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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37화 (737/1,214)
  • 737화. 무은사해(無垠沙海)

    몸을 다시 일으킨 심협은 용의 비늘이 뒤덮인 금색 오른팔에 힘을 모아 육아상왕을 향해 일격을 가했다.

    상왕은 이를 악물고는 몸에 맺힌 하얀 빛을 빠르게 부상당한 손에 모으더니 주먹을 마주 뻗었다. 그의 이 일격은 분노가 더해져 온전한 힘이 실려 있었다.

    두 주먹이 닿기도 전에 하얀 태양이 이글거렸다.

    심협의 팔에서 용과 코끼리의 포효가 크게 들려오더니 용과 코끼리의 허상이 떠올라 하얀 태양을 향해 달려들었다.

    콰쾅!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육아상왕의 몸은 산처럼 요지부동이었고, 심협은 피를 토하며 멀리 날아갔다.

    광막에 부딪히려는 순간, 그의 양팔에서 금빛과 푸른 빛이 반짝였다. 동시에 그의 몸은 뇌광을 일으키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진시천리!”

    육아상왕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는 서둘러 신식을 펼쳐서 심협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허공에는 어지러워진 천지영기의 파동만 남아 있을 뿐, 심협의 기운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간족이 어떻게 금시대붕의 둔술을 저 정도까지 사용할 수 있단 말인가!

    “뭐, 됐다. 내 주먹에 맞았으니 뼈가 가루가 되지는 않았어도 산산조각이 났을 테고 오장육부가 망가졌겠지. 그러니 죽음이 조금 늦게 다가올 뿐이다. 부동래 혼자서는 어차피 큰 파란은 일으키지 못하겠지.”

    그러나 부동래를 생각하자 다시금 분노가 치밀었다. 만약 그놈이 갑자기 사타령으로 돌아와 마허지룡에 관한 일을 조사한다고 설치지만 않았다면 이런 번거로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닌가!

    “셋째는 너무 정이 많아. 애초에 내 말대로 부동래 그놈이 돌아왔을 때 바로 죽였어야 했어. 음, 이곳 일을 지체했으니 방촌산 쪽이 좀 촉박하겠군.”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결계를 거두고는 사타령으로 돌아갔다.

    * * *

    한편, 심협은 연속으로 세 번이나 진시천리 비술을 시전하여 사타령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난 뒤에야 탈진하여 추락했고, 숲에 처박혔다.

    사실 육아상왕의 추측대로 심협은 온몸의 뼈가 부서졌고, 오장육부가 엉망이 되어 곧 죽을 지경이었다.

    그는 부동래를 간신히 건곤대에서 꺼내고는 더는 움직일 기력이 없었다.

    “심형…….”

    부동래는 나타나자마자 긴장한 얼굴로 심협을 살폈고, 도저히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이런 것이오?”

    “별것 아니오. 그, 그대로 도망쳐 나왔소.”

    심협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어떻게 말이오?”

    부동래는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고는 원래 있던 곳이 아니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지금 그런 걸 말할 때가 아니라, 내…… 쿨럭!”

    심협은 마지막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기침하며 피를 토해냈다. 이번에 뱉어낸 것에는 피에 진흙처럼 생긴 솜 같은 물건이 뒤섞여 있었다.

    부동래는 잠시 살펴보더니 눈동자가 커졌다.

    “심형 장기가……?”

    “괜찮소. 상왕의 주먹과 충돌해서 뼈가 부러지고 오장육부가 파열된 거요. 회복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니 한동안 호법을 부탁하오.”

    심협은 고개를 젓고 싶었지만,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심형, 무리했소. 진선 후기 수사의 주먹을 막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소?”

    부동래는 다소 꾸짖듯 말하면서도 이미 품에서 단약을 찾고 있었다.

    “그건 필요 없고, 날 일으켜서 앉혀주시오.”

    부동래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심협의 말대로 그를 일으켜 앉혔다.

    심협은 곧장 두 눈을 감고 몸의 마기와 법력을 동시에 단전으로 되돌려 보냈다. 그러자 마갑과 금색 비늘이 점점 물러나기 시작했고, 천천히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이를 지켜보던 부동래는 점점 궁금증이 더 커졌다.

