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19화 (719/1,214)

719화. 치료

앞서 날아가던 심협은 몸을 돌려 양손을 차륜 모양으로 빠르게 결인했다. 그러자 건곤현금대진 안에 있는 파금법진의 진법 도구가 번쩍이더니 노란색 영광으로 변하여 흩어졌다.

법진이 사라지자 부서졌던 통로는 굉음을 내며 합쳐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마친 심협은 몸을 돌려 두 팔을 펼치고는 최대한 빨리 달아났다.

이 무렵, 파사와 신기요, 화산종의 은색 장검 모두 어느 정도 멀어져 있었다.

파사가 변한 푸른색 뇌전이 가장 빨라서 벌써 천 장이나 날아갔고, 화산종의 은검 또한 어떤 보물인지 모르겠으나 엄청난 속도로 파사의 백여 장 뒤를 따르고 있었다. 신기요가 변한 하얀 빛이 그중에는 가장 느려서 이제 겨우 5백여 장밖에 날아가지 못한 상태였다. 그런 속도라면 누군가가 막아주지 않는 한 구두충에게 붙잡힐 가능성이 크니 그가 간교를 부린 것도 이해가 됐다.

허나 심협은 차갑게 비웃고는 곧장 진시천리 신통을 시전했다.

콰쾅!

두 팔에서 금색과 푸른색의 빛이 폭발하더니 커다란 날개로 변하여 백 장 길이의 영광을 뒤로 뿜어냈다.

다음 순간, 심협의 몸이 갑자기 흐릿해지더니 금색과 푸른색의 허상으로 변했고, 둔속도 열 배는 폭증하여 순식간에 화산종과 파사를 제쳤다. 다시 한번 반짝였을 때, 그는 모두의 시야 끝에 나타났고, 다음으로 빛을 발한 순간 완전히 사라졌다.

“저, 저건 무슨 둔술이지?”

파사 등이 아연실색하고 있을 때, 갑자기 뒤쪽의 건곤현금대진에서 굉음이 울려면서 커다란 구멍이 생겨났고, 그 사이로 핏빛 새 머리가 튀어나왔다.

파사 등은 놀라서 속도를 높여 흩어졌다.

핏빛 새 머리가 뿜어낸 불꽃이 대진 광막을 두들기자 너무도 쉽게 10여 장 크기의 구멍이 생겨났고, 대진 안에서도 불꽃이 솟아나면서 건곤현금대진에 또다시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법진은 순식간에 수많은 구멍이 뚫려 만신창이가 되었고, 노란색 영광이 점점 어두워지더니 굉음과 함께 완전히 폭발했다.

건곤현금대진이 부서지면서 구두충의 모습이 완전히 드러났다.

현재 그는 거대한 새의 모습이 아니었다. 하반신은 여전히 새였지만, 머리는 아홉 개의 거대한 뱀 같았다. 온몸에서는 불꽃같은 붉은 빛이 번쩍였는데, 마치 홍황의 마신 같은 모습이라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워질 정도였다.

하늘 끝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세 개의 둔광을 본 아홉 개의 머리는 동시에 포효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짙은 핏빛 안개가 그의 몸에서 솟아올라 하늘을 뒤덮는 혈운으로 변하더니 그의 몸을 받쳐 성난 파도처럼 둔광을 뒤쫓기 시작했다. 첫 번째 목표는 속도가 가장 느린 신기요였다.

심협은 파사 등의 생사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고 우선 수천 리 멀어진 뒤에야 멈춰 서서 을목선둔을 이용해 동굴로 향했다.

반 시진 뒤, 그는 무사히 동굴 안으로 돌아왔다.

연연과 소백룡이 밀실에서 상처를 치료하는 중이라 법력이 흘러나왔다.

심협은 이들을 방해하지 않고 건곤대를 꺼냈다.

건곤대가 검게 반짝이더니 무만아가 다시 나왔다.

“심 오라버니라면 우리를 안전하게 데려올 줄 알았어요.”

무만아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기뻐했다.

“운이 좋았지. 지금은 도망쳐 나왔지만 구두충의 부상이 모두 나았으니 여기를 찾아낼지도 몰라. 우선 은행나무 영과로 오열 선배의 상처부터 치료하자.”

심협은 옥갑에서 은행나무 영과를 꺼내 무만아에게 건넸다. 지금 상황에서는 오직 소백룡만이 구두충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이다.

“오라버니가 저와 귀장을 대진으로 들여보내줬을 때 저도 하나 챙겼어요.”

무만아가 반투명한 옥병을 꺼내더니 당당하게 흔들었다. 거기에는 금색 영과가 들어 있었다.

“영과 하나가 어디 갔나 했더니 거기 있었구나! 하하! 어쨌든 하나밖에 없으니까 그건 잘 가지고 있고, 우선 이걸 쓰자.”

심협은 유쾌하게 웃으며 다시 영과를 건넸다.

