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34화 (734/1,214)
  • 734화. 기적

    마기의 움직임에 심협 아래에 있던 음의 물고기도 움직였고, 본원 음기가 끊임없이 솟아올라 체내로 들어가더니 마기가 사라진 부분을 보충했다.

    이런 변화를 겪자 심협 몸 아래의 음양의 두 물고기가 서로의 꼬리와 머리를 물며 움직였다. 마침내 음양의 기운이 순환하기 시작하자 마치 한 하늘에 여름과 겨울이 공존하는 듯한 모습이 되었다.

    심협의 몸에서도 추위가 오고 더위가 가시면서 서로 교차했다.

    음기가 몰려오자 거센 양기가 물러났고, 본래 말라버려서 균열이 생긴 피부도 음한의 기운이 주입되면서 무더위가 한풀 꺾이자 마치 빙산의 눈 같은 촉촉함을 만나 조금씩 젖어들기 시작했다.

    듣기에는 아름다운 일 같지만, 사실 음한의 기운이 주입되면서 발생한 극열과 극한의 흐름에는 극도의 고통이 따랐다.

    의식을 잃어가던 심협은 이런 극도의 고통에 비명과 함께 다시 깨어났고, 어느새 오른쪽 몸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을 알게 됐다.

    현재 심협의 몸은 전쟁터와 같아서 본원양기에 대항하기 위해 몰려온 본원음기가 서로 치고받으며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음한의 기습에 이어서 바로 뜨거운 기운이 몰려왔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자 심협은 마치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빠진 것처럼 음한과 더위에 끊임없이 시달리는 느낌이었다.

    마기도 그를 향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고, 매번 본원양기에 의해 제지당했다.

    심협은 끝없는 고통의 반복 속에 신식이 점점 회복되기 시작했다. 강렬한 고통에 의식을 잃고 싶어도 잃을 수 없었기에 끝없는 고초를 생생하게 겪어야만 했다.

    심협은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참으며 끊임없이 몸으로 흘러들어오는 양의 기운을 이용해 황정경 공법 수련의 한계를 돌파하고 제5층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 *

    시간은 누군가에게는 빠르게 누군가에게는 더디게 흘렀으나, 결국 49일이 지났다. 그동안 음양이기병 옆을 지킨 부동래의 몸에서는 산혼전이 완전히 제거됐으나, 그의 정신 상태는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악화됐다. 표정은 굳어 있었고, 두 눈에는 실핏줄이 가득했으며, 후회와 두려움이 날이 갈수록 더해졌다.

    몇 시진만 더 지나면 음양이기병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게 된다.

    심협이 살아 있지는 못할 터였다. 지금껏 오직 그 원숭이만 살아남았다. 심협처럼 평범한 육체와 신혼이 아무리 굳건해도 살아남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만에 하나의 가능성이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 * *

    음양이기병 안. 강력한 흑백의 폭풍이 휩쓸고 있었다. 흑백의 두 가지 도(道)로 이루어진 거대한 소용돌이의 기승은 끝없는 광풍 같아 보였지만, 사실 그 안에 담긴 음한과 성양(盛陽) 기운은 그 위력이 실로 막강했다.

    폭풍의 눈. 처참한 몰골의 심협이 가부좌를 하고 있었다.

    그는 몸에 거의 다 부서진 검은색 마갑을 입고 두 손은 가지런히 무릎에 올린 채 황정경 공법을 운공하는 중이었다.

    체내에서는 치우의 마기와 순양정기가 서로 교차하며 그의 피와 살을 기초로 삼고 경맥을 길 삼아 서로 맹렬히 공격하며 엎치락뒤치락했다.

    심협의 육신은 두 힘의 충돌로 이미 붕괴 직전까지 갔지만, 양쪽의 미묘한 균형에 의존하여 한 가닥 생기를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둘 중 한쪽이 조금이라도 강해지거나 약해져 균형이 깨지면 심협의 육체는 녹아내리고 신혼이 흩어지게 될 터였다.

    심협은 당연히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지 않았다. 만약 정말로 포기할 것이었다면 49일 내내 끊임없는 고통을 견뎌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는 지금 균형이 깨지더라도 죽지 않을 어떤 계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어느 순간, 그가 갑자기 두 눈을 번쩍 떴다. 눈에서는 금빛이 스쳐 지나갔다.

    ‘왔다!’

