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9화. 지하 미성(迷城)
심협은 대량의 금이 묻힌 광산에 왔으나 모두 가져갈 수 없는 듯한 무력감이 느껴졌다.
“심형, 이제 다 챙긴 거요? 그럼 사양하지 않겠소. 하하하!”
부동래는 심협이 멈춘 것을 보고는 크게 웃으며 더욱 힘을 내 벽혈간척부를 휘둘렀다.
벽혈간척부의 붉은 빛이 더욱 강해졌고, 통로 안의 유살음무는 마치 실제 같은 끈적끈적한 검은 안개가 되어 혈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본 심협은 내심 부러웠다.
“주인님, 음무를 담을 만한 다른 법보는 없으십니까?”
“내가 가진 법보는 대부분 순양속성이라 음무를 담을 수 없구나. 음속성의 보물은 가진 게…….”
심협은 고개를 젓다가 갑자기 멈췄다. 음속성 보물이 하나 있다.
그가 임랑환을 만지작거리자 한 가지 물건이 손에 나타났다. 수많은 구멍으로 부식된 혈색의 작은 깃발, 기혈번이었다.
이 보물은 일전에 구두충의 혈우에 부식되어 크게 상했으나, 다행히도 본원금제는 그다지 손상되지 않았다. 기혈번은 혈도(血道)의 법보요, 혈도의 힘은 음살 힘의 일종이니 두 힘은 서로 통한다 할 수 있다. 어쩌면 유살음무로 기혈번을 수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협은 손에서 뻗어 나온 푸른 빛으로 기혈번을 감싸고는 유살음무 안으로 기혈번을 밀어넣은 후 양손으로 빠르게 결인했다.
부서진 기혈번에서 갑자기 혈광이 번쩍이더니 그의 법결에 따라 빠르게 커져 순식간에 폭이 몇 장에 이르는 대번으로 변했다. 이에 따라 부식된 구멍이 더 선명하게 보였는데, 마치 수많은 구멍이 뚫린 부서진 창문 같았다.
심협이 손가락을 뻗어 다섯 개의 푸른 빛을 기혈번 안으로 주입하자 그 안의 금제가 발동했다.
울부짖는 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기혈번에서 혈광이 용솟음쳤다. 이어서 반 장 크기의 핏빛 소용돌이가 나타나 주변에 쌓여 있는 유살음무를 남김없이 흡수할 듯한 기세로 빨아들였다.
심협은 크게 기뻐했다. 기혈번은 진짜로 유살음기를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유살음기는 혈도의 힘이 아니니 대량으로 흡수할 경우 기혈번에 어떤 영향이 생길지는 그로서도 알 수 없었다.
기혈번이 유살음기를 빨아들이는 속도는 건곤대보다, 심지어 부동래의 벽혈간척부보다도 빨랐다. 부동래는 승부욕이 발동했는지 다급히 혈부를 발동하여 더 빠르게 음무를 흡수했지만, 그래도 기혈번의 속도를 쫓아가지는 못했다.
두 사람의 법보가 맹렬히 빨아들이자 통로의 음무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이내 커다란 공터가 나타났다. 다행히 음무는 통로 깊은 곳까지 길게 이어져 있어 거의 무궁무진해 보였다.
심협과 부동래는 각자 보물을 발동하여 끊임없이 통로로 들어가면서 엄청난 기세로 유살음무를 흡수했다.
순식간에 수백 장이나 들어갔지만, 통로는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부동래가 한 손을 휘둘러 벽혈간척부을 던지자 혈광이 줄어들면서 사나운 포효가 울리더니 반경 3장 정도의 검은 귀왕으로 변하여 땅에 내려섰다.
쿵!
굉음과 함께 통로 전체가 흔들렸다.
귀왕의 포효는 거센 파도 같고 한편으로는 강렬한 질풍 같아서 심협과 부동래의 옷자락이 휘날렸다.
“강력한 귀왕이로군!”
심협의 눈빛이 반짝였다.
뿜어져 나오는 기세만 봐도 검은 귀왕은 신통도 강력하고 힘도 보통이 아닐 터였다.
검은 귀왕을 본 귀장 조비극은 탐욕스런 눈빛으로 몸을 갑자기 몇 배나 불렸다. 한편 검은 귀왕은 그 기세를 느끼고는 고개를 휙 돌리더니 험악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달려들려 했다.
“아이고, 어서 돌아와!”
부동래가 서둘러 법결을 변환하자 검은 빛이 날아가 귀왕을 감쌌고, 다시 벽혈간척부로 돌아갔다.
“부형의 벽혈간척부가 귀왕으로 변할 줄은 몰랐소.”
“하하, 심형의 혈번에 비하면 별것 아니오.”
부동래가 유쾌하게 웃으며 벽혈간척부를 거두어들였다.
