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38화 (738/1,214)
  • 738화. 야나찰(夜羅刹)

    모래폭풍은 거의 일각 동안 계속되었고, 점점 약해져갔다.

    심협은 눈살을 찌푸렸고, 부동래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음산한 기운이 전방에서 빠르게 다가오더니 몇 호흡 만에 근처에 도착했다. 음기의 주인도 심협과 부동래의 존재를 알아챘는지 머뭇거리다가 바로 맹렬하게 급강하했다.

    “흥! 어딜 감히!”

    부동래가 차갑게 비웃고는 손에 사정을 두지 않고 손을 휘둘렀다. 손에서 뿜어진 혈광이 순식간에 모래폭풍을 뚫고 들어갔다.

    뒤이어 처절한 비명이 모래폭풍에서 들려오더니 빠르게 멀리 사라졌다.

    “음! 감히 내 벽혈간척부(碧血干戚斧)를 피하다니.”

    부동래는 한 손으로 핏빛 도끼를 회수하며 투덜거렸다.

    “왜 쫓아가서 뿌리까지 뽑지 않는 것이오?”

    심협이 물었다.

    그는 신식을 통해 방금 습격해온 존재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잿빛 금수였는데, 원숭이 몸에 폭이 5장에 이르는 거대한 날개가 달렸다. 두 눈동자가 빙글빙글 도는 것으로 봐서는 영지가 꽤나 높아 보였고, 울음소리에 원한이 가득한 것으로 봐서는 나중에 복수할 것 같았다.

    “금수가 내 일격을 피한 것만으로도 가상하니 한 번 살려주는 거요.”

    부동래는 손을 내저으며 씩씩하게 말했다.

    심협도 크게 개의치 않았다. 잿빛 금수는 응혼기 정도에 불과했기에 떼로 몰려와도 큰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심협은 눈을 감고 모래폭풍 속에서 무명공법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며칠 동안 사방을 돌아다니느라 고달팠다. 심지어 그동안 편하게 쉬었던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일원진수가 있었기에 수련을 중단하지는 않았다.

    수많은 싸움, 특히 음양이기병 안에서의 험난함을 통해 그의 경지는 어느덧 대승 후기 절정에 도달해 가고 있었다.

    심협은 내심 흐뭇해했다. 조금만 폐관수련을 하면 대승 후기 절정에 도달할 수 있고, 은행나무 영과가 있으니 진선기 돌파를 노려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진선기로 돌파하기 전에 뇌겁에 대비할 몇 가지 법보를 준비해야 했다. 이전에 꿈속 세계에서 뇌겁을 맞았을 때 거의 죽을 뻔했던 상황이 지금도 기억에 선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모래폭풍이 지나갔고, 다시 밝은 별들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잠깐 상의한 결과 여기서 하룻밤 쉬고 날이 밝으면 다시 천기성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일원진수를 꺼내 수련하려던 심협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부형, 옛 벗이 또 찾아왔구려.”

    먼 하늘에서 네댓 개의 검은 점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순식간에 근처까지 다가온 그들은 바로 부동래가 방금 살려줬던 잿빛 금수였다.

    부동래에게 상처 입은 놈이 한가운데에서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부동래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섯 마리 중 하나는 다른 것들보다 더 크고 음기도 매우 짙어서 출규기에 도달해 있었다.

    “크아아!”

    상처 입은 잿빛 금수가 포효하며 잿빛 불꽃을 토해냈다. 불꽃은 유성처럼 부동래에게로 날아왔다.

    그 불꽃을 본 심협은 갑자기 눈빛이 흔들렸고, 그사이 부동래는 몸에 금색 광막을 만들어 잿빛 불꽃을 모두 막아냈다.

    “기껏 목숨을 살려줬더니 오히려 무리를 이끌고 와서 복수를 하려고 들어? 그렇게 죽고 싶다면 내 벽혈간척부 맛을 제대로 보여주마!”

    부동래는 차갑게 외치더니 날카로운 혈광을 뿜어냈다. 이 도끼는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고, 다음 순간 상처 입은 잿빛 금수 앞에서 파동이 일었다. 거의 동시에 날카로운 혈광이 나타나 순식간에 금수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 순간까지도 잿빛 금수는 아무런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날카로운 혈광이 본체를 드러냈는데 바로 혈색의 부월(斧銊)이었다. 놀라운 영력 파동을 뿜어내는 금색 영문을 봐서는 엄청난 보물임이 틀림없었다.

    심협의 시선은 부월에 집중되었는데, 얼굴에는 의외라는 기색이 떠올랐다.

