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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723화 (723/1,214)
  • 723화. 2차전

    구두충은 자신의 일격을 버텨내는 양의미진진을 보며 표정이 차갑게 굳더니 발을 다시 디뎠다.

    콰르릉! 쾅!

    우렁찬 소리와 함께 여덟 개의 똑같이 생긴 핏빛 빛기둥이 뿜어져 나가 다시 양의미진진을 강타했다.

    두어 번 더 이어진 공격에 양의미진진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졌다.

    법진 금제의 방해가 사라지자 몇 개의 핏빛 빛기둥은 거침없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 가볍게 석벽을 부쉈다.

    쿠르릉!

    귀장은 현재 동굴 중앙에서 법진을 발동하고 있었는데, 급변한 상황에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는 곧장 땅속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핏빛 빛기둥이 너무도 빨리 날아와 인정사정없이 그를 공격했다.

    위기의 순간, 몇 개의 금색 뇌전이 뒤에서 뿜어져 나와 핏빛 빛기둥과 충돌했다.

    몇 번의 굉음이 울려 퍼지고 뇌광이 두어 번 번쩍이다가 핏빛 빛기둥과 함께 사라졌다.

    겨우 살아남은 귀장이 뒤를 돌아보니 굳게 닫혀 있던 밀실 문이 어느새 열려 있었고, 그 안에서 소백룡과 무만아, 연연이 다가오고 있었다.

    소백룡의 손끝에서 금색의 번개가 번쩍였다. 그의 기운은 평온했고, 왼팔에서는 월혼 살기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열 선배님, 다 나으신 겁니까?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귀장이 서둘러 소백룡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고마울 것 없다. 방금 치료의 마지막 고비였는데 방해받았으면 모든 게 수포가 되었을 것이다. 다행히 네가 법진으로 시간을 끌어준 덕분에 무사히 치료를 마칠 수 있었다. 오히려 내가 고맙구나.”

    소백룡이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동굴을 지키라는 주인님의 명을 따랐을 뿐입니다.”

    “심 도우가? 그의 보살핌을 많이 받긴 했구나. 자, 손님이 왔으니 가서 맞아야겠지?”

    소백룡은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성큼성큼 나갔다.

    무만아와 연연이 뒤를 따랐다. 이어서 따라가려던 귀장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는지 손을 휘둘러 검은 빛으로 동굴 주변에 설치된 양의미진진 설치 도구를 회수했다. 좀 전의 공격으로 법진 도구가 절반이나 부서졌지만, 다행히 법진의 핵심인 양의미진진부는 건재했다.

    귀장은 물건을 모두 거둔 후 전음으로 이곳의 상황을 심협에게 알리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 * *

    수만 리 밖, 심협은 현재 진시천리 신통으로 날고 있었는데, 연속으로 세 번이나 시전한 탓에 법력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중간에 만년옥수가 담긴 옥병을 꺼내기도 했다. 아까웠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한데 막 만년옥수를 꺼내 든 순간, 그는 멈칫하더니 이내 표정이 환해졌다.

    “그쪽 위기가 해결됐나요?”

    파사의 목소리가 건고대에서 들려왔다.

    “오열 선배께서 나오셨다 하오.”

    심협은 옥병을 다시 넣었고, 양팔의 풍뢰쌍익도 거둔 뒤, 어검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오열? 과거 구두충에게 약혼녀를 빼앗긴 소백룡 말이군요. 저번에 구두충을 쓰러트렸다고 들었어요. 다만 그때의 구두충은 상처도 다 낫지 않았고 요체와 본상으로 변하지도 않았었죠. 한데 지금의 구두충은 모든 실력이 회복되었을 테니까 오열이 적수가 안 될 수도 있어요.”

    파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도 다시 일깨워졌다.

    “내 오열 선배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서천 영산의 호법 신룡이자 용궁, 영산 두 문파에서 알아주는 자요. 구두충에게 뒤처지지 않을 게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 * *

    구두충은 소백룡의 기운이 느껴지자 차가운 눈빛으로 공격을 멈췄다.

    굉음과 함께 금빛이 무너진 동굴에서 뿜어져 나와 구두충 앞에 나타났다.

    “오열, 또 만났구나! 저번에는 마음껏 즐기지 못했으니 오늘 다시 싸워보자!”

    소백룡을 노려보는 구두충의 두 눈이 붉게 빛나기 시작했는데, 은연중에 짐승의 모습이 어른거렸다.

    그가 타고 있던 혈운에서 짙은 마기가 흘러나오자 혈운이 갑자기 커지면서 위협적인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역시 타락했구나. 힘을 위해 마기에 물들다니……. 그런 힘이 네 실력을 강하게 해줄지는 몰라도 점점 네 혈통의 근간을 침식하여 나중에는 경지의 돌파조차 불가능해질 것이다.”

