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2화. 방향 전환
순식간에 반각이 지났다.
편안했던 구두충의 표정은 점점 굳어졌고, 마침내 어두워졌다.
그는 이미 전방의 모든 혈문 벌새를 불러모았다. 하지만 심협은 마치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혈문 벌새는 내가 정성을 다해 정련한 탐색 영조다! 진선기 수사의 은닉술도 간파할 수 있단 말이다. 한데 어떻게 대승기 애송이가 내 영조의 탐색을 피할 수 있단 말인……. 그래. 파사! 그 요망한 것이 혈문 벌새를 피하는 방법을 알려준 게 틀림없어!”
구두충은 마침내 상황을 파악했다.
혈문 벌새를 만든 것은 자신이지만, 제련 과정에는 몇 번의 착오가 있었던 데다 혼자서는 돌볼 수 없었기에 파사와 연산, 귀장 등의 손을 빌렸다. 그러니 파사가 진즉 다른 마음을 품고 있었다면 그사이 혈문 벌새의 약점을 찾아냈을 것이다.
“파사, 기다려라. 네놈의 몸을 갈기갈기 찢고 신혼을 부숴서 이 세상에 태어난 걸 후회하게 해주마!”
구두충이 이를 갈며 포효했다.
그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갑자기 둔광을 멈추고는 앞에 있는 고경을 빠르게 결인했다. 그러자 마치 곳곳에 흩어져 있던 운몽택의 혈문 벌새들이 전부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
이 무렵, 심협은 을목선둔으로 만 리 밖까지 도망친 상태였다.
거기까지 가는 동안 그는 몇 번이고 혈문 벌새와 마주쳤지만, 파사의 약액이 정말로 효과가 있었는지 발각되지 않았다. 이에 그는 그제야 안심할 수 있었다.
그는 멈추지 않고 나아가 전력을 다해 구두충과의 거리를 벌렸고, 한적한 골짜기 앞에 도착했다. 한데 을목선둔을 시전하여 지나가려던 그가 갑자기 멈칫하더니 골짜기 안을 바라봤다.
산골짜기 안에서 하얀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보기에는 평범한 물안개 같아도 그 깊은 곳에서 순수한 물의 영력 파동이 느껴졌다.
“엄청 순수한 영기 파동이군요. 아무래도 여기 골짜기 어딘가에 영맥이 모여 있는 곳이 있나 봐요. 심 도우 법력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여기서 회복하고 가는 게 좋겠네요.”
파사가 건곤대에서 머리를 내밀더니 골짜기 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심협은 머뭇거렸지만, 확실히 법력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게다가 지금은 구두충이 자신을 찾을 수 없을 테니 잠시 법력을 회복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그는 산골짜기 안의 하얀 안개로 향했다.
안개 깊은 곳. 어느 호수에서 물이 반 장 높이까지 솟구쳐 물기둥을 이루고 있었고, 그 안에서는 매우 짙은 수령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심협의 무명공법이 수령의 기운을 감지했는지 갑자기 흥분하여 운공하는 속도가 몇 배는 더 빨라졌다.
“역시 영맥이 있었구나!”
심협은 기쁜 듯이 외치고는 연못 안에 가부좌를 한 채 영력을 흡수하는 동시에 단약을 먹고 연화하여 법력을 빠르게 회복시켰다.
“심 도우는 여기가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나요? 밖에서 봤을 때는 이상하지 않았는데 골짜기 안의 영기가 이렇게 강하다니, 뭔가 이상해요.”
“사실 운몽택 곳곳이 워낙 기이해서 이미 습관이 되었소. 이상한 점이 있다면 도우가 직접 한번 살펴보시오. 나는 최대한 빨리 법력을 회복해야 하오.”
파사는 입을 삐죽거리고는 건곤대 안에서 미끄러져 나왔다. 그녀도 몸에 약액을 바른 상태라 혈문 벌새에 발각될 위험이 없었기에 안심하고 연못 밑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그렇게 두 시진이 지났다.
파사가 바른 약액이 현묘한 것인지 아니면 심협이 몸을 담고 있는 연못에 은폐 효과가 있는 건지, 혈문 벌새는 여전히 그를 찾지 못했다.
심협의 몸에는 푸른 빛이 흘렀고, 얼굴은 영롱하게 빛났다. 이곳의 강한 수령의 힘과 단약 덕분에 단전 안의 법력은 빠르게 늘어나 벌써 절반이나 회복됐다.
심협이 기뻐하며 회복에 더 박차를 더하려는 순간, 연못에서 올라오며 파사가 신이 난 듯한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이런 조화가 있다니! 여기 연못에 만년옥수(萬年玉髓)가 있네요. 우리 둘 다 운이 너무 좋은데요?”
