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33화 (733/1,214)
  • 733화. 음양의 윤전(輪轉)

    부동래는 그들을 바라보며 슬픈 와중에도 문득 다시 한번 자신이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고개를 들어 마지막 희망을 품고 자신의 스승을 바라봤다.

    “음양이기병을 부순다 해도 그는 살아남지 못한다. 그랬다가는 보병과 함께 사라질 뿐이다.”

    금시대붕은 그렇게 답한 뒤, 잠시 후에 다시 덧붙였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스승님, 그를 구할 방법이 있는 겁니까?”

    부동래가 뛸 듯이 기뻐하며 황급히 물었다.

    “웅염은 생명을 바쳐 피와 살로 봉인을 맺었다. 지금으로써는 혼자서 49일을 버티길 바라는 수밖에…….”

    금시대붕의 말에 부동래는 순간 절망에 빠졌다.

    “음양이기병에서 49일 지나도 죽지 않은 자가 있었습니까?”

    “한 명 있었지.”

    “그게 누굽니까?”

    “제천대성 손오공!”

    내심 희망을 가졌던 부동래는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다시 절망했다.

    제천대성 손오공은 희대의 요왕이 아닌가! 부동래가 아무리 심협을 높이 평가한다 해도 제천대성과 같은 위치에 둘 수는 없었다.

    “스승님, 손오공은 어떻게 버텼습니까?”

    부동래는 그래도 체념하지 않고 물었다.

    “그건 나도 모르겠구나. 아마도 금강불괴인 육신과 관련이 있겠지.”

    부동래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했다.

    “스승님, 저의 억울함은 모두 풀렸으니 여기서 49일 동안 심 도우를 지켜도 되겠습니까?”

    금시대붕은 만류하려다가 제자의 고집이 어느 정도인지를 떠올리고는 한숨을 내쉬더니 청모사왕, 육아상왕과 의논했다.

    “네 누명은 모두 벗겨졌으니 산혼정을 뽑아주마. 다만, 완전히 회복되려면 며칠이 더 걸릴 게다. 또한, 혼백이 입은 손상은…… 이 병으로 일부나마 보상해주마. 사타성으로 돌아오면 다른 보상이 있을 게다.”

    금시대붕이 부동래의 어깨를 두들기며 말했다.

    부동래는 말없이 단약을 복용하고는 가부좌를 튼 채, 스승이 비법으로 산혼정을 하나씩 뽑아내는 것을 지켜봤다. 조금의 신음도 내지 않고, 눈살조차 찌푸리지 않은 채.

    사실, 그는 심협을 여기까지 끌어들인 자신을 크게 탓하고 있었다. 자신을 돕다가 이런 지경에 빠지게 된 게 아닌가. 그럴 수만 있다면 자신이 음양이기병으로 들어가고 심협을 꺼내고 싶었다.

    한바탕 소란으로 분종 의식이 중단되자 모여들었던 요물들은 흥이 식은 탓인지 무리를 지어 떠나갔다.

    제단 주위에 삼삼오오 몰려 있던 사람들도 조금씩 줄어들었고, 남은 것은 구경거리가 필요한 자들 아니면 하릴없이 부동래를 더 욕하고 싶은 자들뿐이었다.

    부동래는 그들에게 일말의 신경도 쓰지 않고 그저 가부좌를 한 채 천천히 몸 상태를 회복했다.

    * * *

    심협은 허무의 공간에 빠진 듯한 기분이었다. 이 공간은 끝이 없었고, 높고 높은 벽이 옆에 있는 듯했다. 포박되고 감금당하여 자유를 뺏긴 느낌.

    심협은 주위를 자세히 살폈다. 사방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온통 서늘하고 그늘진 곳이었다.

    “여기가 음양이기병 안인가? 딱히 별것 없어 보이는데……?”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발아래에서 빛이 솟구치더니 거대한 구궁팔괘진도(九宮八卦陣圖)가 천천히 떠올랐고. 창망하고 아득한 빛을 뿜어냈다.

    뒤이어 허공에서 마치 천둥과도 같은 우르릉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번개가 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으나 마치 체내에서 전광이 발생한 것처럼 강력한 마비의 힘이 심협을 뒤덮었다.

    “으윽!”

    불에 타는 듯한 뜨거움과 강렬한 고통이 밀려와 비명이 절로 나왔다.

    뒤이어 내부에서부터 불꽃이 타올라 순식간에 그의 몸을 감싸더니 옷을 몽땅 태워버렸고, 눈썹과 귀밑머리도 누렇게 그을렸다.

    심협이 홍련업화로 몸을 감싸 불꽃에 대항하려는 순간, 갑자기 푸른 손풍이 공중에 나타났다. 동시에 뼈에 사무치는 한기가 순식간에 그의 온몸을 뒤덮었다. 몸만이 아니라 체내의 법력도 얼어붙은 것 같았다.

