. 기혈번의 위력은 정말 놀라웠다. 고작 2할 정도의 위력을 발휘한 것만으로도 그의 음파 공격보다 훨씬 강력했다. 특히 기혈번의 검은색 음화는 스치기만 해도 상처를 입히는 터라 한 번에 여러 마리의 괴조를 죽일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방금 싸움의 결말은 달라졌을 터였다.

    심협은 여전히 눈을 감고 수련 중이었다.

    귀장은 비틀거리며 한쪽으로 내려와 음기를 흡수하여 상처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가 채 회복하기도 전에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귀장이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펴보려는데 심협 아래의 땅이 쾅 하고 울리면서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다. 그 구멍에서 갑자기 검은 지네가 튀어나와 심협을 감싼 법진에 그대로 충돌했다.

    콰쾅!

    굉음이 울리면서 노란 법진의 빛은 폭발했고, 법진 안에 있던 심협의 몸도 두어 번 흔들리더니 이내 빛이 되어 사라졌다.

    그것은 허상이었고, 심협은 어느새 사라져 종적을 감춘 후였다.

    지네는 어리둥절한 듯했는데, 이는 귀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조비극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기혈번을 발동하여 검은색 불꽃으로 검은 지네의 머리를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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