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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40화 (740/1,214)
  • 740화. 상극

    심협이 다시 기혈번을 결인하자 검은 음화가 피어나더니 검은 불꽃이 타오르는 귀물의 손으로 변했고, 이 손이 대전의 문을 붙잡았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두꺼운 대전의 문에 1장 크기의 구멍이 뚫렸다.

    “기혈번의 위력이 무서울 정도로군요. 그 검은 불꽃은 평범한 음화가 아닙니다. 저는 감히 만지지도 못하겠습니다.”

    귀장이 귀물의 손을 바라보며 감탄했다.

    두 사람은 대전으로 들어갔다. 대전 안은 어두웠지만 심협과 귀장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대전은 폭이 30여 장이었지만, 텅 비어 있었다. 오직 한가운데에 위로 뻗은 회색 돌기둥만 우뚝 서 있었는데, 그 중간에는 검은색 법진이 설치되어 있다. 이 법진은 매우 복잡했고, 안에는 수많은 회색 정석이 박혀 있었다.

    법진 위에는 먼지가 가득한 것이 발동을 멈춘 듯했다.

    중앙에는 크지 않은 둥근 공간이 비어 있었는데, 그 위에 마른 시체 한 구가 검은 사슬에 꽁꽁 묶인 채 바닥에 단단히 붙들려 있었다.

    마른 시체는 늙은 나무껍질처럼 누렇게 시들어 있었고, 회색 머리카락은 헝클어진 상태라 외모가 보이지 않았다. 기이하게도 머리는 반으로 갈라져 있었는데, 누군가 뇌를 빼간 것 같았다.

    심협은 그동안 수많은 것을 봐왔지만 손에 꼽힐 만큼 기이한 모습이었다.

    “이건 무슨 법진일까요?”

    귀장이 법진을 살피며 물었다. 심협은 손에서 푸른 빛을 발하여 법진 안의 정석을 자세히 살펴봤다. 정석은 이미 영력이 소진되어 그 안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유명귀안을 운공하여 정석을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묘한 혈광을 발견했다.

    “이건……?”

    그 순간, 그의 안색이 변했다.

    “주인님, 이 정석을 아십니까? 뭔가 특별한 겁니까?”

    귀장도 정석을 자세히 살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기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내 추측이 맞는다면 이 정석은 혈태석(血胎石)일 게다.”

    “혈태석? 그게 뭡니까?”

    조비극은 처음 들어본 이름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제를 올릴 때 사용하는 혈도 정석이다. 바닥의 법진은 아마도 헌제대진(獻祭大陣)이겠군.”

    혈태석과 헌제대진에 대해서는 꿈속 세계에서 옥호족 책에서 본 것이니 당연히 조비극은 알 수 없었다.

    “헌제대진? 귀도 중에 영혼으로 제를 지내는 법술이 있긴 합니다. 그 법술로 법보를 제련하거나 신통을 강하게 할 수 있어서 효과는 좋지만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고 했는데…….”

    조비극은 혼자 중얼거리며 매우 흥미롭다는 듯 법진을 자세히 관찰했다.

    “헌제대진은 사도(邪道)라 하늘의 조화를 어기는 것이다. 그러니 네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해도 이 대진을 이용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게다.”

    “제가 어찌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저 이 법진에 흥미가 있었을 뿐입니다.”

    심협은 예전보다 잘 받아치는 귀장을 보며 피식 웃더니 마른 시체를 이리저리 살펴보고는 이내 시선을 돌려 네 개의 쇠사슬을 바라봤다.

    한데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순간이었다!

    미동도 없던 마른 시체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입에서 일고여덟 개의 회백색 불꽃을 뿜어냈고, 이 불꽃은 쏜살같이 심협을 향해 날아왔다.

    심협은 기겁했다. 방금 신식으로 자세히 살폈을 때, 이 마른 시체는 완전히 죽어서 아무런 기운도 없었던 것이다.

    심협과 시체의 거리는 불과 2장 정도였고 회백색 불꽃은 매우 빨랐기에 눈 깜짝할 사이 눈앞까지 다가왔고, 썩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심협은 당황한 와중에도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날리는 동시에 오른손을 휘둘렀다.

    오른팔에서 풍뢰영문이 떠오르더니 푸른 바람 칼날과 금색 뇌전이 날아가 회백색의 불꽃과 충돌했다.

    회백색 불꽃은 시기(尸氣)가 뭉쳐서 만들어진 시화(尸火)였는데, 놀랍게도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이 불꽃이 가볍게 바람 칼날과 뇌전을 뚫었다. 이어서 회백색 빛이 반짝이자 바람 칼날과 뇌전이 흔적도 없이 이 불꽃에 흡수되었다.

    회백색 불꽃은 더욱 강하고 빨라졌다.

    “이럴 수가!”

    심협은 이번에야말로 기겁해 머리 위의 기혈번을 결인했다.

