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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25화 (725/1,214)
  • 725화. 이성을 잃다

    구두충의 머리 하나가 만성공주 등을 구해내는 사이, 가뜩이나 약세였던 공격이 빗나가면서 금색 법상의 법검(法劍)이 그 틈에 번개같이 그 머리를 베었다.

    머리가 단칼에 잘리자 피가 비처럼 쏟아졌다.

    심협은 이를 보고는 씩 웃더니 무명공법을 운공하여 결인했다.

    수십 개의 물기둥이 땅에서 튀어나와 하늘까지 솟구친 뒤 폭발하면서 순식간에 반경 수백 장을 뒤덮었다.

    만성공주 등의 요물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물기둥에 휩쓸렸다.

    “이런! 빨리 벗어나야 한다!”

    만성공주가 크게 외치며 전력으로 벗어나려 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심협은 거대한 물기둥을 향해 진창해 신통을 시전했다.

    극한의 기운이 폭발하면서 수백 장 높이의 물보라가 순식간에 얼어붙자 만성공주 등은 또다시 얼음에 갇혀버렸다. 이어서 심협이 왼손을 결인하자 순양검이 나타나 수백 개의 붉은 빛줄기로 변하여 빗발처럼 쏟아졌다.

    “네 이놈!”

    구두충이 포효하더니 위험을 무릅쓰고 두 개의 머리가 날아와 핏빛 불꽃과 번개로 심협과 붉은색 검사를 공격했다.

    심협은 두 다리에서 은연중에 검은 빛이 섞인 달빛을 뿜어내며 그 자리에서 휙 사라졌다가 순식간에 100장 밖에 나타나 핏빛 불꽃의 공격을 피해냈다. 순양검의 빛줄기도 만성공주 등의 공격을 포기했다.

    그사이 허공에서는 두 개의 금빛 검이 번쩍였고, 또다시 구두충의 머리 중 두 개가 떨어지면서 피가 쏟아졌다.

    연속으로 머리 세 개가 베인 구두충은 원기가 크게 상하여 뒷걸음질 쳤고, 뿜어져 나오던 핏빛도 어두워졌다. 허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흉악한 빛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심협은 다시 곤토인뇌부를 꺼내 만성공주 등을 공격하려고 했다.

    “심 도우, 잠시만!”

    소백룡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울려 퍼지자 심협은 그를 바라보고는 이내 곤토인뇌부를 거두었다.

    구두충은 남은 여섯 개의 머리로 분노의 포효를 내지르며 거대한 날개를 활짝 펼쳤고, 그 거대한 몸은 앞뒤 잴 것 없이 소백룡을 향해 돌진했다.

    소백룡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법결을 맺었다. 그러자 용창이 날아가 법상이 들고 있던 허상의 법검과 하나가 되었다.

    허상의 법검이 순식간에 열 배 이상 커지면서 100장 길이의 금색 대검으로 변했다.

    “참(斬)!”

    소백룡은 짧게 외치며 구두충의 머리를 향해 금색 대검을 휘둘렀다.

    주위의 허공에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한 파동이 이는 동시에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강력한 힘이 마치 운석처럼 구두충의 몸을 짓눌러왔다. 구두충의 거대한 몸은 대검의 위세에 압도되어 꿈쩍도 할 수 없었다.

    그 순간, 금색 대검이 전광석화처럼 날아와 구두충을 베었다.

    “크아아아!”

    구두충의 남은 머리 중 다섯 개가 떨어지면서 피가 샘물처럼 솟구쳤다.

    구두충의 거대한 몸도 운석처럼 추락하여 땅에 곤두박질쳤다. 거센 폭풍과 함께 먼지가 어지러이 휘날렸다.

    소백룡도 천천히 허공에서 내려왔는데, 금빛으로 빛나는 몸은 마치 부처 같았다.

    그가 얼음에 갇힌 만성공주 일행을 향해 손가락을 튕기자 금빛의 파문이 요물들을 휩쓸었다.

    주위의 얼음이 모두 부서지면서 얼어붙었던 요력을 다시 운공할 수 있게 되었지만, 구두충을 쓰러트린 소백룡 앞이었기에 요물들은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고, 겁에 질린 채 서 있었다. 오직 만성공주만이 망설임 없이 자욱한 먼지 속으로 들어갔다.

    소백룡은 한숨을 내쉬었고, 몸에서 빛나던 금빛이 사라지면서 다시 사람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심협을 돌아보며 말했다.

    “심 도우, 너무 심했소.”

    “운몽택의 요물들은 패악을 저지르며 선(善)을 업신여기니 모두 죽어 마땅합니다. 한데 어째서 저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겁니까?”

    심협은 소백룡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요마를 물리치는 것도 중요하나 마음속에는 항상 자비로운 마음을 가져야 하오. 한순간의 판단이 입불(入佛)할 수도 있고 입마(入魔)할 수도 있으니, 도우는 자중하시오.”

