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35화 (735/1,214)
  • 735화. 일의 전말

    “둘째 형님, 나도 보여주시오.”

    금시대붕이 다가가자 육아상왕은 불쾌한 표정으로 음양이기병을 건넸다.

    보병을 받아 든 금시대붕은 보병이 이상할 정도로 가벼워 보이자 눈살을 찌푸렸다.

    “이놈, 우리 사타령의 중보를 부쉈으니 이 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이냐?”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전 그저 배신자의 음모를 파헤치다가 그자의 분노를 사 음양이기병에 빨려 들어갔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투를 벌이다가 이제 겨우 살아나왔습니다. 한데 제가 보병을 부수다니요?”

    심협은 육아상왕을 흘끗 보며 차갑게 말했다.

    상대가 자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듯하자 더욱 화가 난 육아상왕이 막 심협에게 혼찌검을 내주겠노라 벼르던 차였다.

    “둘째 형님, 잠깐만 기다려주시오. 보병은 부서진 게 아니오.”

    금시대붕이 그를 말렸다.

    “뭐? 부서진 게 아니라니? 그때 그 망할 원숭이 때와 똑같은데 무슨 소리냐?”

    “부서진 게 아니오. 그저 안에 담겨 있던 음양이기가 거의 소진되었을 뿐이오. 현양지굴에서 3백 년 정도 보관하면 본래대로 회복이 될 듯싶소.”

    금시대붕은 자신이 말하고도 한동안 멍해 있었고, 청모사왕과 육아상왕도 반쯤 넋이 나간 듯했다. 그러나 셋 모두 금세 침착함을 되찾았다.

    “심 소우, 곤경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피곤하겠구려. 동래야, 심 소우를 쉴 곳으로 안내하거라.”

    금시대붕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부동래는 스승의 말대로 심협을 사타령의 별원 동굴로 데려가 거처를 마련해주었다.

    뒤이어 요병들을 모두 보내고 모처럼 셋만 남은 사타령 마왕들은 나란히 아무도 없는 절벽으로 향했다.

    “셋째야, 음양이기병이 부서지지 않았다는 게 정말이냐?”

    청모사왕이 신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큰 형님, 저를 못 믿는 겁니까?”

    “그게 아니다. 정말로 그 안에 담겨 있던 음양이기가 전부 소진되었다면 저 인간족은 대승기로 보여도 사실은 진선 후기라는 말이 아니더냐?”

    청모사왕이 읊조리며 말했다.

    “확실히 이전에 손오공도 그렇게 오래 갇혀 있었지만 결국은 교묘한 방법으로 보병을 깨트리고 나왔지요. 음양이기를 모두 없애서 나온 게 아니라…….”

    금시대붕이 차분한 목소리로 답했다.

    “삼계무도회 때 저 애송이가 만만치 않다고 생각하기야 했다만, 지금 보니 부동래에게 접근한 것도 다른 목적이 있는 건 아닌가 의심스럽군. 단순히 의기투합 같은 게 아닐지도 모르오. 인간족의 첩자인가? 부동래, 저 멍청이가 속아 넘어간 거 아니겠소?”

    육아상왕이 금시대붕을 보며 냉소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이곳에 와서 웅염, 그 배신자를 찾는 것을 도왔겠는가?”

    청모사왕의 말에 육아상왕도 입을 닫았다.

    “어쩌면 웅염은 인간족이 아니라 선족의 사주를 받은 것인지도 모르죠.”

    잠시 후, 금시대붕이 그렇게 추측했다.

    “그럴 수도……. 어쨌든 이 일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다.”

    * * *

    심협과 부동래는 석실 가운데 마주 보고 앉았다. 심협이 음양이기병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여전히 놀라웠던 부동래는 계속해서 캐물었다.

    심협은 마기와 황정경 공법을 이용하여 음양이기를 순환시킨 후 음과 양의 기운이 싸우는 형국이 되어 음양이 충돌하다가 서로 합쳐진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부동래는 병 속의 공간에 들어간본 적이 없기에 심협의 말을 절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심협에게는 깊게 감복했다.

    다음 날 새벽, 심협은 사타령을 떠났고, 오직 부동래만이 배웅을 나왔다.

    “심형, 정말 스승님께 알리지 않아도 되겠소? 스승님께서 큰 보상을 해주실 텐데…….”

    “괜찮소. 여기 온 건 부형을 만나기 위함이었지 보상을 원해서가 아니었소.”