    기혈번에서 검은 빛이 번쩍이더니 검은 음화가 날아가 회색 불꽃과 충돌했다.

    다시 한번 치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놀랍게도 회백색 불꽃보다 10배는 더 많은 음화가 마치 황제를 만난 신하처럼 옴짝달싹 못하고 순식간에 회백색 불꽃에 흡수되었다.

    “주인님, 조심하십시오! 저 불꽃은 지살시화(地煞尸火)라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원기를 흡수할 수 있으니 절대 몸에 닿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귀장이 때마침 날아와 입을 쩍 벌려 수많은 검은 음파를 쏘아댔다.

    지살시화는 확실히 강력했지만, 기혈번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음화와 귀장의 음파까지 더해지자 겨우 버틸 수 있었다.

    한데 그때, 두 사람의 뒤쪽 바닥에서 검은 빛이 일렁이더니 검은 그림자가 쏜살같이 튀어나와 공격했다.

    심협은 신경이 온통 지살시화에 몰려 있었기에 검은 그림자가 1장 안까지 들어와서야 알아챌 수 있었다. 그는 서둘러 두 발에서 달빛을 뿜어내고 옆으로 피하며 기혈번을 결인했다.

    기혈번이 검게 번득이더니 귀물의 손이 날아가 검은 그림자를 움켜쥐며 검은 음화를 피워냈다.

    “끼야아아!”

    검은 그림자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고, 상반신이 푸른 연기로 변하여 사라졌다. 그러나 하반신은 물고기처럼 귀물의 손에서 빠져나와 쏜살같이 심협의 몸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심협은 온몸이 차갑게 식으면서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게 됐고, 법력도 굳은 것처럼 운공할 수 없었다.

    “이건……?”

    심협은 식은땀이 흘렀고, 머릿속에서는 과거 지부에서 연신단의 두 영혼수사가 달라붙었던 상황이 떠올랐다. 그때와 너무도 비슷한 느낌이었으나, 지금 몸에 붙어 그를 조종하는 검은 그림자가 연신단의 영혼 수사보다 더 강해 보였다.

    심협의 법력이 굳어버리자 기혈번도 검은 빛이 꺼지더니 원래 크기로 돌아와 바닥에 떨어졌고, 검은 음화도 빠르게 사라졌다.

    검은 음화의 방해가 사라지자 지살시화는 귀장이 뿜어내는 검은 음파를 가볍게 흡수하더니 다시 심협을 향해 돌진해왔다.

    마른 시체의 말라버린 입술이 마치 구결을 읊듯이 빠르게 움직이자 바닥의 헌제대진이 갑자기 눈부신 혈광을 뿜어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어서 시체를 묶고 있던 네 개의 쇠사슬도 사라지더니 어째서인지 심협의 사지를 묶어 법진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주인님!”

    귀장 조비극은 깜짝 놀라 귀기를 전부 양손에 주입하여 크게 휘둘렀다.

    검은 기운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귀조(鬼爪)가 날아가 지살시화를 공격했고, 동시에 다른 하나의 귀조는 네 개의 쇠사슬을 붙잡았다.

    네 개의 쇠사슬은 오래됐지만 위력만은 강력해 귀조가 잡은 부분에서 불꽃이 튀었을 뿐, 흠집조차 생기지 않았다. 심지어 지살시화와 충돌한 귀조도 바로 부식되면서 구멍이 숭숭 뚫리더니 완전히 무너져 사라졌다.

    귀장은 체내의 음력을 전부 귀조에 넣어 가까스로 버텨낼 수밖에 없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심협의 몸은 계속해서 법진 안으로 끌려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는 당황하지 않고 두 눈을 감았다가 번쩍 떴다.

    그의 눈동자에서 붉은 빛이 번득이더니 몸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바로 마기였다.

    현양화마(玄陽化魔) 비술을 익힌 이후로 그는 체내의 마기를 비교적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었기에 외부의 자극 없이 신식만으로도 발동할 수 있었다.

    검은 그림자가 체내의 법력을 묶었지만 마기는 법력과 전혀 달랐다. 오히려 검은 그림자의 이상한 힘과 매우 비슷해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마기가 폭발하자 무서운 살기가 휘몰아쳐 그의 몸에 붙어 있던 검은 그림자를 공격했다.

    검은 그림자는 혼체(魂體)라 살기의 압박감에 큰 영향을 받고는 비명을 내지르며 덜덜 떨었다. 그러자 심협을 조종하는 힘도 크게 줄었다.

    심협은 체내의 법력이 일순 풀리면서 몸을 통제할 수 있게 되자 황정경을 5층까지 수련한 몸으로 버티고 섰다.

    그 무렵, 귀장의 귀조는 마침내 지살시화에 완전히 사라졌고, 그 안의 음기까지 흡수하여 더 강해진 지살시화가 심협을 향해 돌진해왔다.