    벽혈간척부는 영기 파동만 놓고 본다면 용각추보다도 강력했고, 참마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심협은 부동래가 저런 보물을 어디서 얻었는지 궁금해졌다.

    잿빛 금수는 힘겹게 고개를 숙여 가슴에 뚫린 커다란 구멍을 내려다보더니 곧이어 폭발했다. 수많은 잿빛의 기운이 빠르게 뻗어 나갔다.

    그들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몸이 아니었다. 잿빛 기운에는 짙은 음기가 담겨 있어서 매우 순수했다.

    이때, 검은 빛이 심협의 건고대에서 뿜어져 나갔다. 귀장 조비극이었다.

    그는 입을 쩍 벌려 한입에 잿빛 금기를 전부 빨아들이고는 만족한 얼굴로 배를 두드렸다.

    부동래는 귀장을 흘끗 보고는 바로 시선을 돌려 다른 몇 마리의 잿빛 금수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벽혈간척부는 다시 혈광으로 변하여 또 다른 금수를 공격했다.

    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그 금수의 가슴에도 구멍이 뚫렸고, 몸이 폭발했다. 빠져나온 음기는 미리 기다리고 있던 조비극이 한입에 흡수했다.

    다른 금수는 그제야 부동래의 헤아릴 수 없는 기운을 감지하고는 겁에 질려 멀리 달아나기 시작했는데, 매우 빨라서 순식간에 수십 장을 날아갔다.

    “도망가려고? 이미 늦었다! 한 놈도 놓치지 않겠다!”

    부동래가 차갑게 외치며 법결을 변환했다.

    벽혈간척부에서 영광이 뿜어져 나오더니 핏빛 번개처럼 수십 장의 거리를 넘어 순식간에 금수들 앞에 나타났다. 곧이어 뿜어져 나온 빼곡한 혈광이 거대한 그물로 변하여 금수들을 덮쳤다.

    금수들은 혈광에 닿자마자 수십 개로 조각이 나버렸고 대량의 음기가 휘날렸다. 물론 귀장이 바로 뒤따라와 입을 벌리고 모든 음기를 빨아들였다.

    그때, 핏빛 그물에서 갑자기 잿빛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출규기의 금수만 살아남았는데, 이미 몸은 절반이나 잘려나가 머리와 두 날개만 남았고, 몸도 허체로 변해 있었다. 한데 놀랍게도 절반만 남은 상황에서도 속도는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빨라져서 눈 깜작할 사이에 먼 하늘로 사라졌다.

    부동래는 몇 마디의 욕과 함께 성난 기색을 띠더니 금빛을 뿜어내며 뒤쫓기 시작했다.

    심협은 그 광경을 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실소했다. 부동래가 확실히 달라지긴 달라진 듯했다.

    “주인님, 야나찰(夜羅刹)의 원기는 제게 큰 도움이 됩니다. 출규기의 야나찰까지 흡수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습니다.”

    귀장이 심협을 바라보며 급히 설명했다.

    “저놈들 이름이 야나찰인가?”

    “예, 전에 흡수한 승려 귀물의 기억에서 봤습니다. 야나찰은 음수(陰獸)의 일종으로, 저것들은 진정한 야나찰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가봐.”

    그 말에 조비극은 기뻐하며 검은빛으로 변하여 쫓아갔다.

    심협은 다시 가부좌를 틀고 일원진수를 입에 넣고는 연화하기 시작했다.

    현재 황정경의 수련으로 육신의 힘이 크게 정진하였기에 이전처럼 진수를 몸에 바르지 않아도 입에 넣는 것만으로도 연화할 수 있게 됐다.

    한데 반 시진이 지나도록 부동래와 귀장이 돌아오지 않자 심협은 눈살을 찌푸렸다.

    ‘도망친 야나찰은 겨우 출규기인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심협이 연락을 취해보려는 순간, 귀장 조비극의 목소리가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한데 목소리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주인님, 이쪽으로 와주십시오. 저와 부 도우가 좋은 곳을 발견했습니다!”

    “좋은 곳이라…….”

    귀장의 말에 심협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푸른 빛으로 변하여 귀장이 알려준 곳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그는 전음으로 귀장에게 연락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의아한 일이었지만, 우선은 가보기로 했다.

    잠시 후, 심협은 모래 바다 어느 곳으로 내려갔다. 그곳은 지형이 주위보다 훨씬 낮았고, 길이가 무려 30여 리에 이르렀다.

    심협은 신식을 펼쳐서 살펴보고는 그제야 표정이 밝아졌다.