    두 사람은 나란히 산속을 걸었고, 사타령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렇게 한동안 걷다 보니 순찰하는 요병이 보이지 않는 시기가 왔고, 그제야 심협이 주변을 살펴본 후 불쑥 물었다.

    “부형, 정말 함께 가지 않겠소?”

    부동래는 웃으며 사양하려다가 심협의 신중한 표정을 보고는 흠칫 놀라 되물었다.

    “심형은 내가 사타령을 떠나길 원하시오?”

    “사타령의 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깊고 또 혼탁하오. 그래서 부형이 여기 머물지 않았으면 좋겠소.”

    심협은 사타령을 뒤돌아보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심형, 뭔가 다른 걸 알아낸 것이오? 그래서 분종 의식 때 청모사왕과 육아상왕의 음모를 발설하지 않은 게요?”

    부동래의 표정은 점점 더 굳어갔다.

    심협은 한숨을 내쉬고는 대답 대신 반문했다.

    “부형의 스승이 인간족에게 반감을 품고 있다는 말을 내 기억하고 있소. 그렇다면 그는 마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소?”

    “따로 말씀하신 적은 없으나 줄곧 마족이 분열되는 현실에 불만을 품고 계신 것 같소.”

    부동래는 심협이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모른 채 대답했다.

    “그럼 치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오?”

    “스승님께서도 처음에는 육아상왕과 마찬가지로 치우의 봉인을 해제하자는 쪽이었소. 마족이 분열되는 국면은 마조(魔祖) 치우 같은 강력한 존재만이 통합할 수 있다 여기신 게지.”

    “내 추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세 명의 대왕 중 청모사왕만 반대했겠군요.”

    “그렇소. 사왕은 오랜 세월 살면서 마족과 다른 종족의 많은 분쟁을 지켜봤고, 과거 삼계 혼전으로 많은 생명이 목숨을 잃은 게 전부 치우를 우두머리로 한 마족의 책임이라 생각하고 있소. 그래서 그런 전쟁에 미친 전신의 봉인을 해제해서는 안 된다 여기지. 그저 삼족이 각자 평안하고 서로 침범하지 않는 게 제일이라는 게요. 작은 마찰까지는 막을 수 없겠지만, 대대적인 전쟁이 있어서는 안 된다면서 말이오.”

    “부형, 이 일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을지도 모르오. 이번 분종 의식의 혼란 때 노린 게 어쩌면 부형의 스승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소?”

    부동래는 그 말을 듣자 처음에는 멍해졌다가 분종 의식 때 심협의 모습이 떠오르자 표정이 급변했다.

    “심형의 말은…… 웅염을 시켜 날 모함한 게 청모사왕이 아니라…… 그…….”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가 처음부터 오해했을 수도 있소. 분종 의식에서 원래 제거될 사람은 부형의 스승이 아니라 두 대왕과 의견이 다른 청모사왕이었던 것이오. 웅염의 배신이 밝혀졌을 때 사왕은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단 말이오.”

    여기까지 듣고 나자 부동래도 의아했던 점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심형은 처음부터 우리 스승님을 의심한 것이오?”

    “그건 아니오. 그저 이번 일이 워낙 이상해 그저 추측만 하고 있었소. 한데 의식 당시 청모사왕의 반응이 내 직감에 확신을 줬소. 그리고 내게 더 확신이 들게 한 것은 육아상왕이 부형과 웅염을 죽이려 했을 때 보였던 세 대왕의 반응이었소.”

    부동래는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보고는 주저하며 말했다.

    “그때 상왕이 증거를 없애기 위해 달려들 때 사왕은 지켜보기만 했고…… 스승님이 날 구해줬소. 이건…… 스승님이 무죄라는 증거가 아니오?”

    “부형이 알아챘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우리 주변의 허공이 잠깐 멈췄었소. 그 느낌은 육아상왕의 압박이 아니라 부형의 스승, 금시대붕의 진시천리 신통을 시전할 때 나오는 특수한 파동이었지. 이건 절대 틀림이 없소.”

    “그건 사람을 구하기 위해 무심코 한 게 아니겠소?”

    “아니, 부형 스승 정도의 실력이라면 그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는 그런 신통을 시전하지 않아도 충분할 게요. 또한 그가 부형을 구한 뒤의 상황을 생각해보시오. 웅염은 음양이기병 부근으로 떨어졌소. 보병을 발동할 기회를 얻은 것이지. 그건 나와 부형을 노린 것이 분명하오.”

    심협이 고개를 저으며 반론하자 부동래는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심협은 몇 걸음 앞에서 함께 가자고 손짓했다.

