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31화 (731/1,214)
  • 731화. 분종

    잠시 후, 가슴의 자흑색 기운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나 오장육부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법결을 거두고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심형, 이제 괜찮으니 출발합시다.”

    심협은 고통으로 눈가가 떨려오는 부동래를 보고는 한숨을 쉬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이라도 스승의 목숨이 달려 있다면 같은 선택을 했을 테니까.

    “알겠소.”

    부동래가 둔술을 펼치려는데 심협이 그의 손을 붙들었다.

    “법력을 아끼시오.”

    그 말에 부동래는 내심 당황했지만, 심협에게 숨겨진 비행 법보가 있으리라 생각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는 심협의 말대로 뒤에서 상대의 양쪽 어깨를 잡았다. 그러자 심협은 곧장 심념을 움직여 진시천리 비술을 시전했다.

    두 팔을 날개처럼 펼치니 뜨거운 느낌이 퍼져 가면서 양팔에 금빛과 푸른 빛이 퍼지기 시작했다.

    “출발하오.”

    그 한마디와 함께 심협은 양팔을 휘둘렀고, 두 사람은 순식간에 땅에서 날아올랐다. 허공에 공기의 흐름만 남았고, 두 사람의 모습은 벌써 보이지 않았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수백 리 너머 허공에 금빛과 푸른 빛이 교차하더니 하늘에서 수직으로 떨어졌다.

    심협과 부동래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땅으로 내려온 뒤, 부동래는 넋이 나간 얼굴로 심협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심협이 당황할 차례였다.

    “왜 그러시오?”

    “심형, 혹시…… 우리 스승님이 몰래 거둔 인간족 제자요?”

    부동래의 물음에 장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자 심협은 기겁했다.

    “그럴 리가 있겠소?”

    “쯧, 하긴…… 불가능하지. 우리 스승님은 인간족에게……호감이 없으니.”

    “그거 다행이오.”

    “한데 어찌하여 스승님이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비술인 진시천리를 심형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오?”

    부동래가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시천리가 무엇이오? 내 만리고상(萬里翶翔)과 비슷한 술법인 모양이지?”

    심협은 당연히 인정하지 않았다. 일부러 숨기려 든 것은 아니다. 내가 수백 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당신 스승의 시체에서 얻은 것이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됐소. 어찌 됐든 심형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일찍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오.”

    부동래도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

    “부형 스승은 아마도 사왕동으로 간 모양인데, 어찌 할 생각이오?”

    “현재 사타령 곳곳이 경비가 삼엄하니 몰래 들어가기란 어렵소. 스승님의 안전을 생각하면 위험하더라도 뚫고 가는 수밖에 없겠소.”

    부동래가 굳은 얼굴로 말하자 심협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엄지와 중지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부형, 평소에 그리 침착하고 총명하더니 오늘은 왜 이러는 게요?”

    “심형이 몰라서 그렇소. 스승님은 내게 스승님이자 아버지요. 나를 키워주고 가르쳐주신 은혜가 있거늘 내 어찌 그분의 위기를 외면할 수 있겠소?”

    부동래가 정중하게 말했다.

    “내 말은…… 충동적으로 움직여봐야 누구에게도 득 될 게 없다는 거요. 아직 시간도 남았으니 더 좋은 방법이 있소.”

    “그게 무엇이오?”

    “사타령의 방비가 가장 풀어지는 때가 언제요?”

    심협의 물음에 부동래가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사왕동은 사타령과는 달리 열두 시진 내내 경비가 삼엄한 곳이오.”

    “그건 평소의 상황이고, 내일은 사타령의 분종 의식이 있는 날 아니오? 그때가 파고들기 가장 좋은 때일 거요.”

    “아, 분명 그렇소. 그때가 되면 모두의 시선이 의식으로 향할 테니까. 다만, 그때가 돼서는 스승님께 진상을 알릴 기회가 있겠소?”

    “진상뿐만 아니라 증거도 같이 알리게 될 것이오.”

    심협이 웃으며 말했다.

    * * *

    다음 날 새벽, 사타령 외부.

    오래전에 세워진 3척 3촌 크기의 제단 주위로 30여 명의 심복 요장과 70여 명의 적전제자, 순찰대 두령들이 각자 심복 요병 오백 명을 거느리고 정렬해 있었다.

    서로 다른 마왕의 휘하들이 세 갈래로 나뉘어 집결했는데, 서로 간격을 둔 상태라 경계가 뚜렷하게 갈려 있었다.

    육아상왕 휘하의 부대는 왼쪽, 청모사왕의 휘하 부대는 가운데 그리고 금시붕왕의 휘하는 오른쪽이었다.