그는 황운금제를 부술 때 몰래 건곤대를 파금법진의 영광 안에 숨겨 먼저 위쪽으로 보냈다. 덕분에 무만아는 누구보다도 먼저 그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엽은신통으로 귀장과 함께 은행나무 신수 안에 숨었는데, 이는 실로 대단했고, 신기요와 파사의 신경이 온통 은행나무 영과에 쏠린 터라 이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건 오라버니의 전리품이잖아요. 제가 어떻게 받아요.”

“나는 하나면 충분해. 자, 실랑이할 시간 없어.”

심협은 은행나무 영과를 무만아에게 건넸고, 그녀도 더는 거절하지 못하고 영과를 받아 들고는 바로 밀실로 들어갔다.

심협은 같이 들어가지 않고 우선 가부좌를 하고는 회복 단약을 복용했다. 최대한 빨리 이번 싸움에서 소모한 법력을 회복해야 했다.

반나절이 지났을 때, 심협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에서는 정광이 반짝였다. 소모한 법력을 모두 회복한 것이다.

“주인님의 정진을 경하드립니다. 제 짧은 식견으로 보기에 주인님은 진선기 정도의 실력을 갖추신 듯합니다.”

건곤대에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귀장이 밖으로 나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승려 귀물을 흡수한 뒤로 귀장은 영지가 크게 진보하여 보통 생령과 거의 다를 바가 없게 됐다.

“진선기는 천뢰의 세례를 겪고 심경과 육체 모두 근본적인 탈바꿈이 되니 대승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진짜 실력은 아직 진선기에 한참 미치지 못하지. 오히려 네 섭혼마음이 더 대단하더구나. 신기요마저 당하더군. 하하하!”

“그자가 방심하고 있어서 운 좋게 걸린 겁니다. 허나 진선기가 대단하긴 하더군요. 섭혼마음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니 말입니다.”

“그게 정상이다. 잠시나마 진선기에게 통했다는 것만으로도 훌륭하지. 만약 구두충이 쳐들어오면 아까처럼 몰래 숨어 있다가 섭혼마음으로 기습해라.”

“설마 구두충이 여기까지 쫓아오겠습니까? 우리를 못 찾지 않았습니까?”

귀장이 의아한 듯 물었다.

“나도 기우였으면 좋겠다. 허나 구두충 같은 대요를 상대로는 아무리 조심해도 부족해.”

“옳은 말입니다.”

귀장도 구두충이 두려웠는지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심협은 귀장에게 동굴 부근의 금제를 지키게 한 뒤 동굴 깊은 곳의 밀실로 향했다.

안에서의 치료가 계속되고 있었고, 수시로 강력한 파동이 밖으로 흘러나왔다. 이 파동에는 은행나무 영과의 독특한 기운이 섞여 있었고, 이전보다 안정된 소백룡의 기운도 느껴졌다.

“만아의 말대로군. 은행나무 영과가 선배의 상처에 유용한 모양이야.”

심협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보아하니 머지않아 소백룡이 완전히 회복될 것 같았다.

그는 다시 자신의 밀실로 돌아갔다.

하지만 계속 수련하려던 그의 표정이 갑자기 딱딱하게 굳었다. 동굴 부근의 금제에 무언가 부딪친 것을 감지한 것이다. 양의미진진의 진기는 귀장에게 주었지만, 동굴 금제에 변고가 생기면 금제를 설치한 그는 눈치챌 수 있었다.

그는 곧장 밀실을 떠나 푸른 둔광으로 변하여 동굴 밖으로 나갔고, 금세 변고가 일어난 곳에 도착했다.

귀장이 이미 그곳에서 검은 기운으로 누군가를 휘감고 있었는데, 상대는 푸른색 뇌전을 뿜어내며 이 검은 기운에서 빠져나오려 애쓰고 있었다.

“파사 도우, 당신이 어떻게……?”

의외의 상황에 심협은 당황한 듯 외쳤다.

검은 기운에 잡힌 것은 푸른 영사(靈蛇)였는데, 바로 파사였다. 다만, 파사의 웅장했던 몸은 상당히 많이 줄어들어 팔뚝 정도의 두께에 길이도 1장밖에 되지 않았고, 기운도 많이 약해져 응혼기 정도에 불과했다.

“심 도우, 또 만났군요. 그대의 귀종에게 나를 좀 놔주라고 하시면 안 될까요? 난 절대로 악의가 없답니다.”

파사의 간곡한 부탁에 심협은 귀장에게 눈짓을 보냈다.

귀장은 그제야 파사를 풀어주고는 심협의 뒤로 물러났으나, 두 눈은 여전히 그녀를 째려보고 있었다.

파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허나 그녀의 몸 곳곳에는 검은 반점이 있었고, 피도 여기저기 흐르는 것이 매우 참혹한 모습이었다.