    “헛소리하지 마라. 우리 귀차 일족은 마족의 혈통인데 왜 마기가 날 해치겠느냐? 네놈이 질투하는 게로구나. 하하하! 허나 안타깝게도 넌 영산의 불문 공법을 수련해서 몸 안의 요력이 모두 정화됐을 테니 마기에 물들고 싶어도 못하겠구나!”

    구두충은 화가 났으나 애써 참으며 소백룡을 조롱했다.

    “역시 말은 필요 없겠군. 너와 나의 깊은 원한을 오늘 확실하게 매듭 짓자!”

    소백룡도 더는 대화할 생각도 않고 금색용창을 꺼내 휘둘렀다.

    그가 용창을 던지자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금색 번개가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흥!”

    구두충은 차갑게 웃고는 손가락에서 핏빛을 연속으로 쏘아 보냈다.

    휙! 휙! 휙!

    다섯 개의 문짝만 한 초승달 모양의 혈홍색 칼날이 순식간에 백 장 거리를 날아가 금색 용창을 베었다.

    하지만 금색용창에서 갑자기 금빛이 크게 일렁이더니 순식간에 허공에서 사라졌고, 다섯 개의 혈홍색 칼날은 허공을 베었다!

    구두충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양손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일전에 심협과 싸울 때 사용했던 흉악한 모양의 장갑이 양손에 나타났다.

    그는 그대로 번개처럼 몸을 돌리며 두 주먹을 강하게 뻗었다.

    쾅! 쾅!

    두 번의 굉음이 울려 퍼지면서 거대한 주먹의 허상이 날아갔다. 이 허상의 핏빛이 서로 연결되고 뭉쳐지자 순식간에 지름 백 장의 거대한 핏빛 보름달로 변하더니 핏빛을 뿜어내며 뒤쪽 허공을 전부 뒤덮었다.

    핏빛 보름달이 만들어지는 순간, 뒤쪽 허공에서 금빛이 번쩍이더니 10여 장에 달할 만큼 거대해진 용창이 나타났다. 용창은 금색 뇌광을 어지럽게 뿜어내며 날아가 보름달 중심에 박혔다.

    쿵!

    금색용창이 박힌 곳을 중심으로 핏빛 달이 거울처럼 갈라지더니 일격에 부서졌다.

    구두충은 이번에야말로 정말 놀란 듯 짧은 비명을 질렀고, 양손 장갑에서는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위에 달려 있던 가시가 순식간에 몇 배나 커져서 강철 고슴도치처럼 변했고, 금색용창을 향해 전력으로 돌진했다.

    용창은 비록 크기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속도나 위력은 그대로였고, 여전히 번개처럼 날아가 두 개의 주먹과 다시 충돌했다.

    퍼펑!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두 개의 주먹은 가루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고, 구두충도 번개에 맞은 것처럼 충격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는 몇 장이나 날아갔다.

    금색용창도 튕겨 날아갔지만, 소백룡이 허공에 나타나 한 손으로 창을 움켜쥐더니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화살처럼 손을 뒤로 당겼다.

    찰나의 순간, 산과 같은 창의 허상이 그의 뒤에 나타났다. 이어서 몇 개나 되는지 셀 수 없는 창의 허상이 엄청난 기세로 구두충을 향해 날아갔다.

    구두충은 놀란 표정으로 양손을 옆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월혼구와 월아산(月牙鏟)이 나타났다. 이 수많은 월혼구와 월아산의 허상이 폭발하며 날아가 하늘에 빼곡한 창의 허상과 충돌했다.

    폭발음과 함께 금빛과 하얀 빛이 서로 충돌했다.

    월혼구와 월아산은 강력했지만, 너무 급하게 시전한 탓인지 몇 합도 겨루지 못하고 창의 허상에 산산이 부서졌다. 뒤이어 수십 개의 금색 창의 허상이 구두충을 향해 날아갔다.

    구두충이 짧게 외치자 양팔에서 핏빛이 번득이더니 순식간에 핏빛 광막이 생겨나 창의 허상들을 막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튕겨서 날려 보내지는 못했다.

    “네놈의 용창이 이리 강할 줄은 몰랐구나. 병기 싸움에서는 내가 졌다. 이제 내 혈운대진의 맛을 봐라!”

    간신히 몸을 가눈 구두충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이어서 그의 발아래 혈운이 커지면서 성난 파도처럼 퍼지더니 순식간에 하늘의 절반을 뒤덮었고, 눈부신 핏빛을 뿜어내며 주변의 모든 것을 붉게 물들였다.