“만년옥수? 한 방울로도 순식간에 모든 법력을 회복하고 몇 만의 선옥으로 한 방울도 살 수 없다는, 전설의 그 만년옥수 말이오?”
심협은 운공을 멈추며 말했다.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여기 호수 깊은 곳에 수속성의 옥석 광맥이 있어서 뭔가 싶어 한참 살펴보니 만년옥수가 있어요!”
파사는 심협 옆에 멈추고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옥석 광맥? 만년옥수가 그런 광맥 안에서 자란다는 말을 듣긴 했소. 파사 도우는 옥수를 얼마나 얻어 오셨소?”
“열 방울이에요. 우리 파사 일족의 비법을 사용하면 만년옥수로 경지를 모두 회복할 수 있을 거예요. 서로 반씩 나누죠. 어때요?”
파사가 입에서 옥병을 뱉고는 건네주며 말했다.
“파사 도우가 고생하며 찾아온 귀한 것을 대가 없이 절반이나 준다는 데 어찌 불만이 있겠소? 내 감사히 받겠소.”
심협은 옥병을 받아 신식으로 안을 살펴보고는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이 정도 만년옥수라면 구두충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어!’
“시간이 꽤 지났는데 혈문 벌새가 아직도 우리를 못 찾은 것 같죠?”
파사가 위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 것 같소. 파사 도우의 약액이 정말로 현묘하오.”
“과찬이세요.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요?”
“여기가 안전해 보이니 한동안 여기 머무는 게 좋겠소.”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파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건곤대에 들어가지 않고 심협 옆에 머물렀다. 건곤대 안은 음기로 가득하여 경지에 심각한 손상이 오기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심협도 파사에게 건곤대로 들어갈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두 눈을 감고 법력 회복에 전력을 다했다.
“심 도우, 뭔가 이상해요!”
그가 막 회복에 들어갔을 때, 귓가에 갑자기 파사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오?”
그는 이제 파사의 성격을 어느 정도 이해했다. 이 요물은 매우 신중하여 쉽게 호들갑을 떠는 자가 아니었다. 이번에도 무언가를 알아차린 게 분명했다.
“방금 제가 신식으로 주변을 살펴봤는데 부근 백 리 안의 모든 혈문 벌새가 사라졌어요!”
“구두충이 혈문 벌새로는 우리를 찾지 못하니까 다 불러들여서 다른 영충과 영조로 찾으려는 것 아니겠소?”
심협도 신식을 펼쳐 파사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고는 추측했다.
“제가 알기로는 혈문 벌새는 구두충의 가장 뛰어난 탐색 영조라 다른 영조나 영충으로 바꾸지는 않을 거예요. 구두충이 혈문 벌새를 다시 불러들인 건 탐색을 포기한 게 아니라 다른 목적 때문인 것 같아요. 다만…… 그게 뭔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파사 도우가 수상쩍다 하니 이렇게 아무런 대비 없이 숨어만 있는 것도 적절치 않은 것 같소. 내 사람을 보내서 주변을 살펴보게 하겠소.”
심협은 심각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는 통령역요지술을 시전하여 거울 요괴를 소환했다.
“여기는 동해 요족 거울 요괴, 여기는 파사 도우다. 함께한 지 얼마 안 된 조력자야.”
심협이 간단하게 거울 요괴와 파사를 서로에게 소개했다.
“거울 요괴 도우군요. 반가워요.”
파사가 싱겁게 웃으며 거울 요괴와 인사했고, 거울 요괴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파사를 보더니 가볍게 인사하고는 심협을 돌아봤다.
“주인님, 오랜만에 불러주셨군요. 무슨 일이시죠?”
심협은 현재의 상황을 거울 요괴에게 간략하게 설명했다.
“……나와 파사 도우는 이미 구두충이 얼굴을 알고 있어서 어려우니 대신 가서 주위를 좀 살펴보고 오면 된다. 위험해지면 바로 돌아오고…….”
“알겠습니다.”
거울 요괴는 운몽택에 흥미가 생겼기에 심협의 명령을 흔쾌히 받아들이고는 푸른 빛이 되어 하늘로 치솟았다.
“심 도우, 거울 요괴를 혼자 보내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거울 요괴는 경지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독특한 능력이 있어서 스스로를 지키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거요.”
심협의 담담한 대답에 파사도 더는 묻지 않았다.
심협은 두 눈을 감고 계속해서 수련하는 동시에 거울 요괴를 기다렸다.
하지만 하늘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그가 눈을 막 감았을 때, 다급한 귀장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주인님, 큰일입니다.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많은 혈홍색 새들이 멀리서 날아오고 있는데, 여기 이 동굴을 노리는 듯합니다.”