    “웅염이 죽기 전에 어떤 표정이었는지 알고 있소?”

    부동래는 심협을 따라가며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득의양양했다가 곧 놀라움으로 변했고, 몸이 사라질 때는 원망으로 가득했소. 그때 그는 몸이 사라지면서도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노려봤는데, 그건 청모사왕도, 육아상왕도 아닌 부형의 스승이었소.”

    부동래의 표정은 이제 놀라움에서 갈등과 고통으로 변해 있었다. 그의 이성은 심협의 말을 믿었지만 감정으로는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웅염이 스스로를 희생해가며 나를 음양이기병으로 끌어들인 것도 사실 이상한 게 아니었소. 그는 자신이 배운 게 음양이기병의 비술이라고 알고 있었을 테니까. 허나 사실 그것은 혈제봉인술(血祭封印術)이었소. 청모사왕에게 쓰려던 것이었으나 나한테 떨어진 것뿐이지.”

    그제야 부동래는 그간 내심 의아해했던 많은 것들이 이해가 됐다.

    “스승님이 왜 그런 짓을……? 분명히 마조 부활의 계획은 실패했고 삼계도 이미 동맹을 맺었는데 도대체 왜……?”

    그의 말은 심협에게 묻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묻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답은 확실했다. 마족은 치우의 부활을 포기한 것이 아니다.

    한데 그때였다.

    “네놈은 체질이 기이할 뿐만 아니라 머리도 비상하구나. 셋째 말이 옳았어. 네놈을 살려서 돌려보내서는 안 되겠다.”

    차가운 비웃음이 들려오더니 은색 갑옷을 입은 자가 숲속에서 걸어 나와 두 사람의 길을 막았다.

    지금까지 육아상왕이 따라오고 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심협과 부동래는 깜짝 놀랐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경계하며 사방을 둘러봤다.

    “왜? 본 왕만으로는 부족해 보이느냐? 반경 백 리 안의 요병은 돌려보냈다. 오늘, 여기가 네놈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육아상왕이 비릿하게 웃었다.

    “여기서 소란을 피우면 청모사왕이 알아채게 될 텐데?”

    “걱정 마라. 그가 오기 전에 너희는 죽을 테니까. 네가 음양이기병에서 49일을 버티고 살아남은 것을 생각한다면 형님도 네가 조금이라도 약할 때 제거한 것에 찬성하실 게다.”

    뒤이어 그가 손을 휘두르자 은색 빛줄기가 날아가더니 세 사람의 머리 위 상공에 장막이 생겨나 뒤덮었다.

    심협은 망설임 없이 부동래에게 전음을 보냈다.

    “나를 잡으시오!”

    그때, 앞에서 갑자기 강력한 강기가 폭발하더니 수십 개의 은빛 칼날이 어지럽게 춤을 추며 날아왔다. 강력한 마기가 담긴 은색의 칼날은 허공에서 교차하며 심협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들었는데, 놀라울 정도로 빨랐다.

    심협의 양팔이 금빛과 푸른빛으로 번득였지만, 진시천리 신통을 시전하기에는 이미 늦은 때였다.

    부동래가 앞으로 나서서 공격을 막으려 했지만, 심협이 그의 어깨를 잡아 자신의 뒤로 옮겼다. 진선 후기인 육아상왕의 공격을 부동래의 실력으로는 막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심협의 몸이 검게 빛나더니 심각하게 파손된 마갑이 나타났다. 심협이 이 마갑을 전력으로 발동하자 검은 빛이 폭발했다.

    은빛 칼날이 구여마갑을 베자 마갑은 바로 스스로 움직여 은빛 칼날에 담긴 마기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마갑에서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콰직!

    이어서 구여마갑이 심협의 몸에서 일고여덟 조각으로 부서졌다.

    심협은 큰 충격에 뒤로 날아갔고, 10여 그루의 나무를 쓰러뜨리고 나서야 겨우 멈췄다.

    “심형!”

    부동래가 황급히 그를 쫓아갔다.

    “고작 대승 후기 수사가 내게 덤비다니, 정말 분수를 모르는 놈이로구나.”

    육아상왕은 성큼성큼 다가오며 조소했다.

    그때, 부서진 나무 아래에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콜록, 콜록! 역시 차이가 크긴 크군.”

    이어서 심협이 천천히 일어났다. 그의 옷은 너덜너덜했고, 그 너머로 핏자국이 비쳤다.

    “심형!”

    부동래는 심협이 무사하자 기쁨을 참지 못하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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