“파사 도우, 무슨 일이오? 왜 나를 찾아온 것이오? 아니, 그보다는 어떻게 이곳을 찾은 겁니까?”

심협은 눈살을 찌푸리고는 연달아 물었다.

“심 도우 잠시만요. 전부 설명할게요. 그전에 제 기운부터 가려줄 수 있을까요? 아, 도우의 은행나무 영과도 철저히 숨기는 게 좋을 거예요. 깊이 숨길수록 좋아요. 안 그러면 구두충이 금장 우리를 찾아낼 겁니다.”

파사는 다소 빠르게 말했다.

“구두충이 그대와 은행나무 영과의 위치를 감지할 수 있다는 거요? 체내의 금제를 완전히 부순 게 아니었소?”

“구두충은 아홉 개의 은행나무 영과 안에 자신의 요력을 담아놓은 것 같아요. 저도 그가 쫓아오는 걸 보고서야 알았죠. 구두충이 제 몸에 심어놓은 금제는 은행나무 신수의 힘으로 완전히 제거했어요. 그런데도 구두충이 제 위치를 감지할 수 있는 건 제 본체가 그의 수중에 있기 때문이죠.

정혈을 통해 저를 찾아낼 수 있는 비법이 있는 거예요. 함께 생사를 넘은 사이로서 부탁할게요. 나를 좀 살려줘요. 도우가 영과를 가지고 있는 이상 구두충이 절대 가만두지 않을 텐데, 저는 그의 약점을 많이 알고 있으니 분명히 도움이 될 거예요.”

심협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소매를 휘둘러 파사를 동굴 안으로 데려갔다.

“정말 감사해요.”

“감사하기에는 이르오. 그대를 구해주는 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소.”

“그게 뭐죠?”

두 사람은 얼마 전까지 적이었기에 심협이 조건을 제시하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니 그녀 역시 예상했다는 듯 태연했다.

“구두충의 성격상 자신을 배신한 도우를 죽일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을 테니 그대와 함께한다면 나 역시 위험할 거요. 또한, 우리는 반나절 전까지만 해도 적이었으니 내 안심이 되지 않소. 그러니 파사 도우가 내 보호를 받고 싶다면 내가 통령 표기를 심는 것을 허락하시오. 내 영수가 되라는 말이오.”

파사는 원래 전신기의 존재였다. 또한 구두충의 곁에 오래 머물렀기에 실력이나 견식 모두 상당하다. 그런 존재를 영수로 받아들인다면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사실 그가 방금 파사를 받아준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뭐라고요? 나보고 영수가 되라니!”

파사의 표정이 날카로워지더니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이글거렸다.

처음 그녀가 구두충에게 항복했을 때, 구두충은 그녀 몸에 금제만을 심었지 노예로 거두지는 않았다. 한데 이자는 뭔가! 요족의 눈에 인간족 수사의 통령 표기를 심는다는 것은 그의 노예가 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오해를 한 모양이구려. 통령 표기를 심는 것은 귀하가 나를 배반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지 그대를 노예로 부리려는 게 아니오. 그대와 나는 평소 지금처럼 지낼 것이오. 게다가 오래 잡아둘 생각도 없소. 백 년만 나를 도와준다면 바로 풀어주겠소.”

심협은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물론 거절해도 좋소. 그럼 바로 내보내 주겠소.”

파사는 아무 대답 없이 한참동안 심협을 바라봤다.

“구두충의 추적을 피할 방법은 있나요?”

“장담할 수는 없지만 7할의 자신은 있소.”

“좋아요. 죽는 것보다야 낫겠죠. 귀하의 영수가 되겠어요. 대신 딱 50년이에요. 그리고 그때가 되면 나를 풀어준다고 심마를 걸고 맹세해주세요!”

파사가 표정을 풀며 말했다.

“좋소!”

심협도 머뭇거리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그럼 어서 하죠. 더 지체하면 구두충이 쫓아올 거예요.”

파사가 재촉하자 심협은 지체하지 않고 한 손을 그녀의 머리에 대고 통령역술을 시전하여 표기를 심었다.

파사가 저항하지 않고 마음을 활짝 열었기에 순식간에 끝이 났다.

“이제 표기도 심었겠다, 어서 제 기운을 숨겨주세요.”

“조비, 동굴 주변의 법진을 온전히 펼쳐서 위력을 최대한으로 올려라.”

귀장은 허리를 숙여 명을 받더니 전력을 다해 양의미진진을 발동했다. 동굴 주변의 석벽에서 갑자기 하얀 빛이 피어올라 겹겹이 쌓이면서 백색 광막이 되어 모든 것을 뒤덮었다.

“이 금제는 상고의 대진이오. 이 정도면 구두충을 속이는 게 가능할 것 같소?”

“이 금제는 확실히 비범하지만 구두충의 비술을 완벽하게 가리지는 못할 것 같네요.”

심협의 물음에 파사가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더니 다시 눈을 뜨며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