“그건 혈문 벌새다! 오열 선배는 지금 어때?”
심협은 기겁하며 바로 전음으로 물었다.
“아직 밀실에서 치료 중인 것 같습니다. 다만 금제 때문에 그 안의 상황은 모르겠습니다.”
“그 새들은 구두충이 적을 찾을 때 쓰는 영총이다. 곧 돌아갈 테니 그때까지 동굴을 잘 지켜야 한다.”
“알겠습니다.”
파사는 심협의 표정이 갑자기 변한 걸 보고는 눈이 동그래졌다.
“무슨 일인가요?”
심협이 상황을 짧게 설명하자 파사 역시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구두충이 왜 혈문 벌새를 모두 불러모았는지 알겠군요. 그자는 혈문 벌새를 한곳으로 모아서 수색 범위를 집중한 거예요. 그렇게 하면 탐색 속도는 느리지만 훨씬 정밀하게 살필 수 있으니 그 동굴이 금방 발각된 거겠죠.”
심협은 구두충이 오랫동안 그들을 찾지 못하면 다른 방법을 쓸 것이라고 짐작이야 했지만, 자신과 파사를 놔두고 방향을 바꿔 소백룡을 찾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
“오열 선배는 아직 동굴에서 치료 중이니 서둘러 돌아가야 하오. 저들만으로는 구두충을 막아낼 수 없소.”
그는 벌떡 일어나며 전음으로 거울 요괴에게 복귀를 명했다.
“여기서부터 동굴은 너무 멀어서 전력을 다해 날아가도 반 시진 이상 걸릴 거예요. 그때쯤이면 모든 게…….”
파사는 말끝을 흐렸지만, 그녀의 말에는 돌아가기 싫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도 좋소. 오열 선배와 만아는 내 벗이니 난 반드시 돌아가야겠소.”
“심 도우,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도우가 돌아가기로 했다면 영수인 나도 당연히 따라가야죠!”
파사는 표정이 굳어 무뚝뚝하게 쏘아붙이고는 푸른 빛으로 변하여 바로 건곤대 안으로 들어갔다. 사실 그녀는 위험으로 돌아가기 싫었지만, 혹시라도 이런 위기 앞에서 홀로 도망친다면 나중에 심협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심협은 속으로 웃었다. 사실 그녀가 여기 남는다고 해도 그는 그녀를 어떻게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다만, 구두충의 속내를 가장 잘 아는 그녀가 함께한다면 승산이 조금은 더 높아질 거라 생각했다.
그는 곧장 어검을 타고 연못에서 날아올라 거울 요괴가 날아오고 있는 곳으로 향했고, 금방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주인님……?”
거울 요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무슨 일인지 물으려 했으나, 심협은 대답 대신 손을 휘둘러 그녀도 건곤대에 넣고는 바로 풍뢰쌍익으로 진시천리 신통을 시전했다.
* * *
동굴. 귀장은 잔뜩 긴장한 상태로 양의미진진을 발동했다. 속으로는 제발 이 진법이 매우 현묘하여 이 위험을 무사히 피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새떼는 금방 도착했다. 그는 양의미진진의 기운을 거두어 앞에서 날아오는 혈문 벌새의 감지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엄청난 무리의 새떼가 휘몰아치자 양의미진진도 모습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한편 동굴에서 천 리 떨어진 곳의 허공에는 혈운이 떠 있었다. 물론 그 위에는 구두충이 타고 있었다.
혈운 아래에는 만 리에 달하는 핏빛 파도가 펼쳐져 운몽택을 가로지르며 천천히 날아가 모든 것을 뒤덮었다.
“법진 금제? 이런 외딴곳에 누가 왜 금제를 설치했지? 설마 심협의 짓인가?”
구두충은 동굴의 존재를 감지하고는 혼자 중얼거리더니 혈운을 움직여 그리로 향했고, 금방 부근에 도착했다.
“정교한 환진이구나! 혈문 벌새가 정밀하게 탐색하지 않았다면 내 신식으로도 발견하지 못할 뻔했어!”
구두충은 양의미진진의 현묘함에 내심 감탄했다.
그가 손을 휘두르자 혈운에서 빛 기둥이 강한 기세로 뿜어져 나가 양의미진진에 꽂혔다.
핏빛 빛기둥에 공격을 당하자 양의미진진은 갑자기 하얗게 번쩍이며 크게 흔들렸지만, 부서지지 않고 버텨냈다.
몇 호흡 뒤, 핏빛 빛기둥은 모두 사라졌다. 양의미진진의 영광은 어두워졌지만 여전히 부서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