    하지만 외부의 변화는 멈추지 않아 주위 공간이 갑자기 실제처럼 굳어지더니 태산 같은 압박감이 내려왔다. 마치 어깨에 수많은 태산을 짊어진 것만 같았다.

    심협은 분노로 이를 악물고 산을 던질 기세로 체내의 황정경 공법을 운공했다. 강력한 힘이 몸 곳곳에서 폭발하여 산의 압박감을 견뎌냈고, 꺾여 가던 무릎도 조금씩 펴졌다.

    하지만 다음 순간, 주위에서 다시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몸을 압박하는 산이 두 개가 더 늘어나면서 그를 완전히 굴복시키겠다는 듯 말도 안 되는 힘이 짓눌러왔다.

    하지만 심협은 몸이 떨리고 땀이 비처럼 쏟아져도 굴복하지 않았다.

    산의 힘이 다시 커지면서 두 다리가 떨려오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두 눈이 몽롱해지는 사이, 검고 하얀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자 마치 쇠사슬이 팔과 몸을 휘감은 듯했다. 주위에는 번개도, 불꽃도, 얼음도, 산도 없었다.

    모든 고통의 근원은 흑백의 음양이기였다.

    이 음양이기는 천지의 음양이자 만물의 근본이 되며 사상(四象)으로 나뉘었고 오행을 낳았으며 팔괘로 변한다. 세상의 모든 변화의 끝이 전부 여기에 있었다.

    “날 굴복시키려면 1만 년은 걸릴 것이다!”

    심협은 이를 악물고 외치며 황정경 공법을 미친 듯이 운공했다. 그는 가만히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지 않고 오히려 하늘을 부술 기세로 몸을 곧게 세웠다.

    그 순간, 그의 몸을 쉴 새 없이 괴롭히던 번개와 불꽃 등이 전부 사라졌다.

    그의 발아래에는 쉬지 않고 돌아가는 흑백의 소용돌이만 남아 있었다.

    심협은 흑백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서서 한 발은 검은색 안개에, 다른 발은 하얀 안개에 버티고 섰다.

    두 종류의 안개가 돌기 시작하자 점점 반흑반백 음양의 두 마리 물고기 형태로 바뀌어 갔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채기도 전에 음(陰)의 물고기에서 검은 안개가 솟구치더니 그를 집어삼켰다.

    주위가 어두워지더니 몸이 얼음물에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차가운 느낌은 그리 강렬하지는 않았지만, 무엇이든 삼켜버리는 듯 그를 빨아들여 헤어나지 못하게 했다.

    심협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는 서둘러 순양비검을 발동하고 홍련업화를 일으켜 한기에 대항했다.

    하지만 불꽃이 몸을 감싸도 전혀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체온이 조금씩 떨어지면서 하반신은 무감각해졌고, 그의 몸은 점점 통제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심협은 또다시 퍼뜩 깨어났다.

    지금 이런 상태가 된 것은 몸의 문제가 아니라 몸에 침투한 흑백의 기운이 점점 신혼을 갉아먹은 탓이었다. 신혼의 힘이 약해지면서 육신의 통제가 불완전해졌기에 점점 통제를 잃어간 것이다.

    그는 서둘러 신념을 바로잡고 식해를 들여다보고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식해의 절반을 벌써 마기가 점령한 상태였다!

    “대체 언제……?”

    지금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기겁했다.

    한편, 그의 신혼 소인은 마치 겹겹이 싸인 고치처럼 흑백의 안개에 둘러싸여 있었고, 거기서 빠져나오는 신혼의 기운도 점점 약해져갔다.

    이때가 되어서야 심협은 음양이기의 대단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는 심신을 굳게 하고는 곧장 식해에서 빠져나와 다시 몸 상태를 살폈다. 몸 아래에서 솟아오른 검은 기운이 체내의 마기를 끌어내 완전히 통제 불능의 상태로 만들어둔 후였다.

    그의 몸 절반은 완전히 마기에 잠겨 왼쪽 몸은 피부가 굳어지고 검은 뼈처럼 단단한 비늘이 목덜미까지 번져 있었다.

    왼쪽 이마에는 검은 뿔이 솟아나 있었고, 1촌 정도에 불과하긴 하나 나선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미간에는 혈홍색 세로무늬가 생겨났는데, 마치 마안(魔眼) 같았다.

    심협은 기겁했다. 음양이기의 침식에 신혼이 뒤덮이고 무의식중에 마기가 이 정도까지 폭주했다니,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그 즈음, 몸 아래에서 음의 기운이 끊임없이 솟아올라 체내의 마기를 계속해서 자극하자 몸의 검은색 비늘도 점점 번져 몸 절반을 완전히 뒤덮었다.

    심협은 곧바로 단전 안의 참마검을 발동하여 순양의 힘으로 마기에 대항하려 했다.