심협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다시 기혈번으로 유살음무를 흡수해갔다.
음무를 흡수할수록 기혈번의 구멍들은 회복되어갔고, 깃발의 색도 환해졌다. 다만 온전한 혈홍색이었던 과거와 달린 반은 검은색, 반은 붉은색으로 변해 퍽 기이해졌다. 게다가 회복된 기혈번은 더욱 빠르고 매섭게 유살음무를 흡수해갔고, 흑홍(黑紅) 빛이 깃발에서 뿜어져 나와 곧장 앞의 유살음무를 파고들었다. 그러자 사람 머리 같은 수많은 허상이 이 빛에서 쏟아져 나와 음무를 잔뜩 흡수했다.
깃발의 혈광은 빠르게 흐려졌고, 검은빛은 오히려 더욱 짙고 깊어지자 강력한 음살의 힘이 조금씩 깃발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심협은 그 광경을 보고는 표정이 조금 변했지만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기혈번으로 음무를 흡수했다.
부동래에게 음속성 법보는 벽혈간척부뿐이었는지 이제 한쪽에 가부좌를 튼 채 회복에 집중했다.
반 시진 정도가 지나가 끊임없이 유살음무를 흡수하던 기혈번은 마침내 흡수를 멈췄고, 휙 소리를 내며 심협 앞으로 날아와 흥겨운 듯한 맑은 소리를 냈다.
이제 이 깃발은 전체가 검은색이었고, 혈광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심협이 결인하여 살짝 발동해보니 짙고 어두운 흑망(黑芒)이 실제처럼 훅 뿜어져 나왔다.
쿠쿵!
강력하기 이를 데 없는 힘이 기혈번 안에서 폭발하듯 튀어나오자 주위의 통로는 마치 이 힘을 견디지 못하는 것처럼 강하게 흔들렸다.
심협은 기뻐하며 서둘러 기혈번의 힘을 거두었다.
대량의 유살음무를 흡수한 기혈번은 힘이 크게 폭증했다. 다만 이곳은 위력을 시험해보기에 좋은 곳이 아니었다.
통로 앞쪽의 유살음무가 희박해진 것으로 봐서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이리 많은 음무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저 앞에도 뭔가 있을 것 같은데 한 번 가보겠소?”
심협이 묻자 부동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천기성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니 마침 이곳에 흥미가 생기는구려.”
두 사람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 금방 음무 안으로 들어섰다. 몸을 보호하는 영광을 두르고 있었음에도 뼈에 사무치는 음한의 기운이 느껴졌다.
심협이 기혈번을 결인하자 검은 빛이 갑자기 뿜어져 나와 두꺼운 검은 광막으로 변하여 두 사람을 덮으면서 음무를 가볍게 차단했다. 음력의 기운을 막아낼 수단을 시전하려던 부동래는 이 광경에 손을 멈추었다.
두 사람은 다시 또 수십 장을 나아갔고, 통로가 마침내 끝나면서 거대한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은 절벽 같은 성벽으로, 아래의 거대한 광장에는 양식이 거칠고 높은 수많은 거물이 우뚝 솟아 있었다. 기본적으로 보존 상태는 완벽했고, 시야 끝까지 이어져 있어서 한눈에 봐도 규모가 상당한 지하 성이었다.
“여기에 왜 성이 있지? 한데 안에 살아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이는구려.”
성을 쭉 훑어본 심협이 의문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 동굴의 천장에는 두껍고 짙은 유살음무가 떠다녔지만, 아래로 내려오지는 않았다. 덕분에 아래쪽은 비교적 밝았지만, 적막이 내려앉아 소름이 돋았다.
“금신금제(禁神禁制)가 있는 걸 보니 뭔가 심상치 않소. 이곳은 수사들이 세운 성이 틀림없소.”
부동래는 신식을 펼쳤으나 허공에 설치된 기이한 금제의 힘이 신식에 영향을 끼친 탓에 그의 경지로도 겨우 10여 장밖에 살필 수 없었다.
심협도 마찬가지라 신식은 고작 20여 장까지 펼쳐지는 것이 한계였다.
“우선 여기부터 살펴봅시다. 어쩌면 뭔가 있을 수도 있지 않겠소?”
그가 광장으로 뛰어내리자 부동래도 뒤를 따랐고, 곧 두 사람은 광장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광장은 매우 넓었고 신식도 펼칠 수 없었기에 한참을 돌아다녀도 일부만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곳에 살아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 외에는 별다른 수확은 없었다.
“이런 식으로는 끝이 없을 것 같소. 흩어져서 살펴보고 위험하면 하늘에 표시를 남깁시다.”
“그게 좋을 것 같소. 그럼 서로의 몸에 표식을 남겨서 나중에 만나기 편하게 합시다.”