    모래 바다 깊은 곳에는 적잖은 폐허 같은 건물이 매장되어 있었다. 장안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건업성 정도의 거대한 성 같았는데, 어느 시대의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심협은 귀장과 신혼으로 연결되어 있었기에 그가 폐허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은 겨우 감지할 수 있었지만, 자세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전음으로 귀장에게 연락했지만, 연달아 두 번이나 대답이 없었다.

    심협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둔지부를 몸에 붙여 황망으로 변하여 땅속으로 끊임없이 내려갔다.

    땅속 깊이 들어갈수록 지층의 원자(元磁) 기운과 각종 살기가 점점 짙어져서 둔지부의 황망으로는 막아내기 어려워졌다.

    소매를 휘두르자 잿빛 두건이 몸에 나타났는데, 운몽택의 여우 요물에게서 빼앗은 것이었다. 이름은 모르겠지만 이 두건은 안에 담긴 금제가 매우 현묘하여 며칠이 걸려서야 완전히 연화할 수 있었다.

    이 두건에는 세 가지 효능이 있다. 첫째는 기운을 완전히 가려주어 조금도 새어나가지 않는 것이다. 둘째는 주변 환경과 동화되는 것, 셋째는 몸이 반허(半虛) 상태로 변하여 아무런 방해 없이 땅속으로 들어갈 뿐만 아니라 돌을 뚫고 지나갈 수 있게 되는 효능이었다. 심지어 신식으로도 감지되지 않게 된다. 당시 여우 요물도 이 세 가지 능력으로 무만아와 귀장을 수차례 기습한 바 있다.

    심협은 이 두건의 효용이 더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그동안은 깊게 파고들 여력이 없었다.

    두건을 몸에 걸치자 순간 외부에서 몰려오던 압박감이 모두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심협은 그 상태로 속도를 높여 땅속으로 향했다. 이내 신식을 통해 조비극과 부동래의 기운이 느껴졌다.

    두 사람은 땅속 어느 통로 안에 있었는데, 이 통로는 인공적으로 수리한 흔적이 뚜렷하여 땅속으로 굽이굽이 내려갔다.

    통로 깊숙한 곳은 검은 안개로 자욱했고, 짙은 음기와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어떤 음무(陰霧)였다.

    음무 안은 음기와 살기가 뒤엉켜 있어 신식에도 큰 영향을 미친 탓에 깊이 들여다볼 수 없었다. 그러니 통로가 얼마나 긴지도 알 수 없었다.

    부동래는 벽혈간척부를 휘두르고 있었는데, 통로 안의 검은 안개는 마치 보이지 않는 흡입력에 휩싸인 것처럼 혈부에 흡수되고 있었다.

    검은 안개를 흡수할수록 벽혈간척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혈망은 점점 더 밝아져 이제 마치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귀장도 입을 벌리고 검은 안개를 흡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빨아들이는 속도는 부동래보다 한참 뒤처져서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통로 위에서 황망이 반짝이더니 심협이 나타났다.

    “주인님, 오셨군요. 여기 통로는 대량의 유살음무(幽煞陰霧)가 가득합니다. 어서 흡수하십시오.”

    심협을 본 귀장이 서둘러 말했다.

    “유살음무!”

    심협은 앞의 검은 음무를 바라봤다.

    그는 전에 어느 전적에서 유살음무에 관한 기록을 본 적이 있다. 음지가 강한 곳에만 존재하고, 대량의 음혼과 귀기가 모여야만 생기는 음무라 매우 진귀했다. 음속성 법보를 만드는 최상의 재료이니 이렇게 많은 양을 발견하고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다만 그에게는 건곤대 외에는 음속성 법보가 없었기에 유살음무를 흡수하기가 쉽지 않았다.

    심협은 잠시 고민하더니 한숨을 쉬고는 바로 건곤대를 꺼내 서둘러 통로 안의 검은색 음무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건곤대 안의 음기는 이전에 조비극이 돌파하면서 빨아들여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유살음무를 끊임없이 주입하자 건곤대 안의 음기는 빠르게 짙어졌고, 건곤대 겉에도 짙은 검은 빛이 떠올랐다.

    심협은 환하게 웃고는 법력을 더 주입하여 더욱 빨리 음무를 빨아들였다.

    음무를 많이 빨아들일수록 건곤대는 점점 무거워졌고, 이내 살짝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심협은 서둘러 멈췄다. 건곤대에는 흡수 능력이 있지만, 재료의 품질은 보통이라 담을 수 있는 음기는 한계가 있었다.

    그때까지도 통로 안의 유살음무는 크게 줄어들지 않았고, 마치 교룡처럼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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