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36화 (736/1,214)

736화. 제대로 싸워도 되겠지?

비틀거리며 일어난 심협의 옷은 누더기가 되어 그 안의 몸이 훤히 드러났는데, 이를 본 부동래와 육아상왕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심협의 왼쪽 몸은 칠흑 같았고, 겉에는 마치 뼈로 만들어진 듯한 비늘이 덮여 있었다. 반면 오른쪽 몸은 황금빛이었는데, 겉에는 물고기 비늘 같은 물결무늬가 떠올라 있었다.

누가 봐도 그 모습은 인간족이라 할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 선족 같지도 또 마족 같지도 않았다.

“재미있군. 그게 음양이기병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인가?”

육아상왕은 곧장 공격하지 않고 심협을 재미있다는 듯이 훑었다.

부동래도 심협이 언제 이런 신통을 얻었는지 어리둥절했다.

“부형, 저자는 너무 강하오. 도망가는 방법밖에 없겠소.”

심협이 넋을 놓고 있는 부동래에게 전음을 보냈다.

“상왕은 진선 절정의 수사이니 그의 손에서 탈출하기는 어렵소. 심형은 나 때문에 음양이기병에 빠졌다가 겨우 살아남았으니 다시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소. 내가 시간을 끌 테니 심형은 서둘러 둔술로 빠져나가시오.”

부동래는 담담하게 전음으로 답했다.

하지만 의논을 마치기도 전에 육아상왕이 그들의 속마음을 간파한 듯 콧방귀를 뀌었다.

“수를 써봐야 소용없다. 본 왕이 여기 있는 한 누구도 도망치지 못한다!”

말을 마친 그가 한 손으로 법결을 결인하고 휘두르자 눈처럼 빛나는 은색 빛줄기가 쏜살같이 뿜어져 나갔다. 허공을 가르며 날아가는 은빛은 순식간에 수백 개의 은색 칼날로 변하여 심협 등을 포위했다.

육아상왕이 허공에서 손을 움켜쥐자 사방에서 은빛 칼날이 일제히 떨어졌다.

이를 본 부동래는 깜짝 놀랐으나, 강력한 압박감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때, 심협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기합을 지르며 양손으로 매우 특이한 법결을 맺었다. 그러자 그의 단전에서 검은 빛과 금빛이 나타나더니 서로 맞물리면서 동시에 번쩍였다.

뒤이어 두 개의 색이 확연히 다른 태양이 서로 충돌하며 팽창했고, 강력하기 그지없는 법력의 파동이 일렁였다.

사방에서 날아오던 은빛 칼날은 순식간에 두 빛에 휩쓸렸다.

그 순간, 부동래는 몸이 풀리면서 휘청거렸고,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되자 경악한 눈으로 심협을 바라봤다. 심협이 설마하니 육아상왕의 일격을 막아낼 수단을 펼칠 거라고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이토록 순수한 순양의 힘이 짙은 마기와도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다니, 도대체 어떻게 한 것이냐?”

육아상왕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대체 무얼 위해 이 모든 일을 꾸민 것이냐?”

심협은 대답 대신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모든 일? 아무래도 생각보다 많은 것을 알아낸 모양이구나.”

“삼계무도회의 마허지룡도 너희가 보낸 거겠지? 오장관의 인삼과 나무도 너희가 음양이기병을 이용하여 지맥에 독을 푼 것일 테고…….”

심협이 차갑게 웃으며 물었다.

“정말로 많이 알고 있군. 그렇다. 모두 우리가 한 일이다. 한데 네가 알게 됐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지? 고작 대승 후기 수사인 네가 뭘 할 수 있겠느냐?”

육아상왕의 비웃음에 심협은 놀라고도 화가 난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사실 마음속은 매우 평온했다. 이미 조사를 통해 추측했던 것들이기에 놀랍지 않았고, 조롱 따위에 화를 낼 상황도 아니었다. 오히려 도망갈 길을 찾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단전 안의 순양법력과 치우마기를 제어했다. 이 비술은 아직 숙달되지 않았기에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곧 단전 안의 순양의 힘과 치우마기가 서로 회전하면서 몸에서 흑백의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점점 더 자욱해지면서 그의 모습이 희미해졌다.

이를 본 육아상왕은 심협이 신비한 둔술을 시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두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공간에 아무런 파동이 일어나지 않자 조금 안도했는데, 이내 다시 눈살을 찌푸렸다. 심협에게서 흘러나오는 흑백의 안개가 다름아닌 세상에서 가장 지순한 음양이기임을 마침내 깨달은 것이다.