    심협은 모든 법력을 단전 안의 순양검으로 주입했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붉은색 불꽃이 그의 단전 안에서 폭발했고, 홍련업화가 성난 파도처럼 날아가 지살시화와 충돌했다.

    붉은색과 회색의 빛들이 격렬하게 충돌했고, 크고 작은 불꽃들은 한동안 팽팽한 기세를 이어갔다.

    심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생각이 맞았군. 홍련업화는 천화이니 지살시화와 상극이야.’

    홍련업화가 일렁이자 체내의 검은 그림자는 두려움에 비명을 질러대며 바로 도망쳤다. 하지만 한 줄기 홍련업화가 마치 밧줄처럼 날아가 그 검은 그림자를 칭칭 감았다.

    “어딜 도망가려고!”

    심협이 눈이 싸늘하게 번득이자 홍련업화가 갑자기 더 밝아졌다.

    검은 그림자는 곧 죽을 것 같은 비명을 내지르다가 완전히 사라졌고, 검은 빛이 되어 그의 몸으로 들어갔다.

    심협은 순수한 신혼의 힘이 몸 곳곳에서 솟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 힘은 순식간에 신혼의 힘을 증폭시켰다. 과거 홍련업화로 연신단의 두 명의 수사를 불태워 죽였을 때와 똑같았다.

    검은 그림자를 처리하면서 통제력을 완전히 되찾은 심협은 법력을 더 주입하여 홍련업화로 지살시화를 막아내는 동시에 두 손으로 허공을 쥐었다.

    양팔에서 금청(金靑)의 영문이 다시 빛나자 금색 뇌전이 그의 양팔에 생겨나더니 빠르게 손바닥에 모여들어 순식간에 두 개의 금색 뇌구(雷球)로 변했다.

    흑곰 요괴에서 배운 장심뇌 신통이었다. 이 신통은 매우 강력한 뇌전을 익혀야만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기에 그는 지금까지 쓰지 않았었다.

    심협이 두 손을 휘두르자 두 개의 뇌구가 금빛을 발하며 공중으로 올라가 사라졌다. 그리고 곧이어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이 들려왔다.

    허공에 수많은 뇌전 부문이 떠오르더니 커다란 금색 번개 기둥이 내려와 지살시화 위로 떨어졌다.

    지살시화는 순식간에 사분오열하여 피식 소리와 함께 완전히 사라졌다.

    법진 안 마른 시체의 눈에서 두 개의 영롱한 붉은 빛이 떠오르면서 분노한 기색이 드러났고, 이어 시체가 입을 벌리자 네 개의 노란 빛이 각각 쇠사슬 안으로 들어갔다.

    심협의 손발을 묶고 있던 네 개의 쇠사슬에서 노란 빛이 피어올랐고, 심협은 체내의 피가 갑자기 들끓으면서 네 개의 쇠사슬을 향해 마구 쏟아졌다.

    깜짝 놀란 심협이 전력으로 황정경을 운공하자 몸에서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각각 다섯 마리의 금룡과 금상이 그의 주변을 맴돌며 포효하자 허공이 흔들리고 대전 전체가 강하게 흔들렸다.

    심협이 기합을 내지르며 두 팔과 두 발을 동시에 흔들자 이전보다 몇 배나 강력한 힘이 폭발했다.

    콰지직!

    법진 전체가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뭔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네 개의 검은 사슬이 법진에서 뽑혀 나왔고, 노란 빛과 함께 그의 피를 빨아들이던 힘도 사라졌다.

    심협이 안도하며 결인하자 기혈번이 다시 커졌다. 순식간에 먹구름으로 변한 검은 빛에서 거대한 검은색 손톱이 튀어나와 헌제대진의 붉은 빛을 공격했다.

    폭발음과 함께 법진의 붉은 빛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자 검은색 손톱이 그대로 마른 시체를 잡으려 했다.

    시체는 원망 어린 눈빛으로 심협을 노려보고는 다시 입을 벌려 지살시화를 뿜어냈다. 처음보다 색이 한층 옅어진 지살시화는 검은 손톱을 없애는 데는 성공했으나, 자신도 사라지고야 말았다.

    동시에 시체의 몸에서 노란 빛이 번득이더니 둔술을 사용했는지 빠르게 법진 안으로 사라지려 했다.

    “어딜 가려고!”

    심협이 차가워진 눈빛으로 법결을 변환했다.

    시체 옆의 허공에서 파동이 일더니 붉은 검광이 나타나 크게 베었다.

    쉭!

    시체는 허리가 잘려 단숨에 두 동강이 났다. 하지만 곧바로 상처에서 노란 빛이 번득이더니 원래 모습을 회복했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법진으로 들어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곧장 다시 공격을 하려던 심협은 갑자기 표정이 변하더니 눈을 감고 참마검과 반룡벽, 정원사리 등을 발동하며 체내의 마기를 제압하는 데 주력했다. 이번에는 마기를 약간만 사용했을 뿐이라 금방 제압할 수 있었고, 몸의 금빛도 금세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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