부동래의 제안에 심협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이 아무리 기이한 곳이라 해도 두 사람의 실력이면 스스로를 보호하기에는 무리가 없을 터였다.
두 사람은 바로 상대의 몸에 표식을 남기고는 양쪽으로 흩어졌다.
심협은 귀장과 함께 성 왼쪽으로 향했다. 조비극은 이곳의 충만한 음기에 흥분하여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심협은 유심히 주변을 둘러보고도 아무런 움직임도 발견하지 못하자 방금 회복된 기혈번으로 시선이 향했다.
기혈번은 대량의 유살음무를 흡수하면서 그 안에 담긴 혈도의 힘이 귀도의 음력으로 완전히 뒤바뀌었고, 각종 신통도 음속성으로 변했다.
그는 무명공법을 운공하여 변화한 기혈번의 수많은 신통을 살펴보고는 감탄했다. 신통이 적잖이 늘어나 있었던 것이다.
심협은 귀장과 함께 인적이 없는 성을 반 시진 동안 돌아다녔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찻지 못했다.
두 사람이 내심 실망하여 다시 돌아가려던 차에, 갑자기 이변이 생겼다!
쉬이익!
날카로운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더니 수많은 나방이 가까운 건물 안에서 쏟아져 나와 곧장 심협과 귀장을 향해 날아온 것이었다.
나방들은 1척 크기에 온몸이 회색이었으며, 두 날개를 펄럭여 회색 불꽃을 날려보냈다.
“잘 왔다!”
귀장이 먼저 나서더니 입을 쩍 벌리고 날카로운 소리를 뿜어냈다.
수많은 검은 음파가 폭풍우처럼 날아가자 회색 불꽃과 나방들은 전부 갈기갈기 찢겨서 검은 기운으로 변하여 흩날렸다.
이 검은 기운은 이전에 야나찰을 죽였을 때의 그 원기였으나, 그에 비해 크게 희박했다.
귀장이 검은 음기를 흡수하려는 순간, 10여 개의 검은 그림자가 검은 기운에서 쏟아져 나왔다. 10여 마리의 커다란 회색 전갈들로, 모두 출규기 정도였다.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회색 전갈들의 꼬리가 순식간에 귀장을 향해 날아왔다.
귀장은 제때 피할 수 없을 듯하자 몸에서 검은 빛을 뿜어내어 방패를 만들었고, 동시에 또다시 음파 공격을 뿜어냈다. 수많은 검은 음파가 성난 파도처럼 전갈들을 공격했다.
펑! 펑!
두 번의 폭발음과 함께 쌍방은 서로에게 일격을 가했고, 양쪽 모두 뒤로 날아갔다.
그러나 전갈들은 날아가던 몸을 가누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돌진해왔다.
이를 본 심협이 기혈번을 결인하자 10여 개의 검은 불꽃이 뿜어져 나와 전갈들을 공격했다.
전갈들은 매우 민첩하게 번개처럼 옆으로 피했지만, 검은 불꽃도 10여 개의 검은 불새로 변하여 땅으로 쏘아지듯 돌진했다. 그러더니 음랭의 기운과 함께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하여 전갈들을 집어삼켰다. 전갈들은 순간 회색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이를 지켜본 심협은 흡족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혈번의 위력은 분명 남달랐다. 회색 전갈의 몸은 단단하여 귀장의 음파 칼날로도 벨 수 없었는데 기혈번의 음력으로 만들어진 검은 음화 앞에 이토록 쉽게 허무로 변하지 않았는가.
“주인님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귀장이 날아오더니 다소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경 쓸 것 없다.”
심협은 기혈번을 거두며 담담하게 말했다.
“네.”
심협은 손을 휘둘러 아직 불타고 있는 검은 음화에서 물건 하나를 푸른 빛으로 휘감아 가지고 왔다. 엄지만 한 시커먼 구슬이었다.
“이게 뭘까요?”
귀장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서늘한 기운이 구슬에서 흘러나왔다.
이를 신식으로 살펴보던 심협은 흠칫 놀랐다.
회색 전갈의 몸에서 나온 이 구슬에는 기이한 힘의 파동이 가득했다. 음의 힘도 귀기가 아니라 오히려 정원사리와 더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만 이 구슬은 정기가 아닌 기이한 기운이 가득했다.
“나도 모르겠구나. 전갈의 몸에서 만들어진 것 같은데 음기 결정 같지는 않다.”
“보통 물건은 아닌 듯하니 일단 챙겨 두시지요. 어쩌면 귀한 재료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귀장의 의견에 심협도 그렇게 생각하고는 거두었다.
“주인님, 나방과 전갈들은 모두 저 건물에서 나왔습니다. 가보시겠습니까?”
귀장이 나방이 나왔던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꾸나.”
두 사람은 이내 대전에 도착했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힘으로 밀어도 열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