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715화 (715/1,214)
  • 715화. 협정

    허나 심협의 예상과는 달리 파사는 노발대발하지도, 공격을 해오지도 않았다. 그저 표정이 기이하게 일그러지고 낯빛이 어두워졌을 뿐이었다.

    심협은 의아했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어 잔뜩 경계하면서도 소매에서 푸른 빛을 쏘아보내 먼 곳에 있는 또 하나의 영과를 휘감았다.

    그때였다.

    “크아아아!”

    귀청을 찢을 듯한 고함이 갑자기 울렸고, 허공이 강렬하게 떨렸다. 갑자기 수많은 투명한 파문이 일어나면서 거대한 은행나무 신수가 흔들렸고, 이파리들이 떨어지면서 이 파문에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나무에 달려 있던 영과 몇 개도 떨어지면서 반짝거렸으나 손상되지는 않았다.

    한편, 심협은 투명한 파문의 영향으로 안색이 변했고, 몸을 떨면서 피를 토해냈다. 그는 경계심을 한껏 끌어올리며 얼른 뒤로 물러났다.

    투명한 파문에는 특이한 진동의 힘이 담겨 있어서 매우 강인한 육체와 법력으로도 막지 못했다.

    “파사, 구두충의 수하가 어찌 은행 영과를 망가트리는 것이냐!”

    신기요도 투명한 파문에 영향을 받아 비틀거리며 물러나면서도 창백해진 얼굴로 외쳤다.

    황운금제 통로 앞, 본체로 변한 파사가 입을 크게 벌리자 거대한 입에서 수많은 파문이 뿜어져 나왔다.

    파사는 신기요의 질문을 무시하고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자 고래가 물을 빨아 들이듯이 엄청난 흡입력이 담긴 수많은 파문이 돌아왔다.

    세 개의 금빛으로 빛나는 은행 영과가 휘날리는 나뭇잎 사이로 날아가 뱀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파사에 뒤처지지 않는 경지와 영체에 가까운 본체를 가진 신기요는 이 광경에 곧장 하얀 빛을 뿜어내며 달려들려 했다.

    그러나 이내 신기요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세 개밖에 없지?”

    그는 은행나무 신수에 아홉 개의 영과가 있는 것을 분명히 봤다. 자신이 세 개, 심협이 두 개를 가져갔으니 네 개가 남아야 한다.

    파사는 신기요가 나서자 크게 포효하고는 거대한 뱀의 몸을 움직여 돌진했는데, 그 속도는 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장을 지나 신기요와 강하게 충돌했다.

    강력한 충격에 영체에 가까운 신기요도 버티지 못하고 멀리 날아갔다.

    이어서 파사가 다시 거대한 입을 벌리자 세 개의 영과가 더욱 빠른 속도로 날아들었고, 순식간에 모두 입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심협도 영과를 빼앗고 싶었으나, 파사와의 거리가 너무 멀었던 탓에 나서볼 기회조차 없었다. 대신 머리를 굴려 도망칠 계책을 생각했다.

    ‘두 마리의 교활한 진선기 요물과 한곳에 모여 있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지.’

    심협은 파랗게 번득이는 눈으로 주변을 살펴보더니 갑자기 하늘로 치솟아 순식간에 수백 장을 넘어 은행나무 신수 꼭대기에서 대진의 광막을 바라봤다.

    이곳의 광막은 비록 같은 노란 구름에 쌓여 있어서 노랗게 빛나고 있었지만, 그 안의 영광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정했다.

    심협이 파금법진을 꺼내 설치하려는데 광막이 갑자기 빛나더니 구름 같은 노란 빛이 흘러들어가 그곳의 금제 광막을 순식간에 두껍게 했다.

    아래의 은행나무 신수 옆, 파사가 어느새 다시 사람 모습으로 돌아와 노란 진기를 들고는 심협이 있는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파사, 이게 무슨 뜻이오? 그대가 은행 영과를 챙길 때 나는 방해하지 않았소. 설마 내 것까지 탐내려는 게요?”

    심협은 차가운 눈빛으로 파사를 내려다보며 말했는데, 그러는 와중에도 몰래 황정경을 운공했다. 그러자 금빛이 갑자기 폭증하더니 주변에 용상(龍象)의 허상이 나타났고, 검은 빛과 함께 구여마갑이 몸을 감쌌다. 법력과 마기가 서로 교차하며 반짝이자 기운이 크게 폭증했다. 비록 파사와 신기요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리 뒤처지지도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신기요의 안색이 조금 변했다. 그는 본래 심협의 파금법진이 탐나서 연합한 것뿐으로, 상대의 실력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었다. 기회를 봐서 은행 영과를 빼앗을 생각이었는데, 지금 보니 상대를 너무 과소평가한 듯싶었다.