    잠시 후, 심협의 몸에서 기이한 모습은 거의 사라졌고, 유일하게 미간의 붉은 자국만이 남아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부동래가 뭔가를 물어보려는 순간, 콰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가부좌를 틀고 있던 심협의 몸이 갑자기 옆으로 기울어졌고, 콰직 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부동래는 깜짝 놀랐다. 이것은 뼈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잠시 후, 심협은 너덜너덜해진 채 바닥에 쓰러졌다.

    “심형, 이게……?”

    부동래가 서둘러 다가왔다.

    심협은 간신히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목의 연골도 부러진 것이다.

    “부형, 걱정하지 마시오. 앞으로 나는 대개박술로 몸을 회복할 생각인데,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니 그동안 잘 부탁하오.”

    심협의 전음이 부동래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걱정 마시오. 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심형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지키겠소!”

    부동래가 가슴을 치며 말하자 심협은 안도하며 말없이 두 눈을 감고는 대개박술을 운공하기 시작했다.

    * * *

    어느덧 두 달이 흘렀다.

    심협의 부상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해 회복에 필요한 시간도 생각보다 길었다.

    처음 보름 동안은 거의 움직이지도 못했고, 한 달이 지나서야 어느 정도 회복됐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지금은 절반 정도 회복됐으나, 장기에는 여전히 내상이 남은 상태라 완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가끔 기침을 하고 피를 토했다. 안색은 거의 핏기가 없어 보일 정도였다.

    “심형,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고작 며칠 차이 아니오? 완전히 회복된 후에 출발합시다.”

    “움직이는 데는 별문제 없으니 최대한 빨리 천기성으로 갑시다.”

    “천기성? 먼저 장안성으로 가서 사타령의 일을 알려야 하지 않겠소?”

    부동래가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장안성 쪽은 서신만 보내도 되오. 직접 가는 것은 큰 의미가 없지. 또한 사타령이 소동을 일으켜도 당장은 종문 내부의 일이고, 우리에게는 이 일이 마환과 관련됐다는 증거가 하나도 없지 않소?”

    가만 듣고 보니 심협의 말이 틀린 게 없었다. 두 사람의 말만으로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본래 나는 천기성으로 법보를 수리하러 가는 길이었소. 가는 길에 부형이 생각나 잠시 사타령에 들른 것뿐이지.”

    “음, 그렇다면 천기성으로 갑시다.”

    부동래는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이제 그는 심협을 완전하게 믿고 있었다.

    심협과 부동래는 동남쪽으로 향했고, 보름이 지나서야 남첨부주(南瞻部州) 서남쪽 사막에 도착했다. 사막에서는 뜨거운 열기의 파도가 끊임없이 몰려왔다.

    두 사람은 사막 가장자리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막은 끝없이 넓었고, 저 멀리 울퉁불퉁한 언덕들이 희미하게 보였는데, 역시 모래가 쌓여 만들어진 것들이었다. 끝없는 사막은 하늘과 맞닿아 어디가 끝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늘은 뿌옇고 땅은 노란 것이, 여기에서는 잿빛과 노란색 외에는 다른 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상한 일이오. 여기서 더 가면 남해 해역이 나올 테니 기후가 습해야 하는데, 왜 사막이 있는 건지……?”

    부동래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무은사해(無垠沙海)가 여기 나타난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오. 적잖은 종문에서 이곳에 사람을 보내 조사했지만, 아쉽게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하오.”

    심협이 먼 곳을 바라보며 조용히 답했다.

    “오, 심형은 여기에 와봤소?”

    부동래가 의외라는 듯 물었다.

    “아니오. 그저 천기성으로 가는 길에 있으니 자료를 찾아봤을 뿐이오.”

    “그 말은 천기성이 저 사막 중간에 있다는 것이오? 아무리 봐도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부동래가 뒤통수를 긁적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오장관에서 얻은 정보에 따르면, 천기성은 이 사막 깊은 곳에 있다 하오. 다만, 천기성은 매우 신비로워 삼계의 여러 종족과 자주 왕래함에도 불구하고 이 종문이 사막 어느 곳에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소. 어쩌면 샅샅이 뒤져야 할 수도 있소.”