    그토록 기다리던 그 계기가 온 것이다!

    한순간, 심협의 체내에서 어떤 한계가 콰직 하고 부서졌다.

    이 순간, 그의 황정경 공법은 제4층을 돌파하여 제5층에 완전히 접어들었다.

    동시에 그의 오른쪽 반신에서 금빛이 번득였고, 각각 두 마리씩의 거대한 금색 코끼리와 용의 허상이 동시에 그의 뒤에 나타났다.

    삽시간에 순양의 기운이 피어오르면서 균형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갈!”

    심협은 성양의 기운이 자신을 덮쳐오기 직전에 수결을 변환하여 두 마리의 용상이 자신에게 달려오게 하여 피와 살에 녹아들게 했다.

    금상과 금룡 한 마리씩은 왼쪽 몸으로, 다른 한 마리씩은 오른쪽 몸으로 들어갔다.

    이들이 완전히 녹아든 순간, 두 마리의 금상이 먼저 사라졌고, 거의 동시에 두 마리의 금룡은 서로 마주보더니 충돌했다.

    콰쾅!

    천둥 같은 소리가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 퍼졌다.

    용의 머리는 충돌한 곳에서 서로 연결되더니 왼쪽과 오른쪽 몸 사이에 통로가 만들어졌다.

    기승을 부리던 흑백의 소용돌이 역시 심협 체내의 이상을 발견하고는 곧장 내려와 충격을 가하려 했다.

    심협이 가볍게 한숨을 뱉어내고는 양손을 앞에서 회전시켜 수결을 바꾸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반마반인(半魔半人)의 몸이 뒤바뀌면서 마기가 왼쪽 몸에서 금룡의 허상을 타고 오른쪽 몸으로 들어갔고, 오른쪽 순양의 힘이 금룡의 허상을 타고 왼쪽 몸으로 들어갔다.

    현묘하기 그지없는 기운이 그의 몸에서 맴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순간, 흑백의 폭풍이 내려오면서 굉음과 함께 다시 심협의 몸을 집어삼켰다.

    * * *

    부동래는 음양이기병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강렬한 떨림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이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두 눈을 부릅떴다.

    최근 며칠간 아무런 반응이 없던 음양이기병이 봉인 해제를 눈앞에 두고 이토록 기이한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은 그 안에서 심협이 발버둥 치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이제 부동래는 좌불안석이 되었고, 눈이 벌게진 채 보병 주위를 오가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서 조금이라도 빨리 심협을 구출해내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천천히 흘렀고, 매순간이 마치 백 년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그러던 중, 음양이기병을 감싸고 있던 혈홍색 봉인이 뜨거운 불을 쏟아부은 얼음처럼 녹아내리며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잠시 후, 붉은색 봉인이 완전히 사라졌고, 음양이기병은 마침내 원래의 비취색으로 돌아왔다.

    부동래는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면서 스승인 금시대붕이 알려준 대로 법결을 결인하며 주문을 읊어 음양이기병을 발동시켰다.

    보병이 천천히 허공으로 떠올랐고, 그 위로는 은밀한 부문이 떠올랐다.

    “열려라!”

    주문을 마친 부동래가 가볍게 외쳤다.

    천천히 허공으로 떠오르던 음양이기병이 우뚝 멈추더니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병뚜껑에서 빛이 하늘 높이 솟구쳤고, 흑백의 짙은 구름이 마치 승천하는 두 마리 교룡처럼 서로 교차하며 빛을 감싸더니 함께 하늘로 솟구쳤다.

    높은 하늘에서 웅장한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면서 흑백의 구름은 서로 합쳐져 거대한 안개 소용돌이가 되었다.

    부동래는 하늘의 구름 소용돌이를 바라보며 기적이 일어나 심협이 구름을 타고 내려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여전히 흑백의 구름만 소용돌이가 되어 천천히 회전할뿐 심협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부동래는 쉽게 믿지 못하고 신식을 펼쳐 흑백의 구름을 살폈다. 그러나…….

    “이럴 수가…….”

    신식으로도 감지되는 것이 없자 부동래는 허탈한 듯 중얼거렸다.

    그는 현실을 부정하며 곧장 하늘로 날아올라 흑백의 구름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무리 찾아봐도 심협의 기운은 여전히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은 거야. 내가…… 내가 그를 죽였어!”

    자신을 원망하던 부동래는 모든 힘이 빠져나간 것처럼 그대로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처박혔다.