육아상왕은 조용히 뒤로 물러나는 수밖에 없었다. 만약 정말로 보병 안에 담겨 있던 음양이기라면 육신과 영혼을 녹여버릴 힘이 담겨 있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현상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의심이 들었다.

‘저놈은 인간족이 아니라 홍황(洪荒)의 이종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어찌 인간족의 몸으로 음양이기의 힘을 다스릴 수 있단 말인가?’

허나 육아상왕은 이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부동래는 음양이기가 가득한 곳에 서 있음에도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던 것이다.

“속임수였군.”

이렇게 중얼거린 순간, 그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어 곧바로 손을 휘둘렀다.

넓은 옷소매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풍뢰가 휘몰아치면서 3척 크기의 하얀색 비검이 나타나 안개 속의 심협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꽈르릉!

천둥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면서 하얀색 비검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자욱했던 안개는 번개를 만나자 곧바로 녹아 흩어졌고, 순식간에 깨끗이 사라졌다.

“역시 눈속임이었군.”

육아상왕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

하얀 비검은 짙은 안개 속에서 파죽지세로 날아갔고, 번개가 번쩍이는 기세는 갈수록 강해졌다.

콰쾅!

비검의 기세가 마침내 절정에 도달했고, 한줄기 강력한 번개가 주위 허공에 무시무시한 흔적을 남기며 심협의 심장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그러나 안개 속의 심협은 피하지 않고 오히려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

그는 마치 태산처럼 걸음걸이가 더할 나위 없이 굳건했고, 아무런 보물이나 법기도 들고 있지 않았다. 그저 허리춤에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강하게 내리쳤을 뿐이었다.

분명히 맨손으로 가한 일격인데도 심협의 몸에서는 강력한 기운이 폭발했고, 뒤편 허공의 안개는 마치 불길이 타올라 상승하는 기류처럼 금빛 하늘 높이 치솟은 불꽃으로 변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던 부동래도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불꽃 앞의 심협은 깜짝 놀랄 정도로 이상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심협은 키가 거의 1장에 이르렀다. 왼쪽 몸은 완전히 마기에 침식되어 짙은 검은색 갑옷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 위로는 암홍색의 핏자국 마문이 있었다. 반면 오른쪽 몸은 정반대로 금색 비늘갑옷에 뒤덮인 상태였다.

얼굴도 좌우가 달랐다. 왼쪽은 표정이 험악하고 이마에 1촌 크기의 검은색 마족의 뿔이 나 있었다. 오른쪽 얼굴 역시 표정은 험악했고, 화가 난 듯 금강(金剛)처럼 눈을 부라렸으며, 이마에는 금색 용 뿔이 나 있었다.

더 이상한 것은 두 눈동자였다. 왼쪽은 마기에 침식되었지만 금빛으로 빛났고, 오른쪽은 순양의 힘이 모여 있으나 칠흑처럼 새까만 마안(魔眼)이었다.

하얀 뇌광을 두들긴 것은 검은 갑옷으로 뒤덮인 왼쪽 주먹이었다.

콰쾅!

폭음과 함께 폭발한 하얀 뇌광은 수십 장 두께의 하얀 빛이 되어 하늘 높이 솟구쳤다.

수많은 굵은 번개가 빛의 기둥에서 사방으로 뿜어져 나가자 연쇄적으로 폭음이 터지면서 요동쳤다.

연이은 폭발에 반경 백여 장은 머리카락 한 올만큼도 영향을 벗어날 수 없었다.

사방을 뒤덮었던 광막에서도 연달아 폭발이 일어났지만, 튕겨 나온 여파로 인해 인근의 땅은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흔들렸다.

뒤로 물러나 부동래 앞을 막아선 심협을 번개의 여파가 끊임없이 내리쳤다.

한 손을 휘둘러 비검을 거두고는 안개 속의 심협을 바라보는 육아상왕의 눈빛은 한층 신중해졌다.

이번 일격은 비록 3할의 힘밖에 쓰지 않았지만, 태을 경지까지 한 걸음밖에 남지 않은 진정한 진선 절정 경지인 그의 공격을 대승기 수사가 막아낸 것은 기가 찰 일이었다. 더욱이 심협은 크게 다치지도 않았고, 심지어 전력을 다한 모습도 아니었다.

“그저 눈속임이나 쓰는 잡배인 줄 알았더니 정말로 음양이기의 힘을 사용하는구나. 게다가 몸에 순수한 치우의 마기와 도문의 상승 공법의 흔적까지 남아 있군. 아무래도 내가 정말 널 우습게 본 모양이구나. 허나 그렇기에 너는 더더욱 죽어야만 한다.”

육아상왕은 그렇게 말하고는 하얀 비검을 움켜쥐었다.