    심협이 해탈한 듯 허허 웃으며 말했다.

    “심형이 그리 말하니 천기성에 더욱 흥미가 가오. 자, 어서 찾으러 갑시다.”

    부동래가 재촉했다.

    “그전에…… 무은사해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평온하지 않으니 들어간 뒤에는 조심해야 하오.”

    심협이 다소 진중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위험하다니, 무엇이 말이오? 요수? 아니면 모래폭풍?”

    부동래는 거리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눈은 오히려 빛이 이글거리는 것이 그야말로 신이 난 듯했다.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무은사해에 들어간 사람이 영문도 모른 채 사라지기 일쑤라 하니 조심하는 게 상책이오.”

    심협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사타령에서 나온 후로 부동래는 심정에 무슨 변화가 생긴 듯했다. 여전히 듬직하긴 하지만, 점점 과감하고 행동이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안심하시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소.”

    부동래는 충고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심협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긴말하지 않고 먼저 사막 깊숙한 곳으로 날아갔다. 부동래가 뒤를 따랐다.

    멀지 않은 곳의 땅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리더니 노란 모래 도마뱀이 뚫고 나와 심협을 발견하고는 몸을 돌려 다시 모래 속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사막에 들어서자 갑자기 광풍이 불어오더니 모래 먼지가 휘몰아쳐 이들의 모습을 금방 삼켜 버렸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석양이 서쪽으로 졌다.

    심협과 부동래는 천기성을 찾기는커녕 사람 그림자 하나 보지 못했다. 심지어 인가나 연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보이는 것은 여전히 무은사해였다.

    어둠이 내리고 별이 낮게 드리우자 불처럼 뜨거운 무은사해의 기온이 뚝 떨어져 마치 얼음골처럼 변해버렸다.

    두 사람은 거대한 모래언덕 아래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심형, 온종일 돌아다녀도 그냥 이 주변만 서성거린 것 같은 느낌이오. 방향을 잘못 잡은 거 아니오?”

    부동래는 닭다리를 뜯으며 물었다.

    “그럴 리가 없소. 계속 주변을 유의했으니 방향을 잃지는 않았을 거요. 무은사해가 워낙 방대하고 평소 찾아오는 사람이 극도로 적으니 지도가 전해지지 않아 정확한 위치를 알아보기 어려울 뿐일 것이오.”

    심협은 술을 한 모금 들이켜고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대낮에 사막 깊은 곳으로 들어갈수록 온도는 더 높아졌다. 물론 그와 부동래의 경지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종일 쉬지 않고 걷느라 목이 마른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부동래는 닭다리 하나를 깔끔하게 발라 먹고는 영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매우 짜증이 난 상태인 듯했다.

    “부형, 별일 없는 것이오?”

    심협은 눈빛을 반짝이며 부동래에게 물었다.

    “괜찮소만? 왜 그런 걸 묻는 것이오?”

    “최근 부형은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오. 못 느꼈소?”

    “그런가? 난 아무런 느낌이 없소만.”

    부동래가 자기 몸을 이리저리 훑어보며 답했다.

    “부형이 괜찮다면 됐소.”

    심협도 더는 묻지 않았다.

    한데 그때, 사막에서 갑자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고, 심협과 부동래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전방의 사막 끝에서 황운(黃雲)이 몰아치더니 빠르게 몰려오기 시작했고, 금세 가까이 이르러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폭풍으로 변했다.

    “하, 또 왔네. 이게 벌써 몇 번째야?”

    부동래가 투덜거렸다.

    두 사람은 피하지도 않고 각자 몸에서 푸른 빛을 뿜어냈다. 하늘에 닿은 모래폭풍이 그들의 몸을 휩쓸었으나, 두 사람은 마치 땅에 못 박힌 것처럼 모래폭풍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았다.

    무은사해에 들어온 날부터 심협과 부동래는 이런 모래폭풍을 몇 번이나 겪으면서 이미 이 위력에 익숙했졌고, 애써 날아서 뚫고 가려 하지 않았다.

    모래폭풍은 위력이 큰 편은 아니지만 너무도 광범위해 그 안에 들어섰다가는 동서남북을 전혀 분간하지 못해 방향을 잃기 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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