    콰쾅!

    굉음과 함께 음양이기병도 충격에 옆으로 넘어져 데굴데굴 굴렀다.

    “심형…….”

    부동래는 하늘에서 점점 사라지는 흑백의 구름을 바라보며 49일 동안 한 번도 감지 않은 두 눈을 천천히 감았다.

    한데 그때였다.

    “부형, 그런 데서 뭐하고 계시오?”

    친숙한 목소리가 부동래의 귀를 파고들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환청을 들은 줄 알았던 부동래는 뒤이어 눈앞이 어두워지자 천천히 두 눈을 떴다. 그리고 하얀 도포를 입은 심협이 어딘가 한심하다는 듯 자신을 내려다보고 서 있는 모습에 벌떡 일어났다.

    “시…… 심형!”

    그러더니 심협의 팔을 찔러보는가 하면 얼굴을 매만지기도 하는 등 호들갑을 떨어댔다.

    “정말 심형이구려! 살아 있었어! 와하하!”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 떠들썩한 소리에 주위 요물들이 시선이 집중됐는데, 모두가 더없이 놀란 표정이었다. 특히 내막을 알고 있던 자들은 곧장 자신의 상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서둘러 뛰어갔다.

    “나야 당연히 살아있소만, 부형은 어찌 꼴이 말이 아니구려?”

    그 농담 섞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동래가 달려가 심협을 끌어안았다.

    “잘됐소! 정말 다행이오! 심형은 정말…… 정말 기인(奇人)이오! 하하하!”

    부동래가 두서없이 연신 외쳐대자 심협은 내심 어색해 하다가 그를 살짝 밀어내고는 물었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이오?”

    부동래는 멈칫하더니 그날 일어난 일과 금시대붕에게서 들은 보병의 위험성을 설명해주었다.

    심협은 모든 이야기를 듣고도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죽다 살아난 것은 알았지만, 그게 49일이나 됐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다.

    “심형, 음양이기병에서 어떻게 살아남은 게요?”

    부동래도 마침내 웃음을 되찾고는 심협의 어깨를 토닥이며 물었다.

    “그게…… 말하자면 길어서…… 그나저나 사타령은……?”

    심협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어떤 목소리가 말을 끊었다.

    “심 소우는 정말 당대의 귀재이구려! 음양이기병에서 49일을 버텼는데도 신혼에 아무런 손상도 없다니, 정말로 기적을 일으켰소. 하하하!”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돌아보니 커다란 몸에 검은 깃털 외투를 걸친 남자가 양쪽으로 흩어지는 요병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왔다. 환하게 웃고 있는 그는 바로 금시대붕이었다.

    “선배님을 뵙습니다.”

    심협이 가볍게 포권했다.

    “이번에 그대가 아니었으면 내 제자의 성격상 억울한 누명을 벗지 못했을 것이오. 한데 정말로 음양이기병에서 49일 동안을 죽지않고 버티다니, 정말 예상 밖이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우리 사타령의 배신자를 찾는 데 도움을 주었으니 정말 큰 공을 세웠소. 본래 후하게 대접해야 하나 지금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심협은 그의 말에 축객(逐客)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해합니다. 지금 사타령은 한창 중요한 시기이니 방해가 될 수는 없지요. 내일 바로 떠나겠습니다.”

    심협은 웃으며 말하고는 부동래를 돌아보았다.

    “부형, 장안성의 공직이 아직 있을 텐데 함께 돌아가겠소?”

    부동래는 그 말에 난감한 듯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동래, 이전에는 마음대로 하지 않았더냐?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

    스승의 말에 부동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심협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심형, 지금까지 계속 음양이기병을 지키느라 종문의 일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큰 소란만 피웠소. 그래서…… 당분간은 종문에 머물 생각이오.”

    심협은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또 두 사람이 다가왔는데, 바로 청모사왕과 육아상왕이었다.

    청모사왕은 쓰러져 있는 음양이기병을 쥐더니 순간 표정이 굳어졌다.

    “보병이……?”

    육아상왕이 청모사왕에게서 음양이기병을 받아 살피더니 이내 표정이 급변해 심협을 노려보았다.

    “네놈이 간이 부었구나! 바른 대로 실토하는 게 좋을 게다. 어째서 우리 종문의 보병을 망가뜨린 것이냐?”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안색이 변했다. 심지어 심협도 놀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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