    그러나 참마검은 연결이 끊어졌는지 미동도 없었다.

    순양의 기운을 발동할 수 없게 되자 심협은 더욱 위험한 지경에 빠졌다. 그의 몸과 의식이 점점 마기에 휩쓸리고 파괴되어 갔다.

    완전히 마화되면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마지막 의식마저 점점 심연으로 빠져들어 갔지만, 그의 마음속 불꽃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입에서는 분노의 포효가 터져 나왔다.

    포효와 함께 그를 가로막고 있던 보이지 않는 방해가 한순간에 깨져나갔다.

    단전 안, 연결이 끊겼던 참마검이 마침내 다시 깨어나면서 떨리기 시작하더니 따뜻한 기류가 단전에서 서서히 피어올랐다.

    순양의 힘이 피어오르는 순간, 음산한 기운이 대폭 사라졌다. 파죽지세로 강해지던 마기도 마침내 공세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허나 심협이 기뻐하기도 전에 다시 이변이 일어났다.

    줄곧 아무런 움직임도 없던 양(陽)의 물고기가 갑자기 살아난 듯했다.

    삽시간에 주위에서 순양의 힘이 폭발하면서 뜨거운 힘이 아래에서 솟아올라 온몸을 뒤덮어갔다.

    처음에는 이 힘이 순양의 힘을 보충해준 덕에 몸이 따뜻해졌고, 마기에 침식된 부분도 서서히 물리쳐갔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오른쪽 몸마저 침식한 마기를 전부 왼쪽으로 몰아냈을 때, 본래 따뜻하게 느껴지던 열기가 이글거리는 태양처럼 심협에게 내리꽂혔다.

    그 뜨거운 열기는 몸 밖에서가 아닌 몸 안에서부터 나오는 것으로, 마치 용암이 모여들어 만들어진 강처럼 발아래에서부터 시작하여 몸 안을 지나 그의 머리끝까지 관통했다. 그의 몸 전체가 끊임없이 용암의 세척과 세례를 받고 있었다.

    본원이 순양의 힘에 씻겨나가자 심협의 육체는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왼쪽 몸은 칠흑처럼 검은 비늘로 덮여 있었고 오른쪽은 마치 말라버린 무처럼 주름이 가득한 데다 수분을 잃은 피부에는 미세한 균열이 생겨났다. 바람이라도 한번 불었다가는 오른쪽 몸이 먼지가 되어 흩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의 왼쪽 몸은 마치 방관자처럼 냉담하게 오른쪽 몸이 붕괴하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심협의 식해도 하늘에 떠오른 태양의 뜨거운 열기를 감당하고 있었다.

    원래 세차게 출렁이던 식해가 바짝 말라갔다.

    그의 신혼 소인은 가부좌한 채 균열 가득한 식해 대진에 앉아 있었는데, 온몸을 휘감았던 마기는 작열하는 열기에 견디지 못하고 많이 사라진 상태였다.

    신혼 소인의 얼굴에도 균열 같은 무늬가 가득하여 참담한 모습이었다.

    심협은 희미하게 황정경 공법의 한 부분이 떠올랐다.

    “음양이 서로 충돌하면 대도가 불통(不通)하지만, 음양이 서로 합쳐지면 모든 것이 융합되리라.”

    이 구절은 칠십이변 변화술에도 적용되어 변화술의 근본이 음양의 상통과 끊임없는 순환에 있다는 의미였다.

    현재 그의 몸 아래에서는 음양의 기운이 공존했지만, 서로가 대치하는 상태였다. 자유롭게 순환하거나 음양이 서로 모여들지는 않았다.

    심협도 그 정도까지 바라지는 않았다. 그저 본원의 음기가 깃든 음의 물고기가 지금 무더위처럼 내리쬐는 순양의 힘을 물리쳐줬으면 싶었다.

    심협은 곧장 전력으로 몸 안의 마기를 운공하여 음기를 끌어들였다.

    하지만 현재의 마기는 그의 몸 절반을 차지하여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더는 객식구의 위치가 아니었기에 아무리 애를 써도 꿈쩍하지 않았다.

    심협은 입이 마르는 느낌이 들고 눈앞이 흐려졌다. 신념도 거의 고갈된 것 같았다. 더는 여력이 없었다.

    의식이 흐려지면서 몸이 붕괴하기 시작했고, 무심코 팔이 툭 떨어졌다.

    그 순간, 손에 차고 있던 임랑환이 번득이더니 검은색 마갑이 허공에 나타나 그의 몸을 뒤덮었다.

    심협은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한데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몸을 덧씌운 마갑이 갑자기 빛을 발하더니 심협을 보호하기 위해 그의 몸 안의 마기를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동안 마기는 심협의 몸에서 뽑혀 나가 마갑으로 흡수되었다.

    이때, 본래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던 마기가 마침내 버티지 못하고 마갑에 대항하면서 심협의 몸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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