    그러나 심협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싸늘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저를 나무라기 전에 선배님 처신이나 잘하십시오.”

    멀리서 이를 본 무만아와 조비극은 심협의 이런 모습에 내심 당황했다.

    ‘심 오라버니는 사람됨이 점잖고 올곧아 줄곧 소백룡 선배를 존중했는데, 갑자기 왜 저러시는 거지?’

    소백룡 역시 의아한 표정으로 심협을 잠시 살펴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였군. 도우 체내에는 마기가 상당히 깊게 침투하여 어느새 그대의 심지에 영향을 준 게요. 깨어나시오!”

    소백룡이 갑자기 불문의 복마후성(伏魔吼聲)을 내지르자 심협은 오싹함을 느꼈고, 귀에서는 새벽을 깨우는 듯한 종소리가 울렸다. 그러더니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내가 방금…… 뭘 한 거지?”

    좀 전의 일을 돌이켜본 심협은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주인님, 괜찮으십니까?”

    조비극과 무만아가 다가오며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심협은 고개를 젓고는 소백룡에게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오열 선배님!”

    “도우의 몸에 왜 마기가 침투했는지 모르겠으나, 현재 너무 깊이 침투하여 나로서는 제거할 수 없었소. 다행히 도우에게 순양 보물들이 있으니 잠시 동안은 막아줄 수 있을 게요. 허나 마기란 원래 교활한 법이니, 몸뿐만 아니라 심지에 영향이 미치지 않게 주의하는 게 좋겠소.”

    “네, 선배님. 후배,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깊게 공수하는 심협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소백룡은 소용돌이치는 흙먼지를 향해 소매를 휘둘렀다.

    광풍이 몰아치면서 먼지를 날려버리자 만성공주와 구두충의 모습이 드러났다. 구두충은 사람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는데, 머리가 잔뜩 헝클어졌고 안색이 창백했다. 눈의 핏빛도 모두 사라져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만성공주는 구두충을 부축하여 일으키고는 각종 영약을 입에 넣어주려 했다.

    “서방에서 그렇게 실력을 키웠을 줄은 몰랐구나. 이번 싸움은 내가 졌으니 네 맘대로 해라.”

    구두충은 만성공주를 밀치고는 소백룡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내며 차갑게 말했다.

    그때, 만성공주가 소매를 휘두르자 분홍색 안개가 구두충의 얼굴을 덮었다. 그러자 구두충은 눈이 뒤집히면서 의식을 잃었다.

    “삼태자 전하, 부디 은혜를 베풀어 부군의 목숨을 살려주세요! 중상을 입어 경지가 반 토막 났으니 앞으로 악행을 저지르지 못할 겁니다. 대신 제 목숨을 드리겠습니다!”

    만성공주가 두 팔을 벌려서 구두충 앞을 막으며 애원했다.

    “만성공주, 구두충은 잔인하고 매정하여 당신의 목숨까지 이용해 오열 선배를 공격했어요. 그런 악당을 왜 그렇게까지 감싸는 거죠?”

    무만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따지듯 물었다.

    “그가 어떤 모습이 되든 제 부군입니다. 부군이 어려움에 닥쳤는데 어떤 아내가 무시하겠습니까? 같은 여인으로서 제 마음을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무만아는 그 말에 입을 닫았고, 심협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소백룡을 바라봤다.

    ‘구두충은 온갖 악행을 저질러 왔기에 절대 살펴둬서는 안 된다. 허나 소백룡 선배의 인자함이라면 만성공주의 애원에 마음이 흔들릴 게 분명하다.’

    만성공주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삼태자 전하, 구두충이 이렇게 변한 건 전부 마기의 영향입니다. 부디 과거 우리의 인연을 봐서라도 목숨만 살려주세요.”

    “정말로 목숨까지 걸면서 그를 보호할 셈이오?”

    소백룡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네! 삼태자 전하께서 원하신다면 제 목숨을 거두셔도 좋습니다. 대신 부군만은 살려주세요!”

    소백룡은 한숨을 내쉬더니 눈빛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아무래도 마음이 누그러지려는 것 같았다.

    “오열 선배님, 구두충은 온갖 악행을 저질러 운몽택에서 무고한 생명을 수도 없이 죽였고, 이전에는 서해 용궁까지 쳐들어가서 보물을 빼앗고 사람을 다치게 했습니다. 절대로 살려둬서는 안 됩니다. 안 그러면 훗날 삼계의 생명들이 이 요물의 손에 또다시 죽게 될 겁니다!”

    심협이 서둘러 일깨우자 소백룡은 순식간에 냉정함을 되찾았다.

    “심 도우의 말이 옳소. 구두충의 악행을 생각하면 내 부왕의 원수를 생각지 않는다 해도 절대로 그를 살려둘 수 없소! 미안하오!”

    소백룡이 고개를 젓더니 금빛으로 빛나는 용창을 찔렀다.