    무만아와 귀장, 연연 등은 핏빛에 노출되자 바로 악한 마음이 솟구쳤고, 신혼이 흔들렸다. 이에 이들은 서둘러 각자의 둔술을 시전하여 멀리 물러났다.

    수십 리를 물러나고서야 악한 마음이 솟구치지 않게 되었다.

    “구두충의 혈운은 정말 요사스럽군요. 잠깐 노출된 것만으로 이 정도라니. 서둘러 도망쳐서 다행이지 계속 있었다면 당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오열 선배님 말씀대로 구두충은 마기에 침식당한 상태라 혈운에 적잖은 마기가 담겨 있어서 위력이 강해졌어. 아마 진선기 이하는 막아내지 못할 거야.”

    무만아가 진중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면서 양손으로 연연을 품에 안았다.

    연연의 경지는 귀장과 무만아보다 한참 낮았기에 반쯤 혼절한 상태였다. 무만아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초록 빛이 그녀의 기운을 정양해주었다.

    “평범한 대승기라면 몰라도 주인님이라면 충분히 막아내실 겁니다.”

    “심 오라버니의 실력이야 나도 잘 알죠. 한데 상황이 급박해서 못 물어봤는데, 오라버니는 왜 동굴 안에 없는 거죠?”

    “도우께서 밀실로 들어가 오열 선배님을 치료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인님께서 어디로 가신다는 말씀도 없이 나가셨습니다. 제 생각에는 구두충을 유인하여 오열 선배를 치료할 시간을 벌어주신 것 같습니다.”

    그 대답에 무만아는 소백룡이 완쾌되려면 어느 정도 필요하냐던 심협의 물음이 떠올랐다.

    ‘구두충이 동굴을 찾는 데 한참이 걸린 걸 보면 아무래도 심 오라버니의 작전이 성공한 모양이네.’

    그녀는 의아해하면서도 심협에게 더욱 탄복했다.

    “심 오라버니는 지금 어때요? 지금 어디쯤 있어요?”

    “주인님은 무사하십니다. 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서둘러 오고 계십니다.”

    무만아는 귀장의 대답을 듣고서야 안도했다.

    그 무렵, 허공에서는 구두충과 소백룡의 싸움이 다시 시작됐다. 천지를 이은 혈운이 갑자기 굉음을 내더니 성난 파도처럼 소백룡을 향해 순식간에 몰아쳤다.

    소백룡은 피하지 않고 온몸에서 금빛을 뿜어내며 돌진해오는 혈운의 깊은 곳으로 뚫고 들어갔다.

    주변에서 혈운이 벌떼처럼 몰려오자 그의 몸에서 금룡의 형상이 떠올라 가볍게 주변의 혈운을 밖으로 밀어냈다. 금색용창은 황금빛 번개처럼 가볍게 혈운을 찢더니 화살처럼 구두충을 찔러갔다.

    구두충의 양손이 검게 빛나더니 갑자기 거대한 검은 손이 나타났다. 매의 발톱 같은 모습으로 변한 손은 검은 빛을 뿜어내며 금색용창을 막으려 했다.

    퍼펑!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거대한 손에서 뿜어져 나간 검은 빛은 부서지고, 금색용창도 튕겨나갔다.

    소백룡의 몸이 빙글빙글 돌자 온몸에서 갑자기 하늘로 치솟는 금빛이 뿜어져 나왔다. 주위의 허공에서 불경을 읊는 큰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서 수많은 금꽃이 나타나 소백룡 주변에 반경 수백 장의 금색 공간을 만들어내 모든 마기와 혈운을 쫓아냈다.

    금색 공간에서 뿜어져 나온 수많은 금빛이 하늘을 뒤덮은 구두충을 공격했다. 혈운은 쉽게 뚫리고 한 치도 막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구두충은 오히려 차갑게 웃더니 양손을 결인했다. 그러자 주위의 혈운에서 수백 개의 흑홍색 촉수가 날아가 금빛을 공격했다.

    금빛이 반짝이고 혈운이 휘몰아치면서 소백룡과 구두충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그저 금색과 붉은색의 두 거대한 존재가 허공에서 싸우는 모습만 보였다.

    하늘에서 천둥이 치고 땅이 흔들리자 무만아와 귀장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다시 일정한 거리를 물러났다. 두 사람 모두 경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진선 후기 존재들의 싸움에 그들은 끼어들 자격조차 없었다. 그저 사소한 충격의 여파로도 중상을 입을 가능성도 있었다. 진선기 아래 존재에서는 오직 심협과 같은 괴짜만이 저 싸움에 끼어들 자격이 있는 셈이다.

    허공에서 핏빛과 금빛이 반짝였고, 둘 다 한 치도 물러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쉽게 승부가 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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