    “하하! 귀하의 신통이 그 정도 경지일 줄은 전혀 몰랐군요. 정말 놀랐습니다. 안심하시죠. 도우를 난처하게 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두 분 도우는 금제를 파해하지 말고 잠시 이곳에 머물러 주십시요.”

    파사가 웃으며 말했다.

    심협은 그 목소리에 적의가 없음을 알고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여기에 남아 있으라고? 그대는 신수의 힘으로 구두충이 그대 몸에 심은 곤심(困心) 금제를 부수려는 건가?”

    신기요는 당황했으나, 이내 이유를 짐작하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이미 그를 배신했으니 그자가 폐관하고 있을 때 체내의 금제를 부수고 멀리 달아나야 합니다. 다만 건곤현금대진은 그가 애써 고안한 법진이라 그자의 심신 각인이 새겨져 있습니다. 금제가 부서지면 예정보다 빨리 폐관을 깨고 나올 텐데, 그리 되면 우리는 모두 죽게 되겠죠. 그러니 금제를 부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거였군.”

    신기요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벌써 이 대진을 두 번이나 부수었소. 구두충이 정말로 심신의 각인을 대진에 남겨놨다면 진즉 알아챘을 것이오.”

    “도우가 밖에서 대진을 부술 때는 내가 술법으로 대진 안의 금제를 제압하였으니 그 상황은 전달되지 않았을 겁니다. 방금 두 번째로 부순 노란 구름은 건곤현금대진의 신통에서 파생된 것뿐이니 별다른 관련이 없지요. 대진 금제를 제압하는 것은 매우 힘들어 두 번은 힘듭니다. 그러니 다시 부순다면 구두충은 분명 알아챌 거요.”

    심협은 그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잠겼다.

    “은행나무 신수로 체내의 금제를 부수는 데는 일각이면 충분하니 두 도우께서는 부디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파사는 심협과 신기요에게 허리를 굽히고는 온화한 말투로 간절하게 부탁했는데, 그 모습이 가련해 보였다.

    “신기요, 그대는 저 제안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심협은 태연한 표정으로 전음으로 신기요에게 물었다.

    “내 알기로, 그녀의 말은 대부분 사실이오. 도우가 만약 다시 부순다면 정말 구두충이 올 수도 있소.”

    “올 테면 오라고 하시오. 그자는 부상이 아직 낫지 않았으니 이곳을 벗어나 바로 흩어지면 우리를 잡지 못할 것이오. 그리고 파사가 신수의 힘으로 체내의 금제를 부순다 해도 건곤현금대진을 깨야만 여기서 나갈 수 있을 터. 그리 되면 구두충이 알아채는 건 똑같지 않소?”

    “그건 그렇군.”

    신기요는 거기까지 생각하지 않았기에 할 말이 없었다.

    “내가 체내의 금제를 부순 뒤라도 건곤현금대진을 깨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 그리 되면 구두충이 올 것이라 걱정하는 거죠? 그 일은 걱정하지 마세요. 내 체내의 금제를 부순다면 실력이 대폭 강화될 터. 건곤현금대진을 다시 제압할 수 있을 테니 구두충이 눈치채지 못할 거요.”

    파사는 심협과 신기요의 대화를 듣기라도 한 듯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귀하의 말은 모두 일리가 있소. 다만, 그대가 지금 일부러 시간을 끌어서 지원군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님을 내 어찌 믿겠소? 신기요, 내 의견은 지금 바로 떠나는 거요. 어떻게 하겠소?”

    심협이 태연한 표정으로 덤덤하게 말하자 파사는 눈빛이 싸늘하게 변했지만, 우선은 분노를 억누르고 신기요를 돌아봤다.

    신기요는 두 사람의 눈빛에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심 도우의 말이 거칠긴 해도 도리가 없지는 않소. 다만, 심 도우의 제안도 위험성은 있지. 그러니 이리 하는 게 어떻소? 두 분은 한 걸음씩 물러나는 것이오. 우리는 여기서 잠시 기다릴 테니 파사 도우는 방금 한 말이 사실이며, 나와 심 도우에게 후한 보상을 하겠노라고 심마를 걸고 맹세하시오. 그대를 기다리는 것은 우리로서는 큰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니 이는 마땅하다고 생각하오.”