    만성공주는 절망하더니 갑자기 이를 악물고는 하얀색 단검을 뒤쪽으로 찔렀다.

    하얀색 단검이 구두충의 단전을 찌르자 구두충은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그 자리에 쓰러졌고 요기가 빠르게 몸에서 흘러나와 흩어졌다.

    소백룡은 물론이고 심협과 무만아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제가 이미 구두충의 단전 기해(氣海)를 부쉈으니 앞으로는 절대로 수련을 하지도, 사람을 해치지도 못할 겁니다. 그러니 부디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그래도 죽여야겠다면 나부터 먼저 죽이세요!”

    만성공주가 단검을 새하얀 목에 대었다.

    “두 분 도우, 이를 어찌……?”

    소백룡이 눈살을 찌푸리며 심협과 무만아를 바라봤고, 무만아도 심협을 힐끗 바라보았다. 둘 모두 그의 결정을 기다렸다. 경지며 지위 모두 소백룡이 압도적으로 높았으나, 은연중에 두 사람 모두 심협을 따르고 있는 것이었다.

    심협은 신식으로 구두충을 살폈다. 체내의 요력과 마기는 정말로 완전히 사라졌고, 단전도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사실 그는 여전히 구두충이 어떻게 되든 완전히 소멸시키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허나 구두충을 쓰러트린 것은 소백룡이니 생사여탈권 역시 그에게 있었다.

    “선배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심협은 작게 답했고, 무만아도 묵묵부답으로 별다른 이견을 내지 않았다.

    “그렇다면 알겠소. 벽파담과 서해 용궁 사이의 정을 생각하여 오늘 목숨은 살려주겠소. 단, 이전에 훔쳐간 용궁의 보물은 모두 돌려줘야겠소.”

    “물건은 모두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삼태자!”

    만성공주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도 환하게 웃으며 저물팔찌를 건넸다.

    소백룡은 저물법기 안을 신식으로 살펴 서해 용궁의 잃어버린 보물이 모두 들어 있음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저물팔지를 챙기고는 심협 쪽을 향해 몸을 돌렸다.

    만성공주는 소백룡이 생각을 바꾸기 전에 구두충을 부축하여 멀리 사라졌고, 다른 요물들도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심협은 멀리 사라지는 요물들을 보며 왠지 모를 불안감이 들었지만,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분 도우가 도와준 덕에 목적을 달성했소. 두 분이 운몽택에 목적이 있다면, 내 기꺼이 돕겠소.”

    “저는 딱히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허나 만아는 은행나무 신수의 원액을 얻고자 했는데 아직 얻지 못했습니다.”

    “신수의 원액? 그야 간단하지. 갑시다.”

    소백룡이 소매를 휘두르자 금빛이 그들을 감싸더니 유성처럼 은행나무 신수 쪽으로 날아갔다.

    소백룡의 둔속은 심협보다 열 배는 빨라서 순식간에 신수 부근에 도착했다.

    좀 전의 싸움 때문이었는지 은행나무 신수를 지키는 요병은 하나도 없었다.

    무만아는 크게 기뻐하며 은행나무 신수 옆으로 다가가 몸에서 초록 빛을 번득이며 그 안으로 들어갔다.

    “심 도우, 체내의 마기는 어쩌다 그리 된 것이오?”

    소백룡은 밖에서 기다리던 중 조용히 물었고, 심협은 숨김없이 삼계무도회에서의 일을 전했다.

    “삼계무도회! 설마 거기에 치우의 마기가 있었을 줄이야…….”

    “마기는 제 몸에서 수시로 폭주를 일으켰지만, 다행히 몇 가지 보물이 있어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 대당 국사이신 원천강 국사께서 진선 경지로 돌파할 때 천뢰로 몸을 단조하면 이 마기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을 거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오. 심 소우는 이미 대승 후기에 도달하여 절정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은행나무 영과의 힘이면 진선 경지까지 돌파할 수 있을 것이오.”

    “본래 법보로 몸을 지키고 있어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오늘 마기의 사념이 심지까지 침투한 사실을 알고 우려가 큽니다. 만약 선배께서 제때 도와주시지 않았다면 일이 어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암담합니다.”

    심협은 쓰게 웃었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떨려왔다.

    “실로 걱정할 만한 일이오. 심 소우가 이번에 나를 많이 도와줬는데 내 아직 보답도 제대로 못 했구려. 내 정원사리(定元舍利)를 보답으로 드리겠소. 영산의 정원 부처가 좌화하시면서 남긴 물건인데, 이걸 지니고 있으면 마념이 심지에 침투하는 걸 막아줄 게요.”

    소백룡이 잠시 생각하더니 금빛으로 빛나는 사리를 꺼내서 건넸다.

    심협은 사양하지 않고 사리를 받아 들었다. 사리에서 뜨거운 기운이 흘러나와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지면서 머릿속이 맑아졌고, 심지를 뒤덮고 있던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감사합니다!”

    심협은 크게 기뻐하며 소백룡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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