현재 심협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대승 절정이 아니라 이미 진선의 경지에 들어서 있었다. 대승과 진선은 범인(凡人)과 신선의 차이였고, 높고 낮음은 구름과 땅바닥 같았다.

현재 심협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고, 지금의 상태를 오래 유지할 수도 없었다. 육아상왕은 이를 눈치채긴 했으나, 놀라움은 약해지지 않았다. 이에 심협이 저러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전력을 다해 일격에 죽일 생각이었다.

‘제아무리 대승기가 아니라 해도 진선 초기에 갓 들어선 자라면 나의 본격적인 일합도 견뎌낼 자격이 없지.’

그의 몸에서 갑자기 변화가 일어났다. 하얀 빛이 몸을 뒤덮자 들고 있던 장검도 빛에 휩싸였다.

이를 본 심협의 눈동자가 신중해졌다.

“부형, 미리 사과하겠소. 미안하오.”

그러더니 다짜고짜 부동래를 허리춤의 건곤대 안으로 넣었다.

이어서 그는 몸을 돌려 육아상왕을 마주 봤는데, 확연히 다른 두 개의 눈동자가 기묘하게 번득였다.

이에 육아상왕은 분노가 폭발했다. 겨우 진선 초기의 인간족 따위가 감히 모든 기세를 폭발시킨 나를 저렇게 똑바로 바라보다니, 견디기 힘든 모욕 같았다.

“명을 재촉하는구나!”

육아상왕의 나지막한 말과 함께 온몸을 뒤덮고 있던 하얀 빛이 갑자기 돌변하더니 불꽃처럼 타올랐다.

강력하기 그지없는 압박감이 갑자기 뿜어져 나와 밀물처럼 심협을 덮쳐왔다.

쾅! 쾅! 쾅!

중압감에 상왕 앞의 지면이 연신 갈라졌고, 종횡으로 얽힌 균열이 거미줄처럼 퍼지면서 심협을 향해 다가왔다.

심협은 강력한 중압감이 허공에서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는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거의 동시에 발아래 땅이 크게 흔들리면서 흙먼지와 함께 가라앉았다.

상상 이상의 중압감이 어깨를 짓눌렀고, 그 강도가 점점 강해지자 심협은 허리를 숙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텨야 했다.

곧 쓰러지려는 심협을 보며 육아상왕은 그제야 조금 만족스러웠다.

그는 심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걸음마다 땅이 둔중하게 울렸다. 동시에 거대한 산이 떨어진 것처럼 심협의 몸을 짓누르는 중압감은 더 커졌다.

심협의 허리는 조금 굽어졌고, 어깨의 떨림은 더 강렬해졌다. 악문 입에서 빠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육아상왕은 씩 웃으며 다시 한걸음 내디뎠다.

쾅!

심협의 입에서는 낮은 신음이 흘러나왔고 줄곧 뻣뻣하던 목이 내려앉았다.

“생각보다 잘 버티는구나.”

육아상왕의 얼굴에 걸린 미소는 점점 거만해졌다.

이를 악문 심협의 두 팔에서 검은색과 금색이 조금씩 밝아져 갔다.

그 무렵, 이미 심협 앞에 도착한 육아상왕이 손을 들어 머리를 눌렀다.

지금의 심협은 마치 몇 개의 거대한 산을 등에 짊어진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기에 그저 육아상왕의 손이 자신의 이마에 닿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명심해라. 애송이는 결국 애송이일 뿐이다. 또한, 인간족과 선족은 삼계를 주도할 자격이 없지. 우리 마족의 전쟁 불길에 덜덜 떨어야만 한다.”

육아상왕은 심협을 내려다보며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떤 발언에도 줄곧 대꾸하지 않던 심협이 이번에는 어렵게 고개를 치켜들며 말했다.

“너희 마족은 역시 사악한 생각을 버리지 않았구나. 그럼 제대로 싸워도 되겠지?”

말이 끝나는 순간, 그의 미간에서 갑자기 피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육아상왕은 손이 뜨거워지는 느낌에 흠칫 놀랐는데, 그 아래에서 갑자기 핏빛 불꽃이 타올랐다. 심협 미간의 피가 스스로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뒤이어 한 줄기 혈광이 그의 미간에서 뿜어져 나가 그대로 육아상왕의 손을 뚫고 그의 뺨을 스쳐가며 귀에 작은 구멍을 냈다.

육아상왕은 깜짝 놀라서 손을 거두려 했으나, 그 순간 심협이 굽었던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왼쪽 눈에는 금빛 안개가 자욱했고, 오른쪽 눈에서는 마기가 흘러나오는 기이한 상태였다.

그리고 미간 중앙에 붉은색 세로무늬가 나타났는데, 이 무늬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스스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