    “물론이죠! 내 심마를 걸고 맹세할게요. 당연히 보상도 할 겁니다. 위험 앞에서 힘을 합치면 벗이 되는 것이니 마땅히 선물이 빠지면 안 되겠죠.”

    파사는 망설임 없이 두 개의 저물법기를 꺼내서 심협과 신기요에게 건넸다.

    심협은 저물법기를 받으면서도 눈으로는 파사를 응시했고, 신식만 그 안으로 집어넣어 살폈는데, 이내 깜짝 놀랐다. 저물법기에는 적지 않은 진귀한 영재와 영초가 들어 있었는데, 아무래도 운몽택 특산물 같았다. 또한 선옥이 대략 만 개 정도 있었다. 이 정도면 실로 후한 선물이었다.

    신기요도 신식으로 저물법기를 살피고는 환하게 웃었다. 거기에도 적지 않은 물건이 들은 게 분명했다.

    “나 파사가 심마를 걸고 맹세합니다. 방금 내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며,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다면 신혼이 부서져 이곳에서 비참하게 죽을 겁니다!”

    파사는 한 손을 들고는 숙연하게 맹세했다.

    심협은 그런 파사의 맹세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신기요 선배께서 그리 말씀하셨으니 체면을 세워드려야죠. 어서 하시오.”

    “도우의 양해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최대한 서두르겠습니다.”

    파사는 기뻐하며 몸에서 푸른 번개를 번쩍이더니 은행나무 신수 안으로 들어가 그대로 사라졌다.

    심협은 황급히 신식으로 은행나무 신수 안을 살피며 파사를 경계했다.

    “걱정할 필요 없소. 파사는 비법으로 은행나무 신수 안으로 들어가 신수의 만년 된 목령의 힘으로 구두충이 몸에 심어놓은 금제를 없애려는 것뿐이오. 도망칠 리가 없소.”

    확실히 파사는 은행나무 안에 있었고, 도망갈 기미는 전혀 없었다. 심협은 그제야 안심하고는 신수 아래로 내려가 자리 잡고 앉았다.

    은행나무 신수는 금빛과 함께 놀라울 정도의 영력 파동을 뿜어내고 있었다.

    심협은 이를 보며 눈을 치켜떴다.

    ‘이 엄청난 영력 파동은 은행나무 신수가 수만 년을 모아온 목령의 힘인데 파사는 그 힘을 사용할 수 있다니, 수단이 대단하구나!’

    신기요도 자리를 잡고는 가부좌를 한 채 수련에 들어갔고, 이내 몸에서 푸른 빛이 반짝거렸다.

    심협은 눈을 감고 규령비술을 시전하여 자심목을 통해 신목 아래의 상황을 살폈다.

    신기요가 위로 올라오면서 아래의 하얀 환무는 사라졌고, 화산종 사람들과 연산, 귀장은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그러나 파사의 도움이 없이는 연산과 귀장은 화산종의 적수가 되지 못했고, 대장로까지 나서자 얼마 후 두 요물은 중상을 입고 포박되었다.

    “저들의 요력을 가두되 죽이지는 마라.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네!”

    대장로의 명에 답한 사람은 회색 머리 노인이었다. 어느새 푸른 실 금제에서 벗어난 그는 수백 개의 푸른 침을 꺼낸 뒤 주문을 외우고는 허공에 뿌렸다. 그러자 수백 개의 침은 일제히 날아가 연산과 귀장 몸 곳곳을 찔렀다.

    두 요물은 낮은 소리로 신음했고, 몸을 덜덜 떨며 쓰러졌다. 요력이 완전히 봉인돼 조금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탁(卓) 장로님의 유람귀침(幽藍鬼針)은 갈수록 정교해지는군요. 감복했습니다.”

    독낭자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찬사를 보냈다.

    “사소한 잡기일 뿐이네. 독낭자의 천절독공(千絶毒功)에 비하면 언급할 가치도 없지.”

    회색 머리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도도한 소년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대장로 옆으로 다가갔다.

    “전철생 그자는 들어올 엄두가 안 났는지 아니면 변고가 생긴 건지 보이지도 않는군요. 통로도 닫혀 버렸으니 이제 어떡하죠?”

    0