    오른쪽 대열, 오백 명의 요병 중간에 섞인 두 사람은 주위에서 조용히 소곤거리는 다른 병사들과 달리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침묵을 지켰다. 심지어 옆 사람이 말을 걸어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사타령의 요병은 수십만이었고, 여기까지 와서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은 각 두령의 심복임이 틀림없었다. 다만 서로가 모두를 알지는 못했기에 그저 이 두 사람을 무뚝뚝한 자들이라 여겼을 뿐, 누구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더욱이 이런 때에 감히 누가 사타령에 숨어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이들은 심협과 부동래였다.

    “심형, 정말 이렇게 하면 되겠소?”

    부동래가 전음으로 물었다.

    “도둑을 잡으려면 미끼를 던져야 하는 법. 증거 없이 말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소. 그러니 흥분하지 말고 기회를 봐서 움직입시다.”

    부동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북소리가 울려 퍼졌고, 사왕동 안에서 세 개의 커다란 그림자가 천천히 제단을 걸어 올라갔다.

    선두에는 크고 곧은 몸에 푸른 가죽 갑옷을 입고 털이 달린 외투를 걸친 자가 서 있었다. 강인하고 용맹해 보이는 외모의 그자는 길게 풀어놓은 검푸른 머리카락을 자연스럽게 뒤로 묶은 채였다. 두 눈은 마치 금빛 별처럼 반짝였다.

    반보 뒤에는 은색 갑옷을 입은 마족이 있었다. 그는 여섯 개의 이빨이 위로 솟은 마상(魔象)의 모습이었다.

    반대쪽에는 검은색 날개 외투를 걸친 매부리코의 잘생긴 남자가 담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10여 명의 요장이 그 뒤를 따랐는데, 표범 머리에 사람 몸을 한 남자와 외눈의 푸른 늑대, 뱀 문신이 있는 요염한 몸매의 여자 요물 그리고 웅염 등이었다.

    모두가 올라오자 바로 아래에 있는 요물들이 우렁차게 외쳤다.

    “대왕님을 뵙습니다!”

    “대왕님 만세!”

    한동안 이어지는 찬사에 심협은 어이가 없었다.

    한참 뒤, 청모사왕이 손을 들자 그제야 온갖 찬사들이 멈췄다.

    “오늘은 길한 날이자 우리 사타령이 분종하는 날이기에 특별히 제단을 세워 천지에 고하고자 한다. 비록 우리는 나뉘고 떨어지나 형제의 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제 사타령과 사타성, 두 종문으로 나뉘지만, 여전히 우리는 한 줄기이자 한 종파이다!”

    청모사왕은 아무런 감정 변화도 드러내지 않고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모든 요병과 요장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큰형님, 둘째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후로도 사타성은 사타령의 뜻을 따를 것이며, 두 형님이 필요하다면 사타성은 언제든 달려와 도울 것입니다.”

    금시대붕의 말에 청모사왕은 고개를 끄덕였고, 육아상왕은 차갑게 비웃었다.

    “둘째야, 휘하들 앞인데 셋째의 체면을 세워줘야 하지 않겠느냐? 내가 봐도 분종이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너도 분종을 원한다면 큰형은 말리지 않겠다. 이 또한 우리 사타령 마족들의 세력 확장에 크게 이바지하는 게 아니겠느냐.”

    청모사왕이 작은 목소리로 달랬다.

    “알겠소. 허나 나는 절대로 사타령을 떠나지 않을 것이오. 이곳은 내 집이자 내 기반이오. 절대로 쉽게 깃발을 바꾸지도, 다른 문파를 세우지도 않을 거요.”

    육아상왕의 목소리에는 비웃음과 조롱이 가득했다.

    “둘째 형님…….”

    “다시는 날 형님이라 부르지 마라!”

    “그만들 해라! 너희 때문에 시끄러워질까 봐 다른 종문을 부르지 않았다. 왜? 수하들이 보는 앞에서 한바탕 싸울 셈이냐?”

    청모사왕이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사타령의 분종 의식은 간단했다. 먼저 삼형제가 함께 천지를 향해 향을 피운 뒤 종문의 전승 화로에서 불을 나누어 금시대붕이 사타성으로 가지고 가서 다시 피우면 된다.

    모든 게 순조로워 보이자 심협과 부동래는 오히려 더욱 긴장됐다. 두 사람의 눈은 제단 위를 향하고 있었는데, 특히 웅염에게 집중되었다.

    현재 웅염은 긴장해서 표정도 부자연스러웠고, 시선은 금시대붕의 등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하늘에서 받은 불꽃을 나누니, 우리의 대는 끊어지지 않으며, 비록 지금은 나누어져도 마음은 하나로다.”

    말은 마친 청모사왕이 앞으로 다가가 손을 들어 칼 같은 손톱을 사자, 코끼리 머리, 대붕이 새겨진 금색 화로를 향해 가볍게 그었다. 그러자 불꽃이 화로에서 갈라져 나왔다.

    육아상왕이 먼저 청모사왕 왼쪽으로 다가갔고, 금시대붕도 오른쪽으로 다가가 은색 잔을 꺼내들었다. 보아하니 불꽃을 담으려는 듯했다.

    금시대붕이 앞으로 걸어 나갈 때, 뒤에 있던 요장들 중 웅염이 앞으로 나섰다.

    “이런, 저자가 움직인다!”

    “서두르지 마시오. 부형의 스승은 경지가 높으니 웅염 혼자서는 해할 수 없을 게요. 좀 더 기다려봅시다.”

    심협은 부동래가 움직이려 들자 황급히 전음으로 만류했다.

    부동래가 멈춘 사이, 법보를 꺼내려는 건지 웅염의 반지가 반짝였다.

    “안 돼! 기다릴 수 없소!”

    부동래는 심협의 손을 뿌리치고는 순식간에 회오리가 되어 제단으로 날아갔다.

    다른 사람들이 반응하기도 전에 그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웅염의 팔을 잡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던 제단 아래의 요괴들이 웅성거렸다.

    청모사왕은 부동래가 웅염의 팔을 붙잡는 순간, 두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타올라 강력한 기운을 분출하며 호통을 쳤다.

    “부동래, 네 이놈! 감히 다시 돌아와?”

    사왕의 포효에 산과 땅이 흔들렸다.

    주위에서 지켜보던 요병과 요장 중 경지가 낮은 자들은 버티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동래…….”

    금시대붕은 불꽃을 받는 것도 잊은 채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애제자를 돌아봤다.

    육아상왕은 더욱 노발대발해 웅염의 사활조차 무시한 채 손을 들어 부동래를 내리치려 했다.

    “제자, 억울함을 풀기를 원합니다!”

    부동래가 큰소리로 외쳤지만, 육아상왕은 무시하고 계속해서 손을 뻗었다.

    “멈춰!”

    금시대붕이 튀어나갔지만, 육아상왕은 멈출 뜻이 전혀 없었다.

    그의 손이 부동래의 머리를 가격하려던 순간, 제단 주위에서 달빛이 반짝이더니 누군가가 난입하여 부동래의 어깨를 뒤로 잡아당겼다.

    육아상왕의 강력한 공격이 빗나가면서 웅염의 어깨를 내리쳤다.

    “끄아악!”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웅염은 어깨가 내려앉았고, 팔이 축 늘어졌다.

    “누가 감히 사타령의 행사를 방해하는 것이냐?”

    청모사왕이 분노에 가득한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

    그는 눈앞에 나타난 자가 부동래와 가까운 인간족 수사임을 알아보고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후배 심협이라 합니다.”

    심협은 사문도, 대당 관부도 언급하지 않고 대범하게 공수하며 인사를 올렸다.

    “감히 우리 마족의 일에 끼어들다니, 네놈이 더는 살기 싫은 모양이구나?”

    청모사왕이 눈살을 찌푸렸다.

    “당연히 후배도 마족의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습니다만, 부동래가 모함을 받아 죽게 생겼는데 어찌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심협은 비굴하지도, 도도하지도 않은 목소리로 침착하게 답했다.

    “그놈이 배신자임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거늘, 어찌 모함…… 으아악!”

    웅염이 끼어들었지만, 말을 마치기도 전에 비명이 튀어나왔다. 부동래가 그의 손을 뒤로 비틀며 다른 손으로는 목을 움켜쥔 것이다. 그의 엄지손가락에 튀어나온 손톱이 웅염의 중요한 혈을 상당히 깊게 파고들었다. 더욱이 뾰족한 손톱 아래로는 법력으로 만든 침이 폐를 지나 심장을 찌르고 있었다.

    “동래, 경거망동하지 마라!”

    금시대붕이 근엄한 목소리로 제자를 만류했다. 그의 엄숙한 표정에는 분종 의식이 끊긴 것에 대한 불만도 엿보였다.

    “스승님, 제자가 이렇게 당돌한 행동을 한 것은 정말로 중요한 일을…….”

    “무엇이 됐건 의식이 끝난 뒤에 하라!”

    금시대붕이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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